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2차 세계대전/일본 항공병기)] ||
[[파일:Ki-27_Thumbnail.jpg|width=100%]] || || '''九七式戦闘機 中島 キ-27''' || [목차] == 개요 == ||
[youtube(FQ_9-0t61rI)] || || '''일본 육군 항공대 소속 Ki-27 운용 영상''' || 1940년 전후 [[일본군 육군]]의 주력전투기. 약칭은 97전, 97식전 등. [[연합국 코드명]]은 '[[네이트]](Nate)'. 개발은 [[나카지마 비행기]](이하 나카지마), 생산은 나카지마 외에 타치카와 비행기와 만슈 비행기도 행했다.[* 만슈비행기에서 만든 훈련기는 "2식 고등연습기 Ki-79"라는 제식명과 기호를 따로 받았다.] 사실은 이 비행기가 한반도에서 양산에 들어간 최초의 비행기 이기도 하다. [* 조선에서 군용기를 제조하기 위해 수백명의 조선인이 일본으로 보내져 항공정비기술을 배우고 돌아왔었다.] 나카지마제 육군전투기의 대명사로 알려진 테이퍼 날개를 처음 채용한 기체로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의 전장에서 어느 정도 활약했으며, 이후 이 기체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일본 육군은 [[Ki-43]]과 [[Ki-44]]를 개발하게 한다. == 제원 == Ki-27 을형(Ki-27b) 기준[* 출처: Japanese Aircraft of the Pacific War, 저자: Francillon, Ph.D., René J] || '''운용 국가'''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width=23]] [[일본 제국]] || || '''운용 집단''' ||일본 제국 육군 항공대 || || '''제조사''' ||[[나카지마 비행기]] || || '''개발 시기''' ||1936년 4월 || || '''초도 비행 시기''' ||1936년 10월 15일 || || '''생산 연도''' ||1937년[* [[쇼와]] 12년, [[황기]] 2597년] || || '''승무원 수''' ||1명 || || '''전장''' ||7.53 m || || '''전폭''' ||11.31 m || || '''전고''' ||3.25 m || || '''주익 면적''' ||18.56 m² || || '''익면 하중''' ||96.5 kg/m² || || '''자체 중량''' ||1,110 kg || || '''전투 중량''' ||1,547 kg || || '''최대 중량''' ||1,790 kg || || '''엔진''' ||하1을(Ha-1b) 공랭식 엔진[* 코토부키 엔진이라고도 불린다.], 650마력[* 이륙 시 710마력, 2,900 m에서 780마력] || || '''프로펠러''' ||2엽 프로펠러 || || '''최대 속도''' ||3,500 m에서 470 km/h || || '''순항 속도''' ||3,500 m에서 350 km/h || || '''항속 거리''' ||627 km || || '''편도 비행 거리''' ||1,710 km || || '''상승률''' ||5,000 m까지 5분 22초 || || '''실용 상승 한도''' ||12,250 m || || '''무장''' ||기수 상단에 7.7 mm [[빅커스 기관총|89식 고정기관총]] 2정, 각 500발 || || '''폭장''' ||25 kg 폭탄 4개[* 특공용으로 250 kg 폭탄 1개를 장착한 적이 있으나 지나치게 무거워 기체의 정상적인 이착륙이 어려운 수준이었다.] || || '''생산수''' ||3,368~3,386대[* 갑형 565대, 을형, 1492대, Ki-79 1,329대] || == 상세 == == 개발사 == 1935년, 해군의 9시 단좌전투기(후의 [[A5M|96식 함상전투기]])의 성공에 자극받은 육군은 해군의 양해를 얻어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 9시 단전을 육군용으로 개조한 미쓰비시 Ki-18을 가와사키 95식 전투기를 채용하던 때의 시작심사에 도중 참가시켰다. 하지만 엔진의 신뢰성 부족과 성능 불충분을 이유로 채용에는 이르지 못했으며, 가와사키 Ki-10을 95식 전투기로 채용했다. 하지만 구태의연한 복엽기였던 95식은 차기 주력 전투기로서는 부족했기 때문에 이를 대신할 전투기로서 1936년 4월, 저익 단엽전투기의 경쟁 시작을 나카지마, [[미쓰비시 그룹|미쓰비시]], [[가와사키 중공업|가와사키]] 3사에 지시했다. 이리하여 나카지마의 Ki-27, 가와사키의 Ki-28, 미쓰비시의 Ki-33의 경쟁이 되었는데, 이전에 Ki-18이 채용되지 못한 것에 미련이 남았던 미쓰비시는 시작기 제출은 했지만 열의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1937년 2월부터 시작된 심사는 수랭식으로 엔진에 불안이 있었던 Ki-28을 누르고 이 기체가 선정되었다. 그동안 [[루거우차오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심사를 서둘러 9월에 종료, 1937년 97식 전투기로서 정식 채용되었다. 결론적으로 미쓰비시는 이 기체의 기술적 성숙을 위한 떡밥으로 쓰였으며, 이후 해군의 전투기는 미쓰비시, 육군의 전투기는 나카지마가 주체가 되는 형태가 되었다. 중일전쟁 후 중국 한커우 기지에서 가끔 행해진 육군과 해군의 모의 공중전에서는 A5M보다 Ki-27이 속도, 상승력, 격투전 성능 등 모든 면에서 우세, 해군 조종사들을 놀라게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Bf109]],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호커 허리케인]] 등이 97식 전투기와 비슷한 시기에 완성되었고, 경량형 전투기에 한계를 느낀 일본은 중형 전투기[* 쌍발 [[중전투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경량형 전투기보다 더 무거운 전투기를 이른다.] 개발쪽으로 나가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게 [[Ki-44]]와 [[Ki-61]] 등이다. 그러나 여전히 경량 전투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Ki-43]] 또한 개발하게 된다.] 이후 [[Ki-43]]이 양산되자 2선급으로 물러났다가 1942년 초중반부터는 연습기나 특공기로 사용된다. == 파생형 == === [[일본 제국]] === ==== 복좌기 개수형 ==== ===== 2식 고등연습기 Ki-79 ===== ||
[[파일:Indonesian_Ki-79_mansyu.jpg|width=100%]] || || '''二式 高等練習機 キ-79''' || '''Ki-79'''는 만주 비행기에서 Ki-27을 기반으로 만든 훈련기로 기존의 나카지마 코토부키 엔진 대신, 510마력의 하13갑 엔진을 사용하고 기체를 개조하여 좌석을 2개 장착한 모델이다. 특이하게도, 해당 항공기는 교련기였기에 무장이 필요 없었지만, 폭탄 장착용 마운트와 기존의 7.62mm 기관총을 그대로 장착한채로 생산되었는데, 1,300여기가 생산되었다. 무장과 관련된 일화 중 하나로, 1945년 2월 16일, 미 해군과 항공대에서 치바를 공습하는 임무를 수행 중, 당시 치바에 주둔 중이던 제39훈련비행대 소속 Ki-79 여러 기가 출격하였고, 이 중 5대가 격추되는 와중 1기가 F6F-5 헬캣 1기를 격추하는 활약을 했는데, 당시 해당 기체에 탑승한 파일럿이 할힌골 전투 당시 Ki-27을 타고 참전했던 경력이 있어, Ki-27과 거의 유사한 성능을 지닌 기체였기에 능숙하게 운용이 가능했다고 전해진다. 전쟁 말기에 와서는 250kg 폭탄을 장착하고 카미카제용으로도 소모되었고, 전후 남겨진 기체들은 중국이나 인도네시아로 인수되었으며,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Ki-79 또한 인도네시아 공군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실전 == === [[제2차 세계 대전|대전기]] === ==== [[중일전쟁]] ==== ||
[[파일:Sino_japanese_war_Ki-27.jpg|width=100%]] || || '''중일전쟁 당시 광둥성 인근의 일본 육군 항공대 산하 제64전대 소속 Ki-27 편대''' || 1938년부터 [[중일전쟁]]에 투입되어 [[BF2C]]나, [[글로스터 글래디에이터]] 등의 복엽기를 주로 운용하던 국민혁명군을 상대로 상당한 전과를 보였다. 투입 전, 해군 항공대의 경우 [[A5M]]이 BF2C나 글래디에이터 등의 항공기들에게 다수가 격추당하는 굴욕을 입었는데, 이에 Ki-27은 A5M보다 높은 성능을 바탕으로 기동전에서 압도하여 여러 에이스들을 배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국민혁명군이 [[I-16]], [[I-15|I-15bis, I-153]], [[BF2C]] 등의 고성능 기체들을 도입하자 이전까지와는 달리 크게 고전하게 되었으며 결국 후임인 [[Ki-43]]이 투입되고 난지 얼마 안되어 일선에서 물러났다. ==== [[소련-일본 국경분쟁]] ==== ===== [[할힌골 전투]] ===== ||
[[파일:Ha-Go_with_Ki-27_at_Khalkhingol.jpg|width=100%]] || || '''할힌골 전투 당시 출격 중인 일본 육군 항공대 소속 Ki-27'''[* 아래에 진격 중인 전차는 95식 경전차 [[하고]]이다.] || [[할힌골 전투]]에서 일본 육군 항공대의 주력 기종 중 하나로 투입되었으나, [[I-15|I-15bis와 I-153]], 그리고 [[I-16]]을 상대하고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차기 전투기에선 방탄판과 방루 탱크를 설치하는 교훈이 됐다.[* 반면에 해군 항공대쪽은 여전히 승무원 보호를 경시하는 것을 보였고, 2차 대전 중반에서야 겨우 장비하게 된다.] 할힌골 전투 와중, 1기의 Ki-27이 불시착하였는데, 소련군이 이를 노획하여 여러 시험을 거쳤다고 한다. ==== [[제2차 세계 대전]] ==== ===== [[태평양 전쟁]] ===== ||
[[파일:8d8d0492-00e4-416d-8433-ce7dd5273f41.jpg |width=100%]] || || '''태평양 전쟁 당시의 일본 육군 항공대 산하 제77전대 소속 Ki-27'''[* 1941년 태국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 태평양 전쟁 발발 당시, 이미 Ki-27은 구식 기체라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였으나, 수마트라, 자바 섬 등에도 배치되었는데 [[주영복]], [[김두만]] 등 초기 대한민국 공군 창설에 공헌한 일본 육군 소년비행병학교 출신 조종사들이 이 기체를 몰기도 했는데, 이들 조종사들은 인도네시아 방면으로 연합국 함대가 몰려올 시 [[카미카제]]에 동원될 예정이었지만, 일본의 패망으로 살아돌아올 수 있었다. ====== [[동남아시아 전역]] ====== ||
[[파일:Ki-27_Fighting_to_P-38_Drawing.jpg |width=100%]] || || '''동남아시아 전역 당시 미 육군 항공대와 전투를 치루는 타이 왕립 공군 소속 Ki-27 상상도''' || 동남아시아 전역 중인 1944년 11월, 타이 왕립 공군 소속의 Ki-27 5대가 P-51D 9대, P-38 7대 총 16대 편대에 맞서 싸워, Ki-27 5대가 모두 격추됐지만 P-51D 2대에 불을 붙히고 P-38 1대를 격추하는 전과를 보였다. 그러나 이후 연합국의 공세에 의해 타이 왕립 공군이 소유중이던 Ki-27은 1기를 제외하고는 전량 격추되어 손실되었다. === [[냉전|냉전기]] === ====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 ||
[[파일:Indonesian_independence_war_Ki-79.jpg|width=100%]] || ||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당시의 인도네시아 공군 소속 Ki-79 "B-2번기"''' || 수마트라 섬이나 자바 섬 등, 인근 열도의 비행장에 남겨져있던 Ki-79 9기가 인도네시아 공군 소속으로 동원되어 독립전쟁 당시 활약하였다. == 사용 국가 == === [[아시아]] === ==== [[동아시아]] ==== ===== [[일본 제국]] ===== ||
[[파일:Ki-27_Tachiarai_museum.jpg|width=100%]] || || '''치쿠마에정립 타치아라이 평화기념관 소장 일본 육군 항공대 소속 Ki-27''' || 원조 사용국으로, 1935년 초도생산 이후 [[중일전쟁]], [[할힌골 전투]], [[태평양 전쟁]] 초기 사용하였다가 미군 전투기들과의 전투에서 화력 및 성능 열세로 고전을 겪자 신형 전투기인 [[Ki-43 하야부사]]로 교체되어, 2선급으로 사용되었다가 전황이 불리해지자 카미카제용으로 소모되었다.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실물 Ki-27은 후쿠오카 치쿠마에정립 타치아라이 평화기념관에 소장된 1기가 유일한데, 해당 기체는 1945년 4월, 특공 출격 명령을 받은 돗토리현 출신의 '''"와타나베 리히로"''' 소위가 탑승하였던 기체이다. 원래 와타나베 소위는 만주에서 출발하여, 지란정의[* 현 [[미나미큐슈시]]이다.] 비행장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엔진 트러블이 발생하여 큐슈 [[하카타]]의 만에 불시착하고 말았으며, 당시 와타나베 소위는 [[지나가던 ○○○|지나가던 어선]]에 의해 구조되어, 8일 뒤 다른 Ki-27에 탑승하여 특공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으나, 해당 항공기는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회수하지 못했는데, 그로부터 51년 뒤인 1996년 9월, 당시 한창 하카타 만의 매립이 진행되던 도중, 해당 기체가 발견되어 복원 후 해당 박물관에 기증되어 현재까지 소장 중에 있다. ===== [[중화민국 국민정부]] ===== ||
[[파일:Nakajima_Ki-27_ROCAF.jpg|width=100%]] || || '''국민혁명군 공군 소속 Ki-27''' || 중일전쟁 당시 대남항공대가 사용하던 Ki-27을 노획하여 훈련용으로 사용하였다. ==== [[동남아시아]] ==== ===== [[인도네시아]] ===== ||
[[파일:Ki-79_mansyu.jpg|width=100%]] || || '''인도네시아 공군 박물관 소장 인도네시아 공군 소속 2식 고등훈련기 Ki-79''' || 종전 이후, 자국 비행장에 남겨져 있던 Ki-79 최소 9기를 수습하여 네덜란드군에 대항하여 독립전쟁 당시 사용하였다.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당시, 네덜란드군에 대항하여 맹렬하게 맞서 싸웠으나, 결국 전량 격추되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Ki-79는 격추된 Ki-79들 중 멀쩡한 부품을 모아 재생한 기체라고 한다. ===== [[태국]] ===== ||
[[파일:RTAF_Ki-27.jpg|width=100%]] || || '''이륙 준비 중인 타이 왕립 공군 소속 Ki-27''' || 태국에도 공여되어 도합 12기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버마 전선 당시, 일본이 프랑스군과 영연방군을 압박하기 위해 태국에 지원 요청과 동시에 만주비행기제작소에서 생산된 기체를 공여한 것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12기 중 11기가 격추되어 손실되었으며, 남은 1기도 스크랩되어 전량 유실되었다. === [[유럽]] === ==== [[동유럽]] ==== ===== [[소련]] ===== ||
[[파일:USSR_Captured_Ki-27.jpg|width=100%]] || || '''붉은 군대 공군 연구소의 소련 공군 노획 I-97''' || [[할힌골 전투]] 당시 1기를 노획하여 공군 연구소에서 여러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나카지마 I-97 (Накадзима И-97)"'''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고 한다. 당시 [[I-16]]과의 모의전을 진행해본 파일럿인 S.P. 수프룬에 따르면 이러한 평가를 내렸는데, >I-97 항공기의 전술적 이점은 특히 3,000m 이상의 고도에서 분명하다. I-16 항공기는 16-17초 내에 선회하는 반면 I-97은 12초의 선회 시간을 지니고 있다. > >급기동 시, I-16은 충분히 안정적이지 않다. 스틱을 당기면 선회 반경에서 벗어나거나, 실속할 수 있는데 반하여, I-97은 스틱이 완전히 맞물린 상태에서 꾸준히 회전하며 테일 스핀으로 회전하는 경향이 없다. 선회전에서 I-97 항공기는 이점이 분명하다. > >수직 기동 전투에서도 I-97의 이점이 존재한다. 일본 비행기는 I-16보다 더 높은 상승률을 지니고 있으므로, 더 유리한 위치에서 싸울 수 있다. > >I-97은 오랫동안 하강 할 수 없기 때문에 전투 시, I-16은 길게 급강하하여 전투에서 벗어날 수 있다. > >I-16의 일반적인 공중전 방법은 가속으로 인한 공격 후 상승하기 위해 고도와 더 높은 속도를 사용하는 것이다. 해당 항공기와 교전 시에는, I-16은 감속 후, 추격이 없는지 확인하고 공격을 위해 다시 고도를 상승해야 한다. > >I-97은 안정성이 우수하여 조종사가 "바퀴를 위로 한 자세"에서 오랫동안 발사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비행기에서 할 수 없는 것이다. > >결론적으로 일본제 나카지마 I-97 전투기의 테스트 결과에 관한 총평은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 >"I-97 조종의 비행 데이터, 기동성, 단순성 및 편의성은 적군 공군 부대에서 이 항공기와 싸우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함. > >I-97의 기체 강도는 좋지 못함. I-97의 비행 특성 및 기동성 수준은 우리 붉은 군대의 공군의 기동 가능한 전투기 수준에 해당하지만 고속 전투기의 스펙보다 낮다. > >I-97 항공기의 생존성은 국산 전투기보다 떨어진다. 승무원 및 연료 탱크의 보호가 부실하다. > >I-97 항공기의 무장은 국산 전투기의 무장보다 약하다. 탄약도 아군의 기체보다 적게 탑재되며, 사용 장비 또한 구식이다. > >I-97 항공기를 156번 공장으로 이전하여 설계에 대한 자세한 연구와 국내 산업에 긍정적인 샘플을 요청함. > >비행의 경우 마모와 진동이 심하고 프로펠러 그룹의 작동 불량으로 인해 항공기를 사용해서는 안된다. >------ >I-97 테스트 파일럿 S.P. 수프룬 요약하자면, 비행 성능과 상승률 및 안정성은 소련제 비행기보다 뛰어나지만, 기체 강도와 무장, 생존성은 좋지 않았다고 한다. == 평가 == 내장식 기어가 주류가 되어가던 시대에 시대를 거스른 듯한 고정식 [[랜딩 기어]]를 채용했음에도 높은 기동성을 자랑했고 특히 선회능력이 뛰어나 격투전에 강한 기체였다. 하지만 방어력이 약하고 속도[* P-40의 기종마다 다르지만 약 100 km/h 이상 차이가 났다.]가 부족해 [[플라잉 타이거즈]]의 [[붐앤줌]], [[헤드온]] 등에는 약한 면을 보였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독일이나 영국의 전투기([[Bf109]],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등)에 비해 투입된 기간은 짧았지만 육군 항공대에 방탄판과 방루 탱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고 후속기인 Ki-43과 Ki-44 개발에도 큰 영향을 줘 여러모로 제 역할은 한 기체다. == 대중매체 == === 게임 === ==== 워 썬더 ==== ||
[[파일:Ki-27.png|width=100%]] || [[파일:Ki-27_PR.png|width=100%]] || [[파일:Ki-27_TW.png|width=100%]] || || '''Ki-27을''' || '''Ki-27 을 타치아라이 ''' || '''Ki-27을 [br] 국민혁명군 노획기체''' || [[워 썬더]] 일본 항공 병기에서 육군 항공대 라인에 위치한다. 자세한 사항은 [[워 썬더/항공 병기/일본 트리/육군 전투기|문서]] 참고. 만주국 버전은 스킨으로 나올 예정이였으나 중국인들의 항의로 삭제되었다. ===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 ==== 아내와 날았던 특공병 ==== ||
[[파일:800px-Nakajima_Ki-27_replica,_Tokorozawa_Aviation_Museum.jpg |width=100%]] || || '''아내와 함께 날았던 특공병에 등장한 Ki-27 레플리카''' || 카미카제 관련 드라마인 "아내와 날았던 특공병 (妻と飛んだ特攻兵, 2015)"에서 카미카제 기체로 등장하였다. == 참고 문헌 == * [[https://ja.wikipedia.org/wiki/%E4%B9%9D%E4%B8%83%E5%BC%8F%E6%88%A6%E9%97%98%E6%A9%9F|위키피디아 일어판 97식 전투기 문서]] * [[https://en.wikipedia.org/wiki/Nakajima_Ki-27|위키피디아 영어판 나카지마 Ki-27 문서]] * [[http://www.aviationofjapan.com/2013/11/royal-thai-air-force-nates-ki-27-aces.html|일본의 항공사 태국 Ki-27 관련 기록]] * [[https://aviahistoria.com/2022/07/04/mansyu-ki-79-nishikoren-01-museum-satria-mandala/#jp-carousel-12021|인도네시아 공군 Ki-79 사용 관련 기록]] * [[http://www.airwar.ru/enc/fww2/ki27.html|소련 노획 Ki-27 관련 기록]] == 둘러보기 == [include(틀:2차 세계대전/중화민국 항공병기)] [include(틀:2차 세계대전/소련군 항공기)] [include(틀:2차 세계대전/태국 항공기)] [include(틀:2차 세계대전/만주국 항공병기)] [include(틀:항공병기 둘러보기)] [[분류:전투기]][[분류:항공 병기/세계 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