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토론 합의, 토론주소1=SplendidSquareImpossibleBears, 합의사항1=사이타마현 출신 인물로 분류하고 분류:고구려의 왕족과 분류:한국계 일본인 분류를 하지 않기)] [목차] == 개요 == [[파일:/image/001/2008/05/23/PYH2008052301630006900_P2.jpg]] 高麗文康 (こま ふみやす) [[고구려]][* 후기에는 국호를 '고려'라고 했다.] 제28대 [[보장왕]]의 61대 후손으로 전해지는 사람이다. [[사이타마현]] [[히다카시]]에 있는 고마(高麗, 고려) 신사의 제60대 궁사를 맡고 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80359|2017년 기사]] [[일본]](당시는 [[야마토]](왜) 정권)에 사신으로 머무르고 있었던 [[고구려]] 사람 [[약광]](若光)[* 일본명: 코마노코키시 잣코(高麗王若光, こまのこきし じゃっこう). '[[왕]]'(王)을 '코키시'(こきし)로 훈독하고 있는데 이는 [[백제]]의 왕호인 '[[건길지]]'(鞬吉支)와 유관한 것으로 생각된다.]이 [[668년]] [[평양성 전투(668년)|평양성 전투]]에서의 참패로 고구려가 멸망하자 귀국할 기회를 잃고 일본 열도에 눌러앉게 되었다. 그는 [[보장왕]]의 아들로 알려져있으며, 고(구)려군의 군수가 되어 고구려 유민들을 다스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약광이 숨을 거두자 고마군민이 그 덕을 기려서 [[고마 신사]](高麗神社, こま じんじゃ)를 세우고, 영령을 '''고마명신'''(高麗明神, こま みょうじん)으로 모셨다. 이후 26대까지 고구려인 후손과만 통혼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376504#home|#]] 그리고 뛰어난 무사 집단으로 간토(관동)에서 이름을 날리다가 [[가마쿠라 막부]]와 인척이 되는 등 권력의 중추에도 섰으나 [[1352년]] 그 토지를 잃는 실각 사건이 발생하면서 아예 전쟁에 나가지 않는 '중립주의'를 표방하며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고마 신사 근처에는 [[코마역(사이타마)|코마역]]이나 [[코마가와역]] 등 고구려와 연관있는 지명들이 남아있다. == 관련 문서 == * [[고구려/왕사]] [[분류:사이타마현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