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관련 문서, top1=작위)] [include(틀:신분제도)] [목차] == 개요 == '''화족'''([ruby(華族, ruby=かぞく)])은 과거 [[일본 제국|일본]]에 존재했던 [[귀족]] 계급이다. [[https://ko.dict.naver.com/seo.nhn?id=43064500|원래]] [[https://hanja.dict.naver.com/#/entry/ccko/0c9ab727a1334618bfdf6e37f634db8d|뜻은]] 지체가 높은 [[사람]]이나 [[나라]]에 공훈이 있는 사람의 집안이나 자손을 뜻하는 [[보통명사]]였으나, 전근대 일본에서 2등급 [[공가#s-5.2|공가]](公家)인 청화가(淸華家)의 다른 [[이름]]으로 쓰이게 되면서 일본에서 귀족의 명칭으로 [[고유명사가 된 보통명사|쓰이게]] 되었다. 영지명 없이 작위만 사용했다. 작위 앞에 영지 이름이 붙는 한국, 중국, 베트남과는 다른 일본만의 특징이다. == 설명 == 화족은 [[메이지 유신]] 이후 [[사농공상]]의 [[신분제도]]를 개편하면서 [[1884년]]에 생긴 새로운 [[신분]]이었다. 기존의 [[사농공상]] 제도를 없애면서 모두를 같은 신분으로 내리고,[* 화족에 편입되지 못한 [[무사(역사)|무사]] 계급은 [[사족#s-2.2|사족]]으로 분류되었으나, 현실적으로 호적에 사족(士族)이라고 기재되는 외에 아무 특전이 없었으므로 그야말로 이름뿐인 존재가 되었다. 그러니 사실상 화족 이외의 특권계급은 사라진 것이다. 다만 많은 [[봉토]]를 갖고 있던 고위 사족이 아닌 대부분의 하급 무사들은 이미 그전부터 사실상 사회적 특권이 없다시피 했고 오히려 무사의 [[농업]] 종사 금지가 해제되어 전객이 되든지 [[상업]]에 종사하는 대신 농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되었다. 사족같은 경우는 [[메이지 유신]]때 일시적으로 공채를 일괄 지급하고, 나중에 유상몰수를 했다. 이 기간 도중에 [[공채]]를 미리 처분하고 [[사업]]에 뛰어든 사족들만 개이득.] 그 상태에서 당시 유력한 [[정치인]]들과 고위 계층 ([[다이묘]]들과 [[공경]]들), 그리고 [[부르주아]]를 묶어 새로운 귀족인 화족으로 분류했다. 화족에는 고대 [[중국]] [[서주]]의 봉건제에서도 쓰였던 [[오등작]]의 다섯 계급인 [[공작(작위)|공작]], [[후작]], [[백작]], [[자작(작위)|자작]], [[남작]]이 있었다. 이는 이전부터 있던 신분질서를 [[서양]]식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해 제도화한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화족을 5등작으로 나누려 한 것은 아니었다. 제출된 초안들을 보면 * 공(公), 경(卿), 대부(大夫), 사(士)의 4계급으로 나누고, 공과 경을 2계급, 대부와 사를 3계급으로 나누어 9계급으로 하는 안 (1869년) * 상공(上公), 공(公), 아공(亜公), 상경(上卿), 경(卿)의 5계급으로 나누는 안 (1871년 9월) * 공(公), 경(卿), 사(士)의 3계급으로 나누는 안 (1871년 10월) * 공(公), 백(伯), 사(士)의 3계급으로 나누는 안 (1876년) 으로 계속 변했다. 공후백자남 5등작 안이 제출된 것은 [[1878년]]의 일로, 『[[예기]](禮記)』에 등장하는 王者之制禄爵 公侯伯子男 凡五等』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동양]]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작위명이기도 하다. 첫 서임은 [[1884년]] [[7월 7일]] 거행되었는데 공작 11명, 후작 24명, 백작 76명, 자작 324명, 남작 74명으로 총원 509명이었다. 화족 대우를 받는 [[사람]]은 화족과 같은 [[호적]]에 있는 사람들 뿐으로, 화족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차남 이하로 태어나서 [[분가]]하면 [[평민]] 취급을 받았다. 다만 화족들끼리 [[양자(가족)|양자]]를 활발하게 주고받았고, [[양자(가족)|양자]] 또는 [[서자]]에 의한 계승도 드물지 않았는데 친자+[[적자]]가 아니면 [[작위]]를 계승할 수 없었던 [[유럽]] 귀족들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고위 화족가문에서 작위가 낮은 분가가 파생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한 예로 [[고노에 후미마로]]의 동생 히데마로도 분가하면서 [[자작(작위)|자작]]위를 받았다.[* 보통 공작가에서는 자작가, 후작가에서는 남작가가 분가되는 게 표준이었다.] [[일제시대]] 구 [[대한제국]] [[황실]]도 이 체계에 편입되어서 [[이왕가]](李王家)로 불렸다. 정확하게는 [[왕공족|왕공족(王公族)]]이라 하여 화족과는 별개의 규범으로 [[신분]]이 규정되었는데, 왕공족의 위치는 명목상으로는 "황족 이하, 화족 이상"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일합방]] 전후 일본에 협조한 공로로 [[조선귀족|귀족]]으로 서임된 조선인들 역시 이 체계 내에 편입되었다. == [[작위]] 서임 기준 == * '''공작 (公爵, こうしゃく)''' * [[교토]] 조정의 [[오섭가]](五摂家, 고셋케)[* 섭관직을 독점하던 다섯 최고위 공가를 이른다.] * [[도쿠가와]] 가문 [[종가]] * 공훈이 있는 [[다이묘]] 가문 * 유신을 주도한 [[사쓰마 번]]의 번주 [[시마즈]](島津) 종가, [[조슈 번]]의 번주 모리(毛利) 종가가 이에 해당한다. * [[사무라이|무가]]나 [[공가]] 중 [[국가]]에 큰 공(偉功)이 있는 자를 배출한 가문 * 무가 중에서는 사츠마번의 실세이던 시마즈 가문의 방계 타마자토 시마즈가가 시마즈 히사미츠의 공으로 책봉 * 공가 중에서는 세이가케인 산조가가 [[산조 사네토미]]의 공으로, 우린케인 이와쿠라가가 [[이와쿠라 토모미]]의 공으로 책봉. * [[에도 막부]]의 마지막 [[쇼군]]이었던 요시노부의 경우 다른 가문들보다 약간 늦은 [[1902년]]에 도쿠가와 종가와는 별도로 본인을 [[시조]]로 하는 분가인 요시노부가 자격으로 책봉. * 이후 [[이토 히로부미]](백작, 후작을 거쳐 [[1907년]] [[공작(작위)|공작]]으로 승급)나 [[야마가타 아리토모]], 오야마 이와오 등의 유력 유신지사의 가문이나 공가의 사이온지 가문, 무가의 미토 도쿠가와 가문처럼 최초에는 [[백작]] 또는 후작가였던 가문이 공작가로 승급하는 사례도 있었다. * [[황족]] 중 [[친왕]]이 [[신적강하]]하는 경우. * 단 실제 화족제도 존속기간 중 이 규정으로 인해 공작을 부여받은 사례는 없었다. 화족 체계에서의 공작은 [[러시아 제국|러시아]] 공작처럼 [[영어]]로는 Duke가 아닌 Prince로 번역했다. 우리가 지금 시각에서 보면 호칭 [[인플레]]로 보일만 하지만 [[서양]]의 작위 체계에서는 Prince가 Duke보다 절대적으로 높지는 않다. [[프린스]] 항목을 참고하자.[* 물론 왕가(통치가문)의 후손들은 [[작위]]와 상관없이 Prince를 관습적으로 쓰는데, 진짜 [[왕자]]도 있고 그냥 [[듣보잡]] 방계 혈족도 있다. 다만 [[서양]]에서는 [[동아시아]]와는 달리 [[첩]]의 후손들은 쓸 자격이 없다. 적법한 [[혼인]]에서 태어난 적자만 해당한다. Prince는 Duke가 따로 없는 [[동유럽]]([[슬라브족]])에선 공작과 동격으로, Fürst로 불리는 [[독일어권]]에선 공작(Herzog)보다 낮은 후작으로, [[서유럽]]에선 [[대공]](Grand Duke)보단 낮지만 공작(Duke)보단 높은 작위이다.] 그래서 [[영미권]]과 불어권 등에서는 [[고노에 후미마로]]를 황족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생물학적으로는 [[고요제이 덴노]](後陽成天皇)의 12대손이긴 하다. 아무튼 [[일본인]]들은 직계 황족인 [[친왕]](親王)이나 [[방계]] 황족인 [[왕]](王)의 경우도 Prince로 번역했다. 가령 [[쇼토쿠 태자]]의 경우에도 [[영어]]로는 Prince Shotoku로 표기하고 있다. [[태자]]면 Crown Prince로 번역해도 될 텐데 당시 [[천황]]과 직계존비속이 아니고 [[조카]]라서 그런 듯하다.] 이 때문에 영문 [[위키백과]]를 비롯한 많은 [[영미권]]의 [[문서]]들은 일본 화족의 Prince는 사실 Duke에 가깝다고 부연설명을 한다. * '''후작 (侯爵, こうしゃく)''' * 교토 [[조정]]의 청화가(清華家, 세이카케) * 도쿠가와 가문의 [[고산케]](御三家)[* [[도쿠가와 막부]] 쇼군의 분가인 오와리 도쿠가와 가, 기이 도쿠가와 가, 미토 도쿠가와 가의 3개 가문을 말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9남(오와리 번), 10남(기이 번), 11남(미토 번)의 후손들이다. 이중 미토 도쿠가와 가는 2대 후작 도쿠가와 쿠니유키가 [[미토 고몬]] 시절부터 이어진 대일본사 편찬을 완료한 공적으로 공작가로 승작되었다.] * 실소출 15만 석 이상의 [[다이묘]] * [[히로시마]] 번주 아사노 가, [[오카야마]] 번주 이케다 가, [[돗토리]] 번주 이케다 가, [[후쿠오카]] 번주 쿠로다 가, 쿠보타 번주 사타케 가, [[사가]] 번주 나베시마 가, [[도쿠시마]] 번주 하치스카 가, [[구마모토]] 번주 호소카와 가, [[카나자와]] 번주 마에다 가, [[고치]] 번주 야마우치 가가 후작위를 받았으며 이후 [[후쿠이]] 번주 에치젠 마츠다이라 가, 우와지마 번주 다테 가가 기존 백작위에서 승급되어 후작위를 받았다. * [[류큐 왕국]]의 왕가 쇼(尚)씨 [[종가]] * [[미야케]]에서 처음으로 황족이 [[신적강하]]한 가문 * 기타 [[국가]]에 공훈이 있는 자 * 유신삼걸의 일원인 [[기도 다카요시]]의 기도 가, [[오쿠보 도시미치]]의 오쿠보 가 등이 공훈으로 후작위를 받았으며, 화족제도 도입 시점에 이미 고인이었던 [[사이고 다카모리]]의 사이고 가도 [[1895년]]에 다카모리의 동생 [[사이고 주도|츠구미치]]가 백작에서 승급, [[1902년]]에는 다카모리의 유신의 공이 인정되어 다카모리의 적남 토라타로가 각각 후작위를 받았다. * 공가 중 나카야마가는 본디 [[가문]]의 격은 우린케에 불과하나 [[메이지 덴노]]의 [[외가]]인 점을 고려하여 후작위에 책봉되었다. * [[전주 이씨|대한제국 황실]] 중 몇몇 인물을 비롯해 [[이완용]]이나 [[박영효]] 등 [[한일합방]]에 [[친일반민족행위자|크게 기여한]] [[조선인]] 또한 일본의 후작위를 받았다. * '''백작 (伯爵, はくしゃく)''' * 교토 조정의 대신가(大臣家)와 일부 당상가(堂上家) * 우린케(羽林家), 메이케(名家), 한케(半家) 가문 중에서 [[대납언]]까지 올랐던 가문들. * [[도쿠가와]] 가문의 고산쿄(御三卿)[* [[고산케]]처럼 도쿠가와 막부 계승권은 있으나 [[영지]]가 따로 없었던 가문.] * 5만 석 이상의 다이묘 * [[쓰시마 섬]] 도주(島主) [[소(성씨)#s-2|소]](宗)씨[* 쓰시마 번은 석고만으로 보면 본섬과 히젠의 월경지를 포함해도 2만 석 미만으로 자작급에 불과하나 [[조선]]과의 [[외교]]를 담당하는 역할을 맡아 [[에도 막부]]에서 10만석급 다이묘 격으로 대접받았다. 이후 신정부에서도 이러한 특수성이 그대로 인정되어 백작이 되었다. [[덕혜옹주]]의 전남편이었던 [[소 다케유키]] 백작이 이에 포함된다.] * [[니시혼간지]], [[히가시혼간지]]의 세습 [[주지]] * 미야케에서 두번째로 황족이 신적강하한 가문 * 기타 국가에 공훈이 있는 자 *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가오루]], [[야마가타 아리토모]], [[사이고 주도|사이고 츠구미치]] 등 주요 유신지사들의 가문이 처음에는 이 백작위를 받았다. * [[규슈]] 히라도 번의 마츠우라 가는 원래 [[쌀]] 소출량 산정에 포함되지 않는 분가의 소출까지 끌어모은 수치를 기준으로 백작위에 책봉되었다. 이에 대해 마츠우라 가가 [[메이지 덴노]]의 외조모의 친정 가문이었기 때문에 외가인 나카야마 가를 후작으로 책봉했던 것과 비슷한 특혜로 여겼다. * '''자작 (子爵, ししゃく)''' * 기타 당상가 * 기타 다이묘 * [[오다 노부나가]]의 후손들 *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 가문들. 아시카가 오토마루(足利於菟丸)가 다스리는 시모츠케(下野)국의 키츠레가와(喜連川)번은 원래 5천 석밖에 안 되어 [[하타모토]]급이었지만, 옛 쇼군 가문이라는 점 때문에 에도 막부에서도 예우를 받았다. 이 점을 신정부에서도 그대로 인정하여 자작위를 받았다. * 유신 이전에 분가했거나 격이 높은 집안의 [[차남]] 이하의 아들 * 전자는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이복동생이자 옛 미토 번주를 지냈던 도쿠가와 아키타케(徳川昭武)가 일으킨 마츠도(松戸) 도쿠가와 가문과 후쿠이 번주를 지냈던 마츠다이라 요시나가(松平慶永)의 차남 마츠다이라 요시타미(松平慶民) 가문 등이 해당되고 후자는 [[고노에 후미마로]]의 [[동생]] 히데마로(秀麿)가문이 해당된다. * 기타 국가에 공훈이 있는 자 * '''남작 (男爵, だんしゃく)''' * [[메이지 유신]] 이후에 화족이 된 자 * 교토 조정의 일부 지하가[* 기본적으로 [[천황|덴노]]를 알현할 수 없었던 지하가들은 [[사족#s-2.2|사족]]으로 분류되었다.] * 오시코지(押小路)가는 지하가 치곤 격이 높았고, 미부(壬生, [[히가시쿠니 시게코]]의 [[차남]]이 [[양자]]로 들어간 미부(壬生) 백작가와는 다른 집안) 가는 당주였던 미부 고후(壬生桄夫)의 공으로 남작위를 받았다. * 공/후작가에서 분가한 차남 이하의 아들 * 나라화족(奈良華族) 26가문[* 당상가문에서 가문을 이어줄 [[아들]]을 제외한 아들들이 [[나라 현]]에 위치한 고후쿠지에 [[승려]]로 [[출가]]시켰다가 유신에 의해 환속 후 분가한 집안들을 말한다.] * [[류큐 왕국]] 방계 왕족들 * [[쇼타이]] 왕의 두 아들과 방계인 이에(伊江) 씨와 나키진(今帰仁) 씨. * 주요 [[신사]](神社)의 [[세습]] 신직(神職) 14가문 * [[이즈모타이샤]]: 기타시마(北島), 센게(千家) * [[우사시|우사 신궁]]: 이토우즈(到津), 미야나리(宮成) * [[이세 신궁]]: 가와베(川辺), 마츠키(松木) * [[스미요시타이샤역|스미요시타이샤]]: 츠모리(津守) * [[아소시|아소 신사]]: 아소(阿蘇) * 히노쿠마(日前) 신사, 구니카가스(國懸) 신사[* [[와카야마시]]에 위치]: 시(紀) * 히코산(英彦山) 신사[* [[타가와군|소에다마치]]에 위치]: 다카치호(高千穂) * 히노미사키 신사(日御碕神社)[* 이즈모타이샤의 오야가미(祖神)로 모시는 신사]: 오노(小野) * 모노노베 신사(物部神社)[* [[시마네현]] [[오다시]]에 위치]: 가네코(金子) * [[다자이후텐만구]]: 나시다카츠지(西高辻家) * 정토진종(浄土真宗)계 세습 주지 4가문 * 붓코지(佛光寺)[* [[교토시]] [[시모교구]]에 위치]: 시부야(渋谷) * 고쇼지(興正寺)[* [[교토시]] [[시모교구]]에 위치]: 하나조노(華園) * 센쥬지(専修寺)[* 본산은 [[미에현]] [[츠시]]이고 본사는 [[도치기현]] [[모오카시]]에 위치]: 도키와이(常磐井) * 센주지(錦織寺)[* [[도치기현]] [[야스시]]에 위치]: 기베(木辺) * 남조 조정 충신의 후손 * [[닛타 요시사다]]의 후손 등이 이에 해당한다. * 1만석 이상의 [[다이묘]] 가신 * [[고산케]]의 오츠케가로(御附家老)와 [[카가 번]] 가로들 중에서 5만석에 버금갔던 가신들이 대표적이다. * 기타 국가에 공훈이 있는 자 이토 히로부미처럼 공을 세운 정도에 따라 [[작위]]가 승급되는 사례도 꽤 있었다. 한편 [[여자]]는 화족 가문의 당주가 될 수 없어서 [[남자]] 계승자가 끊기면 작위는 반납되었다.[* 다만 [[서양자]](壻養子: [[사위]]를 양자로 삼는 것)나 외손에게 계승할 수 있었다. 그래서 후계 단절로 반납된 가문은 공작 가문은 없고 후작 가문이 각각 딱 하나 있었다. 후작 중 후계 단절로 작위가 반납된 가문은 당시 황족이었던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의 둘째 아들이라 양자를 딱히 세울 필요가 없었기 때문. 공작 가문이 후계가 단절된 사례는 없고, 작위 반납 사례는 [[마쓰카타 마사요시]]의 아들인 마쓰카타 켄(松方巌)이 [[금해금]]으로 인한 [[쇼와]] 대공황의 [[책임]]으로 작위를 반납한 것이 유일하다.] 아니면 화족 작위를 받은 본인이나 후계자가 [[일대귀족|1대화족]]주의자여서 습작 수속을 하지 않아 작위가 끊기기도 했다. [[1928년]] 화족 가문은 공작 18개, 후작 40개, 백작 108개, 자작 379개, 남작 409개([[조선귀족]] 제외)로 총 954개였는데 [[1944년]]에는 1016개로 늘어났다. [[1907년]] 이후로는 후계자에게 작위를 물려주고 은거가 가능해졌다. 참고로 위의 [[다이묘]]의 작위 서임 [[고쿠다카]] 기준은 [[보신전쟁]] 이후에 새로 산출한 고쿠다카 기준이다. 따라서 [[에도 시대]] 중후반 기준으로 생각하면 대입이 안되는 가문들이 있다.[* 예를 들어 요네자와 우에스기 가문의 경우 에도 중후반 기준 고쿠다가가 18만석이므로 후작위에 해당할 것 같지만, [[보신 전쟁]]에서 오우에쓰열번동맹의 맹주로써 신정부군에 대항한 것 때문에 감봉 처분을 받아 14만 7천석이 되었기 때문에 백작위를 받았다.] 이것 때문에 고쿠다카를 새로 조사할 때 호리에 번(堀江藩)을 다스리던 [[하타모토]] 오사와 모토스미(大沢基寿)가 실제로는 5500석도 안 되고, 유신에 공도 없었는데, 메이지 정부에 1만 석 이상이라고 거짓말을 하여 남작 작위를 받았다가 적발되어 작위가 박탈된 사건도 있다.[* [[판적봉환]] 때 제출된 각 번의 고쿠다카를 보면 가관이다. 최소한 다이묘나 쇼군의 가신이 남작이 되려면 1만 석은 되어야하고 유신에 훈공이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든 1만 석을 채우겠다는 훈공이 없는 [[하타모토]]들과 실제 고쿠다카가 1만 석에 미달되는 소규모 번사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1만 석을 인정 받으려고 애를 썼다.] == 특권 == * [[귀족원(일본)|귀족원]](貴族院) 의원이 될 자격. 30세 이상의 공후작 의원은 [[종신]], 백자남작 의원은 7년 [[임기]]로 선출되어 귀족원에 소속되었다. * [[일본 황실|황족]], [[왕공족]]과의 결혼 자격이 주어짐.[* 다만 직계황족은 화족 중에서도 [[고셋케]](五摂家)나 황족 또는 [[왕공족]]과 결혼해야 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귀천상혼]]으로 [[신적강하]]를 당한다.] * [[제국대학]]에 결원이 있으면 무시험으로 [[입학]]할 수 있음. ([[1922년]]까지) * [[가쿠슈인]]에서 낙제를 해도 화족 집안의 [[자녀]]라면 고등과까지의 진학을 보증. * 유작자는 궁내대신의 인허를 받아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신의 집안에서 통용되는 규칙인 "가범(家範)"을 정할 수 있었다.[[http://www.archives.go.jp/exhibition/digital/modean_state/contents/noble/photo/koushaku-hoka/imgs/i_zoom01.jpg|표지]] 가범으로는 배우자 및 입양 자격,[* 화족 이상에 한한다 등] 재산 처분의 절차[* 가문의 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등]를 정할 수 있었고, 가범을 위반한 경우 궁내대신은 화족령의 규정에 따라서 징계 처분을 내릴 수 있었다. [[일본어 위키백과]]에선 [[https://ja.wikipedia.org/wiki/%E5%85%AC%E7%88%B5|공작]], [[https://ja.wikipedia.org/wiki/%E4%BE%AF%E7%88%B5|후작]] 항목에 역대 화족들 명단이, [[https://ja.wikipedia.org/wiki/%E4%BC%AF%E7%88%B5|백작]] [[https://ja.wikipedia.org/wiki/%E5%AD%90%E7%88%B5|자작]] [[https://ja.wikipedia.org/wiki/%E7%94%B7%E7%88%B5|남작]] 항목에 해당 가문 명단이 있다. 그리고 화족 작위를 받은 사람들 명단 (승계자 제외)은 [[https://ja.wikipedia.org/wiki/%E6%97%A5%E6%9C%AC%E3%81%AE%E8%8F%AF%E6%97%8F%E4%B8%80%E8%A6%A7|여기를 참조]]. == 패전 이후 ==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한 이후 [[미군정]] 지도 아래 [[1947년]]에 [[평화헌법|새 헌법]]이 제정되며 화족 제도는 사라졌다. 원래 [[천황]]의 방계 중에 전통적으로 [[왕]](王) 작위를 칭하던 가문들이 있었는데 이때 모두 취소당했다. 이런 가문을 [[미야케]](宮家)라고 한다. 본래 [[친왕]](親王) 작위를 칭하던 4개의 [[가문]], 즉 [[세습친왕가]](世襲親王家)[* [[후시미노미야]], [[가쓰라노미야]], [[아리스가와노미야]], [[간인노미야]]]가 있어서, 천황 직계가 끊어지면 이 가문 출신들이 대를 이었다. 그러던 것이 [[메이지 유신]] 이후 새로운 미야케가 대거 생겨났다가 [[1947년]]에 11개 미야케에 소속된 51명이 [[평민]]으로 강등되었다. 이게 바로 [[신적강하]]라 불리는 사건이다. 참고로 이 해에 화족제 폐지로 인해 궁색해진 [[가문]]의 이야기를 다룬 「안조 가의 무도회」(安城家の舞踏会)라는 [[영화]]가 상영되기도 했는데, 몰락한 화족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전 최후의 무도회를 연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천황가와 달리 화족들의 재산은 박탈되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미군정 이후에도 대부분 [[명문가]]로 남았고, 지금도 여전히 [[일본]]의 상류층으로 군림하고 있다. 물론 모두 그런 것도 아니어서 신직계 화족 가문들은 [[메이지 시대]]에 재산 관리 실패로 [[연금]] 외의 재산이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라 지위를 빼앗긴 뒤 진짜로 몰락해버렸고, 공경계 화족들도 최상위 가문들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재산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다이묘]] 집안으로서 작위를 받은 화족들은 재산이 많았지만 이마저도 후작 이상에서나 해당되는 이야기고, 석고 ([[고쿠다카]]) 5만 석 이하 다이묘에서 시작된 화족들은 [[다이쇼 시대]]에 접어들면서 재정난에 시달리다가 결국 패망과 함께 지위를 잃고 평민으로 전락하면서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나마 석고 5~10만 석 이상 재산이 많았던 다이묘 출신 백/후작 이상되는 집안조차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사기]] (...) 등에 걸려서 몰락하거나, 땅만 넓었지 수익이 낮은 [[부동산]]으로 인해 고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정말로 돈 걱정이 없던 화족들은 당대에 [[재산]]을 모아서 [[귀족원(일본)|귀족원]] 의원이 되고 남작위를 받은 소수 [[부르주아]]들 뿐이다.[* [[에도 시대]] 중기 이래로의 [[상인]] 집안이던 미츠이, 스미토모의 당주 집안이나 [[미쓰비시 그룹|미쓰비시]] 재벌의 창립자인 이와사키 남작가 정도. 그 외에 [[세계]] 최초로 [[진주]]의 인공양식에 성공한 후 진주 판매로 [[소득세]] 납세액 1위를 기록하면서 귀족원 의원이 된 [[미키모토]] 집안 정도가 있다.] 그런데 이들은 화족 지위를 잃어도 자기 재산과 사업 수완으로 부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 단지 상류층에 들어갔다는 상징으로 화족 자리를 얻었을 뿐이었으니 의미가 없다. '''황족들조차 돈이 없어서 처가에 신세를 지는 판국이었다.'''[* [[이방자]] 비의 친정어머니 나시모토 이츠코는 [[사가현|사가 번주]] [[나베시마]] [[후작]] 가문의 딸인데, 나베시마 가문에서는 매달 2천엔씩 '''[[화장품]] 값'''이라는 명목으로 시집간 이츠코에게 돈을 보내왔다고 한다. [[나베시마]] 가문이 다스리던 사가 번은 오랫동안 일본 유일의 개항장이던 [[나가사키]]가 있었는데, 여기서 [[무역]]을 해 많은 [[돈]]을 벌었다.] [[이방자]] 비가 막대한 재산을 운용하는 이왕가의 [[영친왕]]에게 [[시집]]가던 때, 황족들이 부러워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왕가의 경우는 합방 전 [[대한제국]] 황실의 재산을 거의 다 물려받았다. 또한 관리하는 전답이 어마어마한 수준이었고 일본 황족들과 달리 이왕직이라는 기관에서 돈을 원하는 만큼 가져다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왕가도 일제 패망 후 재산이 모조리 [[대한민국]] 국고로 환수되어 몰락했다. 화족의 사전적인 정의는 전근대의 귀족과 같이 [[법률]]로 규정한 특권 집단이지만 실제로 세간에 통용되고 인식되던 화족의 이미지는 전근대 [[유럽]]의 귀족보다는 [[근대]]의 [[부르주아]], [[정치인]], 고위 [[관료]], [[군인]] 등의 기득권층 집합체에 가깝다. 특히 부르주아를 대표하는 [[자이바츠|재벌]]이 가장 일반적이고 널리 알려진 이미지인데, 예를 들자면 게임 [[화려한 나의 일족]]에 나오는 미야노모리 가문이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하나인 소설 [[이누가미 일족]]에 나오는 [[이누가미 가문]]의 모습이 바로 세간에 흔히 알려진 모습에 가깝다. 즉, 화족의 [[서열]]은 작위 순으로 정해져 있기는 했지만, 단순히 [[작위]]만 높은 가문보다는 작위는 다소 낮더라도 재력이나 영향력이 컸던 [[가문]]이 세간에 알려진 화족의 이미지를 더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화족들의 친목 단체였던 화족회관은 [[1947년]] 이후 카스미 회관(霞会館)이라는 [[사단법인]]으로 이름을 바꾸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2017년]] [[마이니치신문]] [[https://mainichi.jp/articles/20170531/ddm/002/040/092000c|기사(유료)]]에 따르면 '구 화족가의 [[남성]] [[당주]]와 [[성인]]이 된 직계 자식을 회원으로 하여 650가문 740명의 회원'이 있다고 하며 [[천황]] 부부도 매년 [[1월]]에 1회 방문하여 교류한다고 한다.] 살아남은 화족 가문은 현재 [[일본]]의 [[일본/정치|정치]], [[일본/경제|경제]], [[일본/사법|사법]]체계에서 막대한 영향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 [[정치인]]들이 자신의 혈족이나 측근들에게 자신의 선거구를 [[세습|물려주는 관습]]도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들은 [[총선]]이나 [[재보궐선거]]에서 한번 패배했더라도 다음 [[공천]]에는 아무런 무리가 없을 정도의 세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선거]] 때 격전지에 속하는 일이 드문 지역의 경우는 아예 대를 이어 수성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공짜로 수성하는 건 아니고 평판관리도 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이거저거 뿌리고 해서 그 지위를 유지하는 것. [[현대]] 화족들은 대부분 보수적인 기득권층이기는 하지만 [[극우]] 세력과는 거리가 멀다. 일단 '''[[아키히토|아키히토 상황]],''' '''[[나루히토|나루히토 천황]],'''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일본 총리[* [[고노에 후미마로]]의 외손자로, 제79대 [[일본 내각총리대신]]이었다.] 등 오히려 화족 서열에서 최상위에 있는 이들이 극우 세력과 대립각을 세운다. 일본 국내외의 정치학계에서도 현재 [[일본의 우경화]]를 부추기는 세력으로는 [[일본회의]]를 언급하지 가스미 회관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가스미 회관은 구 화족들의 친목 단체이지, 정치적인 집단으로 보기 어렵다. 이는 실제 가스미 회관에서 소개하는 주요 활동들도 일본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연구 및 계승 등 학술적인 면을 치우치고, 관련 [[인터뷰]] 등을 보더라도 옛 화족들의 사교 클럽 정도이다. 이에 대해선 그 [[일본회의]] 자체가 화족 구성원이 많은 준 혈족 집단이 아니냐는 의문이 있기도 하나, 사실 일본 현지에서는 일본회의의 사상적 구심점은 '''생장의 집(生長の家)'''이라는 [[신흥종교]]가 담당했기 때문에 전통적인 [[신토]]와도 동떨어졌다는 설이 주류이다. == 화족이거나 관련 있는 인물 == === 실존인물 === * [[이토 히로부미]] (공작)[* [[시일야방성대곡]]에서 이토를 언급할 때는 '이등(이토) 후작'이라고 표기하는데, 이 때 이토는 공작으로 승작되기 전이기 때문이다.] * [[구로다 기요타카]] (백작) * 나시모토 이츠코(梨本伊都子, 1882 ~ 1976) - [[이방자]] 비의 어머니. 화족 [[나베시마]] 가문의 [[딸]]로 태어나, [[방계]] 황족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梨本宮守正) 왕에게 시집가서 황족이 되었으나, 패전 후 [[신적강하]]로 인해 [[평민]]으로 떨어졌다. * [[야마가타 아리토모]] (공작) * 오야마 이와오(大山巌, 공작) - [[원로(일본)|원로]], [[원수]]육군대장, [[러일전쟁]] 당시 만주군 총사령관, 육군대신(초대, 3대), 참모총장(4대, 6대), 내대신(4대) * [[마쓰카타 마사요시]] (공작) * [[가쓰라 다로]] (공작) * [[사이온지 긴모치]] (공작) * [[야마모토 곤노효에]] (백작) * [[도고 헤이하치로]] (후작) * [[오쿠마 시게노부]] (후작) * [[데라우치 마사타케]] (백작) * [[다카하시 고레키요]] (자작) * [[가토 토모사부로]] (자작) * [[기요우라 게이고]] (자작) * [[가토 다카아키]] (자작) * [[와카쓰키 레이지로]] (남작) * [[다나카 기이치]] (남작) * [[사이토 마코토]] (자작) * [[소 다케유키]] (백작) - [[덕혜옹주]]의 남편이 되는 [[쓰시마]](대마도) 출신 화족. * [[고노에 후미마로]] (공작) - 제34, 38, 39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고노에가(近衛家)의 30대 가주 * [[히라누마 기이치로]] (남작) * [[스즈키 간타로]] (남작) * [[시데하라 기주로]] (남작) * 하마오 시로(濱尾四郎, 자작) - 추리소설가이며 생몰은 1896 ~ 1935 * 하마오 후미오(濱尾文郞, 1930 ~ 2007)스테파노 - 하마오 시로의 3남. 2003년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2007년 사망했다. * [[호소카와 모리히로]] - 후작 호소카와 모리타츠의 [[장손]]이므로, 만약 화족제도가 유지되었다면 현직 후작일 것이다. * [[야나기하라 뱌쿠렌]] - 백작 야나기하라 사키미츠(1850 ~ 1894)의 [[딸]] * 쇼다 후미코(正田富美子, 1909 ~ 1988) - [[미치코 상황후]]의 친정어머니. 후미코의 친정 소에지마(副島) 가문은 화족(백작)이었으나, 쇼다 가문은 대 재벌가이지만 [[신분]]은 평민이다. 때문에 후미코는 큰딸 [[미치코 상황후|쇼다 미치코]]를 황실에 시집보내면서 걱정했다고 한다. * [[도쿠가와 요시노부]] (공작) - 에도 막부의 제15대 쇼군이자 일본사의 마지막 쇼군 * [[도쿠가와 이에사토]] (공작) - 제16대 도쿠가와가 당주, 제4대에서 제8대 귀족원의장(약 30년간) * [[도쿠가와 이에마사]] (공작) - 제17대 도쿠가와가 당주이자 제13대 귀족원 의장 * 모리 사다하루(毛利貞広,공작): [[조슈 번]]의 마지막 번주 * 무샤노코우지 사네아츠(武者小路実篤) - 자작 무샤노코우지 킨토모(武者小路公共, 1882 ~ 1962)의 [[동생]]으로, 꽤 유명한 [[작가]]였다. * 시마즈 타다요시(島津忠義, 공작): 생몰은 1840 ~ 1897으로 [[사쓰마 번]] 12대 번주 * 미즈노 카츠히루(水野忠弘,자작): 생몰은 1856 ~ 1905으로 데와국(出羽国) 야마가타 번(山形藩)의 마지막 번주 * 교고쿠 타카노리(京極高徳,자작): 생몰은 1858 ~ 1928으로 사누키국(讃岐国) 마루가메 번(丸亀藩)의 마지막 번주 * 히로하시 노리코(廣橋規子, 1907 ~ 1985) - [[이방자]] 비의 [[여동생]]. [[어머니]]와 반대로, 황족으로 태어났으나 히로하시 타다미츠(廣橋眞光) 백작에게 시집가서, 화족으로 떨어졌다. 물론 패전 후에는 [[신적강하]]로 [[평민]]이 되었다. * [[히타치노미야 하나코 비]] - 자작 츠가루 요시타카(津軽義孝, 1907 ~ 1994)의 [[딸]]. * [[오타니 고즈이]](백작) * [[쿠죠 다케코]] - 오타니 백작가의 [[딸]]. * 아오야마 타다시게(青山忠誠, 자작): [[군인]]이자 사사야마(篠山藩)번의 아오야마 타다유키(青山忠敏) [[양자]]으로서 [[육군]] 군인이다. * 나카네 히로미: [[새한그룹]] [[이창희(기업인)|이창희]] 창업주의 부인. 결혼 후 [[대한민국]]으로 [[귀화]]해 '''이영자'''로 개명. === 가상인물 === * 츠바키코지 가문 - [[장미와 동백]] 시리즈 * 카라쿠리 일족 - [[장미와 동백 - 호화찬란 버전|장미와 동백 호화찬란 버전]] * 도조 겐야 - [[도조 겐야 시리즈]][* 집안이 공작가지만 [[아버지]]가 [[가문]]을 잇지 않았기 때문에 겐야 본인은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이 화족 출신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 [[모리 타카시]] - [[미스터 션샤인]] * 사이온지 유우야 - [[갬블링 1945]][* 금전 마련 목적으로 신분을 팔았고, 이를 야마다가 사서 선우진에게 주게 된다.] * [[아야노코지 후미마로]] - [[명탐정 코난]] * 아야노코지 레오 - [[용과 같이 5]][* 귀족가문의 후예라고 작중에서 언급한다.] * [[야오토메 시노]] - [[아득히 우러러본, 아름다운]] * [[오가사와라 사야코]] -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 * [[이쥬인 시게오]], [[도마 토시노부]], [[아키즈키 기이치]] - [[휴먼버그대학교]] * 죠노우치 세츠카 - [[무인도 이야기 3]] * [[쥬죠 시온]] -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 * [[칸로지 미츠리]] - [[귀멸의 칼날]] * [[쿠구이 마치]] - [[용왕이 하는 일!]] * 쿠로사키 토코요 - [[쇼와 소녀 전래동화]][* 작중 시점에서는 이미 몰락했다고 한다.] * [[하나부사 야나기]] - [[DREAM!ing]] * [[하니노즈카 미츠쿠니]] - [[오란고교 호스트부]] == 같이보기 == * [[일본 황실]] * [[미야케]] * [[공가]] * [[고셋케]] * [[사무라이]] * [[고산케]] * [[왕공족]] * [[조선귀족]] * [[신적강하]] [[분류:화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