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중화민국 총통부 청사)] [include(틀:역대 대만 최고층 마천루)] || [[중국어|중화민국 국어]] ||總統府{{{-3 ㄗㄨㄥˇㄊㄨㄥˇㄈㄨˇ}}} || || [[영어]] ||Presidential Office Building || ||<:><-2>[include(틀:지도, 장소=總統府, 높이=250px, 너비=100%)] || [목차] == 개요 == [[파일:총통부.jpg]] [[대만]] [[타이베이시]] [[중정구]]에 있는 [[중화민국]] [[총통부]] 청사. 본래 [[대만총독부]] 청사였다. 양식적으로 큰 틀은 [[바로크#s-6|네오 바로크]]에 가깝지만 세부적인 양식은 [[일본]]의 [[제관양식]]이 사용되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모방해 [[1914년]]에 개장한 [[도쿄역]]과 비슷한 느낌의 외관이 특징이다. == 역사 == 이 건물은 본래 [[대만일치시기|일본 식민지 시절]] 최고행정기관인 [[대만총독부]]의 청사였다. 일본은 대만을 영유하게 된 [[1895년]]부터 [[1919년]] 이전에는 [[청나라]]의 [[대만청치시기|대만성]] 최고 관청이었던 대만순무아문(臺灣巡撫衙門{{{-3 ㄊㄞˊㄨㄢㄒㄩㄣˊㄈㄨˇㄧㄚˊㄇㄣˊ}}}) 청사[* [[시먼역]] 근처에 있었으며, [[1932년]]에 헐리고 그 자리에 대북공회당(臺北公會堂{{{-3 ㄊㄞˊㄅㄟˇㄍㄨㄥㄏㄨㄟˋㄊㄤˊ}}})이 세워졌다. 지금은 중산당(中山堂{{{-3 ㄓㄨㄥㄕㄢㄊㄤˊ}}})이라는 컨퍼런스 홀로 바뀌었다.]를 총독부 청사로 사용했으나, 20세기 들어 새로운 총독부 청사 계획을 세우고 [[1912년]]에 공사를 시작해 [[1919년]] 완공되었다. ||
[[파일:二戰時被轟炸過的臺灣總督府.jpg|width=100%]]|| || 1945년, 타이베이 폭격으로 파괴된 대만총독부 청사 || [[2차 대전]] 말기 [[미 공군]]의 폭격을 받아 전면부가 파괴되기도 했었다. [[타이완 섬]]을 [[중화민국]]이 접수한 이후로는 [[타이완성]] 정부 청사로 쓰려고 했으나 [[2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너무 심한 피해를 받아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타이완성 정부청사는 국부천대 직후까지는 대만일치시기의 타이베이 시청사를 청사로 사용하다가 1956년에 [[난터우현]]에 신청사를 지어 그곳으로 이전하고 기존에 성 정부청사로 쓰던 구 타이베이 시청사는 현재 [[행정원]] 청사로 쓰고 있다.] [[1948년]]에 수리가 완료된 이후에는 [[장제스]]의 [[장수]]를 바란다는 의미인 개수관(介壽館{{{-3 ㄐㄧㄝˋㄕㄡˋㄍㄨㄢˇ}}})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딸랑딸랑-- [[국부천대]] 이후에는 [[총통부]]와 [[행정원]]이 이 건물을 썼다가 [[1957년]]에 [[행정원]]이 [[대만일치시기]] 타이베이 [[시청(행정)|시청]] 건물로 이사가고 나서는 [[대만 총통|중화민국(대만) 총통]]의 집무처로만 사용되고 있다. 총통이 거주하는 총통관저는 별개로 있다. 중화민국 총통 집무처가 된 이후로는 1963년과 1978년, 2001년에 증축과 대규모 리모델링이 있었다. 원래는 총통부의 모습이 위에서 봤을 때 日本[일본]의 [[日]]자 모양으로 되어있었지만 [[중화민국]]이 이것이 신경쓰였는지 이 때 옆쪽을 늘린 후 위에서 봤을 때 中國[중국]의 [[中]]자가 되었다. 1998년에는 대만의 사적(國定古蹟{{{-3 ㄍㄨㄛˊㄉㄧㄥˋㄍㄨˇㄐㄧ}}})으로 지정되었다. [[2006년]]에는 [[천수이볜]] 총통이 장제스 독재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의미로 개수관이었던 건물 이름을 현재 이름인 총통부로 바꾸었다. == 관람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ROC_Presidential_Office_%280753%29.jpg]] 3층의 대례당. 총통 취임 선서를 비롯한 중요 행사를 거행하는 공간이다. [[파일:총통부_중산청.jpg]] 2층의 중산청(中山廳{{{-3 ㄓㄨㄥㄕㄢㄊㄧㄥ}}}). [[쑨원]]의 반신상이 있으며, [[마잉주]] 총통 시절에 쑨원의 아호 '중산'을 붙여 명명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Presidential_Building_Taiwan_1651.jpg]] 총통이 국내외 귀빈들과 회동하는 접견실. 200[[신 대만 달러]] 뒷면에 그려진 건물이 이거다. 평일 오전 9시에서 12시까지 가이드 참관 하에 관람 가능하며, [[외국인]]도 [[신분증]]을 제시하면 가능하다.[[https://m.blog.naver.com/kimdsjh16/223209839124|관람방법]] 매달 1번씩 자유관람일이 있어 이 때는 가이드 참관 없이 자유관람이 가능하다. [[마잉주]] 집권 이전에는 안보상의 이유로 [[중국인|본토 중국인]]들의 관람이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가능하다. 총통부 사진에서 보이는 큰 도로는 '케타갈란 대로(凱達格蘭大道{{{-3 ㄎㄞˇㄉㄚˊㄍㄜˊㄌㄢˊㄉㄚˋㄉㄠˋ}}})'라는 이름의 도로로, 본래 이름은 '[[장제스]]의 [[장수]]를 바란다'는 의미의 '개수로(介壽路{{{-3 ㄐㄧㄝˋㄕㄡˋㄌㄨˋ}}})'였는데, [[천수이볜]]이 [[타이베이]] 시장이 된 이후 이 지역에 살았던 [[대만 원주민|원주민]](케타갈란족)을 존중하고 [[장제스]] 독재의 잔재를 없앤다는 의미에서 개칭했다. 총통부 앞에 있는 큰 도로이기 때문에 [[대만]]에서 큰 정치적 이슈가 생기면 이 도로는 [[한국]]의 [[경복궁 광화문|광화문]] 앞처럼 시위가 벌어진다. [[타이베이 첩운 단수이신이선]] [[타이완대학병원역]]에서 제일 가깝고 [[타이베이역]]에서도 멀지는 않다. [[2019년]] [[6월]]부터 외국 일반인 관광객한테 총통부를 개방하고, [[https://www.yna.co.kr/view/AKR20190529089400009|1박 숙박이 가능하도록 조치하겠다]]고 한다.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철거된 [[한국]]의 [[조선총독부 청사]]와는 대조적으로 [[대만총독부]] 청사는 지금까지도 철거되지 않고 있다. [[대만총독부]] 건물은 지금도 잘 쓰이고 있으며[* 처음 총통부로 쓰기 시작했을 때는 대륙으로 돌아갈 때까지만 사용할 임시 청사쯤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일본 통치와의 연관성 같은 것은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타이베이]]의 유명 관광지 중 하나로 [[일본인]] 관광객이 항상 들르는 코스 중 하나이다. [[대만]]에서도 [[대만일치시기|일제시대]]의 총독부를 총통 집무실로 써서는 안된다는 여론은 존재하는데, 타이베이 [[시장(공무원)|시장]] [[커원저]]는 이와 같은 이유로 자신이 총통이 되면 총통부를 [[타이베이]] 동북쪽 다즈(大直{{{-3 ㄉㄚˋㄓˊ}}})로 옮길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https://udn.com/news/story/10930/4233685|기사]] 다만 그렇다고 조선총독부 청사처럼 아예 철거하자는 여론은 잘 없는데, 경복궁 부지를 차지하고 있어 경복궁의 원형 복원을 위해 철거가 불가피했던 조선총독부 청사와 달리 총통부 부지는 가치가 높은 고건축물이 있었던 자리는 아닌데다가, 중화민국 정통론를 지향하는 [[범람연맹|범람]] 성향의 대만인은 이 건물을 '중일전쟁 승리의 대가로 승전국인 중화민국이 패전국으로부터 획득한 전리품'으로 보는 시각을 가진 경우가 많고, 대만 고유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범록연맹|범록]] 계열은 일본 역시 대만을 지배한 여러 외부 세력 중 하나로 보아 일본 통치에 마냥 부정적으로 여기기보다는 역사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둘러보기 == [include(틀:대만 관련 문서)]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총통부, version=141)] [[분류:관저]][[분류:대만의 건축물]][[분류:대만의 관광지]][[분류:화폐의 도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