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RTP 선정 위대한 포르투갈인)] ||<-2>
'''{{{+1 페르난두 페소아}}}[br]Fernando Pessoa'''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Pessoa88_chapeu.jpg|width=100%]]}}} || || '''본명''' ||페르난두 안토니우 노게이라 페소아[br] ,,Fernando António Nogueira Pessoa,,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포르투갈)] || ||<|2> '''출생''' ||[[1888년]] [[6월 13일]] || ||[[포르투갈 왕국]] [[리스본]] || ||<|2> '''사망''' ||[[1935년]] [[11월 30일]] (향년 47세) || ||[[포르투갈 제2공화국|포르투갈]] [[리스본]] || || '''직업''' ||[[시인(문학)|시인]], [[작가]], [[철학자]], [[번역가]] || || '''서명'''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background: #FFF; border-radius: 4px;" [[파일:페르난두 페소아 서명.svg|width=120]]}}} || ||<-3>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학력''' ||리스본 대학교 ^^(문학부 / [[중퇴]])^^ || || '''활동 기간''' ||[[1912년|1912년 – ]][[1935년]] || || '''사조''' ||[[모더니즘]] || || '''언어''' ||[[포르투갈어]], [[영어]], [[프랑스어]] || || '''소속''' ||[[장미십자회]] || || '''종교''' ||[[무종교]] ,,([[불가지론]]),, || || '''신체''' ||173cm || || '''묘소''' ||포르투갈 리스본 제로니무스 수도원 || || '''부모''' ||^^아버지^^ 조아킹 드 세아브라 페소아 [br] ^^어머니^^ 마리아 마그달레나 피녜이루 노게이라 ||}}}}}}}}} || [목차] [clearfix] == 개요 == [[포르투갈]]의 시인, 작가, 철학자. 생전에는 크게 인정받지 못했으나 현대에 이르러 [[모더니즘]]의 선구자, 20세기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자 '''[[포르투갈어]] 최고의 시인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문학계에서 포르투갈어 최고의 작가를 논의할 때, 16세기 작가 루이스 드 카몽이스와 더불어 페르난두 페소아가 반드시 거론된다.] 시로도 유명하지만 [[에세이]]로도 유명한데 대표적으로 '불안의 책(불안의 서)'이라는 작품이 그의 대표 명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 생애 == >'''누군가 내 삶으로 나를 때리고 있는 것 같다.''' >---- >'불안의 책' 中 1888년 6월 13일 [[리스본]]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남동생을 잃었다. 어머니가 두번째로 결혼하고 난 후 어머니와 함께 남아공의 더반에서 살면서 그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당시 남아공은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자연스레 페소아는 영어와 영문학에 접한다. 이것이 영향을 주어 이후 [[너새니얼 호손]], [[월트 휘트먼]], [[애드거 앨런 포]] 등 유명한 작가의 영어로 되어 있는 작품을 포르투갈어로 번역했으며, 본인이 직접 영어로 된 시집을 쓰기도 했다. 한편 1905년, 학업을 위해 리스본에 돌아오지만 개인적인 실패와 정치적 혼란을 겪으며 문학적 영감을 얻었고 포르투갈어로 창작을 시작한다. 1912년, 문학잡지 '아기아(''A Águia'')'에 기고문을 투고하며 작가가 아닌 비평가로서 문학계에 데뷔한다. 1915년에는 포르투갈의 [[모더니즘]] 운동인 '오르페우 운동'의 중심격으로 활동한다. 그는 '오르페우' 잡지를 출간하고 이명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며 여러 작가들과 교류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인다. 이러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생전 그의 책들은 거의 출간되지 못했다. 1차 세계대전 동안 자신의 시집을 츨판할 출판업자를 찾았지만 빈번이 거절당했으며, 리스본에서 친구와 함께 출판업체를 세워 자신의 시집 두편을 출판하나 출판업체가 일종의 스캔들로 인해 망한다. 페소아는 사상적인 측면에서 공산주의, 사회주의, 파시즘을 비판했다. 또한 1933년에 세워진 [[포르투갈 제2공화국|살라자르 정권]]에 회의를 느껴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살라자르]]의 독재를 비판하기도 했다. 1935년 11월 30일에 4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이명 == >어릴 적부터, 나는 내 주변에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면서 존재하지 않았던 친구들과 지인들로 나를 둘러싸는 성향이 있었지.(그들이 진짜 존재하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존재하지 않았던 게 나였는지 그건 확실치 않네만. 이런 문제들에 있어서 우리는, 다른 모든 문제들처럼, 독단적이면 안 된다네.) > >내가 "나"라고 부르는 그 사람이 된 걸 의식한 이후로, 내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기억나는데, 나는 다양한 가상 인물들의 형상, 움직임, 성격, 그리고 인생사를, 사람들이 어쩌면 부당하게 그렇게 부르는, 진짜 인생처럼 너무도 생생하게 그러고 나만의 것으로 본 거야. > >이런 성향은, 내가 내가 된 때로 거슬러 올라가 그때부터 늘 나와 함께했고, 그것이 나를 매혹하는 음악의 종류가 살짝 바뀌었다면 모를까, 나를 매혹하는 방식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어. >---- > '이명의 기원', 아돌푸 카자이스 몬테이루에게 보내는 편지 中 작가가 제 이름 대신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예는 흔히 있으나, 페소아의 예는 이런 일반적 경우와 확연히 구별된다. 이름들 각각에 서로 구별되는 고유한 전기와 인격과 문체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는 [[부캐|제 자신을 여러 개의 인격으로 분화]]시킨 셈이다. 그 이름들을 그는 ‘가명’(假名)이 아니라 ‘이명’(異名)이라 부른다. 가명(pseudonym)은 제 정체를 감추고 제 목소리를 낼 때에 사용하나, 자기의 이름들은 저마다 다른 인격을 갖고 있으므로 이명(heteronym)이라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정체성의 추구와는 반대되는 충동을 본다. 정체성(identity)이 ‘A=A’의 동일률에 집착한다면, 이명(heteronym)은 한 인격 내에 잠자는 상이한 가능성들을 현실화한다. 그것의 격률은 A=B=C=D=E, 즉 ‘너는 지금의 네가 아닌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페소아가 사용한 이명은 확인된 것만 해도 75개를 넘는다. 그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세개의 이름, 즉 알베르투 카에이루(Alberto Caeiro), 히카르두 헤이스(Ricardo Reis), 알바루 드 캄푸스(Álvaro de Campos)이다. 위에서 언급한 사라마구의 작품은 이중 히카르두 헤이스의 삶을 다룬 것이다. 흥미롭게도 사라마구의 소설에서 헤이스는 페소아보다 1년 뒤에 죽는다. 자기가 자기보다 늦게 죽는 셈이다. 페소아의 사망 소식을 듣고 포르투갈로 건너간 헤이스는 1년 뒤 페소아의 유령을 따라 그의 무덤으로 따라 들어간다. === 알베르투 카에이루 === Alberto Caeiro 1889 ~ 1915 리스본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삶을 시골에서 보냈다. 본인은 예술과는 거리가 먼 [[목동]]이었으며 오르페우 활동이 시작된 해에 사망하며 실질적인 오르페우 활동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르페우에 속한 많은 작가들이 그의 제자를 자처하며 오르페우 운동의 중심이자 정신적 지주로 평가받는다. 그의 시들은 전원과 양치기 같은 목가적인 분위기로 '자연의 시인'이라 불리기도 했다. 직관적인 성향을 보이며 대표작으로는 시집 <양치는 목동>, <사랑의 목동>이 있다. 페소아는 이명들의 스승이라 불렀으며 유일한 자연 시인이라는 칭호를 붙였다. === 알바루 드 캄푸스 === >'''아무도 나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다, 캄푸스를 제외하고는.''' >---- >페르난두 페소아 Álvaro de Campos 1890 ~ 1935 타비라 출생. [[글래스고]]에서 공부한 선박 엔지니어로 아일랜드와 아시아 항해를 걸쳐 리스본에 돌아와 시인이 된다. 세계를 돌아다닌 만큼 국제적이고 당대의 조류에 민감했으며 기술 예찬을 일삼는 모더니스트이자 [[미래주의]]자이다. 수많은 이명들 중에서도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였으며 다른 이명들이 일정 기간 활동하다 어느 순간부터 맥이 끊기는 것과 달리 페소아 본인이 죽을 때까지 함께한다. 캄푸스의 특징은 시간에 따른 주제와 문체의 변화로 페소아는 그가 스승인 카에이루를 만나기 전후로 다른 시를 쓰도록 주의를 기울이기도 했다. 초기 선동적인 미래주의자에서 후기로 갈수록 [[소네트]]와 같은 전통적인 형식들을 차용하며 '데카당 시인'기 - '감각주의자 엔지니어'기 - '형이상학적 엔지니어'기 - '은퇴한 엔지니어'기로 나뉜다. 대표작으로는 '승리의 송시'와 '해상 송시', 그리고 '담배 가게'가 있다. === 히카르두 헤이스 === Ricardo Reis 1887 ~ 1919 [[포르투]] 출생으로 외과의사이자 포르투갈 왕정주의자였으며 왕정 폐지 이후 브라질로 떠나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왕정주의자답게 보수적이고 고전적인 성향을 보인다. [[주제 사라마구]]는 이를 모티브로 삼아 사라마구의 대표작 중 하나인 "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을 썼다. == 평가 == >'''만약 페소아가 시인이 아니라 화가였다면, 그는 어떤 자화상을 그렸을까?''' >---- >[[주제 사라마구]] >'''철학은, 최소한 아직까지는 페소아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그 사고방식은 아직도 페소아를 논할 자격이 없다.''' >---- >[[알랭 바디우]] >'''나는 페소아에게 빚을 졌다. 페소아는 시를 통해 허구적인 우주를 만들어냈고, 나는 그 덕분에 허구의 세계를 믿을 수 있게 되었다.''' >---- >[[안토니오 타부키]] >'''포르투갈의 놀라운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 그의 환상적인 창조는 [[보르헤스]]를 능가한다. 그는 다시 태어난 [[월트 휘트먼|휘트먼]]이다.''' >---- >[[해럴드 블룸]] >'''16세기 [[미셸 드 몽테뉴|몽테뉴]]가 성취한 업적을 20세기에는 『불안의 책』이 이루어냈다. 명성과 성공, 무지와 편리함, 요란함을 우선시하는 시대에, 여기 완벽한 해독제가 있다. 어둠, 실패, 지성, 곤경, 침묵을 찬송하는 노래가 있다.''' >---- >존 란체스터 >『불안의 책』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혁명이며 부정이다. 문학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정점을 찌르는 페소아의 최고작이다. >---- >리처드 제니스 >비현실적인 일상과 현실적인 허구 사이에 그의 이야기가 있다. >---- >[[옥타비오 파스]] >『불안의 책』은 페소아의 리스본을 조이스의 더블린, 카프카의 프라하와 같은 곳으로 만들었다. >---- >조지 스타이너 == 어록 == >'''당신의 모든 것을 당신이 하는 가장 작은 일에 몰두하게 하라.''' >'''여행은 여행자이다. 보는 것은 보는 것이라기 보다는 우리 자신이다.''' >'''내일도 할 수 없을 일을 오늘 하지 마라.''' >'''영은 가장 위대한 비유이다. 무한은 가장 위대한 비유이다. 존재는 가장 위대한 상징이다.''' == 여담 == [[파일:attachment/포르투갈 에스쿠도/portugales201.jpg]] * 1986년부터 1994년까지 포르투갈 100[[에스쿠도]] 지폐의 인물이었다. * 한때 함께 살았던 이모 아니카(Anica)의 영향으로 [[점성술]]과 [[오컬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페소아는 해독 불가한 예언들을 자동 기술 방식으로, 단상과 기호로 남겼다. [[장미십자회]]의 회원이기도 했다. * 한국에서는 '''불안의 서'''로 작가 [[배수아]]의 독일어 중역, '''불안의 책'''으로 오진영의 포르투갈어 원전 번역으로 소개되었다. 2023년 연말 배우 [[한소희]]가 이 책을 좋아한다고 소개하여 품절대란이 일어난 적이 있다. == 관련 문서 == * [[작가/목록/순수 문학]] * [[역사 관련 정보]] * [[문예사 관련 정보]] [각주] [[분류:포르투갈 남성 작가]][[분류:포르투갈의 시인]][[분류:서구권 시인]][[분류:유럽의 현대 철학자]][[분류:번역가]][[분류:평론가]][[분류:1888년 출생]][[분류:1935년 사망]][[분류:화폐의 인물]][[분류:포르투갈의 무종교인]][[분류:리스본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