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목차] == 국보 제256호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 [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보)] [[파일: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jpg]] === 개요 ===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一. [[고려]] 초기, [[현종(고려)|현종]] 재위시기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의 일부. 현재 [[경기도]] [[용인시]]의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의 국보|대한민국 국보]] 제256호로 지정되어 있다. === 내용 === 가로 1223.5㎝, 세로 28.5㎝. 지금으로부터 약 천년 전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두루마리 형태로 제작된 [[대방광불화엄경 주본]]으로, 길이는 펼쳤을 때 약 12.5미터 정도 되는 대형 불경이다. 고려 현종 2년(1011년)에 [[거란]]의 대대적인 침입이 일어나자 당시 정부에서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해 [[초조대장경]]을 제작하였는데, 이 때 간행된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이다. 이 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인 1011년에 처음 제작을 시작하여 10여 년 동안 판수제 등 개보판 대장경의 일부를 수정하여 완성한 것이다. 이 때의 초조대장경의 규모는 대략 6천 권 정도의 분량으로서 당시의 한역(漢譯) 대장경으로서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었던 가장 방대한 [[세계기록유산]]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초조대장경은 고려 [[고종(고려)|고종]] 19년인 1232년에 [[몽골군]]이 침입하였을 때 모두 불타버리고 말았다. 이에 [[몽골 제국]]과의 항전이라는 호국의 의지를 담아 다시 대장경 판각을 시도한 것이 바로 현존하는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이다. 초조대장경은 고려 초기의 불교적 역량과 목판 인쇄술의 발전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귀중한 민족적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이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은 얼마 남지 않는 초조대장경 중에서도 유일한 권1로, 권수에 표전문과 총목이 수록되어 있고, 과거 초조대장경의 저본으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완전히 소실되고 없는 중국 [[북송]] 대장경에 수록되어 있던 [[측천무후]]의 친필 서문이 붙어 있으며, 권말에 역경에 참여한 승려의 소속과 역할이 기록되어 있어 초조판 대장경의 원형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써, 전세계에 현존하는 근현대 대장경들의 뿌리가 된 고려 [[팔만대장경]]의 최초 원류라 할 수 있는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으로 그 세계사적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1990년 9월 20일에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 외부 링크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457196&cid=46648&categoryId=46648|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66502&cid=40942&categoryId=33504|두산백과 :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권1)]]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615047&cid=51887&categoryId=53558|향토문화전자대전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권1)]] * [[https://ko.wikipedia.org/wiki/초조본_대방광불화엄경_주본_권1|한국어 위키백과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 국보 제256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2560000,31&pageNo=5_2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一)]]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불교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 >이 책은 고려 현종 때(재위 1011∼1031)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로, 당나라의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화엄경』주본 80권 중 권 제1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전체 크기는 세로 28.5㎝, 가로 1223.5㎝이다. > >초조대장경은 이후에 만들어진 해인사대장경(재조대장경 또는 고려대장경)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목판의 새김이 정교한 반면에 해인사대장경과 글자수가 다르고 간행연도를 적은 기록은 없으며, 군데군데 피휘(避諱:문장에 선왕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공경과 삼가의 뜻을 표시하기 위하여 글자의 한 획을 생략하거나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대치하는 것)와 약자(略字)가 나타난다. 또 초조대장경은 책의 장수를 표시하는데 있어서 대체로 ‘장(丈)’자나 ‘폭(幅)’자를 쓰는 데 비해 해인사대장경은 ‘장(張)’자로 통일되어 있다. > >이 책에서도 ‘경(敬)’자의 한 획이 빠져있는 점, 각 장의 글자수가 23행 14자로 해인사대장경의 24행 17자와 다른 점, 책의 장수 표시로 ‘장(丈)’자를 쓰고 있는 점, 간행기록이 없는 점 등을 통해서 초조대장경의 특징을 살필 수 있다. >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중 유일한 권 제1로, 11세기경에 찍어낸 초조대장경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 국보 제257호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 == [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보)] [[파일: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jpg]] === 개요 ===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二十九. [[고려]] 초기, [[현종(고려)|현종]] 재위시기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의 일부. 현재 [[충청북도]] [[단양군]]의 [[구인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의 국보|대한민국 국보]] 제257호로 지정되어 있다. === 내용 === 가로 891cm, 세로 28.5cm. 11세기 초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으로, 고려 현종 2년(1011년)에 [[거란]]의 대대적인 침입이 일어나자 당시 정부에서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해 초조대장경을 제작하였는데, 이 때 간행된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써, 전세계에 현존하는 근현대 대장경들의 뿌리가 된 고려 [[팔만대장경]]의 최초 원류라 할 수 있는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으로 그 세계사적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국보 제256호와 함께 1990년 9월 20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 외부 링크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457197&cid=46648&categoryId=46648|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47121&cid=40942&categoryId=34709|두산백과 :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권29)]] * [[https://ko.wikipedia.org/wiki/초조본_대방광불화엄경_주본_권29|한국어 위키백과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 === 국보 제257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2570000,33&pageNo=5_2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二十九)]]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불교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 >이 책은 고려 현종 때(재위 1011∼1031)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로, 당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화엄경』주본 80권 중 권 제29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종이를 길게 이어붙여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전체 크기는 세로 28.5㎝, 가로 891㎝이다. > >초조대장경은 이후에 만들어진 해인사대장경(재조대장경 또는 고려대장경)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목판의 새김이 정교한 반면에 해인사대장경과 글자수가 다르고 간행연도를 적은 기록은 없으며, 군데군데 피휘(避諱:문장에 선왕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공경과 삼가의 뜻으로 글자의 한 획을 생략하거나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대치하는 것)와 약자(略字)가 나타난다. 또 초조대장경은 책의 장 수를 표시하는데 있어서 대체로 ‘장(丈)’자나 ‘폭(幅)’자를 쓰는 데 비해 해인사대장경은 ‘장(張)’자로 통일되어 있다. > >이 책도 장수를 ‘장(丈)’자로 표시하고 있는 점, 간행기록이 없는 점, 글자수가 23행 14자인 점, ‘경(竟)’자에 한 획이 빠진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초조대장경 판본임을 알 수 있다. > >국내에서 발견된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 중 유일한 권29로, 11세기경에 찍어낸 초조대장경의 원형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 국보 제265호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3 == [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보)] [[파일: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3.jpg]] === 개요 ===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十三. [[고려]] 초기, [[현종(고려)|현종]] 재위시기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의 일부.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삼성출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의 국보|대한민국 국보]] 제265호로 지정되어 있다. === 내용 === 가로 1004㎝, 28.5㎝. 지금으로부터 약 천년 전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두루마리 형태로 제작된 [[대방광불화엄경 주본]]으로,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세로 28.5㎝, 가로 46.3㎝ 크기의 종이 24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써, 전세계에 현존하는 근현대 대장경들의 뿌리가 된 고려 [[팔만대장경]]의 최초 원류라 할 수 있는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으로 그 세계사적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1991년 7월 12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 외부 링크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457198&cid=46648&categoryId=46648|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3]]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66504&cid=40942&categoryId=34709|두산백과 :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권13)]] * [[https://ko.wikipedia.org/wiki/초조본_대방광불화엄경_주본_권13|한국어 위키백과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3]] === 국보 제265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2650000,11&pageNo=5_2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3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十三)]]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불교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 >이 책은 당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화엄경』 주본 80권 중 권 제13에 해당하며, 고려 현종 때(재위 1011∼1031)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세로 28.5㎝, 가로 46.3㎝ 크기가 24장 연결되어 있다. > >초조대장경은 이후에 만들어진 해인사대장경(재조대장경 또는 고려대장경)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해인사대장경보다 글자수가 적고 새김이 정교한 반면에 간행연도를 적은 기록은 없으며, 군데군데 피휘(避諱:문장에 선왕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공경과 삼가의 뜻으로 글자의 한 획을 생략하거나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대치하는 것)와 약자(略字)가 나타난다. 또 초조대장경은 책의 장수를 표시하는데 있어서 대체로 ‘장(丈)’자나 ‘폭(幅)’자를 쓰는 데 비해 해인사대장경은 ‘장(張)’자로 통일되어 있다. > >이 책의 경우에도 한 행의 글자수가 14자로 해인사대장경의 17자와 구분되고 ‘경(竟)’자의 마지막 한 획을 생략하고 있다. 인쇄상태나 종이의 질 등 전체적인 품격으로 보아『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1(국보 제256호), 권29(국보 제257호), 권74(국보 제279호), 권75(국보 제266호)와 같이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진 11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 국보 제266호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75 == [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보)] [[파일: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75 (권2).jpg]]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 [[파일: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75 (권75).jpg]]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5 === 개요 ===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二, 七十五. [[고려]] 초기, [[현종(고려)|현종]] 재위시기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의 일부. 총 2권 2축. 현재 [[서울특별시]] [[관악구]]의 [[호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의 국보|대한민국 국보]] 제266호로 지정되어 있다. === 내용 === 권2 : 가로 46.5㎝, 세로 28.7㎝ 권75 : 가로 46.1㎝, 세로 29.8㎝ 11세기 초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으로, 고려 현종 2년(1011년)에 [[거란]]의 대대적인 침입이 일어나자 당시 정부에서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해 초조대장경을 제작하였는데, 이 때 간행된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이다. 상하단변에 상하 간 크기는 22.3㎝(권2), 22㎝(권77)이며, 장 크기는 28.7㎝×46.5㎝(권2), 29.8㎝×46.1㎝(권77)이라고 한다. 1011년~1030년 당시 지현(智賢)이란 한 [[한국인]] 각수가 목판을 판각하여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써, 전세계에 현존하는 근현대 대장경들의 뿌리가 된 고려 [[팔만대장경]]의 최초 원류라 할 수 있는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으로 그 세계사적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1991년 7월 12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 외부 링크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457199&cid=46648&categoryId=46648|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 75]]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66505&cid=40942&categoryId=34709|두산백과 :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권2,75)]] * [[https://ko.wikipedia.org/wiki/초조본_대방광불화엄경_주본_권2,75|한국어 위키백과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75]] === 국보 제266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2660000,11&pageNo=5_2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75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二, 七十五)]]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다. 『보현행원품』은 화엄경 가운데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방법을 보현보살이 설법한 부분이다. > >이 책은 당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화엄경』 주본 80권 가운데 권2, 권75에 해당한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종이를 이어붙여 두루마리처럼 만들었는데, 크기는 권2가 세로 28.7㎝, 가로 46.5㎝이고 권75가 세로 29.8㎝, 가로 46.1㎝이다. > >본문의 글자가 빠진 것이 없고 내용상 다른 자는 없으나 같은 글자라도 대장도감<고종 23년(1236)에 대장경을 만들기 위해 설치한 기구>에서 찍어낸 책에 비해 약자(略字)를 많이 썼다. 본문 중 ‘경(敬)’자와 ‘경(竟)’자에 한 획이 빠져있는 점으로 보아 송나라 때 만들어진 판본을 바탕으로 새긴 것으로 보인다. ‘경(敬)’자와 ‘경(竟)’자는 송나라 태조의 할아버지 이름으로 왕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한 획을 줄여서 쓴 것이다. > >간행기록이 없어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고려 초기 대장경 가운데 하나이며, 12세기경에 찍어낸 것으로 보인다. == 국보 제277호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 == [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보)] [[파일: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jpg]] === 개요 ===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三十六. [[고려]] 초기, [[현종(고려)|현종]] 재위시기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의 일부. 현재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한솔문화재단 산하 [[뮤지엄 산]]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의 국보|대한민국 국보]] 제277호로 지정되어 있다. === 내용 === 가로 891㎝, 세로 28.5㎝ X 17장 지금으로부터 약 천년 전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두루마리 형태로 제작된 [[대방광불화엄경 주본]]으로,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가로 891㎝, 세로 28.5㎝ 크기의 종이 17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써, 전세계에 현존하는 근현대 대장경들의 뿌리가 된 고려 [[팔만대장경]]의 최초 원류라 할 수 있는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으로 그 세계사적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1991년 7월 12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 외부 링크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457205&cid=46648&categoryId=46648|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66511&cid=40942&categoryId=33382|두산백과 :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권36)]] === 국보 제277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2770000,32&pageNo=5_2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三十六)]]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 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미친 불교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 >이 책은 고려 현종 때(재위 1011∼1031)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로, 당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화엄경』주본 80권 중에 권 제36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종이를 길게 이어붙여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세로 28.5㎝, 가로 891㎝의 종이 17장을 이어붙인 것이다. > >초조대장경은 이후에 만들어진 해인사대장경(재조대장경 또는 고려대장경)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목판의 새김이 정교한 반면에 해인사대장경과 글자수가 다르고 간행연도를 적은 기록은 없으며, 군데군데 피휘(避諱:문장에 선왕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공경과 삼가의 뜻으로 글자의 한 획을 생략하거나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대치하는 것)와 약자(略字)가 나타난다. 또 초조대장경은 책의 장수를 표시하는데 있어서 대체로 ‘장(丈)’자나 ‘폭(幅)’자를 쓰는 데 비해 해인사대장경은 ‘장(張)’자로 통일되어 있다. > >이 책도 장수를 ‘장(丈)’자로 표시하고 있는 점, 글자수가 23행 14자로 해인사대장경의 24행 17자 다른 점, ‘경(敬)’자에 한 획이 빠진 점 등으로 볼 때 초조대장경 판본임을 알 수 있다. 인쇄상태와 종이의 질 등을 고려해 볼 때 고려 현종 때인 11∼12세기경에 찍어낸 것으로 추정된다. == 국보 제279호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 == [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보)] [[파일: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jpg]] === 개요 ===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七十四. [[고려]] 초기, [[현종(고려)|현종]] 재위시기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의 일부. 현재 [[충청북도]] [[단양군]]의 [[구인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의 국보|대한민국 국보]] 제279호로 지정되어 있다. === 내용 === 가로 46㎝, 세로 28.7㎝. 11세기 초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으로, 고려 현종 2년(1011년)에 [[거란]]의 대대적인 침입이 일어나자 당시 정부에서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해 초조대장경을 제작하였는데, 이 때 간행된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써, 전세계에 현존하는 근현대 대장경들의 뿌리가 된 고려 [[팔만대장경]]의 최초 원류라 할 수 있는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으로 그 세계사적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1993년 6월 15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 외부 링크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457206&cid=46648&categoryId=46648|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66513&cid=40942&categoryId=33382|두산백과 :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권74)]] * [[https://ko.wikipedia.org/wiki/초조본_대방광불화엄경_주본_권74|한국어 위키백과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 === 국보 제279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2790000,33&pageNo=5_2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七十四)]]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 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미친 불교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 >이 책은 당나라 실차난타가 번역한 『화엄경』 주본 80권 중 권 제74에 해당하며, 고려 현종 때(재위 1011∼1031)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한 장의 크기는 세로 28.7㎝, 가로 46㎝이다. > >초조대장경은 이후에 만들어진 해인사대장경(재조대장경 또는 고려대장경)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해인사대장경보다 글자수가 적고 새김이 정교한 반면에 간행연도를 적은 기록은 없으며, 군데군데 피휘(避諱:문장에 선왕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공경과 삼가의 뜻으로 글자의 한 획을 생략하거나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대치하는 것)와 약자(略字)가 나타난다. 또 초조대장경은 책의 장수를 표시하는데 있어서 대체로 ‘장(丈)’자나 ‘폭(幅)’자를 쓰는데 비해 해인사대장경은 ‘장(張)’자로 통일되어 있다. > >이 책의 경우에도 ‘경(敬)’,‘경(竟)’,‘경(鏡)’자의 마지막 한 획이 생략되고, 본문의 글자수도 한 행에 14자로 해인사대장경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인쇄상태나 종이의 질로 보아『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1(국보 제256호), 권29(국보 제257호), 권13(국보 제265호), 권75(국보 제266호)와 같이 11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 보물 제1191호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0 == [[파일: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0.jpg]] === 내용 ===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三十. [[고려]] 초기, [[현종(고려)|현종]] 재위시기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의 일부. 현재 [[강원도]] [[원주시]]의 한솔제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의 보물|대한민국 보물]] 제1191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 현종 2년(1011년)에 [[거란]]의 대대적인 침입이 일어나자 당시 정부에서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해 초조대장경을 제작하였는데, 이 때 간행된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이다. 이 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인 1011년에 처음 제작을 시작하여 10여 년 동안 판수제 등 개보판 대장경의 일부를 수정하여 완성한 것이다. 1994년 1월 5일에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었다. === 외부 링크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457294&cid=46648&categoryId=46648|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0]]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67171&cid=40942&categoryId=33382|두산백과 :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권제30)]] * [[https://ko.wikipedia.org/wiki/초조본_대방광불화엄경_주본_권30|한국어 위키백과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0]] === 보물 제1191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2,11910000,32&pageNo=5_2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0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三十)]]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 >당나라의 실차난타가 번역한『화엄경』주본 80권 가운데 권30의 내용을 1책으로 엮었으며, 고려 현종 때 새긴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종이를 이어붙여 두루마리처럼 말은 형태이며, 보존상태는 양호하나 표지가 없어지고, 첫째장에 제목 등 약 20여자가 없어졌다. 책 제목아래 “新譯(신역) ”이란 표시가 있어서 이 책이 화엄경 주본 80권을 옮겨 적었음을 알 수 있다. > >초조대장경은 거란의 침임을 막기 위해 판각된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으로, 해인사대장경보다 글씨가 힘이 있고, 새김이 정교한데, 매 행(行)의 글자수가 14자로 해인사본의 17자와 분명하게 구분되는 특징을 지닌다. 이 초조본은 종이질이나 인쇄상태로 보아 11세기 경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 보물 제1205호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67, 77 == [[파일: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67, 77 (권67).jpg]]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67 [[파일: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67, 77 (권77).jpg]]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7 === 내용 ===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六十七, 七十七. [[고려]] 초기, [[현종(고려)|현종]] 재위시기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의 일부. 현재 [[인천광역시]] [[연수구]]의 [[가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의 보물|대한민국 보물]] 제1205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 현종 2년(1011년)에 [[거란]]의 대대적인 침입이 일어나자 당시 정부에서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해 초조대장경을 제작하였는데, 이 때 간행된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이다. 이 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인 1011년에 처음 제작을 시작하여 10여 년 동안 판수제 등 개보판 대장경의 일부를 수정하여 완성한 것이다. 1994년 7월 29일에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었다. === 외부 링크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457300&cid=46648&categoryId=46648|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67, 77]]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67172&cid=40942&categoryId=33382|두산백과 :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권제67,77)]] * [[https://ko.wikipedia.org/wiki/초조본_대방광불화엄경_주본_권67,_77|한국어 위키백과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67, 77]] === 보물 제1205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2,12050000,23&pageNo=5_2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67, 77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六十七, 七十七)]]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 >당나라의 실차난타가 번역한『화엄경』주본 80권을 고려 현종 때 목판에 새긴 초조대장경이다. 권67·77의 2권을 닥종이에 인쇄한 목판본으로 종이를 이어붙인 두루마리 형태이며, 2권 모두 표지와 첫째장·본문 등이 약간씩 없어졌다. 제목 아래 ‘신역(新譯)’이란 표시가 있어 이 책이 주본임을 알 수 있다. 책 내용은 선재동자(善財童子)가 53인의 고승을 찾아가는 구도의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 >초조대장경은 거란의 침입을 막기위해 판각된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으로, 해인사대장경보다 글씨가 힘이 있고, 새김이 정교한데, 매 행(行)의 글자수가 14자로 해인사본의 17자와 분명하게 구분되는 특징을 지닌다. > >간행기록이 없지만 종이질이나 인쇄상태 등으로 보아 11세기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 보물 제1940호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41 == [[파일: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41.jpg]] === 내용 ===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41. [[고려]] 초기, [[현종(고려)|현종]] 재위시기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의 일부. 현재 [[경상북도]] [[경산시]]의 [[영남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의 보물|대한민국 보물]] 제1940호로 지정되어 있다. 가로 826㎝, 세로 28.8㎝ 길이의 두루마리형 불경이다. 2017년 5월 8일에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 외부 링크 === * [[https://ko.wikipedia.org/wiki/초조본_대방광불화엄경_주본_권41|한국어 위키백과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41]] === 보물 제1940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2,19400000,37&pageNo=5_2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41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41)]] >영남대 소장의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41은 실차난타가 39품으로 신역한 80권본 중 권41이다. 이 경전은 각 장의 행자수가 23행 14자로 재조본(팔만대장경)의 해당 경전의 24행 17자본과는 다르다. 이렇듯 이 경전은 소실된 초조본의 저본계통과 재조본과의 차별성을 밝힐 수 있는 경전이자 해당 권은 현재 유일하게 전하는 희귀한 경전이다. 국가문화재(보물)로 지정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분류:대한민국의 국보]][[분류:대한민국의 보물]][[분류:고려의 불경]][[분류:경기도박물관 소장품]][[분류:영남대학교 도서관 소장품]][[분류:용인시의 문화재]][[분류:단양군의 문화재]][[분류:원주시의 문화재]][[분류:인천광역시의 문화재]][[분류:경산시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