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송 황후)] ||<-2> '''{{{#ece5b6 북송의 황후[br]{{{+1 顯肅皇后 | 현숙황후}}}}}}''' ||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280px-宋徽宗后坐像_軸.jpg|width=100%]]}}}|| || '''[[시호|{{{#ece5b6 시호}}}]]''' ||<(> 현숙황후(懿肅皇后) || || '''[[성씨|{{{#ece5b6 성}}}]]''' ||<(> 정(鄭) || || '''{{{#ece5b6 출생}}}''' ||<(> 1079년, 개봉부 || || '''{{{#ece5b6 사망}}}''' ||<(> 1131년, 오국성 || ||<|4> '''{{{#ece5b6 재위}}}''' ||<:> {{{#fff 북송의 황후}}} || ||<:> 1111년 ~ 1126년 || ||<:> {{{#fff 북송의 태상황후}}} || ||<:> 1126년 ~ 1127년 || || '''{{{#ece5b6 배우자}}}''' ||<(> [[휘종(송)|휘종]] || || '''{{{#ece5b6 아버지}}}''' ||<(> 정신(鄭紳) || [목차] [clearfix] == 개요 == 顯肅皇后 鄭氏 (1079년 ~ 1131년) 중국 [[북송]]시대의 황후로, 8대 황제였던 [[휘종(송)|휘종]]의 황후였다. == 상세 == 개봉부 출신으로, 정신(鄭紳)의 딸로 태어났다. 정씨는 휘종의 제1 황후였던 현공황후 왕씨가 대관 2년(1108년)에 세상을 떠난 이후 정화 원년(1111년)에 정식으로 휘종의 황후로 책봉되었다. 현숙황후 정씨가 북송의 황후로 재위하는 동안, 만주에서는 [[태조(금)|완안아골타]]가 여진족을 통합하고 [[금나라]]를 건국하여 [[요나라]]를 침공하며 세력을 확대해갔고, [[요나라]]는 점점 망국의 길로 빠지던 상황이었다. 휘종은 금나라와 협력하여 1125년에 요나라를 멸망시켰지만, 이후 금나라가 북송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모습에 분노하여 북송을 침공하자 휘종은 자신의 태자였던 [[흠종(송)|조환]]에게 제위를 덜컥 양위하고 태상황이 되었고 이때 정황후도 [[태상황후]]가 되었다. 그러나 금나라의 기세는 맹렬하였고 결국 금나라의 공격에, 1127년 [[정강의 변|수도인 개봉이 함락당하고 휘종과 흠종이 금나라에게 포로로 잡히는 사태]]가 일어났다. 현숙황후도 이때 금나라에 포로로 붙잡혀 금나라로 압송되었다. 그리고 임안에서는 휘종의 아들이었던 [[고종(송)|조구]]가 황제로 즉위하여 [[남송|간신히 송나라의 명맥을 이어나간다.]] 현숙황후는 이후 금나라의 포로로 생활하다가 오국성에서 1131년에 사망하였으며, 4년 뒤에는 휘종도 세상을 떠난다. 휘종과 현숙황후가 죽었다는 소식은 1137년에 남송에 전해졌으며, 남송과 금나라의 평화협상이 체결된 이후, 고종의 모후였던 [[현인황후 위씨|현인황후]]가 남송으로 돌아오며 휘종과 현숙황후는 관에 실려 돌아와, 나란히 영우릉에 안장되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송사)] [[분류:송나라의 황후]][[분류:카이펑시 출신 인물]][[분류:1079년 출생]][[분류:1131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