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흔암리식 토기.jpg|width=100%]]}}}|| || {{{#000000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 흔암리에서 발견된 토기}}} || [clearfix] == 개요 == {{{+1 欣岩里式土器}}} '''청동기시대 전기 민무늬 토기의 형식.''' [[청동기시대]] [[한반도]] 남부 지방에서 사용되던 [[민무늬 토기]]의 형식 [[1960년]]부터 [[1978년]]까지 발굴, 조사로 출도한 유적이다.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 흔암리에서 발굴됐다. == 내용 == 기원전 19세기 경에 [[남한강]] 유역, 영동 지방에 살던 주민들이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홍밝음 "전남지역 청동기시대 조기-전기문화의 변천과정" 표 8. 전남지역 청동기시대 전기 주거지의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자료 1,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 7호, 기원전 1620년 ~ 기원전 1210년, 기원전 1510년 ~ 기원전 1310년, 중심연대가 기원전 1420년][* 이형원 "중부지역 공렬토기의 확산과 문화변동에 대한 토론문" 표 2. 화성 천천리 유적 청동기시대 주거지 AMS연대측정결과, 천천리 11호, 기원전 1610년 ~ 기원전 1210년, 기원전 1520년 ~ 기원전 1310년, 중심연대가 기원전 1420년] '''구멍무늬토기(공렬토기)''', 짧은 빗금무늬가 새겨진 '''겹아가리토기(이중구연단사선 토기)''', '''골아가리토기(구순각목문토기)''' 등이 있다.[[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7618|#]][[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974|#]] 흔암리에서 발견된 [[민무늬 토기]]는 골아가리, 구멍무늬 등 다양한 특징이 복합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토기에 대해 [[고고학자]]들은 '''[[흔암리식 토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일부 흔암리식 토기는 몸체의 모양이 마치 [[팽이]]와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 같은 팽이형의 민무늬토기는 일찍이 [[북한]] [[황해도]]에서도 발견된 바 있어, 북쪽의 문화가 [[청동기시대]]에 남하했다고 주장하는 시각도 있다. [[분류:토기]][[분류:청동기 시대]][[분류:나무위키 한국사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