左丘明 생몰년도 미상 >'''교묘하게 말을 잘하고, 보기 좋게 얼굴빛을 꾸미며, 지나치게 공손한 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고 나도 부끄럽게 여긴다. 원한을 감추고 그 사람과 친구처럼 지내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고 나도 부끄럽게 여긴다.''' >----- > '''[[공자]]''' [목차] == 개요 == [[춘추시대]]의 인물. [[노나라#s-1|노(魯)나라]] 사람으로 [[전한]]의 유학자 공안국은 노나라의 태사, [[북송]]의 형병은 노나라의 태사로 공자에게서 춘추를 수업받은 자, [[남송]]의 [[주자(철학자)|주희]]는 논어에 나오는 좌구명과 춘추좌전을 저술한 사람은 별개의 인물, 남송의 정이천은 옛날의 문인으로 전설적인 인물이라 주장했다. [[춘추좌씨전]], [[국어(역사책)|국어]]의 저자로 알려져 있으며, 좌구명이 두 눈을 잃고 맹인이 되면서 좌전을 지었다는 설이 있어 좌구실명(左丘失明)이 된 것을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당시의 사람들이 맹좌(盲左)라 부르기도 했다. 춘추좌씨전의 저자는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청나라]] 대의 고증학자들에 따르면 춘추좌씨전은 좌구명 한 사람이 지은 책이 아니라 여러 대에 걸쳐 사관들이 쓴 저작으로 좌구명은 최후의 정리자 쯤 되었을 것이라고 여겼다.[* 혹은 사관을 세습한 좌씨 집안에서 여러 대에 걸쳐 쓴 기록물이라는 설도 있다.] [[논어]]에 기록된 [[공자]]의 설명에 따르면, 좌구명은 말 또는 얼굴색을 꾸미거나 공손함이 지나친 것을 부끄러워했다고 하며, 또한 원망함을 숨기고 그 사람과 친한 척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다고 하는데, 공자도 똑같이 여겼다고 한다. 사통에서 좌구명의 문체는 서술된 문장이 매우 간략하고 무엇인가 빠진 것 같지만, 그 안에 표현된 논리적인 줄거리는 매우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그의 후손들은 좌씨(左氏)와 구씨(丘氏) 성을 썼다고 하며 구(丘)는 구(邱)와 통용되었다고 한다. [각주] [[분류:춘추전국시대/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