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6.25 전쟁 학살/인민군과 좌익]][[분류:1950년/사건사고]][[분류:함경남도의 사건 사고]][[분류:함흥시]] [include(틀:사건사고)] [목차] == 개요 == 1950년 [[인천상륙작전]] 이후 후퇴하던 [[북한군]]이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자행한 학살. == 상세 == [[파일: 837_1293_2955.jpg]] 함흥시 우물에서 학살된 민간인 시체를 건져 올리고 있는 국군의 모습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과 대한민국통계연감[*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 대한민국통계연감(1952년 발간)]에 따르면,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한군은 후퇴하면서 북한 지역에서도 숱한 학살극을 벌였다. 김일성은 전쟁 초기 북한 지역에서 '불순분자 색출'을 모토로 예비검속을 했는데 미군이 압박해 들어오자 이들을 학살했다. [[http://www.konas.net/article/article.asp?idx=7199&project=10|관련 기사]] 함흥감옥에서 약 700명, 함흥시 충령탑 지하실에서 약 200명, 함흥시 정치보위부가 있는 3곳의 지하실에서 약 300명, 함흥 북쪽의 덕산 니켈광산에서 약 6,000명, 함흥시 반룡산 방공호에서 약 8,000여 명이 학살당했다. 함흥시에서만 모두 12,000여 명이 퇴각하는 인민군에 의해 학살당했다. (납치 및 실종자는 포함되지 않은 숫자) 학살 방식은 총살, 우물 생매장, 투석(방공호의 경우 폭사)으로 알려져 있다. [[파일: 837_1292_2955.jpg]] 퇴각하는 북한군에 의해 학살당한 함흥시 주민들의 시신 약300여구 다음은 북한 지역에서 일어난 북한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의 책임이 [[김일성]]에게 있다는 근거며 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김일성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후방을 철옹성같이 다져야 한다. 도피분자, 요언(妖言) 전파 분자와 무자비하게 투쟁하며 밀정 및 파괴분자를 적발, 가차없이 숙청하고 반역자는 무자비하게 처단해야 한다" >---- >1950년 6월 26일, 방송을 통한 김일성의 지시하달, 출처: "남북한 관계 사료집 2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