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갑산군 (r0 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량강도의 시군)] [[분류:량강도]] ||<-4> {{{-2 {{{#000000 '''[[북한|[[파일:북한 국기.svg|height=15]]]] [[량강도|{{{#000000 량강도}}}]]의 [[군(행정구역)/대한민국|{{{#000000 군}}}]] '''}}}}}}[br]{{{#!wiki style="margin: -10px -10px" || {{{#000000 '''{{{+1 갑산군}}}'''[br]甲山郡[br]Kapsan County {{{-2 }}}}}} ||}}} || ||<-4> {{{#!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갑산군, 너비=100%, 높이=250px)]}}} || ||<-2> {{{#fff '''군청 소재지'''}}} ||<-2> 갑산읍 || ||<-2> {{{#fff '''지역'''}}} ||<-2> [[양강도|관북]] || ||<-2> {{{#fff '''면적'''}}} ||<-2> 1,076km^^2^^ || ||<-2> {{{#fff '''행정구역'''}}} ||<-2> 1읍 4로동자구 20리 || ||<-2> {{{#fff '''시간대'''}}} ||<-2> UTC+9 || ||<-2> {{{#fff '''인구'''}}} ||<-2> 70,611명 (2008년) || ||<-2> {{{#fff '''인구밀도'''}}} ||<-2> 59/km2 || ||<-2> {{{#fff '''군당 책임비서'''}}} || [[조선로동당|[[파일:wpk.jpg|width=25]]]] || || [목차] [clearfix] == 개요 == 북한 행정구역상 [[량강도]]의 군. 면적 1,076㎢. [[파일:external/photos.wikimapia.org/56_big.jpg]] 갑산읍성 남문 진북루(鎭北樓) 매우 험난한 자연환경으로 유명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다, 바로 옆에 [[개마고원]]을 끼고 있다. 오죽하면 이름부터가 '산(山)중의 갑(甲)'이라는 의미로 갑산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해발 평균고도는 1,200m에 이른다. 험난하기로는 둘째가라 할 정도의 바로 옆동네 [[삼수군]]과 함께 묶여서 '''삼수갑산'''(三水甲山)으로 불리었다. 본래는 [[함경남도]] 소속이었으며, [[조선]]~[[대한제국]] 시대까지는 [[혜산군]] 전역과 [[풍산군]] 3개 면(웅이면, 이인면, 천남면)까지 관할하여 전국에서 가장 넓은 군현단위 행정구역이었다. 이때의 면적이 무려 '''8,193㎢'''으로 현재[* 북한의 현행 행정구역이 아닌 [[대한민국]]의 명목상 행정구역인 [[이북 5도]]의 행정구역을 적용한다.] 한국 최대 면적의 군인 [[무산군]](6,164㎢)보다도 훨씬 더 넓었고, 대한제국 13도 가운데 가장 작았던 [[충청북도]]의 면적보다도 더 컸다. 한국 정부의 [[이북 5도]] 기준으로 북쪽으로는 [[혜산시|혜산군]][* 이 행정구역은 '광복 당시의 행정구역'이 이어져 내려오는 것으로 간주되기에 북한 정부가 승격시킨 '혜산시'가 아니다.]에, 남쪽으로는 [[풍산군]]에 접해 있다. [[발해]] 때에는 [[서경압록부]](西京鴨淥府)에 속해 있었다. [[고려]] [[공양왕]] 대에 [[여진족]]의 거주지로 허천부(虛川府)라 불리던 이곳을 수복하고 갑주만호부(甲州萬戶府)를 두었다. [[조선]] [[태종(조선)|태종]] 대에 갑산군(甲山郡)으로 개칭되었고 [[세조(조선)|세조]] 대에 갑산도호부(甲山都護府)로 승격되었다. 사실 [[태조(조선)|이성계]]의 고려 무장 시절에서 손자 [[세종(조선)|세종]]의 [[4군 6진]] 개척에 이르는 [[고려|여말]][[조선|선초]]의 북방 [[여진족]] 경략 시기에는 훗날의 [[삼수군]], [[장진군]]은 물론 [[평안북도]]의 [[후창군]], [[자성군]] 일대까지 몽땅 갑주만호부(고려)/갑산도호부(조선)에 속했다. 여진족들로부터 빼앗은(수복한[* 근현대의 민족 관념을 기준으로 하면 원래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으니 말이다.]) 땅들이 인구도 거의 없는 미개발지였으니 북방 경략의 거점 역할을 했던 갑산에 일단 편입시킨 것이다. 쉽게 말해 [[개마고원]] 전역, 현 북한의 량강도와 거의 비슷한 한반도 북방의 방대한 영역을 갑산 혼자서 관할한 것이다. 이후 앞서 언급된 지역들이 별개의 [[도호부]], 군 등으로 분리되었다. 그렇게 [[구한말]]까지 남아있던 갑산군도 [[1914년]] 남부를 [[풍산군]]으로, [[1942년]] 북부를 혜산군으로 분군하면서 면적이 대폭 감소하여, 광복 당시에는 1,398㎢까지 줄어들었다. 혜산군을 분군하기 전까지는 [[백두산]] [[천지(백두산)|천지]] 역시 갑산군 관할이었다. 甲山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다만 갑산에 살던 백성들은 유배온 사람을 어떻게든 죽지 않도록 부양해야 했기 때문에 여간 고통이 아니었던 모양. 오죽하면 그 고충을 담은 노래인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0893|갑민가]]마저 전해져 내려온다.[* 심지어 이 노래가 만들어진 시기는 [[균역법]]이 제창되고 백성들의 삶이 많이 좋아덨다던 평가를 받는 영-정조시대였다. 그런 시대에조차 살기가 너무 힘들었을 정도.] [[국립국어원]] 발간 [[표준국어대사전]] 등에는 갑산에 대해 "교통이 불편하고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특유의 풍토병이 있다."라고 서술했는데, 구체적으로 그 풍토병이 무엇인지는 언급이 없다. 아마도 [[해조류]] 섭취가 부족해서 [[아이오딘]] 결핍으로 생기는 갑상선비대증일 것이다. 여담으로 북한이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보천보 전투]]의 보천보는 [[1937년]] 당시 갑산군에 속했다. 해당 지역은 1942년 혜산군으로 분군되었다. 북한에는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파벌이 있었는데 이들은 [[갑산파]]라고 불렸다. == 기후 == [[삼수갑산]]이라는 악명높은 오지답게 겨울이 매우 추운 곳이다. 기후대는 [[냉대기후]]에 속하며 [[연교차]]가 매우 큰 대륙성 기후이다. 최한월인 1월의 평균기온은 -18℃로 분단 이전 한지로 알려진 [[자강도]] [[자성군]], '''[[중강군|중강진]]''', [[함경북도]] [[무산군]]일대 '''보다''' 춥다. [[삼지연시]]를 제외하면 [[량강도]] [[혜산시]], [[삼수군]]와 함께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곳 중 하나이다. 그런데 위도는 생각보다 낮은 북위 41도다.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이 갑산군과 같은 위도 상에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스탄불의 1월 평균기온은 영상 5.7℃로 [[제주시]], [[도쿄도|도쿄]], [[상하이시|상하이]], [[애틀랜타]]의 1월 평균기온과 같다. 최난월은 7월로 평균기온은 영상 20℃ 정도다. 고로 연교차가 거의 40℃에 육박하는 셈이다. 이렇게 겨울이 추운 이유는 고원지대에 있고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위도가 비슷한 [[함경북도]] [[김책시]]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갑산군 : 북위 41°05', 김책시 : 북위 40°40'. 갑산군 남부와 김책시 북부가 비슷한 위도 상에 있다.] 김책시의 1월 평균기온은 -3.8℃로 갑산군보다 15℃ 정도 더 따뜻하다. 김책시가 온난한 이유는 개마고원과 백두산이 북서풍을 막아주고 수심이 깊은 동해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반면 갑산군은 바다와 멀리 떨어진 데다 고도까지 높다보니[* 갑산읍 기준 대략 해발 810m] 당연히 추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1년 강수량은 600mm 정도로 한반도 내의 대표적인 [[소우지]] 중 하나이다. == 인근 행정구역 == 광복 당시 혜산군, 삼수군, 풍산군, 단천군과 접하였다. == 교통편 == 철도는 없고 [[9번 국도]], [[76번 국도]]가 갑산 읍내를 통과한다. 이런 심심산골에 뜬금없이 [[무궤도전차]]가 있다고 한다. 갑산읍내에 있는 것은 아니고 동점로동자구[* 이북5도 행정구역상으로는 진동면 동점리. 말 그대로 [[구리(원소)|구리]] 광산이다.]에 있다.--[[http://www.cybernk.net/infoText/InfoHumanCultureDetail.aspx?mc=CC0303&sc=A32020002&tid=CC020300007848&direct=1|#]]--^^(링크 삭제됨)^^ == [[이북5도위원회|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 [Include(틀:함경남도의 하위행정구역)] ||<-4> '''[[파일:함경남도(이북5도위원회) 휘장.svg|height=15]] [[함경남도|{{{#000000,#dddddd 함경남도}}}]]의 [[|{{{#000000,#dddddd 미수복 행정구역}}}]]'''[br]{{{#!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 {{{#!wiki style="margin: -5px 0;" [[파일:함경남도 갑산군 휘장.svg|height=65]]}}}||{{{#!wiki style="margin: -5px 0;" '''{{{+1 갑산군}}}'''[br]甲山郡[br]{{{-1 Gapsan-gun}}}}}} ||}}} || ||<-4> {{{#!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량강도 갑산, 너비=100%, 높이=100%)]}}} || ||<-2> '''시청 소재지''' ||<-2> 갑산면 북부리 || ||<-2> '''상위 행정구역''' ||<-2> [[함경남도]] || ||<-2> '''하위 행정구역''' ||<-2> 5[[면]] || ||<-2> '''면적''' ||<-2> 1,398km² || ||<-2> '''인구''' ||<-2> 46,442명[* 1944년 인구총조사] || ||<-2> '''인구밀도''' ||<-2> 33.22/㎢ || [[파일:함경남도 갑산군 군기.svg|width=300]] 군기 || [[파일:갑산군.jpg]] || 광복 당시 5면. 갑산군은 관내에 철도가 전혀 지나지 않는다. * '''갑산면'''(甲山面) * 관할 리 : __북부(北部)__, 고암(古巖), 남부(南部), 대성(大盛), 대흥(大興), 도중(都中), 도하(都下), 도흥(都興), 동부(東部), 동흥(東興), 몽충(夢忠), 부연(富淵), 부흥(富興), 부흥측(富興側), 사기(士起), 서부(西部), 세동(細洞), 쌍대(雙大), 쌍소(雙小), 억년(億年), 용림(龍林), 입덕(笠德), 장평(長坪), 중평(仲坪), 지경(地境), 통상(通上), 통하(通下) * 면사무소와 군청이 북부리에 있었다. 1393년에 완공된 갑산읍성의 남문인 진북루(鎭北樓)가 남아 있다. * '''동인면'''(同仁面) * 관할 리 : __신흥(新興)__, 구연(舊淵), 내산(內山), 대상(大上), 대흥(大興), 동서(東西), 박달(朴達), 반교(泮橋), 사정(射亭), 성개(成開), 소상(小上), 신성(新城), 신창(新昌), 신풍(新豊), 어연(魚淵), 연안(連安), 연풍(連豊), 연흥(連興), 외산(外山), 유정(柳亭), 잠동(岑洞), 장동(壯洞), 종포(終浦), 중흥(中興), 창평(倉坪), 풍산(豊山), 함정포(含井浦), 후양(厚暘) * '''산남면'''(山南面) * 관할 리 : __상(上)__, 고소(古小), 단순(丹唇) 동천(同遷), 두림(杜林), 상가림(上加林), 석막(石幕), 석우(石隅), 송우(送友), 시화(時化), 신성(新成), 신흥(新興), 어은(於隱), 용평(龍坪), 원봉(圓峰), 유상(楡上), 유하(楡下), 은린(隱麟), 중화(中和), 초평(草坪), 포치(浦淄), 풍양(豊陽), 하가림(下加林), 회복(會福) * 단순리의 순(唇)은 한글 윈도우에서는 '진'으로 찾아서 입력해야 한다. * '''진동면'''(鎭東面) * 관할 리 : __양유(楊柳)__, 간진동(間鎭東), 건장(乾庄), 남대(南大), 내유포(內楡浦), 노적(露積), 노평(蘆坪), 대복(大福), 동점(銅店), 상(上), 석우(石隅), 성후(城後), 신양(新陽), 신풍(新豊), 신흥(新興), 연흥(蓮興), 유포(楡浦), 은사평(隱士坪), 주막(周幕), 중(中), 창평(倉坪) * 동점리에 구리 광산인 갑산동산(銅山)이 있다. * '''회린면'''(會麟面) * 관할 리 : __석우(石隅)__, 강초(姜草), 교항(橋項), 남향(南向), 대평(大坪), 삼포(三浦), 상(上), 상포항(上浦項), 서당(書堂), 송계(松溪), 연풍(連豊), 용수(龍水), 우상(尤上), 우하(尤下), 위계(渭溪), 이태(利泰), 장가(壯佳), 전기(田基), 조양(朝陽), 중(中), 중초(中草), 중포항(中浦項), 중흥상(中興上), 중흥하(中興下), 직동(直洞), 진둔(榛屯), 천수(泉水), 판장(板章), 하측(河側), 하포항(下浦項), 화장(化墻), 후지(厚地) * 천수리, 위계리 등 [[허천강]] 일부 지역은 댐으로 수몰됐고 면소재지인 석우리 부근까지 물이 들어왔다. 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