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송사)] ||<-2> '''{{{+1 何繼筠[br]하계균}}}''' || || '''성''' ||하(何) || || '''이름''' ||계균(繼筠) || || '''자''' ||화룡(化龍) || || '''부친''' ||하복진 || || '''출생''' ||921년 ~ 971년 || || '''출신''' ||하남부(河南府) || [목차] [clearfix] == 개요 == [[오대십국시대]], [[북송]]의 장수로 자는 화룡(化龍). 하복진의 아들이다. == 생애 == === 초기 생애 === 921년 하복진의 아들로 태어났다. [[후진]] 시기에는 전직(殿直)으로 보임되었다. [[후한(오대십국시대)|후한]] 건우(乾祐) 연간, [[곽위]]가 이수정, 왕경숭, 조사관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할 때 하계균에게 수행을 요청했으며, 하계균은 이들의 반란이 진압된 뒤 공봉관으로 전임되었다. === 후주 시기 === [[후주]]가 들어선 뒤 광순 연간 아버지 하복진이 성덕군절도사로 임명되어 진정부(眞定府)에 진수할 때 하계균은 아버지를 따랐고 도교(都校)로 임명되었다. 하계균은 예비 부대를 이끌어 토문(土門)으로 출병하고 [[북한(오대십국시대)|북한]]의 군대를 물리칠 때 공을 세워 흠주자사(欽州刺史)를 겸임하였다. 952년, [[요나라]]에서 [[고모한]]이 2천의 기병을 이끌고 심주(深州)와 기주(冀州)를 침공하고 갈대로 뗏목을 만들어 호로하를 건너자, 패주(貝州)에 주둔하던 하계균은 호첩 도지휘사 유성회(劉誠誨)와 함께 고모한의 침공을 막아낸다. 하계균은 아버지와 함께 입조하여 내전직도지로 임명되었다. 954년, 아버지 하복진이 죽은 뒤 하계균은 상중에 복주자사(濮州刺史)로 기용되었고 정안군(靜安軍)에 진수하였다. [[요나라]]의 군대가 침공해오자, 하계균은 군대를 이끌고 요나라의 침공을 물리쳐 체주자사(棣州刺史)로 전임되었다. 959년, [[시영]]이 군대를 이끌고 와교관을 공격할 때 하계균은 군대를 이끌고 백정도(百井道)로 출병하여 북한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시종훈]]이 즉위한 뒤 서북면행영도감으로 임명되었다. === 북송 시기 === 북송이 들어선 뒤인 961년에는 체주가 단련주로 승격되면서 하계균은 체주단련사를 맡았고, 962년 관남병마도감(關南兵馬都監)으로 임명되었다. 체주가 방어주로 승격되면서 966년 방어사가 더해졌다. 968년, [[태조(송)|태조]]가 북한 정벌을 명령하면서 하계균은 소의군절도사(昭義軍節度使) 이계훈(李繼勳)을 따라 정벌에 참전하여 선봉부서로 임명되었다. 하계균은 와하(渦河)에서 북한의 군대를 조우하여 이를 격파하고 분하교(汾河橋)를 탈환하였으며, 태원에서 군마를 노획하고 북한의 장수인 장환(張環)과 석윤(石贇)을 사로잡아 바쳤다. 969년, 태조가 직접 북한을 정벌할 때 [[요나라]]가 북한에 원군을 보냈는데, 당시 양곡현(陽曲縣)에 주둔하고 있었던 하계균은 군영으로 당도하여 태조로부터 방략을 전수받고 수천의 기병들을 이끌어 석령관(石嶺關)으로 나아가서 계략에 따라 요군을 방어했다. 하계균이 석령관으로 출병하기 전 태조는 하계균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음날 정오에 경이 승전을 보고하길 기다리겠소. 하계균은 자사 2명을 사로잡고 백여 명을 사로잡았으며, 아들인 하승예(何承睿)를 태조에게 보내 승전을 알렸다. 그리고 태원성 아래에서 노획한 수급과 물자를 보여주면서 북한의 군대는 전의를 상실했으며, 하계균은 건무군절도사(建武軍節度使), 판체주(判棣州)로 임명되었다. 하계균은 970년과 971년 두 차례 입조했는데, 971년에 입조할 때 갑자기 등에 종기가 났고 얼마 안 있어 사망했다. 태조는 하계균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여 하계균을 시중으로 추증하였다. 태조는 하계균의 죽음을 슬퍼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계균이 변방을 지켰을 때 공을 세웠지만 짐이 일찍이 그를 절도사로 제수하지 않은 것은 하계균의 기구한 운명을 염려해서였소. 지금 절도사를 맡을 만했지만 죽음에 이르렀으니 그가 진실로 안타깝소. == 여담 == 하계균은 침착하고 지략이 있었으며, 전후로 20년 동안 변방을 수비하면서 사졸들과 함께 즐거움과 괴로움을 나누며 그들의 지지를 얻었다. 또한 변방의 정세를 잘 이해했으며, 변방의 사람들이 하계균에게 복종하고 그림을 그리며 제사를 지냈다. [[분류:송나라/인물]][[분류:921년 출생]][[분류:971년 사망]][[분류:상추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