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 ||<-2>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br]{{{+1 프리드리히 1세}}}[br]Friedrich I., Kurfürst von Brandenburg''' ||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1280px-GLAMonTour-Jagdschloss_Grunewald-4801.jpg |width=100%]]}}} || || '''출생''' ||[[1371년]] [[9월 21일]][br][[뉘른베르크|뉘른베르크 제국자유도시]]|| || '''사망''' ||[[1440년]] [[9월 20일]] (향년 68세)[br][[안스바흐|안스바흐 공국]] 카돌츠부르크 성|| ||<|4> '''재위''' ||<#E7E7E7>[[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의 선제후|| ||[[1415년]] [[4월 30일]] ~ [[1440년]] [[9월 20일]]|| ||<#E7E7E7>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의 변경백|| ||[[1417년]] ~ [[1426년]]|| || '''배우자''' ||바이에른란츠후트의 엘리자베트 ,,(1401년 결혼),,|| || '''자녀''' ||엘리자베트, 요한, 체칠리에, 마르가레테, 막달레네, [[프리드리히 2세(브란덴부르크)|프리드리히 2세]], [[알브레히트 3세 아힐레스]], 도로테아, 프리드리히|| || '''아버지''' ||뉘른베르크 성주 프리드리히 5세|| || '''어머니''' ||마이센의 엘리자베트|| || '''형제''' ||엘리자베트[* [[독일왕]]이자 [[팔츠 선제후국|팔츠]] [[선제후]] [[루프레히트]]의 부인.], 베아트릭스, 안나, 아그네스, 요한 3세, 마르가레테, 카타리나|| [목차] [clearfix] == 개요 == [[호엔촐레른 가문]] 최초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이다. == 생애 == [[뉘른베르크]] [[성주#s-1.1]] 프리드리히 5세(Friedrich V. von Nürnberg 1333~1398)와 [[베틴 가문]] 출신인 마이센의 엘리자베트(Elisabeth von Meißen 1329~1375)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위로 형 요한 3세(Johann III. von Nürnberg 1369~1420)가 있었다.] [[룩셈부르크 가문]] 출신 [[헝가리 왕국]] 국왕 [[지기스문트|지그몬드]]의 [[독일왕]] 선출을 도운 공로를 인정받아 1415년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브란덴부르크 토착 귀족들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가문의 본거지인 [[뉘른베르크]] 근처 카돌츠부르크 성에 박혀 살았다. 이후 [[후스 전쟁]]에 참전했다가 [[타호프 전투]]에서 패배하는 등 굴욕을 당했다. 맏아들 요한[* [[연금술사]](Johann der Alchimist)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금]]에 관심이 많았으나 정치적으로는 무능력했고, 결국 안스바흐와 같은 호엔촐레른 가문의 프랑켄 세습지 중 한 곳인 [[쿨름바흐]](Kulmbach)를 물려받았다.]이 무능했기 때문에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 본토는 차남 [[프리드리히 2세(브란덴부르크)|프리드리히]]에게 물려주었고, 3남 [[알브레히트 3세 아힐레스|알브레히트]]에게는 [[프랑켄]] 세습지 중 하나인 [[안스바흐]]를 물려주었다. [[분류:브란덴부르크 선제후]][[분류:호엔촐레른 가문]][[분류:1371년 출생]][[분류:1440년 사망]][[분류:뉘른베르크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