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 || 성명 || 최병호(崔炳鎬) || || 이명 || 최병호(崔炳浩) || || 생몰 || [[1897년]] ~ [[1924년]] [[4월 8일]] || || [[출생지]] || [[경상북도]] [[울진군]] || || 사망지 || [[중국]] [[하얼빈]] 남십팔도구 동발잔 || || 추서 || 건국훈장 독립장 || 최병호는 1897년생이며 경상북도 울진군 출신이다. 그는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만주로 건너가 통화현에서 소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1919년 [[3.1 운동]] 소식을 듣자 중동선 일대를 전전하며 동지를 찾다가 왕청문 영안에 머물렀다. 그러던 중 1921년 봄 서로군정서가 북진군(北進軍)을 새로 편성한다는 소식을 듣고 응모하여 헌병대원이 되었다. 이후 1923년 참의부에 가담했으며, 1924년 4월 8일 김만수(金萬秀)·[[유기동]]과 함께 하얼빈 남십팔도구에 소재한 중국여관 동발잔에서 일본영사관 순사부장 쿠니요시 세이호(國吉精保)를 사살했다. 그러나 곧 일제 경찰들에게 포위된 뒤 교전하다가 항복 권유를 받자 "일본인의 앞에 항복하려면 차라리 죽고 말겠다."고 버티었으며 결국 폭탄과 집중사격에 의하여 동지들과 함께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최병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분류:울진군 출신 인물]][[분류:1897년 출생]][[분류:1924년 사망]][[분류:건국훈장 독립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