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이피로스 친왕국 군주)] || '''이름''' ||카를로 1세 토코[br](Carlo I Tocco)|| || '''출생''' ||미상|| || '''사망''' ||[[1429년]] [[7월 4일]]|| || '''직위''' ||케팔로니아 백작, 레우카스 공작, [[이피로스 전제군주국]] [[데스포티스]]|| [목차] [clearfix] == 개요 == [[이피로스 전제군주국]] 제14대 [[데스포티스]]. == 생애 == 케팔로니아 [[궁정백]] 겸 레우카스 공작인 레오나르도 1세 토코와 이피로스의 제12대 [[데스포티스]]인 [[에사우 부온델몬티]]의 여동생인 막달레나 부온델몬티의 장남이다. [[1376년]] 부친의 뒤를 이어 케팔로니아와 레우카스의 통치자가 되었고, [[1399년]] 자칸토스 섬을 확보했다. [[아테네 공국|아테네 공작]] 네리오 1세 아차이아롤리의 딸 프란체스카와 결혼했으며, [[1395년]] 장인이 사망한 뒤 코린트와 메가라의 권리를 물려받았다, 그는 동생 레오나르도 2세와 권력을 나눠가졌으며, [[1405년]]부터 이피로스의 여러 [[요새]]를 공략했다. 1407~1408년, 동생 레오나르도는 북서 모레아의 글렌차 요새를 공략하고 약탈했다. [[1411년]] 2월 [[에사우 부온델몬티]]가 사망하고 미망인 예브도키야 발시치와 어린 아들 [[조르조 부온델몬티]]가 축출된 뒤, 이피로스 [[귀족]]들은 그를 신임 데스포티스로 추대했다. 이에 알바니아계 귀족이자 아르타의 데스포티스 야코프 슈파타가 반발했다. 그는 에사우의 전 아내이자 자신의 여자 형제인 이리니의 권리를 되찾겠다며,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의 잔존 영토인 요안니나로 쳐들어갔다. [[1412년]] 양군이 맞붙었는데, 전투 자체는 야코브가 승리했지만 요안니나를 공략하지 못했다. [[1416년]] 야코브가 [[무슬림]]이라서 나라를 [[오스만 술탄국]]에게 넘길 걸 우려한 [[알바니아인]]들이 봉기하여 그를 축출하자, 카를로는 이 때를 틈타 아르타로 진격해 [[항복]]을 받아냈다. 카를로의 동생 레오나르도 2세가 아르타를 맡았고, 이피로스의 모든 주요 도시가 그의 수중에 들어갔다. [[1421년]] 카를로는 3년간 아케아 공국의 첸투리오네 2세 자카리아로부터 글라렌차 요새의 영구 소유권을 획득했다. 동로마 제국은 모레아와 대립하고 있었기에 카롤로의 확장을 방관했지만, [[1426년]] 후반 그의 군대가 엘리스 평원을 습격하여 동로마 제국 소유의 동물들을 약탈하면서 양국간 전쟁이 발발했다. [[1427년]] [[요안니스 8세]]가 이끄는 [[동로마군]]이 글렌차 요새를 포위하였고, 동로마 함대는 에키나데스 해전에서 카롤로의 함대를 격파했다. 그 후 양측은 협상 끝에 요안니스 8세의 동생 [[콘스탄티노스 11세|콘스탄티노스 팔레올로고스]]와 카롤로의 조카인 막달레나 토코와 결혼하기로 하고, 글라렌차 및 몇몇 영지를 지참금으로써 동로마 제국에 헌납하기로 했다. [[1429년]] 7월 4일 사망하였고, 동생 레오나르도 2세의 아들이자 그의 조카인 [[카를로 2세 토코]]가 뒤를 이었다. [[분류:이피로스 전제군주국 군주]][[분류:토코 가문]][[분류:1429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