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로마 아우구스타)] ||<-2><#8B0000> '''{{{#fecd21 {{{+1 Μαρία της Τραπεζούντας[br]트라페준타의 마리아}}}}}}''' || ||<-2>[[파일:트라페준타의 마리아.jpg|width=100%]] || ||<-2>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이자[br]팔레올로고스 왕조의 제15대 아우구스타''' || ||<:> '''왕조''' ||<(> [[팔레올로고스 왕조]][br](Paleologan Dynasty) || ||<:> '''전임''' ||<(> [[몬페라토의 소피아]] || || '''후임''' ||<(> 없음(마지막 황후) || ||<-2> '''신상 정보''' || ||<-3>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fecd21 '''이름'''}}}'''||<(> 트라페준타의 마리아[br](Μαρία της Τραπεζούντας) || ||||<:>'''{{{#fecd21 '''출생'''}}}'''||<(> [[1404년]] [br] [[트라페준타]] || ||||<:>'''{{{#fecd21 '''사망'''}}}'''||<(> [[1439년]] [[12월 17일]] (34-35세) [br] [[콘스탄티노폴리스]] || ||||<:>'''{{{#fecd21 '''배우자'''}}}'''||<(> [[요안니스 8세]] || ||||<:>'''{{{#fecd21 '''자녀'''}}}'''||<(> 없음 || ||||<:>'''{{{#fecd21 '''부'''}}}'''||<(> [[알렉시오스 4세(트라페준타 제국)|알렉시오스 4세]] || ||||<:>'''{{{#fecd21 '''모'''}}}'''||<(> 테오도라 칸타쿠지니 || ||||<:>'''{{{#fecd21 '''종교'''}}}'''||<(> [[정교회]] || }}}}}}}}} || [목차] == 개요 == [[동로마 제국]] [[팔레올로고스 왕조]]의 [[아우구스타]], 동로마 제국의 황제 [[요안니스 8세]]의 3번째 황후. 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후]]이다. == 생애 == [[트라페준타 제국]]의 [[황제]] [[알렉시오스 4세(트라페준타 제국)|알렉시오스 4세]]와 테오도라 칸타쿠지니의 3남 3녀 중 [[장녀]]로 출생했다. [[결혼]] 이전의 생애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당시 트라페준타와 [[동로마 제국]]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는데, [[요안니스 8세]]는 [[오스만 술탄국]]의 침략에 대처하려면 트라페준타와 화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두 나라간에 사신이 오고간 끝에 결혼 동맹을 맺기로 하였고, [[1427년]] 9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요안니스 8세와 마리아의 결혼식이 열렸고, 마리아는 [[아우구스타]] 칭호를 수여받았다.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요안니스의 전 [[황후]]인 [[몬페라토의 소피아]]와는 달리 준수한 [[미모]]를 갖췄고, 성격도 온화하고 자상했다고 한다. 요안니스는 그런 그녀에게 푹 빠졌다. [[스페인인]] [[여행자]] 페로 타푸르는 [[1437년]] 11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방문했을 때, 황제와 황후가 함께 [[시골]]에서 [[산책]]하거나 [[사냥]]하는 걸 종종 목격했다고 기술했다. 하지만 12년간 화목하게 지냈는데도 자식이 없었다. 그러던 [[1439년]] 12월 17일, 마리아가 [[페스트]]에 걸려 사망했다. 당시 요안니스 8세는 피렌체에서 열린 공의회에 참석해 서유럽의 군사적 지원을 얻기 위해 [[정교회]]와 [[가톨릭]]이 공식적으로 재결합하도록 주선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온 그는 정교회 성직자들의 거센 반대에 직면했고, 아내마저 사망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안니스는 사랑했던 아내의 허망한 죽음에 심히 낙담하였고, 재혼도 하지 않은 채 [[홀아비]]로 지내다 [[1448년]] 사망했다. 동생 [[콘스탄티노스 11세]]가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는데, 부인 테오도라와 카테리나 가틸루시오는 각각 [[1429년]]과 [[1442년]]에 사망했고 본인도 그이후로 결혼을 못했기에 황후가 없었다.[* 정확히는 트라페준타와 조지아 왕국쪽에 혼담을 넣어서 조지아 왕국의 왕녀와 결혼하기로 결정이 나긴 했는데 그게 진행되기 전에 제국이 먼저 망해버리고 콘스탄티노스도 함께 죽어버렸다. 아마 제국 멸망전에 결혼이 성사됐다면 그 왕녀가 마지막 황후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는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후가 되었다. [[분류:동로마 황후]][[분류:메가스 콤니노스 가문]][[분류:아우구스타(동로마)]][[분류:팔레올로고스 가문]][[분류:1404년 출생]][[분류:1439년 사망]][[분류:페스트로 죽은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