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위서(북조))] [include(틀:북사)] [목차] == 개요 == 拓跋窟咄 (? ~ 386년) [[오호십육국시대]] [[대(오호십육국시대)|대나라]]의 왕족 출신으로 유현의 꾀임에 넘어가서 조카인 탁발규에게 대항했다가 실패하여 목숨을 잃었다. == 생애 == 탁발십익건의 아들로 376년 [[대(오호십육국시대)|대나라]]가 [[전진(오호십육국시대)|전진]]에게 멸망한 뒤 부락(苻洛)이 탁발굴돌을 연장자로 생각해서 태학으로 보내 탁발굴돌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383년, [[비수대전]]의 패배로 전진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탁발굴돌은 [[서연]]의 [[모용영]]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여 신흥태수(新興太守)가 되었다. 386년, 유현이 탁발규를 도모하는데 실패하자, 아우인 유항니(劉亢泥)를 탁발굴돌에게 보냈다. 탁발굴돌은 결국 남쪽 국경으로 침공하여 혼란을 일으켰다. 탁발규의 신하인 우환(于桓) 등이 탁발굴돌의 움직임에 호응하려고 했지만 단오간(單烏干)이 이 사실을 알렸다. 탁발규는 인심의 동요를 염려해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3일 뒤에 우환이 자신의 음모를 장인인 [[목숭]]에게 알리고 목숭이 다시 우환의 음모를 탁발규에게 알리면서 탁발규는 우환 등 5명을 처형하고 나머지는 모두 불문에 부쳤다. 또한 내란을 염려해서 음산(陰山)을 넘어 하란부로 대피했다. 탁발규는 안동(安同)과 장손하(長孫賀)를 [[후연]]의 [[모용수]]에게 보냈다. 그러나 장손하는 탁발굴돌에게 망명했고 안동은 중산(中山)까지 도착했다. 안동을 접견한 모용수는 자신의 아들 모용린(慕容驎)[* 위서에서는 모용하린(慕容賀驎)으로 나온다.]을 원군으로 보내 안동을 따르게 하였다. 안동은 모용수의 사신인 난흘(蘭紇)과 함께 돌아와서 우천(牛川)에 이르러 탁발굴돌의 조카인 탁발의열(拓跋意烈)의 침공을 방어했다. 안동은 상인들 사이에서 숨어있다가 저녁이 돼서 빈 우물로 들어가서 목숨을 건진 뒤 모용린에게 돌아갔다. 모용린의 원군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황에서 탁발굴돌은 천천히 진군을 시작했고 [[하란염간]]이 탁발굴돌에 호응하여 북부를 침공했고 북부대인 숙손보락(叔孫普洛)은 오환의 부족들과 유위진에게 달아났다. 모용린은 소식을 듣고 급히 안동과 주담(朱譚)을 북위로 돌려보냈으며, 모용린의 원군이 왔다는 소식을 접한 탁발규는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이후 탁발규는 노산(弩山)에서 우천(牛川)으로 진군했고, 탁발굴돌은 고류(高柳)로 진군했다. 탁발규는 안동을 다시 모용린에게 보냈고, 안동이 돌아온 뒤 참합(參合)을 넘어 고류에서 모용린과 합류했다. 궁지에 몰린 탁발굴돌은 결국 달아났다가 유위진에게 살해당했다. 모용린은 탁발규에게 작별을 고하고 중산으로 돌아갔다. [[분류:동진 및 오호십육국시대/인물]][[분류:386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