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잉글랜드의 도시]][[분류:사우스이스트 잉글랜드]][[분류:옛 수도]][[분류:가톨릭 성지]][[분류:개신교 성지]] [include(틀:다른 뜻1, other1=뉴질랜드의 지역, rd1=캔터베리 지방)] [목차] [clearfix] == 개요 == [include(틀:지도,장소=잉글랜드 캔터베리,너비=500px,높이=281px)] '''Canterbury.''' 실제 발음은 캔터베리와 캔터버리의 중간 어느 지점에 가깝다. --그런데 현지 발음은 '캔터브리'에 가깝다-- 외래어 표기 용례는 캔터베리를 내세우고 있으며, 실제로 이 발음이 범용적으로 표기되고 있다. [[영국]] 동남부의 [[켄트(잉글랜드)|켄트]] 주에 위치한 유서깊은 도시. [[런던]]에서는 동남쪽 85km 지점에 위치한, 인구 5만 5천의 도시이다. [[옥스퍼드(영국)|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영국)|케임브리지]]가 대학 도시라면 캔터베리는 [[기독교]]의 상징적인 도시다. [[대성당]]과 [[수도원]] 등이 위치한 [[성공회]](영국 국교회)의 본산이며 동시에 [[가톨릭]]의 성지[* [[헨리 8세]] 수장령 선포 이전의 영국 [[성공회]]의 역사는 영국 [[가톨릭]]의 역사와 공통분모다.]이기도 한 종교 도시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학]]이 없는 것은 아니고, [[예술대학]]인 [[크리에이티브 아츠 대학교]]의 소재지 중 하나다. == 역사 == [[로마 제국]]의 [[브리타니아]] 정복 시에 전초기지 역할을 하였고, 이후 [[켄트 왕국]]의 수도였다. [[잉글랜드]]에서 [[기독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도시이며, 그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성 어거스틴]][* 초대 [[캔터베리 대주교]]] 수도원[* 현재는 폐원되고 켄트대학교 내에 폐허 유적만 남아있다.]은 대성당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중세 내내 [[캔터베리 대주교]]는 잉글랜드 왕국에서 국왕 다음가는 영향력을 자랑하였다. [[헨리 2세]]에게 캔터베리 대주교 [[토마스 베켓|성 토마스 베켓]][* 제40대 [[캔터베리 대주교]]]이 암살된 후로는 [[성지]]가 되어 순례객들이 몰렸는데, [[캔터베리 이야기]]의 배경이 되었다. 현재 영국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이며, 적은 인구에 비해 엄청난 인지도를 자랑한다. 1070년부터 1089년 사이에 지어진 [[캔터베리 대성당]]은 1174년의 화재로 소실된 후 4년 후에 재건되었고 1495년에 증축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의 공습으로 피해를 입었으나 복구되었다. [[영국]] 특유의 퍼펜디큘라 양식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성당은 지금도 잉글랜드인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영국 왕실의 전례를 책임지는 [[캔터베리 대주교]]가 바로 이 대성당을 주교좌로 하고 있다. 서양 천문학사에서도 이름을 남겼는데 1178년 이 일대에 있던 [[수도자]] 5명이 우연히 달에 유성 천체가 충돌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후대의 달 탐사로 명명된 크레이터 중 [[조르다노 브루노]] 크레이터가 1178년의 캔터베리 유성우 이벤트와 연관성이 있다고 연구되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Giordano_Bruno_(crater)|영어 위키백과 설명]] 1381년 와트 타일러를 중심으로 일어난 켄트주 농민봉기인 [[와트 타일러의 난]]의 진원지였으며, [[헨리 7세]]부터 [[찰스 2세]] 시대(15세기 말 ~ 17세기 초반)까지 특허를 받아 자치 도시의 특권을 누렸던 역사도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하위 장르인 [[캔터베리 록]]이 발흥한 지역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