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창덕궁)] ---- ||<-3> [[파일:정부상징.svg|width=22]] '''[[대한민국의 사적#s-2|{{{#f39100 대한민국 사적 제122호 창덕궁}}}]]''' || ||<-3> {{{#ffd700 {{{+1 '''창덕궁 영화당'''}}}[br]{{{-1 昌德宮 暎花堂}}}}}}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장소=창덕궁 영화당, 너비=100%, 높이=100%)]}}} || ||<-2> {{{#ffd700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서울)|율곡로]] 99 ([[와룡동(종로구)|와룡동]] 2-71번지) || ||<-2> {{{#ffd700 '''건축시기'''}}} || [[1608년]] 이전 {{{-1 (창건)}}}[br][[1692년]] {{{-1 (중수)}}}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창덕궁 영화당.jpg|width=100%]]}}} || || {{{#gold ''' 영화당 '''}}} || [목차] [clearfix] == 개요 == [[창덕궁#s-4.4|창덕궁 후원]]의 [[건물]]이다. [[창덕궁 주합루|주합루]]의 동남쪽, [[창덕궁 부용정|부용정]]의 동북쪽에 있다. '영화(暎花)' 뜻은[* [[Movie]]를 뜻하는 [[영화]]의 [[한자]]는 '映畵'이다.] '꽃(花)과 어우러진다(暎)'이다. 주변에 아름다운 꽃이 많이 피어 지은 이름인 듯하다. '暎(영)'은 '비치다'는 의미지만 [[시]]에서는 '어우러진다'는 뜻으로 많이 쓴다.[[http://blog.daum.net/solji-k/17205036|#]] [[현판]] [[글씨]]는 [[영조]]가 1754년(영조 30년)에 직접 썼다. == 역사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동궐도 영화당.png|width=100%]]}}} || || {{{#gold ''' 《동궐도》 영화당 '''}}} || 언제 처음 지었는지 모른다. [[공식]] [[기록]]에는 《[[광해군일기]]》에 영화당 [[건설]] 중지를 언급하는 내용으로 처음 나온다. 그런데 기존에 있던 건물을 중건한 건지, 아니면 창건한 건지 역시 명확하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광해군]] 때부터는 존재했다는 것이다. 1692년([[숙종(조선)|숙종]] 18년)에 고쳐지어 오늘에 이른다. 《궁궐지》에 따르면, 영화당에 [[선조(조선)|선조]], [[효종(조선)|효종]], [[현종(조선)|현종]], [[숙종(조선)|숙종]]이 쓴 편액이 걸려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조]]가 쓴 영화당 현판을 뺀 나머지는 현재 없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조선고적도보 영화당.png|width=100%]]}}} || || {{{#gold ''' 《조선고적도보》 영화당 '''}}} || == 활용 == 영화당의 앞쪽에는 넓은 마당 '춘당대(春塘臺)'가 있었다.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에 있어 지금은 구역을 담으로 나누었지만, [[조선시대]]에는 구분이 없었다. [[왕]]들은 영화당과 춘당대를 함께 묶어 활용했다. 이곳에서 [[잔치]]를 베풀고 신하들에게 [[음식]]을 내려주었으며 활을 쏘는 곳으로 사용했다. 또한 [[과거]] [[시험]]도 여기서 열었다. 과거에도 단계가 있는데, 각 지방에서 예비 과거 시험인 초시에 합격한 응시자들이 보는 최종 시험장이 이곳이었다. 그래서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과거를 본 곳으로 나왔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영화당친림사선도.jpg|width=100%]]}}} || || {{{#gold ''' 《영화당친림사선도(暎花堂親臨賜膳圖)》 '''}}} || 1760년(영조 36년)에는 [[청계천]] 준설 공사를 마친 후 여기서 공로를 치하했다. 그 때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준천시사열무도|영화당친림사선도(暎花堂親臨賜膳圖)]]》로,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보관한다. [[영조]] 이후 왕들이 [[창덕궁 대보단|대보단]]이나 문묘[* 文廟. [[공자]]의 사당. [[성균관]]에 있다.]에 참배하기 전에 하룻밤 묵는 곳으로도 사용했다.[[http://sillok.history.go.kr/id/kua_12807021_001|#]][[http://sillok.history.go.kr/id/kwa_10304009_002|#]][[http://sillok.history.go.kr/id/kwa_10703019_001|#]][[http://sillok.history.go.kr/id/kza_12103018_001|#]] 그리고 주변에 [[연못]] 부용지 및 [[우물]]들이 있어 습했기 때문에 [[기우제]]를 지내거나 작은 [[논]]을 만들어 [[농사]]를 살피는 장소로도 사용했다.[[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영화당(暎花堂)|#]] == 구조 == * 동향이며 이중으로 높게 쌓은 [[기단]] 위에 지은 건물이다. 아랫 기단의 높이가 더 높다. * 정면 5칸, 측면 3칸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용마루와 내림마루 및 추녀마루는 [[기와]]를 얹어 마감했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공포(동음이의어)#s-2|공포]]는 이익공 양식이다. 공포 사이에는 화반을 하나씩 두었다. [[기둥]]과 [[주춧돌]]은 사각이며 [[단청]]은 모루단청이다.[* 부재 끝 부분만 화려하게 칠하는 단청.] * 정면(동쪽 면)의 왼쪽에서 2, 3칸은 [[대청]]이고 오른쪽(북쪽)의 1칸은 [[온돌|온돌방]]이다. 그리고 건물 가장자리에 툇간을 한 칸씩 두었는데, 오른쪽의 1칸만 온돌이 깔려있고 나머지는 전부 [[마루]]이다. 그래서 오른쪽 면의 가운데는 벽이다. * 앞면 툇간과 3번째 칸의 가운데, 그리고 오른쪽(북쪽) 면에서 동쪽 툇간 부분 및 뒷면 전체를 제외하고는 전부 칸마다 [[나무]]로 만든 [[난간|계자 난간]]을 설치했다. == 여담 == * 영화당 주변에 [[화장실]]과 [[매점]]이 있다. 후원 관람 시 여기 말고는 화장실과 매점이 없다는 점을 참고하자. * [[정조(조선)|정조]]가 [[창덕궁]] [[후원]]에서 10가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꼽았는데, 이를 '상림십경(上林十景)'이라고 한다. 그 중에 9경이 '영화시사(暎花試士)', 즉 영화당(暎花)에서 [[시험]](試)보는 [[선비]](士)들의 모습이다.[[http://m.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jsessionid=oQ12Ogu8mQTfRt0iNEMVCSRqI7wY9BTMm9mfOfOVfaqgETVuXGJSD8FCnw0Wb7ni?nttId=3830&bbsId=BBSMSTR_1006&pageUnit=10&searchCnd=&searchWrd=&ctgryLrcls=&ctgryMdcls=&ctgrySmcls=&ntcStartDt=&ntcEndDt=&searchUseYn=&mn=NS_01_09_02|#]][* 나머지는 '관풍춘경(觀豊春耕: 관풍각에서의 봄갈이)', '망춘문앵(望春聞鶯: 망춘정에서 꾀꼬리 소리듣기)', '천향춘만(天香春晩: 천향각의 늦봄 경치)', '어수범주(魚水泛舟: 어수당)', '소요유상(逍遙流觴: [[창덕궁 소요정|소요정]] 물굽이에서 술잔 띄우고 마시기)', '희우상련(喜雨賞蓮: [[창덕궁 희우정|희우정]]에서의 연꽃 구경)', '청심제월(淸心霽月: [[창덕궁 청심정|청심정]]에서 보는 개인 날의 맑은 달)', '관덕풍림(觀德楓林: [[창경궁 관덕정|관덕정]]의 단풍)', '능허모설(凌虛暮雪: [[창덕궁 능허정|능허정]]의 저녁 눈)'이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KoZxoTyr61k)]}}} || || {{{#gold ''' 〈창덕궁 달빛기행〉 영상 '''}}} || 〈창덕궁 달빛기행〉 코스 중 한 곳이다. [[거문고]] 연주를 들을 수 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pv2JmEsjpE0)]}}} || || {{{#gold '''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창덕궁 후원에서 만나는 한권의 책' 행사 홍보 영상.[br]시기는 2016년 가을이다. '''}}} || 2010년부터 [[문화재청]]에서 매년 [[봄]]과 [[가을]]에 여는 '창덕궁 후원에서 만나는 한권의 책' 행사 장소로 사용한다. 정자 내부에 책을 비치해두어 [[시민]]들이 후원의 경치를 보며 [[독서]]할 수 있게 한다.[* [[창덕궁 존덕정|존덕정]], [[창덕궁 폄우사|폄우사]], [[창덕궁 취규정|취규정]]도 장소로 활용한다.] 행사 기간은 일정하지 않으나 대략 4월 중순 ~ 5월 중순(봄), 10월 중순 ~ 11월 중순(가을)이다. 창덕궁 후원 입장료만 내면 별도로 들어가는 [[돈]]은 없다. 2020년에는 [[SARS-CoV-2|코로나 19]] 사태로 진행하지 않았다. [[분류:창덕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