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현대전/중국 기갑차량)]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WZ-122.jpg]] ||[[파일:external/image02w.seesaawiki.jp/57ceeed9993c9aae.jpg|width=400]]|| ||<-2> 122中型坦克 || [목차] == 개요 == [[중국 인민해방군]]이 개발하다가 결국 취소하게 된 중국의 최초의 국산전차가 될'''뻔'''했던 [[전차]]. [[https://tanks-encyclopedia.com/coldwar-china-wz-122-1/|참고]] == 제원 == ||<-2>[[파일:external/alternathistory.com/wz122_1-640x253.jpg]]|| || 자체중량 || 37.5t || || 길이 || 6.35 m (차체) 9.52 m (전체) || || 폭 || 3.28 m || || 높이 || 2.25 m (큐폴라 제외), 2.46 m (큐폴라 포함) || || 주무장 || [[120mm]] 활강포 x 1 12.7mm 54식 대공기관총 x 1 || || 부무장 || 7.62mm 59식 동축기관총 x 1 2연장 대전차미사일 발사기 x 2 || || 승무원 || 4명(차장-포수-조종수-탄약수) || || 항속거리 || 500km || || 최대가속도 || 55km/h || || 엔진 || 수랭식 디젤 엔진의 630~650마력[* 1970년 계획 기준] || || 현가장치 || [[유기압 현가장치]](122-1)[br][[토션바 서스펜션]](122-2) || [[http://seesaawiki.jp/w/namacha2/d/122%b7%bf%c0%ef%bc%d6%a1%caWZ-122%a1%cb|추가정보]][[https://zh.wikipedia.org/wiki/WZ-122%E4%B8%AD%E5%9E%8B%E5%9D%A6%E5%85%8B|추가정보2]][[https://en.wikipedia.org/wiki/WZ-122_main_battle_tank|추가정보3]] 어째서 120mm라는 기준을 잡았는지는 상당히 불명이다. 다만 당시 소련제 전차의 주포가 115mm인 점을 감안하여 더 강력한 주포를 위해 적용한 것인지 아니면 서방에서 개발중이던 최신 120mm를 적용한 것인지도 불명이다. == 상세 == 이 전차는 원래 소련에게 받은 기술들로 [[T-54]]의 라이센스 생산형인 [[59식 전차]]를 생산하던 중국이 [[중소결렬]] 이후로 소련의 기술적인 지원을 못 받게된 상황에서 국산 전차 개발을 시도하면서 탄생했다. [[중국-소련 국경분쟁]]이 1969년이 발발하면서 중국군은 소련군의 [[T-62]]같은 신형전차들 상대로 [[59식 전차]]들이 크게 열세라는 것을 인지하였고, 앞으로 소련으로부터 기술적인 지원도 없을 만큼 군사 전력격차가 커지게 될 것을 예상했다. 특히 국경분쟁후 [[중소결렬]]이 일어남에 따라 소련은 중국에게 신형무기 인도를 철저하게 통제하기 시작했다. 소련이 국경분쟁에서 무기의 질적 우위를 과시한 점은 중국에게도 위협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지상무기에서 가장 기초적인 군수체계인 전차를 국산화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 하지만 중국에게는 당시 전차개발 기술이 부족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본질적으로 [[59식 전차]]를 베이스로 하는 전차의 개발을 1970년 3월에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개발은 전혀 순조롭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바로 중국의 모든걸 수십년뒤로 후퇴시키는 [[문화대혁명]]이 진행중이던 시점이었으니 제대로 개발이 될리가 없었다. 기술인력이 죄다 반동으로 쓸려나가던 시절이니 당연도 했다. == 개발 == ||[[파일:external/image01w.seesaawiki.jp/76c4dd86eae0f747.jpg]]|| || 1221 || 첫 시제품인 1221는 1970년 9월 25일에 완성되었다. 총 3대의 시제차량이 제작되었고, 전차의 주포탑과 궤도 및 휠은 기존의 소련제와 거의 동일하다시피한 디자인 스타일이었지만 현가장치와 같은 일부 구성 요소에서는 소련제와 달랐다. 특이하게 차체 좌우 양측에 2연장 [[대전차미사일]] 발사대를 설치하여 부족한 기갑공격력을 강화하려고 한 것으로 보이나 실효성이 의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참고로 이걸 나중에 [[조선인민군|북한군]]이 [[천마호]] 전차등에 적용하게 된다.] 하지만 이 전차에게 계획된 기술적인 수준은 당시 중국의 기술력으로는 개발이 불가능한 수준이라 엔진과 화학제품에 요소들은 어떻게 수요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목표는 거창하게 소련의 [[T-64]]를 뛰어넘고 서방의 [[레오파르트1]], [[M60 패튼]]을 뛰어넘는 ROC를 적용했지만 중국에서 실용화가 도저히 되지도 않고 생산기술력 자체도 없는 물건이 나온 것이었다. ||[[파일:external/image02w.seesaawiki.jp/57ceeed9993c9aae.jpg]]|| || 1222 || 결국 대대적인 ROC 수정이 적용되어서 1년뒤인 1971년 1월 17일에 1222의 시제품이 양산되어서 1973년까지 여러가지 시행착오 및 시험테스트를 거쳤으나 성능미달만 확인을 하게 되고 결국 1974년에 최종적으로 개발이 종료가 된다. 이후 개발이 진행되면서 시제차량으로 1223/1224/1226/1226F2가 각각 나오게 된다. 122-4부터는 개혁개방시기에 접어들면서 서방의 기술을 적용하는 것으로 개발 방향이 바뀌었고, [[레오파르트 2]]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결과물이 나왔다. 사실 처음에는 중국 군부가 [[레오파르트 2]]의 라이센스 생산도 고려했지만 재정적, 기술적 문제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와서 레오파르트 2처럼 용접 장갑을 적용한 국산 전차를 개발하는게 결정되었다. 1226에서는 다시 외형이 동구권 전차처럼 바뀌었고, 국산 디젤엔진과 반자동 장전 장치같은 기술이 적용되었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불안한 점이 많아서 채택되지는 못했다. 결국 122 계열 전차 개발에서 큰 성과는 없었고, 끝내 70년대에 중국의 국산 전차는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122의 개발은 [[88식 전차]](WZ-122A)로 이어지면서 88식 계열의 최초인 80식 전차(WZ-122)의 기반을 마련했고(정확히는 69/79식의 차체를 사용한 122-3을 기반으로 이어졌다), 80식 전차 프로젝트에서 파생된 85식 전차(WZ-132C)는 이후 [[96식 전차|96형 전차]]와 [[99식 전차|99형 전차]]로 이어진다. == 둘러보기 == [include(틀:기갑차량 둘러보기)] [[분류:2세대 전차]][[분류:중형전차]][[분류:지상 병기/냉전]][[분류:지상 병기/현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