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일본도]] [[탄토]] 중 하나 == [[파일:Taikogane Sadamune Tanto.jpg]] ||||||||<:><#424242> '''{{{#white 타이코가네 사다무네(太鼓鐘貞宗)}}}''' || ||<:><#E0E0E0> '''도공''' ||<:> 소슈 사다무네(相州貞宗) ||<:><#E0E0E0> '''도파''' ||<:> - || ||<:><#E0E0E0> '''제작 시기''' ||<:> [[가마쿠라 시대]] ||<:><#E0E0E0> '''종류''' ||<:> [[탄토]] || ||<:><#E0E0E0> '''길이''' ||<:> 24.7 ㎝ ||<:><#E0E0E0> '''현존 여부''' ||<:> 다테가 후손 소유 || ||<:><#E0E0E0> '''명문''' ||<:> 무명 ||<:><#E0E0E0> '''문화재 등록''' ||<:> [[중요문화재]] 공예품 제 1172호 || [[가마쿠라 시대]]에 도공 소슈 사다무네가 제작한 단도이다. 사다무네는 도공 [[마사무네]](正宗)의 뛰어난 제자들인 마사무네 10철(正宗十哲)의 한 사람이었다. 검의 명칭 '타이코가네'의 유래는 [[사카이시(오사카부)|사카이]](堺)의 '타이코가네(太鼓鐘)'라는 [[쵸닌]]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 위의 타이코가네라는사람이 소유하고 있다가 에도시대에는 쇼군가의 소유가 되었다고 하며, 1617년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양녀 후리히메(振姫)를 [[다테 마사무네]]의 아들 다테 타다무네(伊達忠宗)에게 시집 보낼 때 다테가에 하사되었다.[* 아들 타다무네에게는 [[타이코가네 사다무네]], 마사무네에게는 [[벳쇼 사다무네]]가 하사되었다.] 1883년 다테 가가 센다이를 떠나 도쿄의 저택으로 옮겨오면서 같이 따라왔다. 이때는 마사무네의 후손인 다테 오키무네(伊達興宗) 백작이 소유하고 있었고, 1938년 7월 4일 국보로, 1950년 문화재보호법 시행 이후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도검난무]]의 등장 캐릭터 == [[타이코가네 사다무네(도검난무)]] [[분류:일본도]][[분류:일본의 중요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