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신센구미)] ---- ||<-2> {{{#fff '''신센구미 8번대 조장[br]{{{+1 토도 헤이스케}}}[br]藤堂平助'''}}} || ||<|2> {{{#FFFFFF '''출생'''}}} ||[[1844년]]|| ||[[무사시노쿠니|무사시국]] [[에도]] (現 [[도쿄도]]) || ||<|2> {{{#FFFFFF '''사망'''}}} ||[[1867년]] [[12월 14일]][* 음력 [[11월 19일]]] (향년 23세) || ||[[야마시로|야마시로국]] [[교토]] 아부라노코지 (現 [[교토부]] [[교토시]] 시모교구 아부라노코지정) || || {{{#FFFFFF '''묘소'''}}} ||카이코지 {{{-2 (교토부 교토시)}}} || ||<|2> {{{#FFFFFF '''재임기간'''}}} ||<#f5f5f5,#2d2f34>[[신센구미]] 8번대 조장 || ||1864년 ~ 1867년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FFFFFF '''휘'''}}} ||요시토라(宜虎) || || {{{#FFFFFF '''가명'''}}} ||난부 야시치로(南部弥七郎) || || {{{#FFFFFF '''별명'''}}} ||돌격 선생(魁先生) || || {{{#FFFFFF '''유파'''}}} ||[[북진일도류]](北辰一刀流) || }}}}}}}}} || [목차] [clearfix] == 개요 == [[신센구미]] 8번대 조장. == 상세 == 무사시노쿠니 에도 출신으로, 쓰번(津藩)의 번주 토도 다카유키의 사생아라는 설이나 히사이번(久居藩)의 가로 토도 하치자의 아들이라는 설 등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이는 그의 검에 새겨진 이름이 가즈사노스케 가네시게(上総介兼重)로 당시 쓰번의 전속 칼 장인이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가네시게의 칼은 꽤 비싼 편으로, 일개 낭인이 살 수 있을 정도의 칼이 아니었기에 실제 토도 가문의 일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도 한다. 덧붙여 헤이스케는 신선조 대원들 중에서도 가장 귀한 검을 썼다고 할 수 있으며 가즈사노스케 가네시게는 거슬러 올라가면 그 [[미야모토 무사시]]도 애용했을 정도로 뛰어난 검이였다고 한다. [[북진일도류]] 계통으로 치바 도장 현무관의 문하생이었다고 한다. 고료에지(御陵衛士)의 동료였던 가노 와시오의 증언에 의하면, 이토 가시타로가 운영하는 이토 도장에 머물던 제자였다고도 하는데 후에 어떤 이유로 면허를 얻기 전에 도장을 그만두었다. 후에 [[곤도 이사미]]가 운영하는 도장 시위관에 가입하였으며, 여기서 [[신센구미]]의 초기 멤버가 된 [[곤도 이사미]], [[오키타 소우지]], [[나가쿠라 신파치]] 등을 사귀었다. 검술 실력은 이들과 함께 '곤도 4천왕'이라 불렸던 만큼 뛰어났을 것이라 여겨진다. 크지 않은 키에 미남자였으며, 전투가 벌어지면 언제나 맨 앞에 나서서 싸워, 신센구미 내에서는 '돌격선생(魁先生)'으로 불렸다. [[이케다야 사건]] 때 부상당하기도 했다. 또한 빠릿빠릿한(...) 북진일도류 출신답게 의식예절이 몸에 배어, 신센구미 내에서는 접객 대면과 사무 처리를 주로 담당하였다고 한다. 단 품행은 좋지 않아서, 곤도 이사미가 자주 이에 대한 주의를 주었다고 한다. 게이오 원년 2월, 북진일도류 동문이자 시위관 시절부터 동료였던 [[야마나미 케이스케]]가 신센구미로부터 탈주하였다가 붙잡혀 할복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일 때문인지는 모르나 게이오 3년 3월, 헤이스케는 [[이토 카시타로]]와 함께 신센구미를 이탈하여 고료에지를 결성한다. 이후로 헤이스케는 이름을 난부 야시치로(南部弥七郎, 또는 야하치로(弥八郎)라고도 함)로 바꾸고, 대외 유세 등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게이오 3년 11월 18일, 아부라노코지 사건 때 고료에지 대원들을 습격한 신센구미에 의해 살해되었다. 곤도 이사미가 "토도만은 살려두고 싶다"고 말하였기 때문에, 나가쿠라는 헤이스케가 빠져나갈 길목을 열어두었으나, 그 사정을 알지 못한 대원 미우라 쓰네사부로가 헤이스케를 베었다고 한다. '돌격선생'으로서의 자존심과 동료들을 버릴 수 없다는 의리 때문에 죽을 때까지 싸웠을 것이라고도 한다. 헤이스케의 시신은 그보다 앞서 살해된 이토 카시타로의 시신과 함께 덫으로 이용되어 이틀 정도 방치되었다. 이후 같은 날 죽은 고료에지 동료인 [[이토 카시타로]], 모나이 겐모츠, [[핫토리 타케오]]와 함께 게이코 사 경내에 매장되었다. 이때가 향년 24세로 알려져 있다. 단, 아부라노코지 사건 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요코하마에서 수도공사사업 건으로 떼돈을 벌어 행복하게 잘 살았고 1922년경에 죽었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게임 [[박앵귀 시리즈]]에서는 말 그대로 철부지 장난꾸러기 캐릭터로 그려져서 게이머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참조로 성우는 [[요시노 히로유키]]. 애니메이션 [[대역! 죄인 -가장 빛나라-]]에선 신센구미가 실제 역사와 달리 잡면 오니라는 수수께끼의 집단에게 습격 당해 전멸했을때 유일하게 살아남았지만 좌반신을 잃었고[* 그래서 왼팔과 왼다리를 나무 의수로 대체했다.]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사형수들을 신센구미의 간부의 대역으로 삼아 복수를 계획한다. 성우는 [[토요나가 토시유키]]. [[분류:에도 시대/인물]][[분류:신센구미]][[분류:1844년 출생]][[분류:1867년 사망]][[분류:도쿄도 출신 인물]][[분류:암살된 인물]][[분류:토도 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