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nakajima_ki-12.jpg]] '''나카지마 키-12 (中島 キ12)''' [목차] == 제원 == 형식 : 단발 단좌 시제 전투기 개발 : 나카지마 비행기 초도비행 : 승무원 : 1명 전장 / 전폭 / 전고 : 8.30 m / 11.00 m / 3.30 m 익면적 : 17.0 m2 중량 : 1,400 kg ~ 1,900 kg 동력 : 이스파노-수이자 12Xcrs 수랭 V형 12기통 엔진 (690 hp) 1기 최대속도 : 480 km/h 항속거리 : 800 km 무장 : 7.7mm 기관총 2정 / 20mm 기관포 1문 (모터캐논) == 중전투기에 도전한 일본 == 1930년대 중반부터 세계 각국에서 저익 단엽 [[전투기]]가 등장해 항공업계와 대중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처음에 이런 시도는 실험적인 것으로 여겨졌으나 곧 얼마 안가 거대한 설계 조류로 바뀌었고, 그 기세는 [[1933년]]에 [[미국]]의 [[보잉]] [[P-26]]에 이어 [[1935년]]에는 [[프랑스]]에서는 드보아틴 [[D.500]] 시리즈, 그리고 [[1938년]]에는 [[독일]]의 [[하인켈]] [[He 112]]가 등장하게 만들었다. 항공 선진국들의 동태 파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일본]]도 이런 영향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가장 먼저 흥미를 느낀 업체는 [[미쓰비시 그룹|미츠비시]](三菱)였다. 일본 육군항공대는 1935년 9월에 프랑스로부터 1대의 드보아틴 D.510J을 수입해 정밀한 분석에 나섰고, 그 중에서도 엔진 실린더 사이에 대구경 [[기관포]]를 설치하는 모터캐논이라는 신개념의 무장에 주목을 하게 된다. 이 무기는 위력이 크면서 화기가 기체의 중심선에 위치하게 되어 조준선과 일치되어 명중률이 높았고, 동조기어 같은 복잡한 장치도 필요없는 등 장점만 있는 신병기로 여겨졌다. == 나카지마의 도전 == 경쟁사인 미츠비시의 연구에 관한 대략적인 정보를 손에 넣은 라이벌 기업 [[나카지마 비행기]](中島飛行機)는 당시 공랭 엔진을 갖춘 저익 단엽 전투기인 키-11(キ-11)의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채용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었다. 이에 사장 나카지마 치쿠헤이가 프랑스에서 드보아틴(Dewoitine) 사에서 근무하고 있던 로제 로베르(Roger Robert)와 쟝 베죠(Jean Beziaud)라는 두 엔지니어를 초빙해와 그들로부터 기술 협력을 얻어 [[1930년]]에 입사해서 [[95식 함상전투기]](九五式艦上戦闘機)를 개발한 경험이 있던 모리 시게노부(森重信) 기사를 책임자로 임명해 수랭 엔진을 장착하고 모터캐논을 탑재한 신형 전투기 개발에 나서 이듬해인 1936년 10월에 시제기인 키-12(キ-12)를 완성시켰다. 엔진도 프랑스에서 직수입한 제품으로, D.510의 것과 같은 [[이스파노-수이자]] 12Xcrs 수랭 V형 12기통 엔진을 채용했다. 이 기체는 나카지마제 항공기로서는 처음으로 개폐식 착륙장치를 채용했으며, 전금속제 응력 외피 구조까지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진보적인 시도에 힘입어 꽤 진보적이고 스마트한 중전투기가 되었다. 물론, 날개를 지탱하는 케이블 따위도 없어졌음은 당연한 일이다. 주날개는 포물선을 그리는 테이퍼형으로 분할식 플랩을 채용했다. 냉각장치(래디에이터)는 이스파노-수이자 엔진의 앞에 장착하고 프로펠러 축에서 20mm 모터캐논의 포신이 엿보이고 있다. 랜딩기어는 유압으로 움직이며 꼬리 바퀴 구실을 하는 꼬리 썰매도 인입식으로 만들어졌다. == 압도적인 속력 == 이처럼 참신하고 첨단 설계를 다방면으로 도입한 키-12는 육군항공대에 넘겨져 항공심사부를 통하여 다양한 테스트를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속도 성능은 그때까지 일본제 전투기를 압도하는 수준을 보여줬지만, 그 무렵 중시되던 급선회 같은 기동성이 약간 떨어졌다. 키-12의 기동성은 전부 기관총으로만 무장된 미츠비시 키-18(キ-18)[* 기관총 2정에 444 km/h]과 키-33(キ-33)[* 기관총 2정에 475 km/h], 가와사키 키-28(キ-28)[* 기관총 2정에 485 km/h], 심지어는 나카지마 자신들의 재래식 기종인 키-27(キ-27)[* 97식 전투기] 같은 경량 전투기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했다. 또한 수랭 12기통 엔진은 구조가 복잡하고 제작이 어려워 국산 실용화에 관한 전망이 서지 않고 있어서 이 신형기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결국 키-12는 진보된 설계에도 불구하고 프로토타입 1대의 제작으로 끝나버렸다 . 일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후의 항공 전사를 통해 증명된 일격 이탈 전술이 중심이 되는 중전투기의 효용성과 용병 사상이 바로 이 키-12가 군에 채용되었다면 일찌감치 깨우쳤을 것이라고 평가하지만, 이미 일본 육군은 공랭 전투기를 주력으로 이용하기로 가닥을 잡은 이상 죽은 자식 헤아리기였다. [[분류:전투기]][[분류:항공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