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citelighter-cards.s3.amazonaws.com/p16omj2gnmfji1g0aj3j1uvtmki0_53637.jpg]] Carl Gustav Hempel ([[1905년]]-[[1997년]]) [목차] == 개요 == [[20세기]] [[과학철학]]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명. == 생애 == 독일 [[베를린]] 근처 [[오라니엔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괴팅겐 대학교]],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베를린 대학교]], [[빈 대학교]]에서 [[수학]], [[물리학]], [[철학]]을 공부했고 베를린 대학에서 1934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리 경험주의]]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나, 소위 [[논리 실증주의|빈학파]]가 아니라 [[베를린]]에서 [[한스 라이헨바흐]], [[다비드 힐베르트]] 등과 활동한 '''베를린학파'''의 일원이었다. 그 후 나치를 피해 벨기에의 [[브뤼셀]](1934~1937)을 거쳐 1937년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초기에는 [[시카고 대학]](1937~1938), 뉴욕시의 퀸즈 칼리지(1939~1948) 등에서 가르쳤고, 이후 [[예일 대학]](1948~1955), [[프린스턴 대학교|프린스턴 대학]](1955~1975), [[피츠버그 대학교|피츠버그 대학]](1977~1985) 교수를 지냈다. 또한 헴펠은 [[로버트 노직]]과 [[한국계 미국인]] 철학자로 유명한 [[김재권]]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였는데 특히 김재권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975년부터 오랫동안 학술 저널 <<인식(Erkenntnis)>>의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헴펠은 피츠버그 대학에서 은퇴 후 프린스턴 대학으로 돌아와 연구를 계속했고, 1997년 세상을 떠났다. == 평가 == 영미 철학자답게 [[과학철학]], [[논리학]] 등의 분야에서 활약했다. '''[[헴펠의 까마귀]]'''가 바로 헴펠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연구 사례이다. 초기 과학 철학으로서 그의 이론은 당연 많은 부분 논파된 상태이나, 현대까지 그러한 논의의 기반을 제공한 만큼 그의 영향력은 강했다고 볼 수 있다. [[분류:독일의 현대 철학자]][[분류:미국의 철학자]][[분류:1905년 출생]][[분류:1997년 사망]][[분류:오라니엔부르크 출신 인물]][[분류:독일계 미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