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중국인을 비하하는 [[멸칭]]이다. == 어원 == [[일본어]] ちゃんころ[* 외국어라고 생각되어 [[카타카나]]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메이지]] 이전부터 대정 시대 때 쓰인 단어로 순 和語(화어)이기 때문에 [[히라가나]]로 쓰인다.]에서 유래한 말이다. 의외로 사용 시기가 상당히 오래된 단어로,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도 중국과 [[중국인]]을 저렇게 불렀다. 즉 중국이란 중국인들이 불러주길 원하는 단어로서 영어권에서는 중국을 'China'라고 부르는 것처럼 당시 일본에서는 '시나'라고 불렀으면 조선에서는 일반적으로 '짱꼴라'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는 것.[*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는 아예 중국 자체를 짱골라라고 불렀다고 적혀 있다.] >열차 투석 빈빈(頻頻)[* 빈번] >'''장꼬로''' 머리를 때려 >...돌을 던진 자가 있어서 그 돌이 삼등차의 유리창을 깨치고 들어와서 '''지나인''' 승객 한사람의 머리를 맞추어서 부상케 하였는 고로 지금 그 범인을 엄탐 중이라더라. >----- >1920년 4월 26일 [[매일신보]] >일본에서는 지나(支那)라는 말보다도 더 모욕적인 ''''장꼬로'''-'라는 말이 사용되는 것을 들은 일은 있는가? >----- >1930년 6월 25일 [[조선일보]] 문헌상 광복 이전에는 '장꼬로', '짱꼬로'로 쓰였고, '짱꼴라'는 광복 이후에나 발견된다. 1920년대까지는 속칭이지만 경멸의 뜻은 나타나지 않으나 1930년대로 오면 놀리거나 모욕적인 언사로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이 무렵부터는 멸칭으로 자리잡은 것을 알 수 있다. 뉴스 라이브러리로 검색하면 해방 전엔 '짱꼬로'로 쓰였고, 해방 이후에 '짱꼴라'로 쓰이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일본에서 부르는 'ちゃんころ'를 거쳐서 우리도 쓰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식 언어이기 때문에 히라가나로 사용된다.] 'ちゃんころ'의 기원에 대해선 [[한족]]들이 청나라의 [[만주족]] 군주 앞에서 무릎을 끓고 큰절을 하며 자신들을 '노재(奴才)'라 부른 것을 청나라에 방문한 일본인들이 보고 '청나라의 노예'라는 뜻으로 '청국노(淸國奴)'라 부른 말이 건너온 것이라는 설이 가장 설득력있다.[* 淸國奴의 대만어 발음이 chheng¹-kok⁴-lô⁵인데 대만의 일본식민지 시절에 이 발음이 일본에 전해지면서 와전되었다고 함.] 당시 중국식 의복을 챵복(チャン服), 중국 음식을 챵료(チャン料) 등으로 불렀으며 이것은 적어도 메이지 초기 때부터 나타난 단어이다. 일본에선 특히 중국 한족들에게 쓰이던 말이였다. 영화 [[주전장]]에 출현한 일본군으로 복역했던 노인에 따르면, 중국인들을 학살할 때 칼로 머리를 자를 때 나는 소리인 'チャン'과 머리가 떨어질 때 나는 소리인 'コロ'가 합쳐져 'チャンコロ'가 되었다고 하지만 중국인들을 학살하기 이전 메이지시대부터 사용되면서 이것이 꽤 시간이 지나고 군시나어(兵隊シナ語)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일본에서 챵코로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는 사이트 [[https://ja.wikipedia.org/wiki/%E3%81%A1%E3%82%83%E3%82%93%E3%81%93%E3%82%8D|#]] 아주 예전에는 비속어가 아닌 중국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즉 짱꼴라의 어원인 ちゃんころ(챵코로)는 일본에서 [[중국인]](한족)을 가르키는 군시나어(兵隊シナ語)[* 군대 시나어는 피진의 일종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일본제국군이 출병하여 중국에 상주하고 있을 당시 사용하던 속어들을 말한다.[[https://ko.wikipedia.org/wiki/%EC%9D%BC%EB%B3%B8%EA%B5%B0_%ED%94%BC%EC%A7%84_%EC%A4%91%EA%B5%AD%EC%96%B4|위키]]] 속어로서 일본제국 시절 중국에 적극적으로 출병할 당시 빈번히 사용되었다. 당시 일본군은 중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중국 요리는 챵료(チャン料), 중국 의복은 챵복(チャン服)으로 사용되었다. 영화 [[주전장]]에 출현한 일본군으로 복역했던 노인에 따르면, 중국인들을 학살할 때 칼로 머리를 자를 때 나는 소리인 'チャン'과 머리가 떨어질 때 나는 소리인 'コロ'가 합쳐져 'チャンコロ'가 되었다고 하고, 한국 언론에서도 같은 내용의 유래를 소개한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62121000329201020&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62-12-10&officeId=00032&pageNo=1&printNo=5268&publishType=00020|기사]]가 있어 이러한 설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중국인들을 학살하기 이전 메이지시대부터 사용되면서 이것이 꽤 시간이 지나고 군시나어(兵隊シナ語)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 다른 설 ===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쭝꿔런(中國人)의 일본식 발음에서 유래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흔히 넷상에선 중국어로 '불결하고 더러운 썩은 뼈다귀' 같은 인간이라는 뜻이란 설명이 돌아다닌다. 짱(장葬) 꼴(골骨) 라(인人)이란 그럴싸한 한자까지 덧붙여서. [[한비야]]가 쓴 '중국견문록'이 그 출처이다. 하지만 실제 이런 욕은 없다. == 기타 == [[도조 히데키]](東条英機)가 챵코로(ちゃんころ)를 자주 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도조 히데키는 당시 [[난징]]을 정복한 이후 "챵코로의 역사는 한족(漢民族) 여성의 엉덩이로 이룩한 역사일뿐이다. "지나(支那)의 역사는 이민족의 지배에 점철된 역사이다"라고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중국인들의 인식 == 중국식 표현은 아닐지라도 중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명칭인 듯하다. 특히 예전 일본 넷게시판인 니챤네루(2ちゃんねる)와 고챤(5ちゃんねる)에서도 중국인 부르는 군시나어(일본제국때 부르던 군대어)어로 자주 사용되었으며 니챤네루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니챤코로로 부르기도 하였다. == 여담 == * [[도조 히데키]]가 자주 사용했던 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 설[* 해당 이야기는 [[2ch]]에서 ちゃんころ 스레 때 언급되었던 이야기라고 알려진다.]에 따르면 일본군의 난징 점령 이후 도조 히데키는 "[[지나#s-3|지나(支那)]] 챵꼬로(ちゃんころ) 역사는 한족 여성 엉덩이로 이룩한 역사다, 이민족 지배에 점철된 역사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고구려]], [[몽골족]], [[선비족]], [[거란족]], 그리고 [[만주족]] 등이 중국을 먹은 역사를 가리키는 것에서 나온 말이다. 고구려가 적극적으로 중국을 침공하여 중국을 먹은 부분을 도조 히데키는 관동군의 중국 지배의 정당성으로 여겼다.[* 물론 이러한 이데올로기로 인해 중국에 주재하던 일본 군인들은 난징 등에서 수많은 중국인 여성들을 강간하여 시체를 매달아 놓는 [[난징 대학살]]이라는 만행을 저질렀고 [[100인 참수 경쟁|중국인 백명을 참수하는 것을 경쟁하는]] 역사적 만행을 저질러버렸다.] 여기서 말한 [[지나#s-3|支那]]라는 말이 '짱깨'의 의미와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항목 참조. * 짱꼴라의 유래에 대해 살펴보면, [[후금]]의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 시기 피지배층이던 한족(漢族)[* 청나라 한족학자 곽용민(郭傭憫)은 한족이 이민족들에게 변방으로 몰려 땅 한쪽 남기지 못하고 이민족들의 1000년 노예였다고 한탄하며 멸청을 주장하였다.]은 주로 [[환관]]이나 [[내시]]로 활동하였으며, 이들이 이민족 군주 앞에서 무릎을 끓으며 항상 자신들 한족을 낮추어 '여진족의 노예'라는 뜻의 '노재(奴才)'라고 부르던 말이 '청국노(淸國奴)'가 되었다는 것이다. * 짱꼴라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단어로는 '''[[짱깨]]'''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짱깨]] 문서 참조. [[분류:속어]][[분류:중화권에 대한 멸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