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초 군주)] |||||| '''{{{#ece5b6 초(楚)나라 5대 왕[br]{{{+1 목왕}}}[br] 穆王}}}''' || |||| '''[[성씨|{{{#ece5b6 성}}}]]''' || 미(羋) || |||| '''[[본관|{{{#ece5b6 씨}}}]]''' || 웅(熊) || |||| '''[[휘|{{{#ece5b6 휘}}}]]''' || 상신(商臣) || |||| '''{{{#ece5b6 아버지}}}''' || [[초성왕]](楚成王) 웅군(熊頵), 웅운(熊惲) || || '''{{{#ece5b6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614년 || || '''{{{#ece5b6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625년 ~ 기원전 614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의 21대 국군이자 5대 [[왕]]. [[초성왕]]의 [[아들]]. 그가 바로 [[춘추오패]]인 [[초장왕]]의 [[아버지]]다. 초 성왕의 적장자로 [[패륜|아버지에게 자살을 종용하고]]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정책을 이어받아 정복 전쟁을 펼쳤다. 선대 왕들의 정책을 본받아 사방으로 팽창하니, 이 사람 손에 멸망하거나 속국이 된 나라만 10개 가까이 된다. == 생애 == === 즉위 이전 === 상신은 위에 언급한 대로 초 성왕의 적장자였는데, 상신을 태자로 세울 때 투발(자는 자상)은 초나라는 대대로 막내를 후계로 세우는 것이 전통이며[* 여담으로 종법질서에서는 반대로 적장자가 왕이 된다. 초나라가 얼마나 중원과 다른 국가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 한편으로는 초나라의 계승순서는 의외로 유목민들과 비슷했음을 알 수 있는데 유목민들은 한정된 목초지 안에서 가축들을 키우며 살아가야 하다보니 가족 수 증가=필요 가축 수 증가=목초지 고갈=가축 전멸=재산 증발로 이어지다보니 자식이 독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빨리빨리 독립시켰고 이러다보니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막내가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았다.] 상신은 벌의 눈과 승냥이의 목소리를 가진 채로 태어났기 때문에 세워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지만 성왕은 듣지 않고 상신을 태자로 세운다. 예상대로 초 성왕이 웅직(熊職)을 낳은 후 마음이 바뀌어 상신을 폐하고 후처의 아들을 태자로 세우려 하자 상신은 거기에 반발하였다. 초 성왕 46년(기원전 626년), 상신은 부하 반숭의 계책을 듣고 궁으로 쳐들어가 초 성왕을 협박해 [[자결]]하게 한 뒤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투월초]]를 시켜 웅직을 죽였다. 정변을 도운 공로로 반숭은 태사가 되었다. === 치세 === 초 성왕 46년(기원전 626년), 이런 유혈 사태를 거치면서 왕위에 오른 초 목왕은 성왕의 장례를 치르고, '영'(靈)이라는 시호를 바치려했으나, '영'은 어둡다는 뜻이 있다하여, 어둡지 않다는 뜻이 있는 '성'(成)을 바쳤다고 한다.[* 그런데, 일설에는 초 성왕의 시신이 '영'이라는 시호를 바치자 눈을 감지 않으니 '성'이라는 시호를 바치자 눈을 감았다는 말도 있다.] 그는 중원 진출의 야욕이 강했기 때문에, 국력을 키워 중원 진출을 엿보았다. 초 목왕 3년([[기원전]] 623년), [[진(영성)|진(秦)나라]]와 함께 [[진(영성)|진(晉)나라]]에 맞서 싸웠으며, 즉위 초부터 공격한 [[강(동음이의어)#s-3|강(江)나라]]를 멸망시켰다. 초 목왕 4년(기원전 622년), 육(六)나라[* 훗날 《[[초한지]]》에 등장하는 [[영포]]의 고향인 육현의 이름은 육나라가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와 요(蓼)나라를 멸했다. 초 목왕 5년(기원전 621년), 진(晉)나라 [[군주]]인 [[진양공]]이 죽자 [[조돈]]이 그 아들을 군주로 세우니 그가 바로 [[진영공]]이다. 초 목왕 6년(기원전 620년), 진(晉)의 대부 조돈은 강대해지는 초나라에 대응하기 위해 [[제(춘추전국시대)|제나라]], [[송(춘추전국시대)|송나라]], [[위(춘추전국시대)|위나라]], [[진(규성)|진(陳)나라]], [[정나라]], [[허나라]], [[조나라]] 등과 동맹을 맺었다. 초 목왕 8년(기원전 618년) 여름에 진(陳)나라가 진(晉)나라를 따르자 열받은 초 목왕이 진(陳)나라를 쳤다. 호구 땅에서 크게 싸워 공자 주를 이기고, 공자 벌을 포로로 잡았다. 초 목왕 9년(기원전 617년), 송나라, 정나라, 진(陳)나라 등을 굴복시켰다. 초 목왕 10년(기원전 616년), 장군 성대심을 보내 균나라를 쳤다. 그리고 균나라를 굴복시킴으로써 중원의 강대국으로 발돋움했다. 초 목왕 11년(기원전 615년), 영윤 성대심이 죽자, 성대심의 동생 성가를 후임 영윤으로 임명했다. 같은 해에 서(舒)나라가 초나라를 배신하자 초 목왕은 그것을 응징하기 위해 서나라를 치니 서나라 군주는 포로로 잡히고, 덤으로 종(宗)나라 군주도 포로로 잡혔다. 그리고 이왕 공격한 김에 [[소나라#s-4|소(巢)나라]]도 쳤다. 그렇게 하여 초나라는 강회 지역에 세력이 두루 미치게 되었다. 초 목왕 12년(기원전 614년), 초 목왕이 죽으니 아들 웅려가 왕이 되었다. 그가 바로 [[춘추오패]]인 [[초장왕]]이다. [각주] [[분류:초나라의 군주]][[분류:기원전 614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