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www.greatchinese.com/buddha062.jpg]] 支謙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오나라]]의 [[승려]]로 자는 공명(恭明). 본래 [[월지]] 사람인 우바새[* 출가하지 않고 부처님에게 제자된 남자를 말한다.]로 일명 월(越)이라 부르며, [[지량]]에게서 수업을 받아 널리 경서를 읽어 정밀하게 탐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한다. 세간의 기예를 익힌 것이 많으면서 다른 나라의 글도 익혀 여섯 국가의 말에 뛰어났다. 한나라 [[헌제]] 말에 난리가 일어나자 오나라로 피했고 [[손권]]이 그가 재주가 있고 지혜롭다는 말을 듣고 그를 만나보고 기뻐했으며, 벼슬을 주어 박사로 삼아 동궁을 돕도록 했다. [[위소]] 등 여러 사람과 더불어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보탬이 되고자 힘썼는데, 한나라 바깥 지역에서 태어나 오지에는 실리지 않았다. 용모는 호리호리한 큰 키에 몸이 마르고 거무튀튀하면서 눈은 흰 자위가 많고 눈동자는 누런빛을 띄었다고 하며, 당시 사람들은 그에 대해 누런 눈동자에 몸이 비록 호리호리하지만 꾀주머니라고 했다. 당시 오나라 사람들이 승려 [[유기난]]에게 경을 번역할 것을 청했지만 중국말을 잘하지 못해 [[축율염]]과 함께 한문으로 번역해 뜻은 본래의 의미를 살리는데 두었기 때문에 그 표현은 질박했다고 한다. 지겸이 질박해 그 문장이 세련되지 못한 점을 싫어했다고 한다. 지겸은 외국어를 아주 잘해 불법의 큰 가르침이 행해지고 있지만 대부분 [[산스크리트어|범문]]으로 된 글이라 아직 번역이 미진하다고 여겨 여러 본들을 수집해 한문으로 번역했으며, 황무[* 222 ~ 229년이다.]에서 건흥[* 252 ~ 253년이다.] 연간에 이르기까지 유마경, 대반니원경, 법구경, 서응본기경 등 49가지의 경을 번역했다. 곡진하게 성스러운 뜻을 실었으면서도 말의 뜻이 운치가 있고 우아했는데, 무량수경, 중본기경에 의거해 보리련구, 범패삼계를 저술했으며, 요본생사경 등에 주석을 달았다고 한다. 그 당시에 세상에 널리 퍼졌다고 한다. == 관련 사료 == * 고승전 * 한글대장경 목록부 개원석교록 [[분류:서역의 승려]][[분류:손오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