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tube(rXUnOMpSHJM)]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민중가요]]. [[김남주(시인)|김남주]] 시인이 쓴 동명의 시에 변계원이 곡을 붙여 만들어졌다.[* 여담으로 [[김남주(시인)|김남주]] 시인은 이름이 여성스러우나 실제로는 남성이고, 변계원 박사는 이름이 남성스러우나 실제로는 여성이다.] 1980년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된 [[김남주(시인)|김남주]]는 감옥에서도 계속 시와 산문을 집필하여 면회객들을 통해 몰래 반출했으며, 당시 운동권에서는 이러한 그의 저작들을 암암리에 돌려보고는 했다. 서울대학교 국악학과 87학번인 변계원은 입학 이후 서울대학교의 노래패이던 [[https://ko.wikipedia.org/wiki/%EB%A9%94%EC%95%84%EB%A6%AC_(%EB%85%B8%EB%9E%98%ED%8C%A8)|메아리]]에 가입하여 활동했는데, 2학년이던 1988년에 아직 미발표[* 정식 출간된 것은 1989년 시선집 《사랑의 무기》에 수록되면서이다.]된 이 시를 읽고 습작삼아 작곡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해 광주에서 진행된 '전국대학생노래한마당'에 서울대학교 대표로 참가해 이 곡을 불렀다.[* 이후 변계원은 서울대학교 국악학과 대학원(석사)을 거쳐 영국 동양 아프리카 연구 학원(SOAS) 음악학과에서 민족음악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귀국하여 국악계에서 활발한 저술/저작/교육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노래가 화제가 되면서 인기를 끌자, 1991년 국제음반에서 나온 《[[http://www.maniadb.com/album/100087|아침을 여는 노래 Ⅰ - 언제나 시작은 눈물로]]》 앨범에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부른 곡이 수록되었다. 이듬해인 1992년에는 [[꽃다지]]가 낸 비정규 앨범 《[[http://www.maniadb.com/album/102149|희망의 노래 꽃다지 1]]》에도 수록되었다. 원시는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던 [[김남주(시인)|김남주]] 시인이 통일을 염원하며 지었지만, 곡을 붙이면서 그 내용이 단합과 연대가 주제로 바뀌었고, 그에 따라 [[NLPDR|NL]], [[민중민주주의|PD]]는 물론 거의 모든 진보 또는 개혁 진영에서 흔히 불리게 되었다. 심지어는 [[바위처럼]]과 함께 천주교 군인성가에 개사된 버전으로 실려 있다. 개신교의 경우 찬송집에는 실려 있지 않으나 진보 개신교 계열(신정통주의, 민중신학)에서 많이 불린다. 수많은 민중가요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었으나, 그 중 특히 많이 알려진 버전은 다음과 같다. *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첫 베스트 앨범인 《[[http://www.maniadb.com/album/121061|모음 하나]]》(1997) 7번 트랙 * [[안치환]]의 [[김남주(시인)|김남주]]시인 추모 헌정 앨범 《[[http://www.maniadb.com/album/128613|Remember]]》(2000) 12번 트랙: 이 글 서두 동영상에 수록된 버전이다. *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 공식 응원가 앨범 《[[http://www.maniadb.com/album/104086|With You]]》 2번 트랙: 록 리메이크 버전으로 역시 [[안치환]]이 불렀다. == 가사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동지 모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동지의 손 맞잡고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 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주고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됨을 위하여|| == 기타 == [[백남기]] 농민이 생전에 좋아했던 노래라고 한다. 백남기 농민 노제와 영결식에서 사용되었다. [[검찰개혁 촛불문화제]]에서도 이 노래가 불리어졌다. [[주성하]] 기자의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0204/105270174/1|기사]]에 의하면, 어떤 경로로 유입되었는지는 불분명하나 [[북한]]에서도 2000년대 초에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 노래가 전국적으로 퍼지게 된 계기는 2002년 [[김일성]] 90주년 생일을 기념하는 [[열병식]] 연습장에서였다고 한다. 고된 훈련에 지친 병사들 사이에 누군가에 의해 이 노래가 퍼졌고, 당시 병사들은 이게 남한 노래가 아닌 단순한 북한 내 누군가의 창작곡이라고 생각하고 불렀다고 한다.[* 감독하는 장교들도 남한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고 한다.] 게다가 가사역시 열병식 훈련에 시달린 병사들의 입장을 묘사한것 같기도하고. 이후 이 노래에 반한 열병식 참가 장병들이 원대복귀한 뒤에도 〈열병식 노래〉 라며 불러대어 북한 전역에 퍼진 것이다. [[분류:민중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