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고대 한반도에 존재했던 소국들의 연맹체, rd1=진한)] [include(틀:중국의 역사)] || [[진(영성)|{{{#ece5b6 {{{+1 '''진(秦)'''}}}}}}]] || [[한나라|{{{#ece5b6 {{{+1 '''한(漢)'''}}}}}}]] || || '''[[기원전 221년|{{{#ece5b6 B.C. 221.}}}]] ~ [[기원전 207년|{{{#ece5b6 B.C. 207.}}}]] [[11월 17일|{{{#ece5b6 11. 17.}}}]][br](14년)''' || '''[[기원전 202년|{{{#ece5b6 B.C. 202.}}}]] [[2월 24일|{{{#ece5b6 2. 24.}}}]] ~ [[220년|{{{#ece5b6 220.}}}]] [[11월 25일|{{{#ece5b6 11. 25.}}}]][br](422년)'''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0, #a11)" '''총 441년'''}}} || {{{+1 秦漢時代(秦汉时代)}}} [목차] == 개요 == [[진(영성)|진나라]]와 [[한나라]] 두 시대를 합쳐서 부르는 말로,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기원전 221년]]부터 [[후한]]이 멸망하는 [[220년]] [[11월 25일]]까지의 약 441년의 기간을 말한다. 진나라는 [[춘추전국시대]] 내내 존재했지만, [[진시황]]의 천하통일 이전 시기는 진한시대에 포함하지 않으며, [[선진시대]](先秦時代)라고 한다. 이 시대에 진나라와 한나라 두 왕조만 있었던 건 아니고, 진나라가 멸망한 후 [[고제(전한)|유방]]이 다시 천하를 통일하기까지의 [[초한쟁패기]], 그리고 [[전한]]과 중간에 들어선 [[왕망]]의 [[신나라]], 신나라를 멸망시키고 전한을 다시 부활시킨 [[현한]]과 [[후한]]까지의 시기를 모두 포함한다. 진한시대는 [[춘추전국시대]] 이후 최초로 중국이 통일된 시기이다. 진한시대 안에서도 중간에 잠깐씩 분열되긴 했지만 그 시기가 길지 않았으므로 대체로 통일왕조를 유지했던 441년의 기간을 통틀어 진한시대라고 한다. 더욱이 [[진(영성)|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이후 유지한 기간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기에 대체로 뒤에 들어선 통일왕조인 [[한나라]]와 같이 묶어서 부른다. 이는 훗날의 [[수당시대]]와 비슷한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한나라가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후한]]의 끝무렵에는 국정이 탁란해지고 신하들이 왕권을 위협하였다. [[황건적의 난]] 이후에는 여러 세력이 일어나 [[군웅할거]]하며 한나라 황실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고 실질적으로 [[조조]]나 [[유비]] 같은 군웅들이 통치하는 시대가 되었다. 학자에 따라서는 황건적의 난이 일어난 [[184년]] 이후부터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로 분류하기 때문에 진한시대의 끝무렵은 삼국시대와도 겹친다. [[삼국지연의]]는 엄밀히 따지고 보면 바로 진한시대의 끝무렵이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 역사 == == 특징 == 이 시대는 [[중국]]이 최초로 통일되고 [[한족]]이라는 [[민족]]의 정체성이 정립되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한족(漢族)의 한자만 봐도 알겠지만 한족의 한(漢) 자가 바로 [[한나라]](漢)에서 따온 것이다. [[중국어]]를 [[한어]](漢語)라고 하기도 하며, [[청나라]] 이전 한족의 전통의상을 [[한푸]](漢服)이라고 한다. [[한자]](漢字) 역시 여기서 유래했다. 이처럼 중국 내에서는 현재까지도 중국이라는 말의 대용으로 한나라의 한(漢)을 쓰는데, 이것은 자신들의 정체성이 한나라부터 시작되었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별개로 외국에서 중국을 일컫는 [[영어]] '[[China]]'는 진나라로부터 유래했다. 원래는 [[산스크리트어]]로 'Sina'라고 했던 것이 서양에서는 China로 바뀌었다. 인도에서 Sina라고 했던 것이 다시 중국으로 들어와 [[지나]](支那)라고 음역이 됐는데, 우리나라로 따지면 [[고려]]로부터 유래한 [[Korea]]라는 단어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서 고리아(高里亞) 정도가 된 것이랑 비슷하다. 현대에는 대체로 지나라는 말이 사라지긴 했지만, [[동중국해]]나 [[남중국해]]를 동지나해, 남지나해로 부르기도 하며, [[일본]]에서는 [[주고쿠]](中国) 지방과 구분하기 위해 지나라는 명칭을 쓰기도 했다. 아무튼 이 진한시대는 대외적으로 중국을 인식시키고 정체성을 확립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황제]](皇帝)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기도 했다. 본래 중국의 군주는 황제가 아니라 [[왕]](王)이었는데, 당시 [[주나라]]의 군주만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직함이었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너도 나도 왕이라고 하는 바람에 왕의 권위가 떨어지고 이에 진시황은 왕보다 더 높은 황제라는 직함을 새로 만든 것이다. 이때부터 중국에서 왕은 나라의 군주가 아닌 [[제후]]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중국 특유의 천하관은 이미 주나라 왕을 [[천자]](天子)라고 칭할 때부터 있었지만, 이때만 해도 중국 내에 국한되는 이야기였고,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후에는 이 천하관은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산시키기 시작한다. === 문자 / 언어 === [[종이]]는 [[후한]] 시대에 발명이 됐기 때문에 진한시대의 대부분은 [[목간]]에 글자를 썼다. 종이가 발명되고 나서도 종이가 완전히 목간을 대체하지는 않았다.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하면서 각 지역의 [[도량형]]과 [[문자]], [[언어]]를 통일하는 작업을 벌였다. 중국 전역에서 [[한자]]를 쓰기는 했지만 글자 모양이 다 제각각이었고, 같은 단어라도 의미가 달랐다. [[셴양시|함양]]에서 전국에 공문을 내리더라도 지방에서는 당최 알아먹을 수가 없으니 통치에 매우 번거로웠을 것이다. 이때 나온 서체가 바로 [[선진시대]]의 [[대전체]]를 개량한 [[소전체]]이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소전체를 더욱 간략하게 만든 [[예서]]가 발명되었는데, 예서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전한]] 시대이다. [[전서]]는 지금 [[한자]] 모양과는 매우 달라 알아보기가 매우 힘들지만, 예서는 지금 쓰는 [[해서]]의 기본형이 되는 글자로, 알아보기가 매우 쉽다. 그러나 예서가 처음 발명되었을 당시에는 고예(古隸)라고 해서 네모난 모양의 딱딱한 글자였는데, 처음에는 전서체에서 아주 많이 개량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고예만 해도 전서체와는 달리 알아볼 수 있는 정도다. 이후 예서는 지금의 해서 모양과 비슷하게 조금씩 변모한다. 그리고 이 당시에는 목간에다가 글자를 썼기 때문에 세로로 글자를 썼는데, 한 줄에다가 최대한 많은 글자를 욱여넣기 위해서 세로는 짧고 가로는 긴 모양의 글자가 되었다. [[분류:진한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