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쇼와 시대/철도사고]][[분류:열차 충돌사고]][[분류:탈선 사고]][[분류:1963년 재난]][[분류:요코하마시의 사건사고]][[분류:일본국유철도]] [Include(틀:사건사고)] [[파일:츠루미 사고.jpg]] [youtube(i5oIPOkGOZ4)] 당시 뉴스 보도 영상 [목차] == 개요 == '''[ruby(鶴見事故, ruby=つるみじこ)]''' [[1963년]] [[11월 9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츠루미구]]에서 발생한 철도 사고. '''"일본 국철 5대 사고 (国鉄戦後五大事故)"''' 중 하나다.[* 나머지는 [[사쿠라기초 사고]], [[토야마루 침몰사고]], [[시운마루호 침몰 사고]], [[미카와시마 사고]]다.] == 사고 당시 == 당시 45량의 [[사와라역|사와라]]발 [[야스역(시가)|야스]]행 2635 화물 열차가 화물선에서 이동 중이었다. 가스, 수도관 사고의 영향으로 4분 정도 지체되었고 속도는 시속 60km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벌목한 목재와 [[보리]]를 적재했던 열차 끝의 3량이 탈선해 근처 가선 기둥과 충돌 후 도카이도 본선 상행선에 쓰러졌다. 남은 화물열차는 200m 가량 갔고 비상제동이 작동해 탈선하지 않고 정지했다. 기관사는 급히 운전실에서 내려 주변에 사고가 난 사실을 알리려 했다. 이때 [[요코스카선]]의 [[쿠리하마역|쿠리하마]]발 [[도쿄역|도쿄]]행 상행 12량 편성의 2000S 열차가 들어오는 중이었고 도쿄발 [[즈시역|즈시]]행 하행 12량 편성의 2113S열차도 들어오는 중이었다. 즈시행 열차는 사고 상황을 보고 브레이크를 걸었다. 하지만 2000S 열차는 탈선한 화물차와 시속 90km로 '''충돌'''했다. 도쿄행 2000S 열차가 충돌하면서 옆으로 튕겨나갔고 이내 즈시행 2113S열차와 다시 또 '''충돌'''하면서 3중 충돌사고가 일어났다. 2000S 열차가 즈시행 열차의 4량째 부분과 충돌하면서 옆면을 깎아내고 후속차량에 밀려 [[잭나이프 현상]]이 일어나 5량째 부분와 충돌하며 벽과 천장을 드러낸 후에야 멈췄다. 소방대가 출동했고 인근 병원의 의사, 근처 철공소의 직원들도 달려와 구조를 진행했다. 일본 [[적십자]]에서도 달려와 구조를 도왔고 부상자를 돕기 위해 [[헌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결국 이 사고로 '''161명이 사망했고 120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망자 중 가장 어린 사망자는 3세의 여아였다. 대부분의 사망자는 2~30대의 직장인이었다. 사망자 상당수는 2113S열차의 4, 5번째 차량에서 나왔다. [[1963년]] [[11월 9일]]에 [[미이케 탄광 폭발사고]]가 일어나 '''458명이 사망'''하는 참사[[https://archive.unu.edu/unupress/unupbooks/uu35ie/uu35ie0f.htm|#]]가 있었는데 여기에 더해 161명이 사망한 츠루미 사고까지 겹쳐서 이날은 ''''피로 물든 토요일(血塗られた土曜日)''''로 불리게 됐다. == 사고 이후 == [[미카와시마 사고]]가 발생한 지 1년 6개월 만에 발생한 대형 참사라서 일본에선 경악을 금치 못했고 얼마 안 가 사고 조사 위원회가 설립됐다. 조사 결과 화물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쌓인 데다 선로 상태와 바퀴 마모 상태 등이 겹쳐 일어난 복합적 원인의 사고로 결론이 내려졌다. 사고 다음 해 츠루미역에 위령비가 들어섰고 매년 역장이 찾아가 헌화하고 있다. 2개월마다 위령비 주변 청소도 진행된다. 2006년 11월, 사고 43주기를 맞아 위령비 앞에서 위령제가 열렸다. [[JR 동일본]] 요코하마 지사가 참여해 헌화하며 희생자의 명복을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