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스웨덴 국왕)] ---- [include(틀:역대 헤센카셀 방백)]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60a42 0%, #a80d53 20%, #a80d53 80%, #860a42)" '''스웨덴 헤센카셀 왕조 초대 국왕[br]{{{+1 프레드리크 1세}}}[br]Fredrik I'''}}} ||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프레드리크 1세.jpg|width=100%]]}}} || || '''출생''' ||[[1676년]] [[4월 28일]][br]헤센카셀 [[카셀]]|| || '''사망''' ||[[1751년]] [[4월 5일]] (74세)[br][[스웨덴]] [[스톡홀름]]|| ||<|2> '''재위''' ||<#E7E7E7,#191919>[[스웨덴 왕국]]의 왕|| ||[[1720년]] [[3월 24일]] ~ [[1751년]] [[4월 5일]]|| ||<|2> '''배우자'''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의 루이제 도로테아 ,,(1700년 결혼 / 1705년 사망),,|| ||[[울리카 엘레오노라]] ,,(1715년 결혼 / 1741년 사망),,|| || '''자녀''' ||프리드리히 빌헬름|| || '''아버지''' ||헤센카셀 방백 카를 1세|| || '''어머니''' ||[[쿠를란트-젬갈렌|쿠를란트]]의 마리아 아말리아|| || '''형제''' ||조피 샤를로테, [[빌헬름 8세]], 마리 루이제, 게오르크 카를|| || '''종교''' ||[[루터교회]]|| [목차] [clearfix] == 개요 == 프레드리크 1세는 [[스웨덴]]의 국왕이자 헤센[[카셀]]의 [[방백]]으로, 원래는 [[국서]]였는데 아내 [[울리카 엘레오노라]] 여왕에게서 양위를 받아 [[1720년]]에 왕위에 올랐다.[* 이후 울리카 여왕은 프레드리크 1세의 왕비가 되었다.] 부인 울리카 엘레오노라도 [[스웨덴 의회]]의 지지를 받아 [[스웨덴 국왕]]으로 즉위했고, 본인도 외국인 출신이라 의회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본국인 헤센카셀은 부친 카를 1세 사후 동생 [[빌헬름 8세|빌헬름]]에게 대리 통치시켰다. == 여담 == 사실 이 사람의 행적보다는 그가 기른 사자가 더 유명하다. [[사자]]를 한 마리 선물받아 키웠었는데,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는 최초로 사자를 키운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후 이 사자가 죽자, 묻어주었다가 마음을 바꾸고 [[박제]]를 했을 정도. 하지만 당시 박제사가 사자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게다가 박제사가 왕의 부름을 받고 왕궁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사자가 죽은 지 시간이 많이 지나 사체가 부패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박제사에게 주어진 건 부패한 살을 발라낸 후의 가죽과 뼈 뿐이었다고. 당연히 원래의 모습을 제대로 참고할 수도 없었다.] 사자 목격자들을 통해서 생김새를 듣거나 교회에 있는 부조상의 측면 모습만 보고 복원을 해야 했다. 그 때문에 옆모습은 그나마 전통적으로 유럽에서 묘사되던 "용맹한 사자"의 모습과 흡사하게 묘사했지만, 문제는 앞모습을 우스꽝스런 강아지의 모습으로 복원시키는 바람에[* 그런데 사실 앞모습도 유럽 명문가들의 문장에 흔히 그려져 있는 사자 문양과 비교해보면 나름 비슷하다. 2D로 그려져 있는 걸 그대로 현실로 옮겨놓은 듯한 모양새가 영락없이 불쾌한 골짜기라서 그렇지(...) [[노르만 왕조]]의 문장과 비교해보자.] ---우스꽝스럽다 못해 꿈에 나올까 무서운 수준이다---(...) 프레드리크 1세의 분노를 크게 사 결국 박제사는 왕실 모독죄로 반년가량의 징역형을 살아야 했다.(...) 흉물이 된 박제는 왕궁 창고로 직행했지만[* 당시에 부르는게 값이었던 사자 가죽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버릴 수 없었던 애물단지.], 현재에 들어와서는 [[망가져서 유명해진 것들|그 괴상하다 못해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모습이 컬트적인 인기를 얻어]] Lejonet på Gripsholms slott(그립스홀름 성의 사자)이라는 이름으로 그립스홀름 성[* 마리에프레드(Mariefred)에 있는 스웨덴 왕실 소유의 성으로, [[지그문트 3세 바사|시기스문드]]가 이 성에서 태어났다.]의 인기 전시물이 되었다. [[https://www.google.com/search?q=%EC%8A%A4%EC%9B%A8%EB%8D%B4+%EB%B0%95%EC%A0%9C%EC%82%AC%EC%9E%90&client=ms-android-samsung-ss&hl=ko&prmd=ivn&source=lnms&tbm=isch&biw=412&bih=725|사진]] 여담으로 이 사진은 '''[[https://wiki.dcinside.com/wiki/%EC%82%BC%EC%84%B1_%EB%9D%BC%EC%9D%B4%EC%98%A8%EC%A6%88|디시위키의 삼성 라이온즈 문서에서 9968 시대의 삼성 라이온즈를 조롱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그러니까 잘 좀 하지-- 아내 덕분에 국서에서 국왕으로 신분이 상승했음에도 정부를 두었다. 당시 스웨덴 왕실에서는 왕이 결혼 전에 잠깐 시시덕거리는 여인은 있어도 결혼 후에는 애인을 두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프레드리크 1세는 마치 [[영국]]의 [[로얄 미스트리스]]처럼 애인 헤드비그 토브를 궁에 데려다 왕비의 시녀로 만들고 계속 만나며 아이를 셋이나 두었다. 그리고 아내 울리카 엘레오노라가 죽자 헤드비그와 결혼하려고 했지만 헤드비그는 아이를 낳고 사망했다.[* 헤드비그는 원래 왕의 애인이 되는 걸 거부했지만 아버지를 위시한 주변 사람들이 가문의 영광을 위해 왕의 정부가 되도록 종용했다. 이 불쌍한 여인은 죽기 전 자신이 왕의 애인이 되도록 부추긴 사람들을 저주하고, 불륜이라는 죄를 지어 지옥에 갈까봐 두려워했다고 한다.] 프레드리크 1세는 낙담했지만 얼마 안 가 다른 애인을 만들었다.(...) [[분류:스웨덴 국왕]][[분류:헤센카셀 가문]][[분류:1676년 출생]][[분류:1751년 사망]][[분류:국서]][[분류:헤센 주 출신 인물]][[분류:리다르홀름 교회 안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