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김웅(1912)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 '''성명''' ||김웅(金雄) || || '''별명''' ||왕신호(王信虎) || ||<|2> '''출생''' ||[[1912년]] || ||[[경상북도]] [[김천시|김천군]] || [목차] [clearfix] == 개요 == [[일제강점기]] 때 항일운동가, 북한의 군인, 정치인, 외교관. == 생애 == 1912년 [[경상북도]] [[김천시|김천군]]에서 태어나 중국 [[뤄양]]의 [[낙양군관학교]], [[난징]]의 육군중앙군관학교, [[옌안]]의 항일군정대학에서 수학했다. 1935년 비밀결사 혁명동지회(10월회)에 가담했고, [[김구]]가 지도한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 정당#한국국민당|한국국민당]] 당원으로 활동했다. 1944년 [[조선의용대|조선의용군]] 화북지대 제1대(산동지대)장, 1945년 조선의용군 화중지대장을 역임하면서 [[중일전쟁]]에 참전했고 8.15 광복 후 귀국하였다. 1946년 북한의 보안간부학교 부교장에 취임하였고, 1948년 [[북조선로동당]] 중앙위원을 지냈다. [[6.25 전쟁]]에서는 [[조선인민군]] 제1군단 사령관, 전선사령부 참모장, 민족보위성 부상, 전선사령관을 지냈다. 1951년 2월, [[김책]] 장의위원을 지냈다. 민족보위성 부상 재임 중이던 1958년 3월, 1차 당대표자회에서 극심한 비판을 받고 출당조치되었다. 1960년 1월, [[최창익]], [[박창옥]], [[고봉기(북한)|고봉기]] 등과 함께 비밀재판에 회부되어 총살되었다. == 여담 == 1960년대부터 대외문화연락위원회 부위원장 직함으로 남예멘 대사 등을 지낸 김웅이 등장하였는데, 김웅의 처형문서가 발굴되기 전에는 본 문서의 김웅과 이 김웅이 같은 사람으로 간주하였으나 북한에서 사형을 선고했다도 아니고 이미 집행했다고 소련에 통보한 것이 발굴된 상황에서 신빙성이 떨어진다. 갑산파 전문가인 조우찬의 연구에서는 사형을 집행했다고 통보만 하고 나중에 석방해줬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는 하였다. [[분류:1912년 출생]][[분류:1960년 사망]][[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중국방면 독립운동가]][[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6.25 전쟁/군인]][[분류:북한 국방성 부상]][[분류:조선인민군 제1군단장]][[분류:조선로동당 2기 중앙위원회 위원]][[분류:총살형된 인물]]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