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1999 Gölcük depremi''' (İzmit depremi, Marmara depremi, 17 Ağustos 1999 depremi) ||<-3><:>{{{#ffffff {{{+1 1999년 튀르키예 이즈미트 지진}}}}}}|| ||<:>{{{#ffffff 발생일시}}}||<(>1999년 8월 17일 03시 01분(UTC+3)|| ||<:>{{{#ffffff 진앙}}}||<-2><(>[[튀르키예]] 이즈미트 서부 해역 || ||<:>{{{#ffffff 진원깊이}}}||<-2><(>'''15km'''|| ||<:>{{{#ffffff 규모}}}||<(> '''M,,w,, 7.6''' || ||<:>{{{#ffffff 최대진도}}}||<#000000>{{{#fff '''Ⅹ(Intense)'''}}}|| ||<:>{{{#ffffff 쓰나미}}}||<-2><(>{{{#a52a2a '''해일경보'''}}}[br]'''2.52m''': 튀르키예 이즈미트 서부 연안 || ||<:><|3>{{{#ffffff 사상자}}}||<(>'''최소 {{{#8000bb 17,127명}}} 사망''' || ||<(>'''최소 {{{#a52a2a 43,953명}}} 부상''' || ||<(>이재민 '''최소 5,840명''' || [목차] [clearfix] == 개요 == [youtube(24J9Q_4yIVU)] [[1999년]] [[8월 17일]] [[튀르키예]] [[이즈미트]]에서 발생한 규모 7.6의 대지진. 진원의 깊이도 얕은 데다[* 고작 '''15km'''로 대만의 [[921 대지진]]보다 더 얕다.(진원 깊이 33km)] 내진 설계가 적용된 건축물이 거의 없다는 점, 이즈미트, 그리고 이즈미트 인근의 '''[[이스탄불]]이 튀르키예의 주요 경제-산업 중심지라는 점''' 때문에 튀르키예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 발생 및 피해 == 간단히 말하면 '''참혹 그 자체'''였다. 북아나톨리아 단층대가 동부아나톨리아 단층대를 따라 스트라이크 슬립(두 단층이 미끄러짐) 현상이 발생하면서 막대한 파열 에너지가 방출되었고 150km에 달하는 넓은 구간에서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 거기다가 재수없게도 '''[[https://www.hankyung.com/international/article/2008060628098|지진파 속도보다 단층 파열 속도가 더 빠른 초전단 지진이었고]]''' 안그래도 지진 발생 시간도 새벽이었는데 지진파가 곧바로 일대를 강타하는 바람에 사람들은 제대로 대피할 틈도 없이 그대로 붕괴되는 건축물에 [[압사|깔려 죽었다.]] [[마르마라 해]]에선 높이 2m 이상의 [[쓰나미]]가 발생했고 155명이 쓰나미에 의해 사망했다. 특히 [[이스탄불]] 서쪽은 연약한 [[신생대]] [[퇴적암]]으로 구성되어서 지진에 매우 약했고 그 위에 건설된 수많은 산업 및 공공시설들이 붕괴되거나 파손되는 큰 피해가 발생되었다. 여러 개의 정유공장과 자동차 공장들이 파괴되어 튀르키예에 경제적 피해가 속출했다. '''연간 1100만 톤의 정유를 생산할 수 있는''' 튀르키예의 석유 기업인 Tüpraş의 정제소가 파괴되는 바람에 대규모 화재가 일어나 몇 일 동안 반경 3마일 이내에 출입이 금지되었고 수도 시스템이 완전히 파괴되어 버려 제대로 된 화재 진압도 못 하다가 노력 끝에 겨우 5일 만에 화재 진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산업 시설 외에도 인프라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많은 육교와 터널들도 붕괴되었고 [[국제 E-로드 프로젝트|유럽 횡단 고속도로]]도 무너져 내려 교통 시스템도 마비되었다. 튀르키예 해군 본부와 무기고도 붕괴되었으며 '''12만 가구의 집이 수리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되어''' 25만 명의 [[이재민]]도 발생했다. 튀르키예 측에선 공식 사망자가 1만 7000여명이라고 집계했지만 '''실제 사망자는 그보다 훨씬 많은 4만 5000명 이상일 것으로 추측하는 소식통이 적지 않다.''' 왜냐하면 튀르키예의 민주주의는 형식적이었을 뿐 실제론 [[튀르키예군]]이 [[아타튀르크]]가 만든 [[세속주의]] 국가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튀르키예의 모든 것을 [[군사독재|자기 입맛대로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가 막대한 피해를 입자 각국에서 구조대를 파견하고 지원금을 주었는데 '''특히 그 앙숙 [[그리스]]도 구조대를 파견했다.''' 튀르키예의 형제국인 [[아제르바이잔]]은 물론이거니와 [[대한민국]], [[독일]], [[러시아]], [[이스라엘]], [[영국]], [[스페인]], [[폴란드]], [[벨기에]], [[이탈리아]], [[헝가리]], [[프랑스]], [[일본]], [[오스트리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이집트]], [[스위스]], [[아이슬란드]]도 구조대를 파견해 한 마음으로 잔해속에 고립된 튀르키예인들을 구조했고 튀르키예인들은 이들 국가들의 노고에 감동을 느꼈다. [[인도]]도 튀르키예에 막대한 지원금을 제공했으며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직접 지진 피해 지역을 방문해 애도를 표했다. 이러한 각국의 노력 끝에 지진 피해 지역은 제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고 지진 이후 급락하던 경제와 도시 인구도 회복되었다. == 여파 == 안 그래도 경제적으로 침체되었던 튀르키예였는데 이즈미트 대지진으로 인해 제대로 타격을 받아 GDP는 자그마치 3.4%나 '''역성장'''하게 되었다. 이 지진을 계기로 튀르키예에서 부실공사 문제가 대두되었고 튀르키예 정부는 내진설계를 의무화했다. 특히 아파트와 같은 거주공간들이 불법 건축, 기준 미달 건축, 부적합한 지반 위 건축, 건축비용 절감을 위한 자재 횡령 등 부실공사 종합세트로 지어진 덕에 사상자가 더 많이 발생해 건설사에 집단 소송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일부 건설업체 관계자들은 [[징역]]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었지만 상당수가 법집행이 연기된 데다 2007년에 [[공소시효]]가 만료된 덕에 '''대부분의 책임자들은 책임도 지지 않은 채로 계속 사업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튀르키예인의 입장에선 분노가 치밀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지진 이후 튀르키예 정부는 지진 대비, 지진 피해 복구, 보상 명목으로 지진세를 도입했다. '''그러나 24년이 지났는데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정부만]] [[정의개발당|바뀌고]]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는 채로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다시 엄청난 재난]]이 닥쳤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지진/20세기)] [[분류:1999년 지진]][[분류:튀르키예의 사건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