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송 황후)] ||<-2> '''남송의 황후[br]{{{+1 咸淳太后 | 함순태후}}}''' || || '''[[시호|{{{#fff 시호}}}]]''' ||없음 || || '''[[성씨|{{{#fff 성}}}]]''' ||전(全) || ||<|4> '''재위''' ||<:> '''{{{#fff 남송의 황후}}}''' || ||<:> 1267년 ~ 1274년 || ||<:> '''{{{#fff 남송의 황태후}}}''' || ||<:> 1274년 ~ 1276년 || || '''배우자''' ||[[도종(송)|도종]] || || '''아버지''' ||전소손(全昭孫)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 [[남송]]시대의 황후로, [[도종(송)|도종]]의 황후이자 [[공종(송)|공종]]의 생모였다. == 생애 == === 이종 재위기 === 전씨는 회계(現 [[저장성]] [[사오싱시]]) 출신으로, [[이종(송)|이종]]의 어머니였던 자헌부인의 종손으로 태어났다. 전씨는 사서를 섭렵했으며, 어린 시절 아버지 전소손(全昭孫)을 따랐고 지악주(知嶽州)로 임명되었다. 1259년, 전소손을 따라 돌아가다가 도중에 담주(潭州)를 거쳤다. 당시 [[몽골 제국]]의 남송 침공이 격화되면서 나귀(羅鬼)에서 전주(全州), 형주(衡州), 영주(永州), 계주(桂州)를 함락시킨 뒤 담주를 포위했는데, 어떤 사람은 신령스러운 사람이 나타나서 담주를 지켰다고 생각했고 담주만은 몽골에게 함락되지 않았다. 이후 몽골 제국에서는 [[몽케 칸|몽케]]가 남송 정벌 도중 병을 얻어서 죽었고 [[쿠빌라이 칸|쿠빌라이]]가 철군을 하는 등의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에 1260년 전씨는 임안으로 돌아갔다. 한편 [[이종(송)|이종]]은 후사가 없어서 자신의 조카이자 동생 [[조여예]]의 아들인 조맹계를 양자로 들였다. 조맹계는 뒤에 기(禥)라는 이름을 받고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태자비를 들일 때 [[정대전]]은 임안부의 지부를 맡고 있는 고암(顧巖)의 딸을 태자비로 들이려고 했지만, 정대전이 몰락하고 고암도 파면되면서 대신들은 정대전의 일당인 고암의 딸이 아닌 명족의 자제를 태자비로 들여야 한다고 진언하였다. 대신들은 전씨가 아버지를 모시고 강호를 오가며 고초를 겪은 사연을 언급하며 전씨를 추천했고 이종은 자신의 친모인 자헌부인에 대한 연고로 전씨를 궁으로 불러들였다. 이때 전씨와 이종 사이에 다음의 대화가 오갔다. >이종: 그대의 아버지 전소손은 옛날 보우(寶祐) 연간에 나랏일을 위하여 죽었으니 매일 이를 생각하면 슬프오. >전씨: 첩의 아버지도 불쌍하지만 회호(淮湖)의 백성들은 더욱 불쌍합니다. 이종은 전씨의 대답을 더욱 기이하게 여겨 대신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씨의 딸은 언사가 틀에 매우 맞으니 마땅히 그녀를 태자와 결혼시켜서 제사를 이어받게 해야하오. 전씨는 1261년 영가군부인(永嘉郡夫人)으로 봉해졌다가 같은 해 조기의 황태자비로 들어갔다. 또한 전씨의 동생 전영견(全永堅) 등을 승신랑(承信郞), 직비각(直秘閣)으로 삼았다. === 도종의 황후 === 1264년 이종이 죽고 조기가 즉위하니 이가 제15대 황제인 [[도종(송)|도종]]이었다. 1267년, 황후로 책봉되었다. 또한 전씨의 삼대를 추증하고 가묘와 저택을 하사하였으며, 전씨의 동생인 전청부(全淸夫), 전정휘(全庭輝) 등 15명에게 관직을 주었다. 1269년 전씨가 친정으로 돌아갈 때 인척 56명을 추은하고 관직을 올렸으며, 함평군부인(咸平郡夫人) 전씨를 비롯한 32명에게 각기 차등 있게 봉작을 내렸다. 전씨는 도종과의 사이에서 조서와 조현을 낳았지만 조서(趙舒)는 요절했다. 한편 이 시기는 [[아리크부카]]와의 내전에서 승리한 [[쿠빌라이 칸]]이 남송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하는 시기였다. 남송과 원나라의 치열한 공방전은 6년에 걸친 양양 공방전에서 양양이 함락당하면서 원나라에게 승세가 기울어갔다. === 공종 재위기 === 원나라가 임안으로 침공해오는 상황에서 1274년에 도종이 죽고 자신의 소생인 [[공종(송)|조현]]이 3살의 나이에 황제로 즉위하면서 전황후는 황태후로 추앙받았다. 1276년, 원나라가 임안을 함락시키고 공종이 항복하면서 전 태후는 태황태후였던 [[황후 사씨(이종)|사 태후]], 남송의 황족 및 대신들과 함께 원나라의 수도였던 대도로 압송되었다. 한편 남송의 멸망을 인정하지 않은 [[육수부]], [[장세걸]] 등 일부 군인과 대신들은 도종의 남은 두 아들 [[단종(송)|조하]]와 [[소제(송)|조병]]을 데리고 남쪽으로 도망쳐서 원나라에 철저하게 항전하기도 하였다. === 남송 멸망 이후 === 전태후는 대도로 압송된 이후 대도에서 풍토병에 시달렸다. 이에 쿠빌라이 칸의 황후가 전태후에게 남쪽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전태후는 이를 거절하고 정지사(正智寺)에 머물러 비구니가 되었다가 이후 1309년 생을 마감하였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역대 송 황태후)] [include(틀:송사)] [[분류:송나라의 황후]][[분류:사오싱시 출신 인물]][[분류:1241년 출생]][[분류:1309년 사망]][[분류:중국의 객사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