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81년/사건사고]][[분류:제5공화국/사건사고]][[분류:누명]][[분류:고문 사건]] [include(틀:사건사고)] [목차] == 개요 == 학림 사건(學林事件)은 1981년에 [[신군부]] 세력이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학생운동조직 등을 반국가단체로 몰아 처벌한 사건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측 명칭은 '전국민주학생연맹·전국민주노동자연맹 사건'. 당시 전민학련이라는 대학생 단체가 첫 모임을 가진 [[대학로(서울)|대학로]]의 '[[학림다방]]'[* 지금도 영업 중인 대학로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으로 방송과 예능에서 자주 출연하는 대학로의 명물 다방이다. 이후에는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주인공 [[도민준]]의 단골 찻집으로 등장했고 매화마다 본점이 장소 협찬되었다. 본점은 평소에도 빈 자리 찾기 어려운 경우가 잦으며 같은 대학로에 분점도 있다.]에서 유래한 말로 경찰이 숲처럼 무성한 학생운동 조직을 일망타진했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 사건의 여파 == [[이태복]][* [[국민의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등 24명이 전국민주학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자연맹을 결성[* 실제로는 결성 준비 단계였다. 일단 이태복의 전민학련과 전민노력 조직 시도는 한국 민주화운동사에서 최초의 조직적인 노동자-학생 연대 시도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노학연대는 운동진영의 기본이 된다. ]한 혐의로 강제 연행되었고 불법 구금과 [[변호사]] 및 가족의 접견 차단, [[고문|물고문과 전기고문]], 여성 피의자에 대한 [[강간]] 위협 등의 [[가혹행위]]로 자백을 받아내는 등의 불법행위가 자행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법정에서 폭로되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배척해 유죄를 인정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이태복에게 [[무기징역]], 이선근에게 7년, 박문식에게 5년 등을 무더기로 선고했고 1982년 판결이 최종 확정되었다. 이들 중 이태복은 1986년 국제앰네스티에 의해 '세계의 양심수'로 인정받았고 김수환 추기경 등의 탄원으로 1988년 개천절 특사에 따라 [[가석방]]되었다. [[인민혁명당 사건]]이 [[박정희]] 유신 통치기간의 대표적인 [[사법살인]]이었다면 이 사건은 [[하나회|신군부]] 세력의 정권 안정을 위해 날조된 대표적인 [[공안사건]]으로 비교된다. == 사건 이후 == 2000년 국무총리 직속기구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이 사건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했고 2009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을 '공안조작 사건'으로 규정하고 국가로 하여금 피해자 및 가족에 대한 사과와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권고했다. 이에 따라 이태복 등 피해자 24명이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하여 2010년 무죄 판결을 받았고(2009재노81 및 2010재노21) 2012년 상고심에서도 같은 판결이 내려졌다.([[https://casenote.kr/%EB%8C%80%EB%B2%95%EC%9B%90/2011%EB%8F%84730|2011도730]]) == 관련 인물 == 이 사건으로 [[이근안]]에게 고문을 당한 경험이 있는 정치인 [[민병두]]는 당시를 회고하며 "고문 기술자로 악명 높은 이근안은 주간지 [[선데이 서울]]을 보면서 [[전기고문]]의 볼트수를 올렸다 내렸다"며 "나 역시 온갖 구타와 잠 안 재우기 등의 고문을 당하고 동료들의 소재지를 댔다"고 고백했다. 관련자들 중 [[박성현(1959)|박성현]]은 사건 이후 한국일보 기자가 되기 전까지 '깃발 사건', '제헌의회그룹 사건'에 연루된 바 있었고 이 사건에 대해서는 '명백히 공산주의에 기반을 둔 것'이라 생각하여 재심 청구는 물론, 민주화운동 보상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새누리당]] [[황우여]] 전 대표가 본 사건 원심의 배석 [[판사]]였으며 재심 무죄 판결 후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라는 비판이 쏟아지지만 사과하지 않았다. 황우여 전 대표는 당대표 임기를 마치자마자 2014년 7월 15일 청와대에 의해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었고 취임 직후 [[박근혜 정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 관련 문서 == * [[무림-학림 논쟁]] * [[부림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