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아우구스투스)] |||| {{{+3 '''클로디아 풀크라'''}}}[br]{{{-1 [[라틴어]]: Clodia Pulchra }}} || || '''생몰년도''' ||기원전 57/56년경 ~ 미상 || || '''출생지''' ||[[로마 공화국]] [[로마]] || || '''사망지''' ||미상 || || '''지위''' ||평민 || || '''국가''' ||[[로마 공화국]] || || '''가족'''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풀케르]](아버지)[br][[풀비아]](어머니)[br]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풀케르(형제)[br][[옥타비아누스]](남편) || [목차] [clearfix] == 개요 == [[로마 공화국]]의 귀부인. [[로마 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첫번째 아내이다. == 행적 == 기원전 57/56년경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풀케르]]와 [[풀비아]]의 딸로 출생했다. 형제로 기원전 31년 이후에 [[법무관]]을 역임한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풀케르가 있었다. 아버지 클로디우스는 [[고대 로마]] 최고의 명문 씨족으로 손꼽히는 [[클라우디우스]] 가문의 일원이었지만 기원전 59년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에게 복수하기 위해 [[호민관]]이 되고자 평민 푸블리우스 폰테이우스의 양자가 되는 방식으로 신분을 평민으로 바꾸었다. 어머니 풀비아는 기원전 322년에 집정관을 배출한 이래 로마 정계에서 맹활약한 저명한 평민 가문인 풀비우스 씨족의 일원이었다. 기원전 52년 남편이 정적 [[티투스 안니우스 밀로]]의 부하들에게 피살되면서 미망인이 된 풀비아는 기원전 43년 말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결혼했다. 기원전 42년 [[해방자 내전]]에서 승리를 거둔 제2차 삼두정치의 일원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는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결혼 동맹을 맺기로 했다. 이리하여 당시 14/15세였던 클로디아는 21세의 옥타비아누스와 결혼했다. 그러나 안토니우스의 아내 풀비아 및 안토니우스의 동생 [[루키우스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를 향한 정치적 공세를 퍼부으면서 결혼 생활은 위태로워졌다. 결국 기원전 41년 여름, 옥타비아누스는 클로디아와 이혼하고 풀비아가 로마의 지도자가 되려 한다고 규탄했다. 루키우스 안토니우스와 풀비아는 옥타비아누스에 맞서 [[페루시아 내전]]을 단행했지만, 기원전 40년 2월 말 또는 3월 초에 페루시아에서 포위된 루키우스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에게 항복하고 풀비아는 그리스로 피신하면서 실패했다. 옥타비아누스와 이혼한 후의 클로디아의 행적은 알려진 바 없다. [[분류:로마 공화국/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