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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미국 여자 대표팀]] 6경기 출전.][br]아들 '''[[조반니 레이나]]''' || [목차] [clearfix] == 개요 == 미국의 축구 경영인. 미국 국가대표에서 가장 화려한 기술을 지녔던 에이스였다. 미국 축구가 배출한 첫 세계적인 선수라고도 평가받는다. 하지만 잦은 부상에 고생스런 선수생활 후반기를 보내야 했던 비운의 선수기도 하다. 아들인 [[조반니 레이나]] 역시 축구선수이며 현재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뛰고 있다. == 클럽 경력 == === 프로 입단 전 === 혈통은 포르투갈계이며 선조는 아르헨티나에서 살다가 그의 아버지가 1968년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라틴계 이민 2세로 그는 자연스럽게 축구를 접하게 되었고, 고등학교때는 현 미국 국가대표 감독인 [[그렉 버홀터]]와 같이 학교의 주축선수로 활약했었다. 이후 축구 장학생으로써 버지니아 대학교에 진학했다. 이런 성장세는 곧 자국에서 열릴 94년 월드컵 준비에 한창이던 미국 축구협회에까지 포착되었고, 그는 전략적으로 키워질 미국 축구의 유망주로 선정된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유망주들이 받는 상이란 상은 다 휩쓸게 되고, 대학생 신분으로써 1994 미국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도 뛰게 된다. 월드컵을 통해서 유럽에서도 그의 재능을 주목하기 시작한다. === [[바이어 04 레버쿠젠]] === 1994년 바이어 04 레버쿠젠이 그를 영입했다. 월드컵이 끝난 직후 그를 합류시켰지만 레버쿠젠 1군은 미국에서의 경쟁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었고, 출전기회를 자연히 못잡게 된다. 두 시즌 동안 고작 5경기 출전에 그치면서, 레버쿠젠도 레이나의 임대를 추진하게 되고, 1996-97 시즌 당시 2부리그 소속이던 볼프스부르크 임대가 성사되었다. * 통산 26경기 0골 === [[VfL 볼프스부르크]] === 레버쿠젠에서와 달리 볼프스부르크는 그를 중용했고, 임대 첫 시즌부터 주전으로 도약하며 팀의 분데스리가 승격을 이끌게 된다. 승격 후 첫 시즌에서도 그는 주전급으로 활약했고, 임대 두 시즌 동안 리그 48경기 6골을 기록하는 좋은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레버쿠젠의 스쿼드는 2년 전보다도 더 두꺼워져있었고, 레버쿠젠은 그를 매각하기로 결정한다. * 통산 48경기 6골 === [[레인저스 FC]] === 마침 98-99 시즌 막판, 스코틀랜드 거함인 레인저스에서 그에게 관심을 보였고, 1999년 4월 1일, 임대 도중 데려간 볼프스부르크에게는 80만달러, 그리고 원 소속팀 레버쿠젠에겐 276만달러를 지불하며 약 360만 달러의 이적료로 레인저스가 레이나를 영입했다. 독일에서 어느정도 검증된 점, 한 나라의 국가대표 에이스인 점, 그리고 같은 영어권 선수인 점에서 레인저스는 레이나에게 아주 적응하기 편안한 팀이었고, 1999-2000 시즌 리그 우승과 컵대회 우승의 더블을 달성하는데 핵심 역할을 한다. 또한 이 시즌 레인저스는 2년 만에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 진출했는데, 당시 [[파르마 FC]]와의 3차예선에서 넣은 기가막힌 골이 레인저스의 본선행을 결정짓는 중요한 골이기도 해서, 그는 레인저스 팬에게 큰 사랑을 받는 선수가 되었다. * 통산 64경기 10골 === [[선덜랜드 AFC]] === 스코틀랜드에서의 활약으로 인해 EPL에서도 그에게 관심을 보였고, 선덜랜드가 그를 285만 파운드에 영입하며 그는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다. 그러나, 선덜랜드에서는 별 활약을 하지 못했는데, 2001-02 시즌 무난한 활약 이후 2002-03 시즌 초반 전방 십자인대 부상이라는 매우 큰 부상으로 인해 시즌 아웃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이 부상의 후유증은 남은 선수생활 내내 그의 발목을 잡게 된다. 여담으로, 선덜랜드에 있었을 때 아들 [[조반니 레이나]]가 태어났으며 그의 이름은 전 팀이었던 레인저스의 전 동료 [[조반니 판브롱크호르스트]]의 이름을 땄다. * 통산 28경기 3골 === [[맨체스터 시티 FC]]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량은 검증된 편이라, 부상 회복 직후 당시에는 중위권 팀이었던 [[맨체스터 시티]]가 그를 영입해간다. 부상으로 한 시즌을 날린 선수에게 250만 파운드라는 꽤 묵직한 이적료를 투자했고, 풀럼과의 영입전까지 붙어서 힘들게 영입했기에 구단의 기대가 큰 편이었다. 영입 첫 시즌에는 다행히 30경기에 나서며 부상에서 완벽히 회복한 듯 보였으나, 2004-05 시즌, 다시 반년짜리 부상을 끊으며(...) 시티 팬들의 속을 태운다. 하지만, 나올때마다 그는 시티의 공격 첨병으로써 제 역할을 하며 팬들에게 인기선수였다고 한다. 그래도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프리미어리그에서 버틸 몸이 아니었고, 2007년 1월 구단은 그의 미국 복귀를 발표하면서, 기나긴 레이나의 유럽생활은 마무리되었다. * 통산 87경기 4골 === [[뉴욕 레드불스]] === 이전 구단인 메트로스타스를 인수한 레드불이 야심차게 그를 구단의 아이콘으로써 영입해왔다. 여기서 대학 시절 은사이자 국대 발탁의 은인인 [[브루스 어리나]]와 다시 재회하게 되었다. 2007 시즌 21경기를 뛰며 그럭저럭 괜찮은 내구성을 보였지만, 또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고, 이번에는 디스크 파열로 인해 2008 시즌, 6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결국 2008년 7월 부상으로 인해 그는 은퇴를 선언하고 선수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 통산 29경기 0골 == 국가대표 경력 == 이미 대학생시절부터 미국의 연령별 대표를 두루 섭렵하며 1992, 1996 두 차례의 올림픽에 나섰고, 결국 아마추어 신분으로 1994년 1월, 성인 국가대표까지 발탁되어 노르웨이와의 평가전에서 A매치에 데뷔했다. 이어 [[1994 미국 월드컵]] 본선무대까지 밟아 자국의 기대주로 급부상했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주전이었고, 특히 [[2002 한일 월드컵]]에선 미국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써 참여하였다. 2002 월드컵이 가장 그가 대활약했던 월드컵이었는데, 1차전 포르투갈전을 부상으로 결장했지만, 이후 2차전부터 8강전까지 전 경기를 소화하며 미국 공격의 핵심으로써 기능했고, 이 활약으로 대회 올스타팀에 뽑히기도 한다. 하지만 대표팀에서도 큼직큼직한 부상이 항상 그를 붙잡았다.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인 [[2006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16강이 결정되는 중요한 경기에서 가나와 맞붙게 되었고, 이 경기에서 가나 선수와 부딪히는 과정에서 또다시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게 된것.[* 심지어 그 상황에서 하미누 드라마니에게 볼을 뺐기는 바람에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내줬고 결국 선취골을 헌납했다.] 그대로 그는 교체되어 나갔고, 미국도 1-2로 지면서 결국 16강 진출에 실패해 쓸쓸하게 귀국해야 했다. 이 경기는 그대로 레이나의 국가대표 은퇴경기가 되어버렸다. 두번째 십자인대 부상으로 원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이로 인해 2007년 1월, 자국 리그인 [[MLS]] 복귀를 추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어린 시절부터 미국 대표팀의 핵심으로 활약했다보니 '''A매치 112경기 8골'''이라는 굵직한 기록을 남기고 은퇴했다. == 은퇴 이후 == 은퇴 후 그는 코치가 아닌 축구경영인의 길을 걷고 있다. 2013년, [[시티 풋볼 그룹]] 계열의 신생팀 [[뉴욕 시티 FC]]가 창단될 때 [[맨체스터 시티]]와의 인연으로 팀의 초대 스포팅 디렉터에 임명되었다. 이 포지션에서 그는 신생팀의 영입 전략을 담당하게 되었고, 5년동안 뉴욕 시티를 빠르게 강팀으로 만들며 성공적인 직무 수행능력을 보여주었다. 2019년 11월, 그를 다시 창단 예정팀인 [[오스틴 FC]]가 영입해가면서 창단팀만 두 번 경험하는 이색적인 경험을 한다. 2021년 오스틴 FC가 MLS에 신생팀으로써 참여하면서 그도 2년만에 다시 MLS에 복귀하게 되었다. == 여담 == * 부인인 다니엘레 에건도 축구선수 출신으로, 1997년 미국 여자 국대에도 선발되었을 만큼 엘리트 축구선수였다. * 4명의 자식을 슬하에 두고 있는데 이 중 둘째인 [[조반니 레이나]]는 [[뉴욕 시티 FC]] 아카데미를 거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군까지 진입한 미국의 핵심 유망주로 성장했다. 포지션도 아버지와 같은 공격형 미드필더다. * 미국에서 '''클라우디오 레이나 재단'''을 설립해 유소년 축구 교육과 유망주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선수시절 성과와 이런 공로를 기려 2012년 미국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 아르헨티나계라 스페인어를 영어처럼 잘한다. 또한 독일에서 오래 있었던 덕에 독일어로도 회화가 가능하다고 한다. * 영국에서 활약할 당시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이었기 때문에 '[[https://www.aarp.org/entertainment/arts-leisure/info-06-2010/claudio_reyna.html|캡틴 아메리카]]'라는 별명을 얻었다.[* 국가대표팀 후배 [[크리스천 풀리식]] 또한 이 별명을 가지고 있다.] [[분류:1973년 출생]][[분류:1991년 데뷔]][[분류:2008년 은퇴]][[분류:아르헨티나계 미국인]][[분류:포르투갈계 미국인]][[분류:미국의 축구선수]][[분류:축구경영인]][[분류:리빙스턴(뉴저지) 출신 인물]][[분류:버지니아 대학교 출신]][[분류:바이어 04 레버쿠젠/은퇴, 이적]][[분류:VfL 볼프스부르크/은퇴, 이적]][[분류:레인저스 FC/은퇴, 이적]][[분류:선덜랜드 AFC/은퇴, 이적]][[분류:맨체스터 시티 FC/은퇴, 이적]][[분류:뉴욕 레드불스/은퇴, 이적]][[분류:미국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4 FIFA 월드컵 미국 참가 선수]][[분류: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참가 선수]][[분류: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참가 선수]][[분류:2006 FIFA 월드컵 독일 참가 선수]][[분류:1996 CONCACAF 골드컵 참가 선수]][[분류:1998 CONCACAF 골드컵 참가 선수]][[분류:2000 CONCACAF 골드컵 참가 선수]][[분류:2003 CONCACAF 골드컵 참가 선수]][[분류:1995 코파 아메리카 우루과이 참가 선수]][[분류:미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1996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1989 FIFA U-16 세계 축구 선수권 대회 스코틀랜드 참가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