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타이완섬의 역사)] ||<-3> {{{+1 '''펑후해전/팽호해전[br]澎湖海戰'''}}} || || '''시기''' ||<-2>[[1683년]] 7월 10일~16일 ([[강희제]]) || || '''장소''' ||<-2>[[펑후현]] || ||<:><#C0C0FF> '''원인''' ||<-2>[[청나라]]와 [[동녕국]]의 최후 결전 || || '''교전국''' ||[[파일:청나라 국기.svg|width=23]] [[청나라]] ||[[파일:Flag_of_Ming_Cheng.png|width=23]] [[동녕국]] || || '''지휘관''' ||[[파일:청나라 국기.svg|width=23]] [[시랑(청나라)|시랑]](施琅) ||[[파일:Flag_of_Ming_Cheng.png|width=23]] 유국헌(劉國軒) || || '''병력''' ||병사 24,000명 [br] 함선 약 238척[* 대조선(大鳥船) 70척, 간증선(趕繒船) 103척, 쌍돛거선(雙帆居船) 65척] ||병사 20,000명 [br] 함선 약 240~250척[* 대소포선(大小炮船), 조선(鳥船), 간증선(趕繒船), 양선(洋船), 쌍돛등(雙帆等), 갖가지 군함(各式軍艦)] || || '''피해규모''' ||전사 329명 [br] 부상 1,800명 ||<^|1>전사 14,000명 || || '''결과''' ||<-2>'''청나라의 승리''' || || '''영향''' ||<-2>'''동녕국의 멸망 [br] 펑후현과 타이완 섬, 청나라 영토로 편입''' || [목차] [clearfix] == 개요 == 정씨의 동녕국은 [[대만 원주민]] 부족들 간의 전쟁이었던 [[사록사 전투]] 이후에도 청나라에 대항해 끊임없이 싸웠으나 대륙에 있었던 영토까지 잃자 유일하게 남은 영토인 타이완 섬이라도 잃지 않기 위해 펑후현에서 청나라 해군과 해전을 벌였다. 결국 이것이 동녕국 '''최후의 결전'''이 되고 말았다. == 상세 == 정씨 왕조의 해군이 괴멸적인 피해를 입으면서 동녕국은 더이상 청나라의 성조 [[강희제]]에게 저항할 수 있는 동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결국 동년 10월 어린 [[정극상]]이 청나라에 항복하면서 반청복명의 기치를 내걸며 건설되었던 동녕국은 3대만에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그래도 청나라는 정성공과 그 후예의 명예를 인정했고 항복 이후 동녕의 정씨 왕족들은 청나라 본토에서 그럭저럭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게 되었다. 이후 한족들의 대만 이주가 증가하면서 토지를 빼앗긴 원주민들은 계속 산악 지대로 밀려났고, 이 과정에서 [[툰샤오 사 사건]], [[대갑서사항청사건]]이 벌어지게 되었다. 특히 이 대갑서사항청사건으로 인해 [[다두 왕국]] 역시 멸망하고 만다. == 대중 매체 == 드라마 <강희왕조>에서 펑후대전을 드라마 태평천국의 해전장면 땜빵과 일시적인 상륙으로 대충 간략하게 나온다.[* 주 내용은 [[양안관계]]를 묘사하면서,교류내용을 집중있게 다룬다.]그 후에 드라마 <시랑대장군>에서 펑후대전을 자세하게 다룬다. == 관련 문서 == * [[타이완 섬/역사]] * [[동녕국]] * [[정극상]] * [[청나라/역사]] * [[대만청치시기]] * [[강희제]] * [[시랑(청나라)]] * [[펑후현]] [[분류:동녕국]][[분류:청나라/전투]][[분류:해전]][[분류:168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