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문명 6/과학 기술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상위 문서, top1=문명 6)] [include(틀:문명 6)] [include(틀:문명 시리즈의 기술)] [목차] == 개요 == 문명 6의 트리는 과학으로 연구하는 과학 기술과 문화로 연구하는 사회 제도로 이원화되었다. 몇몇 유닛과 건물, 불가사의는 사회 제도를 연구해야 해금된다. 새로 등장한 개념으로 [[유레카]]가 있다. 각각의 기술마다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유레카가 발동되어 그 기술의 진척도가 40% 증가한다. 사회 제도도 같은 방식으로 영감(Inspiration) 보너스를 받을 수 있으며, [[문명 6/등장 문명/중국|중국]]은 문명 특성 '왕조 주기론'으로 유레카와 영감의 보너스가 50%로 증가하고 [[문명 6/등장 문명/바빌론|바빌론]]은 문명 특성 ‘에누마 아누 엔릴’로 유레카의 획득 과학이 100%로 증가한다. 문명 6의 기술은 총 68개이다. 전작의 80개보다 약간 줄어들었다. 공공 행정이나 길드 등 [[문명 6/사회 제도|사회 제도]] 쪽으로 이동한 것들도 상당수 있다. 각 연구에 배당된 인용구는 2개씩으로, 매 게임마다 둘 중 하나가 랜덤으로 나온다. 인용구에 상당히 동일 인물이 한 말이 많은 편이다. 처칠은 무려 6번이나 등장한다. 문학적이고 은유적이어서 무거운 느낌을 주던 전작의 인용구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가벼운 분위기에 비교적 최근 인물의 인용구가 주로 인용되었다.[* 그래서 호불호가 갈린다. 싫어하는 유저들에게는 위엄 있던 전작과 다르게 게임 분위기가 지나치게 가벼워진데다가 양키센스 스러운 요상한 농담으로 가득하다고 까인다. 사회 제도, 불가사의 인용구에도 같은 비판이 있다.] 필요 과학 수치는 보통 속도, 각 기술의 시대[* 즉, 고전시대 기술은 고전시대 때의 필요 과학량, 산업시대 기술은 산업 시대 때의 필요 과학량을 적어놓았다. 다음 시대의 기술을 연구할 때에는 필요 과학량이 높게 잡혀 있으며, 반대로 이전 시대의 기술을 연구할 때에는 필요 과학량이 낮아지다보니 시대에 따라 이 문서에 적힌 것보다 더 많거나 적은 양의 과학을 요구하기에 기준을 잡은 것. 예를 들어 고전 시대 기술인 천문항법은 다른 고전 시대 기술 / 사회제도를 연구하여 고전시대에 진입한 뒤 고전 시대에 연구하면 120의 과학을 요구하지만, 천문항법을 연구함으로서 고전시대로 진입하게 된다면 고대 시대에 고전 시대 기술을 연구하는 것이기에 144의 과학을 요구하며, 중세 시대 기술 / 사회 제도를 연구하여 중세 시대에 진입한 뒤 천문항법을 연구하면 이전 시대의 기술을 연구하는 것이므로 96의 과학만 요구한다.] 기준이다. 기술 설명은 몰려드는 폭풍 확장팩을 기준으로 하며, 오리지널에만 해당되는 내용은 '(오리지널)'을, 흥망성쇠까지만 해당되는 내용은 'R/F'를 설명 뒤에 붙였다. === 유레카 문구 === || {{{#fff '''종류'''}}} || {{{#fff '''유레카 문구'''}}} || || 부족 마을 || 마을 주민들이 숨겨왔던 은밀한 기술을 공유합니다. || || 위인[br]왕조 주기론[* 진시황 지도자 특성][br]지중해 식민지[* 페니키아 문명 특성][br]노벨 물리학상[* 스웨덴이 있으면 등장하는 세계 의회 안건] || 위인의 기발한 재주로 새로운 과학 아이디어가 잠금 해제되었습니다. || || 게레지[* 쿠빌라이 칸 지도자 특성] || 상인들이 먼 지역에서 새로운 과학 아이디어를 가지고 옵니다. || || 스파이 || 당신의 스파이가 다른 문명의 캠퍼스에서 기술 비밀을 훔쳤습니다. || ||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 세계 곳곳에서 지식을 모으는 동안 백성이 몰랐던 과학적인 지혜를 발견하였습니다. || 여담이지만 유레카를 받는 기술은 점점 더 테크가 올라가는데 부족 마을은 초가집 형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초가집으로 된 마을에서 로켓공학 기술이나 민주주의 사상을 은밀하게 숨겨오다가 공유해주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보게 된다(...). == 고대 시대 == >수면 아래 생명의 첫 탄생부터... 석기 시대의 커다란 짐승들과... 처음으로 직립보행하는 인류의 시초까지, 먼 여정을 거쳤습니다. 문명의 요람부터 별을 향한 탐험까지, 이제부터 당신의 가장 위대한 임무가 시작됩니다. === 과학 25 === ==== [[도예]] (Pottery)[anchor(도예)] ==== |||| [[파일:Pottery_(Civ6).png|width=65]][br]{{{+2 {{{#fff '''도예'''}}}}}} || ||||도예가의 기술이라 하면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 즉, 흙을 사용하여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진흙을 빚어 유용한 물건의 형태로 만든 다음 가마에 넣어 높은 온도에 노출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완성되는 제품은 매우 쉽게 깨지지만 공기가 침투하지 않고 부식, 산화, 해충, 및 기타 부패 현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현재까지 발견 된 가장 오래된 도자기로는 액체와 곡식을 보관하기 위한 물병과 용기 등이 있는가 하면 정말 못생긴 조각상도 있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도자기는 기원전 29,000년부터 기원전 25,000년까지 존재한 그라베트 문화기에 제작된 인형입니다. 얼굴이 없는 이 작은 인형들은 뚱뚱한 여성의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인형들은 손으로 빚은 후 아궁이에 넣어 제작되었습니다. 약 12,000년 전에는 어떤 현명한 민족이 진흙을 모래, 자갈, 깨진 조가비나 뼈와 섞을 경우 솥, 컵, 쟁반, 그릇과 용기를 비롯한 좀 더 유용한 물건들을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죠몬 시대에의 일본인 도예가들은 도자기 제품에 유약을 바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도기, 사기, 자기를 비롯한 여러 유형의 도자기가 개발되었습니다. 우비아드 시대(기원전 6000년-기원전 4000년)에 메소포타미아에서 돌림판이 고안되기 전에는 손으로 도자기를 빚어야 했으며 이는 매우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돌림판이 사용되기 시작한 이래로 도자기를 완성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크게 단축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원전 6세기의 에트루리아인들이 거푸집을 사용하여 도자기와 여러 물건은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달라졌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로마인들이 성가신 인접 국가들을 휩쓰는 과정에서 '습득한' 방식이었습니다. 한편 중국의 당나라에서는 도자기의 또 다른 대량 생산 기법인 슬립 주조 기법이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도자기들은 곧 플라스틱으로 대체되었습니다.|| |||| {{{+2 {{{#fff '''설명'''}}}}}} || || 인용구 ||'''"어떤 사람도 점토를 준비하다가 그냥 둔 적은 없습니다. 마치 운과 가능성이 벽돌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처럼요."''' - [[플루타르코스|플루타르크]] '''"좋은 도공의 손에 쥐어진 점토는 행복할 것으로 생각했다네."''' - 자넷 피치[* Janet Fitch 1955~. [[미국]]의 작가.] || || 선행 기술 ||없음 || || 후속 기술 ||'''[[#s-2.2.3|관개]]''', '''[[#s-2.2.4|문자]]''' || || 유레카 조건 ||없음 || || 효과 ||건설자가 [[파일:external/vignette3.wikia.nocookie.net/Wheat_%28Civ6%29.png|width=15]] '''[[문명 6/자원 #s-2.4|밀]]'''과 [[파일:Rice_(Civ6).png|width=17]] '''[[문명 6/자원#s-2.9|쌀]]''' 등 농장으로 개발 가능한 보너스 자원을 수확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크리|크리]]''': 교역로 최대치 +1이 제공되며 무료 상인 1명을 얻습니다.|| || 잠금 해제 ||도심부 특수지구의 건물 '''[[문명 6/특수지구와 건물#s-2|곡창]]'''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크리|크리]]''': 건설자가 고유 시설 '''[[문명 6/등장 문명/크리 #s-2.3|메케와프]]'''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불가사의 '''대욕장'''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 도예 기술을 연구하면 밀과 쌀, 또한 뉴 프론티어 패스 DLC에서 추가된 옥수수 보너스 자원을 수확할 수 있게 된다. 이후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내용이지만, 보너스 자원이 위치한 타일에 특수지구나 불가사의를 건설하려면 해당 보너스 자원을 수확할 수 있는 기술이 요구된다. 이는 숲과 열대우림, 습지 등의 지형 특성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 [[목축|목축업]] (Animal Husbandry)[anchor(목축업)] ==== |||| [[파일:external/vignette2.wikia.nocookie.net/Animal_Husbandry_%28Civ6%29.png|width=65]][br]{{{+2 {{{#fff '''목축업'''}}}}}} || ||||가축 사육과 특정한 특성을 강조하기 위한 선발 육종은 농업의 발전과 동시에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개는 가장 오래전부터 길들여진 동물 중 하나로 추정되며, 사냥감을 쫓거나 숙영지를 보호하는 데 기여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화덕 주변에 널린 모든 잔반을 처리하여 위생을 개선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습니다. 개는 중국에서 가장 먼저 길들여 사육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제로 유전학자들은 오늘날 존재하는 품종의 95% 정도가 고대 중국의 몇 안되는 품종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한편 염소와 양은 기원전 10,000년경부터 중동에서 사육되었고, 곧 이어 중동에서는 소를 길들이기 시작했다고 유전학자들은 주장합니다. 기원전 4000년경에는 유라시아의 초원에서 말을 사육하기 시작했으며 곧 이어 수많은 동물들이 인간의 손에 길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의 가축들은 더 이상 야생에서 혼자 살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길들일 수 없는 동물들은 말과 개를 이용하는 인간들에 의해 사냥 당했습니다. [[찰스 다윈]]은 동물이 특정 기준을 충족해야만 길들이기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는데, 가축은 사람이 먹기 싫어하는 풀, 해충이나 잔반을 섭취할 수 있어야 하고 반복적인 교미를 통해 계속해서 새끼를 낳을 수 있도록 빨리 성장해야 하며 온순하여 주인을 무는 일이 없어야 하고, 또한 가축은 쉽게 놀라서는 안 되며, 만약 놀랄 경우에는 인간이나 개가 무리를 보호할 수 있도록 같은 동물과 뭉치는 성향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람을 무리의 대장으로 생각하도록 훈련시키거나 속일 수 있는 가축은 더욱 유용하다고 하였습니다. || |||| {{{+2 {{{#fff '''설명'''}}}}}} || || 인용구 ||'''"만약 천국에 개들이 없다면 내가 죽을 때 개들이 간 곳으로 가고 싶어."''' - 윌 로저스[* Will Rogers 1879~1935. [[미국]]의 배우] '''"나는 돼지를 좋아한다. 개는 우리를 우러러보고 고양이는 우리를 얕잡아보지만, 돼지는 우리를 자기와 똑같이 취급한다."''' - [[윈스턴 처칠|윈스턴 S. 처칠]] || || 선행 기술 ||없음 || || 후속 기술 ||'''[[#s-2.2.5|궁술]]''' || || 유레카 조건 ||없음 || || 효과 ||건설자가 [[파일:Cattle_(Civ6).png|width=15]] '''[[문명 6/자원 #s-2.8|소]]''', [[파일:Sheep_(Civ6).png|width=15]] '''[[문명 6/자원 #s-2.10|양]]'''과 [[파일:Deer_(Civ6).png|width=15]] 사슴 자원을 수확할 수 있게 됩니다. '''말''' 자원이 지도상에 드러납니다. || || 잠금 해제 ||건설자가 시설 '''[[문명 6/시설 #s-2.1.3|목장]]'''과 '''[[문명 6/시설 #s-2.1.4|야영지]]'''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스키타이|스키타이]]''': 건설자가 고유 시설 '''[[문명 6/등장 문명/스키타이 #s-2.3|쿠르간]]'''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 ==== [[광업|채광]] (Mining) [anchor(채광)] ==== |||| [[파일:Mining_(Civ6).png|width=65]][br]{{{+2 {{{#fff '''채광'''}}}}}} ||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파내면 됩니다. 이는 문명에서 가장 유서깊고 실용적인 기술 중 하나인 채광의 기본적인 전제였습니다. 기원전 4000년경에는 신석기인들이 잉글랜드와 프랑스에서 부싯돌을 채집했고 고대 이집트인들은 기원전 2600년부터 기원전 2500년까지 마아디에서 공작석을 채집했습니다. 당시 이들은 장식 및 도자기에 사용되던 딱딱한 돌을 사용했습니다. 대부분은 노천 광산이나 30m 이내의 얕은 수갱이었으며, 20,000명이 넘는 노예가 노동에 동원되었던 아테네 라우리움의 은광산을 한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효율적인 대규모의 채광 방식을 개발한 것은 로마의 공학가들이였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또 다른 기술인 수로를 건설하여 채광지에 물을 공급했고, 이 물을 사용하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광석과 바위 가루를 분리했습니다. 이는 초기 형태의 수력 채광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마인들은 열분해 기법을 개발하여 바위를 박살냈습니다. 암면에 불을 피우고 균열이 생길 때 까지 열을 가한 후 바위에 직접적으로 물을 붓는 방식이었습니다. 인간은 구리, 철, 보석, 금, 은을 비롯한 온갖 광물과 수정을 채광하기 시작했고, 로마의 채광 기법은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유럽인들이 들어와 온갖 자원을 고국으로 실어 나르기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채광 기법은 원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중세시대 말기에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광맥이 고갈되면서 심부 채광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광부들은 수공구를 사용하여 수갱을 더욱 깊이 파 내려갔고, 목재를 이용하여 벽과 천장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다가 1465년에는 광산을 너무 깊게 파낸 덕분에 수갱에 지하수가 차 오르면서 은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장애물을 극복하기까지 약 100년의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정과 삽은 화약을 이용한 폭발물로 대체되었습니다. 곧 이어 산업혁명이 일어나 석탄의 수요가 크게 증가하자 채광은 기계화되었고 더욱 탐욕스러워졌습니다. || |||| {{{+2 {{{#fff '''설명'''}}}}}} || || 인용구 ||'''"탄광 광부의 아내보다 더 인정받을 만한 사람이 있을까?"''' - 멀 트래비스[* Merle Travis 1917~1983. [[미국]]의 가수] '''"네가 구멍 속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 파는 것을 멈춰라."''' - 윌 로저스[* [[미국]]의 배우] || || 선행 기술 ||없음 || || 후속 기술 ||'''[[#s-2.3.1|석조기술]]''', '''[[#s-2.3.2|청동 기술]]''', '''[[#s-2.3.3|바퀴]]''' || || 유레카 조건 ||없음 || || 효과 ||건설자가 [[파일:external/vignette3.wikia.nocookie.net/Copper_%28Civ6%29.png|width=15]] '''[[문명 6/자원 #s-2.2|구리]]''' 자원을 수확할 수 있게 됩니다. 건설자가 '''[[문명 6/지형 #s-2.3|숲]]'''을 제거할 수 있게 됩니다.|| || 잠금 해제 ||건설자가 시설 '''[[문명 6/시설#s-2.2|광산]]'''과 '''[[문명 6/시설 #s-2.8|채석장]]'''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 과학 50 === ==== [[항해]] (Sailing) [anchor(항해)] ==== |||| [[파일:external/vignette2.wikia.nocookie.net/Sailing_%28Civ6%29.png|width=65]][br]{{{+2 {{{#fff '''항해'''}}}}}} || ||||노를 젓는 일은 매우 고되었고 인간은 돛을 만들어 풍력을 활용했습니다. 인간은 항해를 통해 육로보다 더욱 빠르고 편리하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항해는 인간이 처음으로 돛대를 올린 이래로 계속해서 교역, 운송, 어업 및 전쟁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돛단배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쿠웨이트에서 발견된 그림 원반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원반은 기원전 5500년부터 기원전 500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원전 3200년경에 그려진 고분 벽화에는 나일 강을 항해하는 갈대배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몇백 년 후에는 이집트인들이 배를 타고 지중해 연안까지 도달했습니다. 중국에서 스칸디나비아에 이르는 모든 연안 지역에서는 항해 기술이 진화했으며 이러한 양상은 주로 해양 문화권에서 목격되었습니다. 바크형 범선, 쌍돛대 범선, 캐러벨, 클리퍼, 캣보트, 펠루카, 갈레온, 정크선, 롱십, 미스티코, 스쿠너와 슬르푸선을 비롯한 각종 범선과 관련된 기술과 설계는 수많은 해양 문화만큼이나 다양했습니다. 기원전 2500년에는 이집트에서 삼나무를 깎아 만든 들보로 범선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끈이나 갈대를 묶어 솔기를 봉합했습니다. 1954년에 기자 대피라미드 밑에서 온전한 상태로 발견된 '쿠푸' 시대의 배는 여러 개의 노와 면 소재의 돛으로 동력을 얻은 44m 길이의 범선이었습니다. 스칸디나비아인들은 같은 시기에 분할형 선체 구간을 적용한 배를 건조하는 기법을 고안해 냈으며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큰 바이킹선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서기 1000년의 바이킹은 세계 최고의 항해 민족이자 범선 제조국으로 자리잡았고, 대서양을 건너 북아메리카까지 항해를 이어갔습니다. 수많은 선원들의 목숨과 시행 착오 끝에 항해, 돛, 선체, 및 삭구 분야의 기술이 향상되었습니다. 아랍, 중국, 인도의 상인들은 태평양 변방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며 교역로와 외교 관계를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세계를 항해한 이들은 유럽인들이었습니다. 유럽의 선원들은 15세기를 기점으로 더 멀리 더 오래 항해하며 전 세계를 누볐고, 범선 선단을 앞세워 식민지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 {{{+2 {{{#fff '''설명'''}}}}}} || || 인용구 ||'''"대형 선박은 더 나아갈 수 있지만, 작은 배들은 해안가 주변에 있어야 해."''' - [[벤저민 프랭클린|벤자민 프랭클린]] '''"육지 생활이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바다에서의 삶이 나에게는 더 좋습니다."''' - [[프랜시스 드레이크|프란시스 드레이크]] 경 || || 선행 기술 ||없음 || || 후속 기술 ||'''[[#s-3.1.1|천문 항법]]''', '''[[#s-3.2.1|조선]]''' || || 유레카 조건 ||해안가에 도시를 세우십시오. || || 유레카 문구 ||당신의 문명은 해안가에 위치한 도시를 건설함으로써 바다를 항해하는 데 필요한 통찰력을 얻었습니다. || || 효과 ||건설자가 승선할 수 있게 됩니다.|| || 잠금 해제 ||해상 근접 유닛 '''[[문명 6/유닛/해상전 #s-2|갤리]]'''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건설자가 시설 '''[[문명 6/시설 #s-2.1.6|어선]]'''과 총독 특유 시설 '''[[문명 6/시설 #s-3.1|양식장]]'''[* 수경 재배 진급을 보유한 측량사 량 총독이 배치된 도시에만 건설 가능]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노르웨이|노르웨이]]''': 갤리를 대체하는 고유 유닛 '''[[문명 6/등장 문명/노르웨이 #s-3.3|바이킹 롱십]]'''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br]'''[[문명 6/등장 문명/페니키아|페니키아]]''': 갤리를 대체하는 고유 유닛 '''[[문명 6/등장 문명/페니키아 #s-2.2|바이림]]'''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초반에는 해안가 선호도도 낮고 후속 테크 역시 고대 고전에는 큰 쓸모가 없기 때문에 보통은 고전시대 끝자락에 가서 후속 테크를 위해 올리는 경우가 많다. 단, 해양 위주 맵에서 할 때는 조금 더 일찍 찍어줄 필요는 있으며 노르웨이는 바이킹 롱십을 위해 선항해를 찍는 것도 좋다. ~~이거 안찍어도 현대시대 전함을 지을 수 있다~~ ==== [[점성술]] (Astrology) [anchor(점성술)] ==== |||| [[파일:external/7be6b59663dd93090d151bd7bbe021247c8c8c27a6faa060cfc5dd0623451945.png|width=65]][br]{{{+2 {{{#fff '''점성술'''}}}}}} || ||||지금은 '유사 과학'으로 분류되는 점성술은 천체와 지구의 이상 현상 간에 특정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성좌, 달, 혜성, 태양과 지구에서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행성들은 신과 관련이 있었고 사람들은 이러한 천체의 요소들이 실제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습니다. 매년 추수 기간이 되면 특정 행성이나 성단이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고, 결국 인간은 행성이 수확을 관장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또한 행성이 처음 하늘에 보일 때 염소를 제물로 바치면 풍년이 들 것이라는 믿음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원시 문명에서는 이러한 터무니 없는 관념에 큰 의미를 부여했고, 이는 여러 기술의 발전을 가속화했습니다. 인도, 중국과 마야에서는 천체 현상을 추적하기 위한 정교한 달력을 개발했습니다. 스톤헨지의 선돌은 점성술 수행을 위해 세워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스 및 바빌로니아의 점성술이 융합되면서 다수의 수학 원리가 생겨났습니다. 중국의 점성술은 한 왕조 시대에 꽃을 피웠고 이는 음양설, 음양오행, 유교 철학과 한의학을 비롯한 여러 전통 문화 지표가 형성되는 계기로 이어졌습니다. 소위 '과학 혁명' 시대에는 점성술이 종교적이거나 신비적인 허울에서 벗어나 천문학으로 진화했습니다.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에 발표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ibium Coelestium)'를 통해 행성들이 지구가 아닌 태양 주위를 돌고 달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사람들은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면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칠 리가 만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계몽주의 시대에는 점성술의 마지막 남은 자취마저 사라져 버렸고 유명 사상가들은 점성술을 어리석고 유치하다고 치부했습니다. 오늘날에는 별점을 보는 할머니들과 가끔씩 고개를 드는 [[뉴에이지]] 운동 등을 통해서나 점성술을 접해볼 수 있습니다.|| |||| {{{+2 {{{#fff '''설명'''}}}}}} || || 인용구 ||'''"전 점성술을 믿지 않아요. 제가 궁수자리인데, 우린 의심이 많거든요."''' - [[아서 C. 클라크]] '''"점성술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의사는 의사라고 칭할 수 없다."''' - [[히포크라테스]] || || 선행 기술 ||없음 || || 후속 기술 ||'''[[#s-3.1.1|천문 항법]]''' || || 유레카 조건 ||자연경관을 발견하십시오. || || 유레카 문구 ||자연경관의 발견을 통해 당신의 백성이 우주의 장엄함에 대한 영감을 얻었습니다. || || 효과 ||없음|| || 잠금 해제 ||특수지구 '''[[문명 6/특수지구와 건물 #성지|성지]]'''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성지 특수지구의 건물 '''[[문명 6/특수지구와 건물 #성지|성소]]'''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불가사의 '''[[문명 6/불가사의#s-5.1.3|스톤헨지]]'''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러시아|러시아]]''': 성지를 대체하는 고유 특수지구 '''[[문명 6/등장 문명/러시아 #s-2.3|대수도원]]'''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종교 창시 빌드의 스타팅이 되는 기술. 반드시 종교를 창시해야 스노우볼을 굴릴 수 있는 문명이라면 스톤헨지를 지어보거나 선성지 빌드를 올리기 위해서 점성술을 찍어서 빠르게 종교를 선점해야 한다. 반대로 종교에 연연하지 않는 문명에게는 후순위로 밀리는 기술. ==== [[관개]] (Irrigation)[anchor(관개)] ==== |||| [[파일:external/vignette3.wikia.nocookie.net/Irrigation_%28Civ6%29.png|width=65]][br]{{{+2 {{{#fff '''관개'''}}}}}} || ||||관개는 5,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농업의 핵심적인 요소로 기능해 왔으며 역사를 거쳐간 수많은 문명의 경제와 문화의 토대를 형성했습니다. 상수 관개가 처음 이용된 곳은 메소포타미아였으며 강이나 작은 호수와 이어진 협소한 수로를 통해 물이 흘러 들어왔습니다. 이집트에서는 제12왕조 시대의 여러 파라오가 오아시스를 사용하여 가뭄 시의 관개를 위한 물을 비축했습니다. 고대 누비아인들은 기원전 2000년경에 물을 농경지로 끌어올 수 있는 수차 장치를 고안해 냈습니다. 프레-콜럼비아 시대의 시리아, 중국과 인도에서는 계단식 관개가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서에 기록된 최초의 수력 공학자는 중국의 손숙오(기원전 6세기)와 [[서문표]](기원전 5세기)였습니다. 둘은 쓰촨성 지역의 황제들이 관장하는 대규모 관개 공사에 참여했습니다. '사천로'에서 끌어 올린 물은 인력이나 황소를 통해 동력을 공급받는 체인 펌프를 이용하여 수로로 흘러 내려갔으며, 이는 고대 공학의 경이로움을 보여주었습니다. 공중 정원의 정확한 관개 방식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시에 고안된 노리아(noria)가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노리아는 주변에 물동이를 메단 수차였습니다. 흐르는 물의 힘으로 수차가 돌기 시작하면 위쪽의 물동이는 중력으로 인해 구유나 수로에 쏟아졌습니다. 비워진 물동이는 수차가 계속 돌면서 다시 물이 채워졌습니다. 수차에는 근력이 요구되지 않았으므로 이는 매우 획기적인 장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관개가 새로운 발달 단계에 접어든 것은 1,000년 후였습니다. 이때 개발된 풍차는 물을 위쪽의 송수관이나 배수관으로 끌어올려 농경지로 흐르도록 고안되었습니다. 이 기술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덕분에 인구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인구의 증가는 추가적인 관개 수요로 이어졌고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24만 제곱킬로미터의 토지에 관개 시설이 적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 {{{+2 {{{#fff '''설명'''}}}}}} || || 인용구 ||'''"수천 명의 사람이 사랑 없이 살아왔지만, 그 누구도 물 없이 살 수는 없었다."''' - W. H. 오든[* Wystan Hugh Auden 1907~1973. [[영국]]의 시인] '''"지역의 숲을 가꾸거나 관개를 하는 사람은 그 지역을 점령한 사람만큼 존경받는 것이 마땅하다."''' - [[조지프 존 톰슨|존 톰슨 경]]|| || 선행 기술 ||'''[[#s-2.1.1|도예]]''' || || 후속 기술 ||없음|| || 유레카 조건 ||자원 위에 농장을 일구십시오.|| || 유레카 문구 ||자원의 경작을 통해 농작물 재배 시 관개의 중요성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 || 효과 ||건설자가 습지를 제거할 수 있게 됩니다. 건설자가 [[파일:external/vignette3.wikia.nocookie.net/Bananas_%28Civ6%29.png|width=15]] '''[[문명 6/자원 #s-2.5|바나나]]''' 자원을 수확할 수 있게 됩니다.|| || 잠금 해제 ||건설자가 시설 '''[[문명 6/시설 #s-2.1.7|재배지]]'''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불가사의 '''[[문명 6/불가사의#s-5.1.4|공중 정원]]'''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인도|인도]]''': 건설자가 고유 시설 '''[[문명 6/등장 문명/인도 #s-2.3|계단식 우물]]'''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바빌론|바빌론]]''': 물레방앗간을 대체하는 고유 건물 '''[[문명 6/등장 문명/바빌론#s-2.3|팔굼]]'''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후속 테크가 없지만 많은 사치자원이 재배지를 필요로 하기에 결국에는 빨리 올려줘야 하는 기술이다. ==== [[문자]] (Writing) [anchor(문자)] ==== |||| [[파일:Writing_(Civ6).png|width=65]][br]{{{+2 {{{#fff '''문자'''}}}}}} || ||||문자는 다른 몇몇 기술과 마찬가지로 문명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문자는 기록을 남겨 기억할 수 있도록 '외부 기억 장치' 역할을 했고, 이러한 기록은 평생 동안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따라서 인간 조건의 모든 측면, 모든 사회 구조와 문화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습니다. 문자는 문명에 조직 능력을 선사해 주었고, 종교, 정부, 경제, 전쟁과 과학 전부가 조직화되었습니다. 또한 단순한 구전 설화는 문학을 통해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기원전 4000년경에 고안된 초기 형태의 문자는 조그만 그림이 물건이나 행동을 나타내는 '상형' 문자였습니다. 상형 문자는 매우 단순한 주제를 기록하기에는 충분했지만 좀 더 난해한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의 글자가 필요했습니다. 예를 들어 양의 모습을 그리기는 매우 쉽지만 피라미드에서 추락하는 양의 울음 소리는 어떻게 그려야 하겠습니까? 상형 문자, 그리고 그림이 관념을 나타내는 표의문자는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얼마 후에는 글자 하나를 이용하여 단어를 나타내는 표어문자가 고안되었습니다. 마야 문명에서는 상형 문자를 '문장'으로 조합하여 복잡한 의미를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중국 표어문자의 90%는 음성을 나타내는 의미상의 조합이었습니다. 미케네 그리스어, 체로키어, 에티오피아어와 일부 크리올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에서는 음절 문자가 고안되었습니다. 음절 문자에서는 하나의 표기 기호가 구두 음절을 나타냈고, 덕분에 야만인들은 쉽고 간편하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원전 2000년에 라벤트에서 사용된 셈어에서 파생된 알파벳은 전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골칫거리를 선사했습니다. 알파벳에는 기호 모음이 사용되며 각 기호는 언어의 소리를 나타냅니다. 이후 1,000년 동안 셈어에서 파생된 알파벳은 중동, 유럽, 북아프리카와 남아시아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알파벳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나머지 내용은 역사서의 '문자'를 통해 확인하면 되겠습니다.|| |||| {{{+2 {{{#fff '''설명'''}}}}}} || || 인용구 ||'''"글을 쓰는 것은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글을 쓰는 것은 생각, 아이디어, 그리고 의견을 공유하기를 바라는 인생사의 일부이다."''' - [[파울로 코엘료]] '''"작문은 쉽다네. 잘못된 단어만 줄을 그어 지우면 되니까."''' - [[마크 트웨인]] || || 선행 기술 ||'''[[#s-2.1.1|도예]]''' || || 후속 기술 ||'''[[#s-3.1.2|화폐]]''' || || 유레카 조건 ||다른 문명을 만나십시오.|| || 유레카 문구 ||다른 문명을 만나고 보니 새로운 의사소통 방법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효과 ||없음|| || 잠금 해제 ||특수지구 '''[[문명 6/특수지구와 건물 #캠퍼스|캠퍼스]]'''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캠퍼스 특수지구의 건물 '''[[문명 6/특수지구와 건물 #캠퍼스|도서관]]'''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불가사의 '''[[문명 6/불가사의#s-5.1.2|에테만앙키]]'''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포트루갈 DLC 추가). '''[[문명 6/등장 문명/한국|한국]]''': 캠퍼스를 대체하는 고유 특수지구 '''[[문명 6/등장 문명/한국 #s-2.3|서원]]'''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마야|마야]]''': 캠퍼스를 대체하는 고유 특수지구 '''천문대'''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 [[궁술]] (Archery) [anchor(궁술)] ==== ||||<:>[[파일:Archery_(Civ6).png|width=65]][br]{{{+2 {{{#fff '''궁술'''}}}}}}|| ||||궁술은 사람이 구부러진 막대에 실린 탄력성을 활용하여 끝이 날카로운 투사체를 원거리까지 빠른 속도로 발사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매우 유용한 이 기술은 사냥감이나 다른 인간을 상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궁술은 단순한 여가 활동으로 분류됩니다. 활이 처음 사용된 시기는 너무 오래되어 알 수 없지만 기원전 10,000년경에 막을 내린 구석기 시대 무렵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이 약 60,000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화살촉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날카로운 돌조각을 발견한 사례도 있으므로 확실한 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 초기 문명 대부분은 활과 화살을 사용했습니다. 활은 이집트 왕조 시대 이전부터 전쟁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시리아, 페르시아, 파르티아, 인도, 한국,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여러 고대 문명의 군대에서 궁수 부대를 운용했습니다. 궁술의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했습니다. 합판과 뿔을 섞어 만든 합성궁은 아시아에서 아라비아를 거쳐 북아프리카는 물론 유럽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장궁은 영국에서 사슴을 밀렵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되었고 슬로이스와 크레시 등지에서 가장 먼저 전투에 활용되었으며 결국 나중에는 아쟁쿠르에서 프랑스 기사도의 화신들을 학살하는 과정에서도 동원되었습니다. 곧 이어 리커브 양궁이 고안되었습니다. 양 끝이 바깥 쪽으로 살짝 굽은 리커브 양궁은 더 많은 힘을 실을 수 있게 되어 있으며 활의 장력을 높이지 않고도 화살이 먼 거리까지 도달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혼합궁에는 더 많은 힘을 실을 수 있도록 바퀴와 도르래가 추가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석궁이 있습니다. 전국시대에 중국에서 개발한 석궁은 매우 간단하고 조작이 편리하여 모든 농민이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고 몇백 년 후에는 유럽 전역에 도입되었습니다. 석궁과 소형 화기의 등장으로 인해 궁술은 사냥, 그리고 특히 전쟁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능숙하게 궁을 사용하려면 수년에 걸쳐 훈련을 거듭해야 하는 반면 머스킷총은 몇 주 안에 사용법을 익힐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 {{{+2 {{{#fff '''설명'''}}}}}} || || 인용구 ||'''"나는 공중으로 활을 쏘았네. 그 화살은 땅에 떨어졌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네"''' -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Henry Wadsworth Longfellow 1807~1887. [[미국]]의 시인] '''"네 화살이 목표를 향해 날아가는 동안 악의 무리가 혼란에 빠지기를 빈다."''' - [[조지 칼린]] || || 선행 기술 ||'''[[문명 6/과학 기술 #s-2.1.2|목축업]]''' || || 후속 기술 ||'''[[문명 6/과학 기술 #s-3.1.3|기마술]]''' || || 유레카 조건 ||투석병사로 적 유닛을 처치하십시오.|| || 유레카 문구 ||투석병으로 적을 처치한 후, 더 강력한 원거리 무기를 원하게 되었습니다.|| || 효과 ||없음|| || 잠금 해제 ||원거리 유닛 '''[[문명 6/유닛 #s-3.2|궁수]]'''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불가사의 '''[[문명 6/불가사의#s-5.1.5|아르테미스 신전]]'''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누비아|누비아]]''': 궁수를 대체하는 고유 유닛 '''[[문명 6/등장 문명/누비아 #s-2.2|피타티 궁수]]'''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마야|마야]]''': 궁수를 대체하는 고유 유닛 '''훌체'''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 과학 80 === ==== [[암석#s-5|석조기술]] (Masonry) [anchor(석조기술)] ==== |||| [[파일:external/vignette2.wikia.nocookie.net/Masonry_%28Civ6%29.png|width=65]][br]{{{+2 {{{#fff '''석조기술'''}}}}}} || ||||석조기술이란 블럭, 벽돌이나 콘크리트를 모르타르로 굳혀 실용적인 주택이나 사원 및 궁전을 건축하는 기술을 의미하며, 모르타르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건조식' 석조기술이라 칭합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르게는 기원전 4000년경부터 석조기술을 익히기 시작했으며 나일 강 언덕에서 채집된 석회석, 사암, 화강암과 현무암을 사용하여 사원, 궁전, 피라미드와 여러 기념물을 건축했습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아시리아인들은 석재를 쉽게 공수할 수 없었으며, 대신 풍부한 점토를 햇볕에 건조하여 벽돌로 만들었습니다. 바벨로니아인들 역시 벽돌을 사용했으며 석회와 피치로 만든 모르타르를 이용하여 벽돌을 고정했습니다. 하라파(현재의 파키스탄)는 기원전 2600년경에 벽돌과 석고 모르타르(구운 석고)를 이용하여 건설되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콘크리트를 고안했으며, 이 탁월한 모르타르를 사용하여 수많은 석조 및 대리석 건물들을 쌓아 올렸습니다. 심지어 콘크리트는 그 자체가 건축 자재로 이용 가능할 정도였습니다. 이들은 '콘크리트 혁명'을 통해 원시적인 소재로는 건축이 불가능했던 기념비적인 구조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기원전 300년부터 로마가 몰락할 때까지 콘크리트는 도로를 포장하고 수로를 연결하고 콜리세움을 지지하기 위한 용도로 계속해서 사용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기술처럼 암흑기 시대에 사라졌던 석조기술은 1300년대에 유럽인들이 다시 콘크리트를 모르타르로 이용하여 성을 짓기 시작하면서 부활했습니다. 콘크리트 사용은 지역 전역에 확산되었으며, 콘크리트를 다루는 기술자들은 물론 공제 조직의 은밀한 구성원까지 '석공'으로 분류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석재를 다루는 기술자들은 자신들을 기능공으로부터 차별화하기 위해 '석수'라는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이들은 간혹 근데 기념물이나 전 세계 수도의 기념비 건축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평상시에는 주로 묘석을 깎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 {{{+2 {{{#fff '''설명'''}}}}}} || || 인용구 ||'''"우리는 각기 돌을 조각하거나, 기둥을 세우거나, 스테인드글라스 조각을 잘라내면서, 우리보다 훨씬 큰 그 무언가의 건축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 [[에이드리엔 클라크슨]] '''"파괴적인 전쟁이 조각들을 무너뜨리고, 소요가 석공들의 작품을 뽑을 때도."''' - [[윌리엄 셰익스피어]]|| || 선행 기술 ||'''[[#s-2.1.3|채광]]''' || || 후속 기술 ||'''[[#s-3.2.3|건축]]''' || || 유레카 조건 ||채석장 1곳을 건설하십시오.|| || 유레카 문구 ||채석장에서 자원을 채취하였고 이를 가공할 석공이 필요합니다.|| || 효과 ||건설자가 [[파일:Stone_(Civ6).png|width=15]] '''[[문명 6/자원 #s-1.7.1|석재]]''' 자원을 채석할 수 있게 됩니다.|| || 잠금 해제 ||지원 유닛 '''[[문명 6/유닛 #s-7.5.1|공성추]]'''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도심부 특수지구의 건물 '''[[문명 6/특수지구와 건물 #도심부|고대 성벽]]'''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불가사의 '''[[문명 6/불가사의#s-5.1.4|피라미드]]'''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중국|중국]]''': 건설자가 고유 시설 '''[[문명 6/등장 문명/중국 #s-2.3|만리장성]]'''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운하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 [[청동|청동 기술]] (Bronze Working) [anchor(청동 기술)] ==== |||| [[파일:external/vignette3.wikia.nocookie.net/Bronze_Working_%28Civ6%29.png|width=65]][br]{{{+2 {{{#fff '''청동 기술'''}}}}}} || ||||영어 'bronze'는 그리스어 'brontesion' 또는 페르시아어 'biranj'에 기원을 둔 중세 라틴어 'bronzium'이 변화하여 생성된 이탈리아어 'bronzo'에서 파생된 프랑스어 'bronze'에서 분리된 단어이며, 한국에서는 이를 '청동'이라 부릅니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을 섞어 만든 단순한 합금이며, 강도, 광택이나 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간혹 다른 금속에 첨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간은 청동 '가공'을 통해 내구성과 미적 요소를 겸비한 다양하고 유용한 각종 물건(냄비나 검 등)들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청동 유물은 기원전 5000년에 형성된 이란의 묘지에서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의 청동은 주석이 아닌 비소를 섞어 만든 합금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주석 청동이 비소 청동보다 재질이 탁월하다는 사실이 발견되었고, 더 이상 합금 과정에서 발생하는 연기에 작업자가 사망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가장 오래된 주석 청동 유물(기원전 4500년경)은 세르비아의 빈카 유적지에서 발견되었고, 중국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도 초기의 특이한 청동 유물이 확인되었습니다. 구리와 주석의 매장층이 겹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따라서 접근이 용이한 지상 광산에서 주석을 수출하는 산업은 여러 지역의 주요 경제 요인을 자리잡았습니다. 유럽에서는 콘월의 광산에서 채집된 주석이 멀게는 지중해 동부의 페니키아까지 수출되었습니다. 청동은 매우 유용할 뿐만 아니라 그 가치도 높았습니다. 오죽하면 문명의 한 시대를 통틀어 '청동기 시대'로 명명하였겠습니까? 유럽에서는 금고 근처의 유적지에서 방대한 양의 각종 청동 도구가 발굴되었으며 중국의 왕릉과 귀족층의 무덤에서는 기원전 1650년에 예식 및 장례용품으로 사용했던 청동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비록 청동은 철보다 단단하고 상처를 덜 입지만 상대적으로 구하기가 어렵고 가공 시에도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됩니다. 따라서 청동기 시대는 철기 시대에 자리를 내주게 됩니다.|| |||| {{{+2 {{{#fff '''설명'''}}}}}} || || 인용구 ||'''"청동은 외형의 거울이고, 포도주는 마음의 거울이다."''' - [[아이스퀼로스|아이스킬로스]] '''"저도 오래 남을 유산을 만들고 싶습니다. 청동은 수천 년을 견딜 수 있죠."''' - 리처드 맥도널드[* Richard McDonald 1909~1998. [[맥도날드]] 창업자 맥도날드 형제 중 동생] || || 선행 기술 ||'''[[#s-2.1.3|채광]]''' || || 후속 기술 ||'''[[#s-3.1.4|철제 기술]]''' || || 유레카 조건 ||야만인 유닛 3개를 처치하십시오.|| || 유레카 문구 ||야만인과 전투를 해 보니 더 강한 무기의 필요성이 강조됩니다.|| || 효과 ||'''[[파일:Iron_(Civ6).png|width=17]] [[문명 6/자원 #s-4.2|철]]''' 자원이 지도 상에 드러납니다. 건설자가 '''[[문명 6/지형 #s-2.5|열대우림]]'''을 개간할 수 있게 됩니다.|| || 잠금 해제 ||대기병 유닛 '''[[문명 6/유닛 #s-3.5|창병]]'''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특수지구 '''[[문명 6/특수지구와 건물 #주둔지|주둔지]]'''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주둔지 특수지구의 건물 '''[[문명 6/특수지구와 건물 #주둔지|병영]]'''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그리스|그리스]]''': 창병을 대체하는 고유 유닛 '''[[문명 6/등장 문명/그리스 #s-2.2|장갑보병]]'''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줄루|줄루]]''': 주둔지를 대체하는 고유 특수지구 '''[[문명 6/등장 문명/줄루 #s-2.3|이칸다]]'''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마케도니아|마케도니아]]''': 병영을 대체하는 고유 건물 '''[[문명 6/등장 문명/마케도니아 #s-2.4|바실리코이 파이데스]]'''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 [[바퀴(도구)|바퀴]] (Wheel) [anchor(바퀴)] ==== |||| [[파일:external/vignette2.wikia.nocookie.net/Wheel_%28Civ6%29.png|width=65]][br]{{{+2 {{{#fff '''바퀴'''}}}}}} || ||||바퀴는 인위적으로 제작된 원 형태의 물건이며 가운데에는 차축을 위한 구멍이 있습니다. 바퀴 및 차축 조합은 문명이 기반한 '여섯 가지의 단순한 기계' 중 하나로 손 꼽힙니다. 차량에 바퀴를 사용하면 무거운 물체를 멀리까지 쉽게 운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차축이 달린 바퀴는 운전대, 돌림판, 플라이휠과 비롯하여 삶에 안락함을 선사하는 수많은 각종 도구의 바탕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바퀴가 처음 고안된 것은 신석기 시대 말이었고, 청동기 시대에도 여러 가지의 새로운 기술들이 도래했습니다. 고고학적 기록에 따르면 바퀴 달린 차량은 시의적절하게도 기원전 4000년에 메소포타미아, 카프카스 및 중부 유럽에서 비슷한 시기에 처음 등장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마차가 등장한 기원전 1200년부터 바퀴가 존재했습니다. 최초의 바퀴는 원목으로 제작되었으며 둥근 형태를 갖추기 위해 끝이 둥근 널빤지가 연결되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돌과 점토(하랍파 및 인도스 계곡)가 바퀴 제작에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바퀴살이 달린 바퀴는 기원전 2000년경에 소아시아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대부분이 마차에 사용되었습니다. 나중에 개발된 개선품으로는 철축과 테두리, 기름을 칠한 차축과 용수철 등의 완충 장치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북미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바퀴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는 올메크 시대의 바퀴, 그리고 바퀴가 달린 어린이용 장난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수레와 마차를 끌 수 있을 만큼 몸집이 큰 가축이 존재하지 않았고 바퀴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다른 곳에서는 바퀴살이 달린 바퀴가 대포에서 기차에 이르는 온갖 장치에 설치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바퀴는 철선 바퀴와 공기식 타이어가 개발된 1870년대까지 별다른 변화 없이 유지되었습니다.|| |||| {{{+2 {{{#fff '''설명'''}}}}}} || || 인용구 ||'''"때때로 바퀴가 천천히 돌 수 있지만, 돌고는 있어요."''' - 론 마이클스[* Lorne Michaels 1944~. 캐나다 태생의 미국 텔레비전 프로듀서] '''"굳이 새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한번 조정해 보세요."''' - 앤서니 디앤젤로[* Anthony Deangelo 1995~. 미국의 아이스하키 선수] || || 선행 기술 ||'''[[#s-2.1.3|채광]]''' || || 후속 기술 ||'''[[#s-3.2.4|공학]]''' || || 유레카 조건 ||자원을 채굴하십시오.[* 자원 위에 광산을 지어야 한다. 문명 6의 질 나쁜 번역 중 하나. 처음 보면 자원을 수확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채굴'이니 광물 자원을 수확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등.]|| || 유레카 문구 ||채광 작업을 통해 차축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은 바퀴일까요?|| || 효과 ||없음|| || 잠금 해제 ||중기병 유닛 '''[[문명 6/유닛 #s-3.3|중전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도심부 특수지구의 건물 '''[[문명 6/특수지구와 건물 #도심부|물레방앗간]]'''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이집트|이집트]]''': 중전차를 대체하는 고유 유닛 '''[[문명 6/등장 문명/이집트 #s-2.2|마르야누 전차 궁병]]'''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 고전 시대 == >당신은 조촐한 시작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청동을 버리고 철을 활용하여, 칼과 말로 통치하십시오. 하늘은 비밀을 드러내기 시작하였고, 우리의 마음에 희망을 주며 바다 건너 땅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 과학 120 === ==== 천문 항법 (Celestial Navigation) [anchor(천문 항법)] ==== |||| [[파일:external/4a9dec438a6a99388d7617479efed4bd770a0bafeb0f7d1f4a796665649f228f.png|width=65]][br]{{{+2 {{{#fff '''천문 항법'''}}}}}} || ||||천문 항법은 천체(태양, 달, 행성 또는 별)와 특정 수평선 지점 간의 각도를 측정하여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방법입니다. 이는 외양으로 나서는 초기의 선원들에게 매우 유용한 기술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수평선 위로 보이는 태양의 고도를 다른 천체의 고도와 비교하면 배의 위도를 파악할 수 있었고, 마찬가지로 북극성이나 서쪽 또는 동쪽 수평선 근처의 별에 대한 각도를 측정하면 경도를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형태의 천문 항법은 폴리네시아의 항해술입니다. 폴리네시아의 '여행자'들은 사계절에 따른 천체의 위치를 모두 기억하여 끝없는 대양을 정상적으로 횡단할 수 있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천측항법이 일곱 가지의 기계 예술 중 하나로 간주되었고, 지중해에서는 무슬림 상인들에 의해 처음으로 항해용 [[아스트롤라베]]가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무슬림 여행자들은 아스트롤라베를 사용하여 키블라를 찾아내고 예배 시간을 파악할 수도 있었습니다. 한편 중국에서 처음 사용된 자기 나침반은 문명 전체로 확산되었습니다. '추측 항법'을 이용할 경우 배가 좌초되거나 침몰하거나 길을 잃어 굶주리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스트롤라베와 나침반의 사용은 '대항해 시대'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마젤란은 이러한 도구와 당시의 위대한 선장들이 공통적으로 지녔던 천부적인 방향 감각을 토대로 최초의 세계 일주에 성공했습니다. 결국 라디오, 레이더, 위성 지도 등으로 인해 항해에 더욱 간편하고 안전하게 임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에도 선원들은 천체를 관찰하여 항로를 파악하고 암초를 피하고 있습니다.|| |||| {{{+2 {{{#fff '''설명'''}}}}}} || || 인용구 ||'''"내가 바라는 건 오직 범선 한 척과 길을 인도해줄 별 하나."''' - 존 메이스필드[* John Masefield 1878~1967. 영국의 시인] '''"별을 보고 항로를 정해라, 지나가는 모든 배의 등불 말고."''' - [[오마 브래들리]]|| || 선행 기술 ||'''[[#s-2.2.1|항해]]''', '''[[#s-2.2.2|점성술]]''' || || 후속 기술 ||없음 || || 유레카 조건 ||해양 자원 2개를 개발하십시오.|| || 유레카 문구 ||어부들은 밤하늘을 지켜보며 어떻게 항로를 잡을지 배우고 있습니다.|| || 효과 ||상인이 승선할 수 있게 됩니다. [[파일:external/vignette3.wikia.nocookie.net/Fish_%28Civ6%29.png|width=15]] '''[[문명 6/자원 #s-2.3|물고기]]'''와 [[파일:external/vignette2.wikia.nocookie.net/Crabs_%28Civ6%29.png|width=15]] 게 자원을 수확할 수 있게 됩니다.|| || 잠금 해제 ||특수지구 '''[[문명 6/특수지구와 건물 #항만|항만]]'''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항만 특수지구의 건물 '''[[문명 6/특수지구와 건물 #항만|등대]]'''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불가사의 '''[[문명 6/불가사의#s-5.2.1|알렉산드리아 등대]]'''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영국|영국]]''': 항만을 대체하는 고유 특수지구 '''[[문명 6/등장 문명/영국 #s-2.4|영국 해군 기지창]]'''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페니키아|페니키아]]''': 항만을 대체하는 고유 특수지구 코톤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 [[화폐]] (Currency) [anchor(화폐)] ==== |||| [[파일:Currency_(Civ6).png|width=65]][br]{{{+2 {{{#fff '''화폐'''}}}}}} || ||||그 자체로는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화폐는 실제 금액을 나타내며, 기원전 2000년경부터 문명의 골칫거리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수메르에서는 사원에 저장된 곡식의 소유권을 나타내기 위해 영수증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곧 자체적인 곡물 창고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각자 '저장'한 곡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작은 귀금속 조각이 여러 재화의 금액적 가치를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토판에 작성되던 영수증에 비해 훨씬 관리에도 용이하고 거래와 비축까지 가능했습니다. 이제 이러한 금속 조각을 몇 개나 보유하고 있는지에 따라 부의 척도가 갈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메소포타미아와 지중해의 교역 경제가 붕괴되기 시작한 기원전 1100년 무렵에는 화폐 유통의 개념에서 결함이 발견되었습니다. 즉, 화폐는 가치가 보장되는 경우에만 유효했습니다. 화폐 제도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은 지중해 전역에서 페니키아의 교역이 회복된 이후였으며, 이번에는 페니키아와 그리스의 도시 국가 군주들이 이를 지원했습니다. 당시의 주요 경제국 중 대부분은 주로 금, 은이나 구리로 만든 화폐를 주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역은 번창했고 세금 징수가 이루어졌으며 은행업이 발전하고 '빚'을 진다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 탄생했습니다. 지폐를 '발명'한 것은 중국인들이었습니다. 원래는 도매상점의 차용증 형태였던 중국 지폐는 상인들에 의해 선호되었지만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송나라에서는 정부에서 독점한 소금 생산업을 토대로 더 많은 공용 지폐를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폐가 마침내 표준화되어 왕국 전체에서 허용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3세기였습니다. 같은 시기에 이슬람 국가들은 이러한 지폐 제도를 도입하여 안정적인 고가치의 화폐 제도(디나르)를 구축했고, 그 결과 활기 넘치는 활발한 화폐 경제가 실현되었습니다. 따라서 신용 거래, 수표, 예금 계좌, 신탁, 환율장을 비롯한 '근대' 경제의 각종 이기를 처음으로 실현한 이들은 무슬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 {{{+2 {{{#fff '''설명'''}}}}}} || || 인용구 ||'''"부는 단지 거대한 재산을 소유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몇 가지의 소망을 가짐에 있습니다."''' - 에픽테토스[* Epictetus 55~135.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면, 적어도 안락 속에서 불행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 헬렌 걸리 브라운[* Helen Gurley Brown 1922~2012. 미국의 작가]|| || 선행 기술 ||'''[[#s-2.2.4|문자]]''' || || 후속 기술 ||'''[[#s-3.2.2|수학]]''', '''[[#s-4.1.2|도제제도]]''' || || 유레카 조건 ||교역로를 만드십시오.|| || 유레카 문구 ||교역로를 통해 물물교환이 이뤄지고 있지만, 교환의 수단이 있다면 무역을 더욱 융통성 있게 해 줄 것입니다.|| || 잠금 해제 ||특수지구 '''[[문명 6/특수지구와 건물 #상업 중심지|상업 중심지]]'''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상업 중심지 특수지구의 건물 '''[[문명 6/특수지구와 건물 #상업 중심지|시장]]'''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말리|말리]]''': 상업 중심지를 대체하는 고유 특수지구 '''[[문명 6/등장 문명/말리 #s-2.3|수구바]]'''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폴란드|폴란드]]''': 시장을 대체하는 고유 건물 '''[[문명 6/등장 문명/폴란드 #s-2.3|수키엔니체]]'''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 기마술 (Horseback Riding) [anchor(기마술)] ==== |||| [[파일:external/vignette3.wikia.nocookie.net/Horseback_Riding_%28Civ6%29.png|width=65]][br]{{{+2 {{{#fff '''기마술'''}}}}}} || ||||고고학자들은 드네프르 강과 돈 강 유역의 분지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증거를 토대로 기원전 4000년경부터 인간이 말에게 재갈을 물렸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해당 지역에서 발견된 말의 뼈대를 보면 말이 재갈을 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당시에 승마가 존재했음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등자와 안장을 처음으로 개발한 이들은 대초원의 스키타이인들로 알려져 있지만 역사적 주장에는 아직까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또한 그리스의 역사학자들은 제일 먼저 말을 거세하여 온순해지게 하고 쉽게 다룰 수 있도록 한 이들이 스키타이인들이라고 주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청동기 시대의 말은 현재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았습니다. 따라서 혹자들은 편안하게 앉아 원거리를 여행하기에는 당시의 말이 너무 작았고, 대신 마차나 전차를 끌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로마 기병대에서 사용하던 말에서 갈라져 나온 펠 포니는 온전한 성인을 쉽게 실어 나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와 로마가 전장으로 나서기 한창 전에도 기병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경기병은 전투의 승리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며 대부분 전투에서 패배하여 도주하는 병사들을 학살하기 위한 용도로 활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중세 시대에는 중갑을 두른 기사들이 유럽의 전쟁터를 지배했습니다. 또한 극동의 일본에서는 사무라이들이 수백 년에 걸쳐 말을 타고 전투에 임했지만 대부분은 활을 사용했습니다. 실제로 기병 궁수 부대는 중앙아시아에서 약 천년 동안 가장 흔했던 기병 부대의 유형이었습니다. 경이로운 종마를 타고 전장을 누비던 아라비아인들은 중동, 북아프리카는 물론 인도와 유럽까지 이슬람을 포교했습니다. 결국 승마는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현지의 말 품종이 멸종된 아메리카의 경우는 예외입니다. 승마는 1493년의 콜럼버스 항해를 필두로 시작된 유럽 탐험가들과 정복자들의 항해를 통해 북미에 유입되었습니다. 머지 않아 평원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백인 정착민들을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 {{{+2 {{{#fff '''설명'''}}}}}} || || 인용구 ||'''"안장 위에서 보낸 시간은 결코 낭비한 시간이 아니다."''' - [[윈스턴 처칠]]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은 일반 사람보다 신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더 큽니다."''' - [[존 스타인벡]]|| || 선행 기술 ||'''[[#s-2.2.5|궁술]]''' || || 후속 기술 ||'''[[#s-3.2.3|건축]]''', '''[[#s-4.1.3|도제제도]]''', '''[[#s-4.2.2|등자]]''' || || 유레카 조건 ||목장 1개를 일구십시오.|| || 유레카 문구 ||동물을 목장에서 가축화하였으니 이제 기마술을 배울 때가 되었습니다.|| || 효과 ||없음|| || 잠금 해제 ||경기병 유닛 '''[[문명 6/유닛 #s-3.4|기마병]]'''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주둔지 특수지구의 건물 '''[[문명 6/특수지구와 건물 #주둔지|마구간]]'''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몽골|몽골]]''': 마구간을 대체하는 고유 건물 오르두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마케도니아|마케도니아]]''': 기마병을 대체하는 고유 유닛 '''[[문명 6/등장 문명/마케도니아 #s-2.2|헤타이로이]]'''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스키타이|스키타이]]''': 고유 유닛 '''[[문명 6/등장 문명/스키타이 #s-2.2|사카 궁기병]]'''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인도|인도]]''': 고유 유닛 '''[[문명 6/등장 문명/인도 #s-2.2|바루]]'''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 철제 기술 (Iron Working) [anchor(철제 기술)] ==== |||| [[파일:external/vignette4.wikia.nocookie.net/Iron_Working_%28Civ6%29.png|width=65]][br]{{{+2 {{{#fff '''철제 기술'''}}}}}} || ||||철이 처음 사용된 것은 기원전 4000년경이지만 처음으로 광석을 추출하고 제련하고 무기로 만들어 철기 시대를 시작한 것은 기원전 1200년의 히타이트족이었습니다. 같은 시기에는 아시아에서 철기 제작이 발달했고 기원전 60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의 철기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두 지역을 중심으로 철 무기 제작이 전 세계로 확산되었지만 원주민들이 계속해서 돌로 만든 무기를 고집한 아메리카의 경우는 예외였습니다. 철기 제작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으며 이에 따라 생산물이 연철과 주철로 나뉩니다. 연철은 절반을 녹여 만든 용접 가능한 합금으로, 강성, 연성, 내부식성을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연철은 망치로 때려 온갖 형태로 변형시킬 수 있으며 중세 시대에는 유럽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철기 제작은 갑옷, 무기와 도구뿐만 아니라 문과 창문을 보호하기 위한 철창에도 사용되었으며 심지어는 캔터베리 대성당, 윈체스터 대성당과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의 장식에도 활용되었습니다. 또한 프랑스인들은 철을 녹여 발코니와 계단 난간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주철은 철광석을 녹인 후 주형에 부어 제작됩니다. 주철을 가장 먼저 사용한 중국인들은 주로 화려한 탑과 여러 높은 건물들을 지지하기 위한 기둥과 막대를 제작하기 위해 주철을 사용했습니다. 머지 않아 중국인들은 주철을 사용하여 우수한 화살촉과 포탄을 제작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되었습니다. 서양에서 주철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경으로, 관련 기술이 비단길을 통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넘어갔습니다. 유럽인들 역시 주철이 대포, 소총과 총탄을 제작하는 데 이상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산업혁명 시대에는 구조 공학자들이 주철 교각을 건축하거나 고층건물의 뼈대로 사용하는 등 좀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주철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 {{{+2 {{{#fff '''설명'''}}}}}} || || 인용구 ||'''"주님은 우리 모두를 철로 만드십니다. 그 후에 뜨겁게 달구어 우리 중 몇몇을 강철로 연단하십니다."''' - 마리 오스몬드[* Marie Osmond 1959~. 미국의 가수] '''"모든 것에는 한계가 있다. 철이 교육받았다고 금이 되진 않는다."''' - [[마크 트웨인]]|| || 선행 기술 ||'''[[#s-2.3.2|청동 기술]]'''|| || 후속 기술 ||'''[[#s-4.1.3|기계]]'''|| || 유레카 조건 ||철광산 1곳을 건설하십시오.|| || 유레카 문구 ||철광석의 안정된 확보로 더욱 좋은 무기와 튼튼한 갑옷을 만들 수 있습니다.|| || 효과 ||없음|| || 잠금 해제 ||근접 유닛 '''[[문명 6/유닛 #s-3.1|검사]]'''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불가사의 '''[[문명 6/불가사의#s-5.2.11|게벨 바르칼]]'''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골|골]]''': 산업구역을 대체하는 고유 특수지구 '''오피둠'''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로마|로마]]''': 검사를 대체하는 고유 유닛 '''[[문명 6/등장 문명/로마 #s-2.2|군단병]]'''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마케도니아|마케도니아]]''': 검사를 대체하는 고유 유닛 '''[[문명 6/등장 문명/마케도니아 #s-2.2|히파스피스트]]'''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콩고|콩고]]''': 검사를 대체하는 고유 유닛 '''[[문명 6/등장 문명/콩고 #s-2.2|은가오 음베바]]'''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페르시아|페르시아]]''': 검사를 대체하는 고유 유닛 '''[[문명 6/등장 문명/페르시아 #s-2.2|불멸자]]'''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확률은 낮지만, 이미 개발된 광산에서 철이 발견되어도 유레카를 얻는다. === 과학 200 === ==== [[조선업|조선]] (Shipbuilding) [anchor(조선)] ==== |||| [[파일:Shipbuilding_(Civ6).png|width=65]][br]{{{+2 {{{#fff '''조선'''}}}}}} || ||||조선이라 하면 선박을 제작하는 분야를 의미합니다. 조선공은 기록된 역사 이전의 시대에 존재한 직업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고고학적 기록에 따르면 인간은 약 120,000년 전에 직접 만든 배를 타고 아시아에서 보르네오까지 항해한 것으로 추정되며 약 50,000년 전에는 뉴기니와 호주까지 도달했습니다. 기원전 4000년에는 이집트인들이 목판을 이용하여 선체를 제작했고 이를 나무못으로 고정한 후 피치를 발라 물이 새지 않도록 했습니다. 기원전 2500년경에는 대양 너머 인도의 하랍파인들이 최초의 조선소를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페네키아[* 페니키아], 그리스와 카르타고는 조선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지만 이들이 보유한 대부분의 지식은 '암흑기' 시대에 대부분 손실되었습니다. 바이킹족을 제외하면 유럽인들은 별다른 기술이나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송나라와 명나라 시대에는 조선 분야가 전성기를 누렸고, 이들이 만든 정크선과 군함이 당시 최대의 항구들을 가득 메웠습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바스라와 알렉산드리아의 조선 사업이 번창을 누렸고, 이들이 생산한 다우 배와 펠루카는 동아시아에서 아프리카 땅끝으로 이어지는 교역 항로를 끊임없이 누볐습니다. 유럽인들이 세계를 정복하기 시작한 대항해 시대에는 조선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 요구되었습니다. 조선소는 베네치아의 군수창고와 같은 대형 산업 단지로 거듭났고, [[카락|카라크선]]과 같이 규격화된 설계를 갖춘 선박을 단 몇 주, 심지어는 며칠 이내에 완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는 여전히 높은 비용이 요구되는 조선소에서 기본적이고 표준화된 계획에 따라 배가 제작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영국인들은 전 세계 곳곳에 왕립 조선소를 건설하여 원대한 해양 산업을 지원했습니다. 산업혁명 시대에는 수백 년 만에 처음으로 선박 설계 및 소재에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결국 새로운 방식은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습니다. 그레이트이스턴 호와 타이타닉 호처럼 철과 강철로 된 선체를 갖춘 대형선들과 근대 시대의 [[드레드노트]]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조선이 반드시 광활한 조선소에서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 {{{+2 {{{#fff '''설명'''}}}}}} || || 인용구 ||'''"나는 배를 침수하여 침몰시킬 수 있는 어떤 조건도 상상할 수 없다. 현대 조선술은 그런 위험을 초월했다."''' - [[에드워드 스미스|E.J. 스미스 선장]], [[RMS 타이타닉]] '''"선원과 저승 사이에는 널빤지 하나 빼고는 아무것도 없다."''' - 토머스 기번스 || || 선행 기술 ||'''[[#s-2.2.1|항해]]''' || || 후속 기술 ||'''[[#s-5.1.1|지도 제작]]''', '''[[#s-5.1.2|대량 생산]]''', '''[[#s-4.1.4|지지대]]''' || || 유레카 조건 ||갤리 유닛 2개를 보유하십시오.|| || 유레카 문구 ||갤리 대대의 제작으로 더 큰 함선의 제작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 효과 ||모든 지상 유닛이 승선할 수 있게 됩니다.|| || 잠금 해제 ||해상 원거리 유닛 '''[[문명 6/유닛 #s-4.2|사단노선]]'''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불가사의 '''[[문명 6/불가사의#s-5.2.2|거신상]]'''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인도네시아|인도네시아]]''': 건설자가 고유 시설 '''[[문명 6/등장 문명/인도네시아 #s-2.3|캄풍]]'''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비잔틴|비잔틴]]''': 사단노선을 대체하는 고유 유닛 '''쾌속 목조 범선'''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선박 관련 기술에 하필이면 저런 인용문이라니-- ==== [[수학]] (Mathematics) [anchor(수학)] ==== ||||<:>[[파일:Mathematics_(Civ6).png|width=65]][br]{{{+2 {{{#fff '''수학'''}}}}}}|| ||||'수학(mathematics)'이란 단어는 '지식, 연구 또는 학습'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mathema'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수학이 수량, 측량, 구조, 논리 및 변화에 중점을 둔 '과학의 과학'이란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아주 적절한 명칭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혹자들은 수학이 공간, 도형, 관계, 관점 및 프랙탈에 초점을 둔 '예술의 예술'이라고도 주장합니다. 물론 수학과 음악 간의 관계는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술이든 과학이든, 오늘날 대부분의 영역이 수학에 바탕을 두거나 수학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수학은 지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인류의 시조가 활동한 시점부터 존재했습니다. 즉, 2개의 바나나보다는 4개의 바나나가 더 낫다는 사실을 깨달은 원시인들은 더 많은 바나나를 얻기 위해 이웃을 몽둥이로 두들겨 팼습니다. 수메르인들은 정교한 산술을 보유했으며, '60진법'과 근대의 '10진법'을 함께 사용했습니다. 60진법 체계는 시간을 추적하기 위한 용도로 유지되었으며, 1분은 60초로, 1시간은 60분으로 나뉘었습니다. 세금과 교역을 관리하고 거대한 피라미드와 기념물을 설계해야 했던 이집트인들은 중기왕국 시대에 숫자 표기법을 고안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600년부터 기원전 300년까지 수학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에 나섰고 이를 수학과 기하학(도형 및 면적에 대한 연구)으로 구분했습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들이 수학을 현실과 분리하여 추상적인 개념으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증명과 정리라는 관념을 피타고라스의 정리 및 무리수 등으로 발전시켰다는 사실입니다. 계속해서 진화한 수학은 오랜 세월 동안 학생들의 골머리를 썩여 왔고, 무슬림인들은 대수학을 개발했습니다. 천문학과 수학을 연구한 인도의 케랄라 학파에서는 무한급수와 삼각함수를 발견했습니다. 또한 서기 600년의 인도인들은 이집트인과 달리 단순히 계산식의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실질적인 값으로서의 '0'을 고안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수학은 학문으로서의 '기하학적인'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2 {{{#fff '''설명'''}}}}}}|| ||<:>인용구 ||'''"수학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주변에 모든 것이 수학입니다. 주변에 모든 것이 숫자입니다."''' - 샤쿤탈라 데비[* Shakuntala Devi 1929~2013. [[인도]]의 저술가] '''"만약 내가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면, 플라톤의 충고에 따라 수학부터 시작할 것이다."''' - [[갈릴레오 갈릴레이]]|| || 선행 기술 ||[[#s-3.1.2|화폐]]|| || 후속 기술 ||[[#s-4.1.2|군사 전술]], [[#s-4.2.1|교육]], [[#s-4.1.1|지지대]]|| || 유레카 조건 ||각기 다른 전문 특수지구 3가지를 건설하십시오[*주의 이 무렵에 나오는 송수로나 댐 특수지구는 유레카 조건에서 제외된다.].|| || 유레카 문구 ||특수지구 설계사들이 기하학의 기초를 정립했습니다. 곧 완전한 수학 체계를 기대할 수 있겠죠?|| ||<:>효과 ||모든 해상 유닛이 이동력 +1을 추가로 얻습니다.|| ||<:>잠금 해제 ||특수지구 '''[[문명 6/특수지구와 건물 #외교 지구|외교 지구]]'''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외교 지구 특수지구의 건물 영사관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불가사의 '''[[문명 6/불가사의#s-5.2.3|페트라]]'''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 [[건축]] (Construction) [anchor(건축)] ==== ||||<:>[[파일:Construction_(Civ6).png|width=65]][br]{{{+2 {{{#fff '''건축'''}}}}}}|| ||||건축가와 공학가의 협의가 끝나면 도급업자가 나서게 됩니다. 농사로 인해 한 곳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생겼고, 최초의 오두막은 이곳에 직접 거주할 이들에 의해 건축되었습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도시가 성장하기 시작했고 당시의 유일한 전문 건축업자였던 벽돌공과 목수들이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노예를 포함한 이 새로운 전문 노동자층은 말 그대로 문명을 위한 초석을 마련했습니다. 건축의 역사는 도구, 자재와 에너지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집니다. 고대 문명은 간혹 나무를 이용하여 건설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흙벽돌과 석재를 통해 건축이 이루어졌습니다. 석재와 벽돌은 매우 견고했지만 대신 무겁고 연성이 부족했습니다. 이러한 재료로는 도저히 높은 구조물을 건축할 수 없었습니다. 단일 암석 또는 벽돌이거나 피라미드 형태인 경우가 아닐 경우 이러한 구조물은 조금만 흔들려도 알렉산드리아 등대처럼 무너져 내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소형 구조물에 벽돌을 사용했지만 파르테논과 같은 대형 구조물에는 대리석을 사용했습니다. 로마인들은 콘크리트를 제외한 새로운 건축 소재를 전혀 개발하지 않았지만 대신 디자인과 도구라는 측면에서는 건축 분야에 혁신을 일으켰습니다. 아치, 수차, 제재소와 각종 유용한 도구들을 만들어 낸 로마인들은 수도, 도로와 성벽은 물론 멋진 저택과 콜리세움까지 건축해 냈습니다. 한편 중국과 일본에서는 목재를 이용한 공사에 주력했으며, 가구식구조와 장부맞춤 등을 고안하여 탑과 궁궐을 지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건축에 강철이 이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도급업자들은 강력하고 내구성 높은 강철을 사용하여 높은 교각, 깊은 터널, 고층건물과 고가 도로를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전기, 가스 엔진, 아크 용접을 비롯한 새로운 에너지원 덕분에 건축이 크게 수월해 졌습니다.|| ||||<:>{{{+2 {{{#fff '''설명'''}}}}}}|| ||<:>인용구 ||'''"마음으로 창조하고 지혜로 만들어라."''' - 크리스 자미 '''"우주의 네 가지 기본 요소는 불, 물, 자갈, 그리고 비닐이다."''' - 데이브 배리[* Dave Barry 1947~. 미국의 저술가]|| || 선행 기술 ||석조기술, 기마술|| || 후속 기술 ||성, 군사 공학|| || 유레카 조건 ||물레방앗간 1곳을 건설하십시오.|| || 유레카 문구 ||일꾼들은 물레방앗간 작업을 통해 건축 업무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효과 ||없음|| ||<:>잠금 해제 ||건설자가 시설 제재소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불가사의 '''[[문명 6/불가사의#s-5.2.4|병마용]]'''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마오리|마오리]]''': 검사를 대체하는 고유 유닛 '''토아'''를 생산할 수 있기 됩니다.|| ==== [[공학]] (Engineering) [anchor(공학)] ==== ||||<:>[[파일:external/vignette4.wikia.nocookie.net/Engineering_%28Civ6%29.png|width=65]][br]{{{+2 {{{#fff '''공학'''}}}}}}|| ||||공학이란 과학을 사용하여 건물, 도로, 교각, 기계와 여러 유용한 물건들을 설계하는 학문을 의미합니다. 물론 공학도에게 묻는다면 학문보다는 '예술'이라는 단어를 선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소프트웨어 '공학'이라는 단어만 예로 들어도 이 용어가 상당히 애매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원래 공학은 전쟁 관련 '장치'를 제작하는 용도로만 사용되었지만 로마인들은 이를 각종 공공 건축에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로마 군단의 병력들은 제국 전체 걸쳐 도로, 다리와 성벽을 건축했기 때문입니다. 머지 않아 이 용어는 각종 기념물과 경이로운 건축물의 설계 및 건축은 물론 나선 추진기, 펌프, 차동 장치에도 사용되기 시작했고, 산업혁명 시대에는 전 지역의 공학자들이 [[증기 기관]]([[제임스 와트]])과 전기 장치([[토마스 에디슨]])를 제작하거나 운하, 철도, 교각, 터널, 댐과 고층건물을 건설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시기에는 2년제 및 4년제 대학 모두 공학 학위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이 중에는 1835년에 미국 렌셀러 학교에서 수여한 학위 등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곧 이어 기계, 토목, 전기, 건축, 군사, 농업, 구조화를 비롯한 각종 실용 공학 분야에 대한 '고등' 교육이 생겨났습니다. 예일 대학교에서 1863년에 수여한 최초의 공학 박사 학위는 조지아 깁스에게 수여되었습니다. 이는 신흥국이었던 미국에서 두 번째로 수여된 박사 학위였습니다. '공학'이란 단어는 군중 사이에서 엄청난 경외의 대상이 되었고, 심지어는 다른 분야에서도 이를 도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화학 공학, 소프트웨어 공학, 생체 공학, 소재 공학, 환경 공학, 항공우주 공학을 비롯한 수많은 생소한 분야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학의 진정한 핵심으로 남아있는 분야는 수학과 물리학을 활용하여 건물과 기계를 설계하는 연구가 유일합니다. 혹자는 이미 눈치 챘겠지만 공학은 순수 과학과 달리 문제 해결에 응용되며 문명이 21세기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촉진제 혹은 장애물로 기능했습니다.|| ||||<:>{{{+2 {{{#fff '''설명'''}}}}}}|| ||<:>인용구 ||'''"한 사람에게 '마법'은 다른 사람에게는 과학 기술이 될 수 있어."''' - [[로버트 A. 하인라인|로버트 하인라인]] "'''일반인은 고장나지 않은 것은 고치지 말아야 한다고 믿죠. 하지만 엔지니어는 고장나지 않은 것은 아직 특징이 충분하지 않다고 믿습니다."''' - 스콧 애덤스[* Scott Adams 1957~. 미국의 만화작가]|| || 선행 기술 ||바퀴|| || 후속 기술 ||기계|| || 유레카 조건 ||고대 성벽을 건설하십시오.|| || 유레카 문구 ||도시를 둘러싸는 성벽을 지으면서 송수로와 캐터펄트를 만드는 데 필요한 공학 원리들이 입증되었습니다.|| ||<:>효과 ||없음|| ||<:>잠금 해제 ||공성 유닛 '''캐터펄트'''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특수지구 '''송수로'''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로마|로마]]: 특수지구 송수로를 대체하는 고유 특수지구 '''목욕탕'''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불가사의 '''[[문명 6/불가사의#s-5.2.5|마추픽추]]'''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채광-석조기술-고대 성벽건설-공학 순으로 테크를 올려서 빠르게 캐터펄트를 뽑을 수 있다. 정복 승리를 목표로 하는 경우 초반에 고대 성벽이 올라가 있는 도시를 공격할 때 캐터펄트가 없으면 검사 같은 걸로 무작정 들이박다가 도시 원거리 공격에 그냥 쳐발릴(…) 수 있으므로 공성에 특화된 캐터펄트가 필수적이니 유의하자. 사회제도 방어술을 연구하고 정책카드 리메스를 이용하면 빠르게 성벽을 지을 수 있어 쉽게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마추픽추의 경우 AI들의 선호도가 매우 높다보니 마추픽추를 노린다면 고난이도에서는 빠르게 연구를 완료할 필요가 있다. 또한 마추픽추는 이동 불가능한 산 타일에 건설되므로 위대한 기술자나 진시황의 일꾼을 이용해 가속할 수 없기 때문에 비교적 낮은 난이도에서도 신경쓰지 않으면 뺏길 수 있다. == 중세 시대 == >당신은 돌로 만든 위대한 도시도 세웠고 태초의 제국들의 흥망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곧 성의 높이 치솟은 첨탑들 아래에서 당신의 용맹한 기사들과 함께 설 것입니다. 이곳에서 당신 백성의 역사가 기록될 것입니다. 어린 제자가 검의 사용을 익히듯, 당신도 성장하여 이 세상에 당신의 위치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 과학 300 === ==== 지지대(Buttress) [anchor(지지대)] ==== ||||<:> [[파일:Buttress_(Civ6).png|width=65]][br]{{{+1 {{{#fff '''지지대''' }}}}}} || || 역사적 배경 ||||지지대는 벽을 보강하는 건축 요소로 지지대가 없는 건축물보다 더 높은 벽을 쌓을 수 있게 해줍니다. 알려진 가장 오래된 지지대는 기원전 3200년경, 우루크에 있는 에안나 사원에 사용된 것입니다. 고딕 양식의 건축물에선 반원을 통해 벽의 측면으로 가해지는 힘을 지지대나 교각으로 전달해 가볍고 큰 벽의 건축이 가능하게 만들어준 플라잉 지지대의 사용이 급증했습니다. 특히 유럽의 대성당에선 건축가가 성당에 거대한 스테인드 글라스를 더하면서 이런 건축 기술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2 {{{#fff '''설명'''}}}}}}|| ||<:> 인용구 ||'''"건축가는 도시에서 그림쟁이로 소소하게 살아야 합니다. 저희 언덕 지대로 보내어 지지대와 돔을 통해 자연이 이해하는 것을 배우게 하십시오."''' - 존 러스킨 '''"이기는 자는 내가 내 하느님의 성전에서 기둥이 되게 하여 그는 다시는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 [[요한의 묵시록|요한계시록]] 3:12 || || 선행 기술 ||[[#s-3.2.1|조선]], [[#s-3.2.2|수학]] || || 후속 기술 ||[[#s-5.1.1|지도 제작]], [[#s-5.1.2|대량 생산]] || || 유레카 조건 ||고전 시대 또는 그 이후의 불가사의를 건설하십시오.|| || 유레카 문구 ||고전 세계의 불가사의를 완성했습니다. 이제 어떤 건축물을 건설하시겠습니까?|| || 효과 ||없음|| || 잠금 해제 ||특수지구 '''댐'''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주거공간 +3, 유흥에 의한 쾌적도 +1, 범람원을 따라 1개만 건설 가능). 불가사의 '''[[문명 6/불가사의#s-5.3.2|성 소피아 대성당]]'''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 군사 전술 (Military Tactics)[anchor(군사 전술)] ==== ||||<:>[[파일:external/vignette3.wikia.nocookie.net/Military_Tactics_%28Civ6%29.png|width=65]][br]{{{+2 {{{#fff '''군사 전술'''}}}}}}|| ||||중세 시대 이전의 '전략'은 적군에게 정면으로 돌진하여 상대방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국한되었으며, 가끔씩 적군의 측면을 공격하여 변화를 주거나 패배하여 도주하는 생존자들에게 언제 기병을 보내어 학살할 지를 결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아카드, 아시리아, 마케도니아, 로마, 굽타 왕조 및 한나라처럼 이러한 부분에 능숙함을 보인 문명도 존재했습니다. 이는 병법의 '7대 책략' 즉, 중앙 침투, 방어 진지 공격, 일익포위, 양익포위, 사선 대형 공격, 기만퇴각과 간접접근으로 발전했습니다. 4세기 후반에는 푸블리우스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가 '[[군사학 논고]](De re Militari)'를 집필했습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군사학 논고를 '중세시대 전쟁사의 교과서'로 평가했습니다. 총 5부로 이루어진 이 논고의 특정 부분은 전장 전술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기병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들고 모든 지형에서 활용 가능한 보병과 궁병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그의 논고는 200여 가지의 개정판으로 발표되었고 모든 유럽어로 번역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랍, 몽골과 터키는 베게티우스의 기병 전략에 크게 개의치 않았고, 유럽의 전술은 진화해야 했습니다. 전술은 전장에서 화약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패러다임의 변화를 거쳐야 했습니다. 흑백 화약 전투는 나폴레옹 전쟁 당시 정점을 찍었고 이때 확립된 전술 원칙은 기관총, 가시철사, 독가스, 탱크와 전투기의 발명으로 인해 원칙이 무력화된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전쟁사를 지배했습니다. 나폴레옹 시대의 전술은 대형, 그리고 오, 열, 부대의 변화는 물론 보병, 기병 및 포병 조합을 통한 분대 지원 및 합류 등에도 중점을 두었으며 어찌 보면 상당히 우아했습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모든 것이 바뀌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더욱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독일인들은 전격전을, 영국군은 특공작전을, 미국인들은 공수특공 작전을 개발한 반면 소비에트 연방은 가차없는 진격으로 일관했습니다. 전장이 수시로 바뀌면서 기존에 통용되던 전술은 분대와 소대 간의 총격전으로 넘어갔습니다.|| ||||<:>{{{+2 {{{#fff '''설명'''}}}}}}|| ||<:> 인용구 ||'''"전술이란 당신이 가진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 솔 앨린스키[* Saul Alinsky 1909~1972. 미국의 작가] '''"전략은 생각을 필요로 하고, 전술은 관찰을 필요로 한다."''' - [[막스 오이베]][* Max Euwe 1901~1981. [[네덜란드]]의 수학자, 제 5대 [[체스 세계 챔피언]]]|| ||<:> 선행 기술 ||[[#s-3.2.2|수학]]|| ||<:> 후속 기술 ||[[#s-5.1.2|대량 생산]]|| ||<:> 유레카 조건 ||창병으로 유닛을 처치하십시오.|| ||<:> 유레카 문구 ||창병이 효과적으로 싸우고 있지만, 적은 이제 더 강력하고 빠릅니다. 더욱 긴 무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 효과 ||없음|| ||<:> 잠금 해제 ||대기병 유닛 '''파이크병'''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불가사의 '''[[문명 6/불가사의#s-5.3.1|우에이 테오칼리]]'''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줄루|줄루]]: 파이크병을 대체하는 고유 유닛 '''임피'''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노르웨이|노르웨이]]: 중갑병을 대체하는 고유 유닛 '''광전사'''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조지아|조지아]]: 중갑병을 대체하는 고유 유닛 '''케브슈르'''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후속 연구가 없어 선호도가 떨어진다. 업데이트에서도 이 점이 개선되지 않았다. 다행히 확장팩 몰려오는 폭풍에서는 다른 연구들과 연결된 게 헝가리 데모 플레이 영상에서 확인되었다. ==== [[도제(교육)|도제]]제도 (Apprenticeship) [anchor(도제제도)] ==== ||||<:>[[파일:external/vignette2.wikia.nocookie.net/Apprenticeship_%28Civ6%29.png|width=65]][br]{{{+2 {{{#fff '''도제제도'''}}}}}}|| ||||전통적으로 도제제도는 다음 세대의 '장인들'에게 공예, 예술이나 상업을 가르치기 위한 몇 가지의 방식을 의미하며, 보통 체험식 훈련과 많은 구타가 수반되었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구타 행위가 대부분 근절되었지만 말입니다. 훈련 기간 동안 수습생은 협의된 기간(보통 3~6년) 동안 고용인과 함께 일을 배우며 노동력을 제공합니다. 이는 수습생이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길드나 상업 조합의 감독 하에 이루어졌습니다. 도제제도를 마친 수습생은 기능장이 될 수 있었고 더욱 성심을 다할 경우 직접 장인이 되어 다음 수습생들을 지도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상인이나 공예사들은 관련 직군을 자급자족식으로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전반적인 체계는 중세 시대 후반에 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장인 등급의 공예사는 도시 다수에 대한 권한을 부여받았고 도시에서는 숙식, 용돈과 정식 훈련을 대가로 젊은이를 고용할 수 있도록 인가해 주었습니다. 실제로 수습생은 도제제도 기간 동안 장인에게 몸과 영혼을 바쳐야 했지만 돈 없고 무지한 젊은이들이 발전할 수 있는 그나마 나은 방법이었습니다.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도제제도를 마친 기능장이 자유 신분으로 간주되었고, 시민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게다가 장인이 될 경우에는 사회의 존경받는 일원으로 거듭날 수도 있었습니다. 중세 및 르네상스 시대의 수습생은 대부분 남성이었지만 소수의 여성 수습생들도 재봉사, 양장사, 제화공이나 인쇄업자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물론 문명은 계속적으로 변화하는 숙련된 노동력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기술은 대부분 가족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지만 1400년대부터 인구가 급증하고 기술이 확대되면서 노동력에 대한 수요도 상승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길드 도제제도 체계는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길드는 정부 규제에 의해 와해되었고, 젊은 노동자들은 새롭게 부상한 직업 학교라는 새로운 선택권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제제도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으며, 특히 건축업에서 이러한 자취가 자주 목격됩니다. 대략 '군사 시설을 설계 및 건축하고 군사 수송 및 통신 경로를 유지하기 위한 기술 및 업무'로 정의되는 군사 공학의 역사는 로마 군단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의 각 군단에는 요새와 도로의 건설에 특화된 공병대가 배치되어 있었고, 또한 이들은 적의 견고한 도시를 짓밟는 데 필요한 캐터펄트, 공성추와 공성탑을 구축하는 임무까지 감당했습니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로마의 몰락 이후로 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군사 공학의 발전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세 시대 후기에는 포위 공성전이 요구되었고, 덕분에 군사 공학의 발전이 다시 한 번 가속화되었습니다.|| ||||<:>{{{+2 {{{#fff '''설명'''}}}}}}|| ||<:>인용구 ||'''"우린 모두 장인이 될 수 없는 기술의 제자들이라네."''' - [[어니스트 헤밍웨이]] '''"제자를 쉽게 훈련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제가 쓰는 두 가지 도구는 사례를 보여주는 것과 잔소리이죠."''' - 레모니 스니켓[* Lemony Snicket 1970~. 미국의 소설가.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로 유명.]|| || 선행 기술 ||화폐, 기마술|| || 후속 기술 ||교육, 화약|| || 유레카 조건 ||광산 3개를 건설하십시오.|| || 유레카 문구 ||다양한 유형의 광산에서 원자재가 들어오고 있고 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장인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효과 ||시설 '''광산'''이 생산력 +1을 추가로 생산합니다.|| ||<:>잠금 해제 ||근접 유닛 '''중갑병'''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특수지구 '''산업구역'''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특수지구 산업구역의 건물 '''작업장'''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독일|독일]]: 특수지구 산업구역을 대체하는 고유 특수지구 '''한자'''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내정의 핵심인 산업지구를 지을 수 있게 만드는 기술. 뉴 프론티어 패치로 검사의 다음 유닛인 중갑병이 추가되어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기술이 되었다. ==== [[기계]] (Machinery) [anchor(기계)] ==== ||||<:>[[파일:external/vignette4.wikia.nocookie.net/Machinery_%28Civ6%29.png|width=65]][br]{{{+2 {{{#fff '''기계'''}}}}}}|| ||||인간은 동물이나 스스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작업에 착수했고, 따라서 기계를 고안하게 되었습니다. 아르키메데스가 침을 튀기며 강조했던 지레, 도르래와 나사를 비롯한 초기의 단순한 기계는 기계 문명으로 진화했습니다. 후대의 그리스 사상가들은 쐐기와 바퀴/차축을 다섯 가지의 단순한 기계에 추가했습니다. 이 다섯 가지 기계는 근육 노동을 지원하는 각종 기계의 토대를 형성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헤론은 서기 50년경에 자신이 집필한 기계학(Mechanica)이라는 논문을 통해 이러한 기계들의 제조 방법 및 용도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정역학과 마찰력은 이해한 반면 동역학에 대한 이해는 크게 부족했습니다. 따라서 소위 '암흑기' 시대에는 세계 전역에서 거리와 장력 간의 교환이 역학적 에너지 생성의 주된 원칙으로 작용하는 기계를 고안해 내기 시작했습니다. 갈릴레오 갈리레이는 1600년에 발표한 '역학(Le Meccaniche)'을 통해 앞에서 언급한 기계를 포함한 단수한 기계의 온전한 동역학 이론을 확립했습니다. 그의 논문은 기계가 유용한 에너지를 생성하지 않으며, 단순히 에너지를 다른 유형으로 변환한다는 사실을 기재한 최초의 저서였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다빈치, 조르지오 마르티니 및 구텐베르크를 비롯한 여러 기술자들이 항타기와 원심 펌프에서 기중기와 인쇄기에 이르는 온갖 기계들을 고안했습니다. 수많은 기계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으며 2백 년 후에 찾아온 산업 시대에는 이러한 양상이 또 다시 재연되었습니다. 비록 기계가 제재소와 공장을 잠식하기는 시작했지만 기계에 대한 정의와 기계의 능력에 대한 문명의 관념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은 것은 바로 '증기 기관'이라는 획기적인 장치였습니다. 이 새로운 유형의 기계는 내연기관, 발전기와 디젤 엔진을 비롯한 천여 가지의 기계로 발전했습니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가동부가 존재하지 않는 컴퓨터라는 '기계'까지 존재합니다.|| ||||<:>{{{+2 {{{#fff '''설명'''}}}}}}|| ||<:>인용구 ||'''"저는 전 세계를 하나의 큰 기계라고 생각해요. 기계는 예비 부품과 함께 배달되지 않다는 거 아시잖아요. 항상 정확히 필요한 부품만 포함해서 옵니다."''' - 위고 카브레 '''"기계만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망가진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 그레고리 벤포드[* Gregory Benford 1941~. 미국의 소설가]|| || 선행 기술 ||철제 기술, 공학|| || 후속 기술 ||인쇄술|| || 유레카 조건 ||궁수 유닛 3개를 건설하십시오.|| || 유레카 문구 ||기계류를 통해 규모가 큰 원거리 부대의 전력 향상을 기대합니다.|| ||<:>효과 ||없음|| ||<:>잠금 해제 ||원거리 유닛 '''석궁병'''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정찰 유닛 '''척후병'''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지원 유닛 '''공성탑'''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불가사의 '''[[문명 6/불가사의#s-5.3.9|킬와 키시와니]]'''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중국|중국]]: 고유 유닛 '''와호'''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잉카|잉카]]: 척후병을 대체하는 고유 유닛 '''와라칵'''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베트남|베트남]]: 석궁병을 대체하는 고유 유닛 '''전쟁코끼리'''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 과학 390 === ==== [[교육]] (Education) [anchor(교육)] ==== ||||<:> [[파일:Education_(Civ6).png|width=65]][br]{{{+1 {{{#fff '''교육''' }}}}}} || || 역사적 배경 ||||인간은 학습을 통해 문명을 형성합니다. 교육은 인류의 시작된 이래로 계속해서 함께 해 왔습니다. 교육은 역사 대부분을 통틀어 비공식적인 활동이었고, 부모는 자녀가 생존하고 생산하는 데 필요한 기술(가사일, 사냥, 야만인을 회피하는 법 등)을 자녀에게 가르쳤습니다. 부족이 성장하고 번영을 누리면서 마을 장로와 성직자들은 건장한 어른들이 음식을 구해 오고 집을 짓고 전쟁에 참여하는 동안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유복한 사회에서는 상류층 자제를 위한 정식적인 수업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민국가의 사상가들이 단순히 실용적인 측면을 벗어나 단순한 모방으로 학습할 수 없는 영역까지 지식을 넓혀가기 시작하는 과정에서 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중세 왕국 시대에는 이집트의 사제들이 학교를 설립하여 읽기, 쓰기, 수학, 역사, 과학, 약학, 점성술과 종교를 가르쳤습니다. 그리스에서는 특권층의 교육을 위한 사설 교육 기관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이 중에는 아테네의 플라톤이 설립한 유럽 최초의 '고등' 교육 기관도 포함되었습니다. 머나먼 동양에서는 중국의 공자가 자신의 철학은 물론 읽기, 수학과 음악을 비롯한 몇 가지 기본적인 기술까지 가르치기 위한 학교 설립 계획에 착수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지배적인 종교가 교육의 임무를 짊어졌습니다. 메소아메리카 문화에서는 사제, 즉 상담사, 판사이자 교육자였던 '지식층'에서 교육을 담당했습니다. 점술, 쓰기, 점성술과 산수로 이루어진 이들의 이기주의적인 과정에서 더 많은 사제를 양성하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몰락과 함께 가톨릭 교회는 서유럽 전역에서 '승인된 교육'을 조달하는 유일한 기관이었습니다. 한편 이슬람 학교에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상이한 관점에 대해 좀 더 관용적이던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배출되었습니다. 머지않아 다른 문명에서도 교육이 중대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학교와 대학교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사설 기관 및 정부에서 지원하는 탐구와 계몽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곧 이어 누구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관념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제 원할 경우 바구니 세공이나 심리학 분야에서도 학위를 취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fff '''설명'''}}}}}}|| ||<:> 인용구 ||'''"교육의 목적은 비어있는 머리를 열려있는 머리로 바꾸는 것이다."''' - 말콤 포브스[* Marcolm Forbes 1919~1990. 미국의 기업인] '''"어떤 생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것이 교육받은 사람의 특징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 ||<:> 선행 기술 ||[[#s-3.2.2|수학]], [[#s-4.1.3|도제제도]] || ||<:> 유레카 조건 ||위대한 과학자를 얻으십시오.|| ||<:> 유레카 문구 ||위대한 과학자의 가르침으로 당신의 영토 내에서 배움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 효과 ||없음|| ||<:> 잠금 해제 ||캠퍼스 특수지구의 건물 '''대학교'''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불가사의 '''[[문명 6/불가사의#s-5.3.3|상코레 대학]]'''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스페인|스페인]]''': 건설자가 고유 시설 '''[[문명 6/등장 문명/스페인#s-2.3|전도관]]'''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 [[등자]] (Stirrups) [anchor(등자)] ==== ||||<:>[[파일:external/vignette2.wikia.nocookie.net/Stirrups_%28Civ6%29.png|width=65]][br]'''{{{+2 {{{#fff 등자}}}}}}''' || || 역사적 배경 ||문명이 확산되기 위해서는 문자, 화약, 얇게 썬 빵과 같은 기본적인 발명품이 필요했으며, 일부 학자들은 등자도 이중 하나에 포함된다고 주장합니다. 모든 위대한 혁신 기술이 그렇겠지만 등자 역시 얼핏 보기에는 매우 간단한 아이디어로 보입니다. 인간이 말을 길들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4500년경부터였지만 당시에는 승마자가 발을 올리거나 달리는 말 위에서 자세를 잡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기원전 800년경에 고안된 안장을 이용하면 후자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끝쪽에 달아 밑으로 늘어지도록 할 수 있는 2개의 가죽 고리(나중에는 금속으로 대체)가 개발된 시점은 약 500년 후였습니다. 이 장치가 개발된 정확한 시점과 장소는 아무도 모르지만 기원전 322년경에 중국의 진나라에서 이를 사용하고 있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동아시아 지역에서 고안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유의 이점을 깨달은 중앙아시아의 기마 민족 덕분에 '등자'의 개념은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기원전 200년경에 제작된 고대 인도의 그림에는 굽이 높은 등자를 사용하는 맨발의 승마자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100년 후에 제작된 쿠샨 시대의 판화에서는 통굽 등자을 사용하는 승마자를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복정동과 판교에서 발견된 5세기의 고분에서는 이러한 등자가 발굴된 바 있으며 일본 나라 시대에도 이러한 등자가 사용되었습니다. 한편 유럽의 승마자들은 유라시아의 아바르인들이 몰려든 8세기까지 등자 없이 말을 달려야 했습니다. 아랍인들은 곧 등자의 장점을 알아차렸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은 프랑크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우람한 말 위에 오른 상태에서 3m 길이의 장창을 찍어 내리기 위해서는 등자가 반드시 필요했으며 특히 중갑옷을 착용한 경우에는 등자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습니다. 실제로 등자가 없었다면 중세 기사들이 말 위에 오르는 일조차도 버거워했을지 모릅니다. 혹자는 향후 수백 년에 걸쳐 유럽을 지배한 봉건주의, 기사도와 여러 '변화'에 핵심적으로 기여한 것이 바로 등자라고 주장합니다. || ||||<:>{{{+2 {{{#fff '''설명'''}}}}}}|| ||<:>인용구 ||'''"등자만큼 간단한 발명품은 많지 않지만, 또 등자만큼 역사에 촉매 같은 영향을 준 발명품도 많지 않다."''' - 린 화이트 2세[* Lynn White Jr. 1907~1987. 미국의 역사학자] '''"등자와 땅 사이에서, 자비를 구하였고, 자비를 찾았도다."''' - 윌리엄 캠던[* William Camden 1551~1623. 영국의 골동품수집가] || ||<:>선행 기술 ||기마술 || ||<:>후속 기술 ||은행업, 화약 || ||<:>유레카 조건 ||봉건제 사회 제도를 보유하십시오.|| ||<:>유레카 문구 ||영내 봉건 영주들은 그들의 땅을 방어해줄 전사를 찾고 있습니다. 갑옷을 두른 전사를 말에 태우면 되지 않을까요?|| ||<:>효과 ||시설 '''목장'''이 식량 +1을 추가로 생산합니다.|| ||<:>잠금 해제 ||중기병 유닛 '''[[문명 6/유닛 #s.3.3|기사]]'''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몽골|몽골]]''': 고유 유닛 '''[[문명 6/등장 문명/몽골 #s-2.2|케식]]'''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아라비아|아라비아]]''': 기사를 대체하는 고유 유닛 '''[[문명 6/등장 문명/아라비아 #s-2.2|맘루크]]'''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말리|말리]]''': 기사를 대체하는 고유 유닛 '''[[문명 6/등장 문명/말리 #s-2.2|만데칼루 기병대]]''' 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 2017 호주 여름 패치에서 요구 과학량이 증가했다. ==== 군사 공학 (Military Engineering)[anchor(군사공학)] ==== ||||<:>[[파일:Military_Engineering_(Civ6).png|width=65]][br]'''{{{+2 {{{#fff 군사공학}}}}}}''' || || 역사적 배경 ||||대략 '군사 시설을 설계 및 건축하고 군사 수송 및 통신 경로를 유지하기 위한 기술 및 업무'로 정의되는 군사 공학의 역사는 로마 군단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의 각 군단에는 요새와 도로의 건설에 특화된 공병대가 배치되어 있었고, 또한 이들은 적의 견고한 도시를 짓밟는 데 필요한 캐터펄트, 공성추와 공성탑을 구축하는 임무까지 감당했습니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로마의 몰락 이후로 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군사 공학의 발전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세 시대 후기에는 포위 공성전이 요구되었고, 덕분에 군사 공학의 발전이 다시 한 번 가속화되었습니다. 화약의 개발과 함께 대포를 견뎌낼 수 있는 요새를 설계하고 대포를 요새 근처로 이동하여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했던 군사 공학가들은 매우 중요한 인적 자원으로 거듭났습니다. 참고로 흙으로 만든 요새는 돌로 쌓은 요새보다 효율성이 높았으며 흙벽을 강타한 포탄은 대부분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머지않아 군사 공학가들은 전문성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군대에서 처음 선을 보인 공병에게는 적군의 포탄이 사방으로 튕겨 날아가지 않도록 지그재그 형태의 참호를 구축하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이러한 참호는 적의 요새를 향했으며, 아군의 보병과 포병을 적군의 탄환과 포탄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영국군의 굴착병들은 적군의 성벽 밑에 터널을 뚫어 폭발물을 설치해야 했으므로 매우 위험한 보직이었습니다. 한편 르네상스 시대의 공학가들은 새로운 유형의 요새와 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다빈치마저 군사 공학에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프랑스의 원수, 세바스티앙 르 프레스트르 드보방(1633 - 1707)을 비롯한 실용주의 공학자들은 루이 14세의 전쟁 당시 자신들을 적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요새와 전략을 고안해 냈습니다. 잠깐의 휴전 기간 동안에는 군사 공학자들이 국경을 요새화하고 다리와 교각을 건설 및 관리하여 병력의 기동성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1800년대에는 전신기가 발명되었고 이들은 통신 수단과 지휘 체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무렵, 이미 군사 공학자는 근대 전쟁의 필수적인 존재로 자리잡은 상태였습니다.|| ||||<:>{{{+2 {{{#fff '''설명'''}}}}}}|| ||<:>인용구 ||'''"폭파 - 건축 - 전투"''' - 미군 제16공병여단 모토[* [[오하이오]] [[주방위군]] 소속으로, [[https://en.wikipedia.org/wiki/16th_Engineer_Brigade_(United_States)#/media/File:16_Eng_Bde_DUI.jpg|인시그니아에 이 모토가 적혀 있다.]] ] '''"과학이 전쟁에 관여할수록, 야전군의 공병 필요성이 높아질 것이다. 지난 전쟁에는 공병이 충분히 배치된 적이 한 번도 없다."''' - [[버나드 몽고메리]] || ||<:>선행 기술 ||건축 || ||<:>유레카 조건 ||송수로 1개를 건설하십시오.|| ||<:>유레카 문구 ||군사 지도자들은 송수로 건설을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새로운 방면에 그 공학 기술을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효과 ||'''질산칼륨''' 자원이 지도 상에 드러납니다.|| ||<:> 잠금 해제 ||공성 유닛 '''트레뷰셋'''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지원 유닛 '''공병'''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주둔지 특수지구의 건물 '''무기고'''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크메르|크메르]]''': 트레뷰셋을 대체하는 고유 유닛 '''[[문명 6/등장 문명/크메르 #s-2.2|돔레이]]'''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 ==== [[성(건축)|성]] (Castles) [anchor(성)] ==== ||||<:>[[파일:Castles_(Civ6).png|width=65]][br]{{{+2 '''{{{#fff 성}}}''' }}} || || 역사적 배경 ||거대한 석벽들이 유럽의 여러 지형을 점령했고, 이 중 일부는 오늘날까지도 예전 모습 그대로 서 있습니다. 성의 역사는 봉건 영주들이 자신들의 권력과 영향력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10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차갑고 지저분한 정사각형 모양의 성이 있는가 하면 거대한 첨탑, 총안 무늬의 난간과 플라잉 버트레스까지 갖춘 멋진 구조물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고귀한 기사, 비탄에 빠진 처녀, 성대한 만찬과 해자로 던져지는 야만인들로 묘사되는 낭만적인 이미지가 만연함에도 불구하고 성은 궁극적으로 봉건 영주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백성에게 강압하기 위한 공리주의적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잉여 재산과 자원의 축적이 방어 구조물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으며, 비옥한 초승달 지대, 인더스 계곡, 이집트와 중국에서 진화한 초기의 요새들은 야만인의 침입을 막기 위한 용도였다고 합니다. 유럽에서 이러한 요새를 건설하기 시작한 시기는 상대적으로 늦었으며 언덕 요새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청동 시대부터였습니다. 팍스 로마나가 붕괴되는 즉시 독일의 부족들은 바위 요새를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자르족, 바이킹족과 무슬림의 급습은 더 많은 성이 건축되는 결과로 이어졌고, 카롤링거 제국이 붕괴되어 현지 정부가 사유 재산화되기 시작한 이후로 지역 영주들은 영지 주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복왕 윌리엄의 성공 이후 경쟁국의 왕들에 의한 전쟁과 정복이 장시간에 걸쳐 지속되었고 서구 문명권 전역에 성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1600년대에 화약과 대포가 발명된 이후로 종식되었습니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성을 짓기 시작한 시점은 유럽에서 두껍고 높은 성들이 인기를 잃기 시작한 전후였습니다. 다이묘 시대 초반의 목조 방책에서 진화한 일본 최초의 성들은 석재와 상단의 목조 구조물로 구성되었으며 특히 전국시대에는 화재가 끊임없이 발생했습니다. 유럽과 달리 화약의 등장은 일본 성들의 건축이 촉진되는 결과를 낳았으며 18세기에는 메이지 유신으로 봉건주의가 종식될 때까지 대규모의 성 건축이 크게 급증했습니다.|| ||<-2> {{{+2 {{{#fff '''설명'''}}}}}} || ||<:>인용구 ||'''"돌멩이가 내 앞길을 막는다고? 하나하나 다 모아주지. 그 돌멩이로 내 성을 만들겠어."''' - 니모 녹스 '''"안갯속에 갇힌 성이 보인다면, 그곳으로 걸어가야 놀라운 꿈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 메호메트 무라트 을단 || ||<:>선행 기술 ||건축|| ||<:>후속 기술 ||공성 전략|| ||<:>유레카 조건 ||6개의 '''고유 슬롯'''을 지닌 정부를 채택하십시오.|| ||<:>유레카 문구 ||새 정부의 국방부 장관이 우리의 활기 넘치는 수도를 보호하기 위하 진보된 방어시설의 건설을 제안합니다.|| ||<:>효과 ||'''[[문명 6/등장 문명/중국|중국]]''': 고유 시설 '''만리장성'''이 인접한 만리장성 타일에 문화 +1을 제공합니다. '''[[문명 6/등장 문명/프랑스|프랑스]]''': 스파이 1명을 얻고, 추가 스파이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 ||<:> 잠금 해제 ||도심부 특수지구의 건물 '''중세 성벽'''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경기병 유닛 '''군마'''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불가사의 '''알람브라 궁전'''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헝가리|헝가리]]''': 군마를 대체하는 고유 유닛 '''[[문명 6/등장 문명/헝가리#s-2.3|검은 군대]]'''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에티오피아|에티오피아]]''': 군마를 대체하는 고유 유닛 '''오로모 기병대'''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 || 흥망성쇠까지는 고전 시대 정부라도 그리스나 독일이라면 추가 슬롯 덕분에 불가사의 하나만 먹어도 유레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몰려드는 폭풍에서는 군주제/상인 공화제/신권 정치 중 하나를 골라야만 유레카를 받을 수 있도록 변경되었다. == 르네상스 시대 == >머스킷의 총구에서부터 높은 하늘의 불꽃까지, 새로운 권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새로이 인쇄된 종이에 적힌 조용한 문구도 그 속에 위대한 변화를 지니고 있습니다. 거대하고 신비롭던 세계도 더 작고 더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해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더 있고 시험해 볼 믿음이 더 있으며, 새로이 형성되어야 할 민족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 과학 600 === ==== 지도 제작 (Cartography) [anchor(지도 제작)] ==== ||||<:>[[파일:external/vignette3.wikia.nocookie.net/Cartography_%28Civ6%29.png|width=65]][br]'''{{{+2 {{{#fff 지도 제작}}}}}}''' || || 역사적 배경 ||지도의 구성 요소에 대한 논란이 상당한 만큼 지도 제작술의 역사에 대한 학문적 논란 역시 적지 않습니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지도'에는 기원전 7000년에 존재한 아나톨리아의 차탈 휘이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현지 지형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잉크를 사용하여 제작한 확실한 형태의 지도는 기원전 1600년경에 미노스 문명에서 제작한 '제독의 집(House of the Admiral)'이라는 벽화입니다. 기원전 4세기 무렵에는 그리스와 로마가 휴대가 용이한 지도를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서기 2세기경에는 너무나도 유명한 프톨레미의 지도 제작 관련 논문인 '지리학'이 발표되었습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진나라 시대의 지도가 발견된 반면 고대 인도의 지도제작법은 대부분 일반 여행객보다는 성직자를 위한 성좌 지도로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암흑기 시대에는 대부분의 유럽인들이 강 굴곡 이후나 지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랍인들은 놀라운 수준의 지도책을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인 무함마드 알 이드리시의 '로제리아나(Tabula Rogeriana, 1154년)'에는 당시에 알려진 아프리카, 중동, 지중해, 인도양의 지형은 물론 심지어는 극동의 지형까지 표시되었습니다. 무함마드의 지도책은 300년에 걸쳐 가장 정확하고 광범위한 지도책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적어도 1400년대의 대항해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포르투갈, 스페인, 잉글랜드,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탐험가와 모험가들은 해안 지역과 군도의 지형을 그린 스케치를 가지고 돌아왔고, 유럽의 지도제작자들은 원양의 해안을 약탈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한 혁신적인 지도를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1492년, 독일의 마르틴 베하임은 최초의 지구본을 제작했고 1527년에는 포르투갈의 지도제작가인 디에고 리베로가 적도를 표시한 지구본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들은 당시에 알려지지 않았던 지역에 바다 괴물과 인어를 비롯한 다양하고 신비로운 생물들을 그려 넣었습니다. 비록 정확도는 부족하겠지만 오늘날 위성 이미지, 원격 탐사 및 항공 사진술 등을 통해 컴퓨터로 제작되는 지루한 지도들보다는 보기에 흥미로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 ||<-2> {{{+2 {{{#fff '''설명'''}}}}}} || || 인용구 ||'''"만일 당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더 꿈꾸고, 배우고, 행동하고, 성장하게 한다면, 당신은 분명 지도제작자일 거야."''' - [[존 퀸시 애덤스]] '''"방황하는 모든 이들이 길을 잃는 것은 아니다."''' - [[J. R. R. 톨킨|J.R.R. 톨킨]] || || 선행 기술 ||[[#s-4.1.1|지지대]]|| || 후속 기술 ||[[#s-5.2.1|가로돛]]|| || 유레카 조건 ||항만 2곳을 건설하십시오.|| || 유레카 문구 ||제국의 항만에서 출항하는 수많은 배를 보며 탐험을 기록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겼습니다.|| || 효과 ||시설 '''어선'''이 금 +2를 추가로 생산합니다. 모든 해상 유닛 및 승선한 유닛이 해양 타일을 항해할 수 있게 됩니다. || || 잠금 해제 ||해상 근접 유닛 '''캐러벨'''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불가사의 '''[[문명 6/불가사의#s-5.4.8|카사 데 콘트라타시온]]'''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포르투갈|포르투갈]]: 캐러벨을 대체하는 고유 유닛 '''나우'''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 ==== [[대량생산|대량 생산]](Mass Production) [anchor(대량 생산)] ==== ||||<:>[[파일:Mass_Production_(Civ6).png|width=65]][br]'''{{{+2 {{{#fff 대량 생산}}}}}}''' || || 역사적 배경 ||산업혁명 전까지만 해도 '대량 생산'이라는 관념은 도자기(용형), 부품 교체가 가능한 중국식 장궁과 서적 인쇄소로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에는 베네치아에서 지중해의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체 군수창고에서 배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이때 미리 제작된 부품과 조립 시설을 활용했습니다. 베네치아 군수창고는 300년에 걸쳐 독보적인 생산량을 기록했습니다. 전성기의 군수창고에서는 단 하루 만에 항해 가능한 배를 건조할 수 있었으며 당시 10,000명의 노동자가 군수창고에서 근무했습니다. 한편 인쇄기는 또 다른 유형의 대량 생산이 부상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군중을 위해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되는 서적들을 표준화했습니다. 활판으로 제작된 서적은 비록 수작업으로 만든 책처럼 화려하거나 내구성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비용이 저렴했으며 다수 재화의 '균일적 품질'이라는 관념을 확립시켜 주었습니다. 한편 동일한 도자기와 금속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 용형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제재소에서는 수백 대의 방적기와 직조기를 도입하여 규격화된 양모 옷을 찍어냈습니다. 산업혁명은 거의 모든 분야의 대량 생산으로 이어졌으며, 심지어는 산업혁명이 일어난 1800년대 초기에 발명되지 않았던 제품들도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서기 1914년, 헨리 포드는 자동차가 이동하는 동안 각 노동자가 혼자서 감당할 만한 특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컨베이어 라인을 구축할 경우 자동차를 좀 더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공장에서 모델 T 세단을 생산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728분에서 98분으로 단축되었고 나중에는 24분마다 한 대의 모델 T 세단이 완성되었습니다. 예전에는 품질이 균일한 대량 생산 제품을 얻기 위해 소비자들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했다면, 이제는 수제품이 더욱 높은 가치를 얻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진보의 역행이 아니었을지... || ||<:>인용구 ||'''"사람들은 어떠한 색상의 T모델 자동차라도 가질 수 있다. 물론 그 색이 검은색이기만 하다면."''' - [[헨리 포드]] '''"라벨을 붙이고 포장해서 대량 생산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진실도 아니요, 예술도 아니다."''' - 마티 루빈 || ||<:>선행 기술 ||[[#s-4.2.1|교육]], [[#s-4.1.1|지지대]], [[#s-4.1.2|군사 전술]] || ||<:>후속 기술 ||[[#s-6.1.1|산업화]] || ||<:> 유레카 조건 ||제재소 1곳을 건설하십시오.|| ||<:> 유레카 문구 ||이제 표준화된 판재의 수급이 안정화 되었으므로 해운업이 금세 발전할 것입니다.|| ||<:>효과 ||없음|| ||<:> 잠금 해제 ||항만 특수지구의 건물 '''조선소'''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불가사의 '''베네치아 군수창고'''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 [[은행|은행업(Banking)]] [anchor(은행업)] ==== ||||<:>[[파일:Banking_(Civ6).png|width=65]][br]'''{{{+2 {{{#fff 은행업}}}}}}''' || || 역사적 배경 ||심지어는 함무라비 법전에 은행과 관련된 법이 명시되었을 만큼 과거에도 '은행'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은행이란 돈을 빌려준 후 각종 악덕 행위를 통해 상환을 보장 받은 개인 채권자를 의미했습니다. 서양에서는 로마의 몰락과 함께 대부업도 사양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은행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여러 군주들이 잔혹한 십자군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한 중세 시대였습니다. 피렌체의 유대인 대부업자들은 벤치를 임시 영업장으로 이용하기 시작했고, 이는 '벤치(bench)'는 '은행(bank)'이라는 용어로 변화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보통 이자율이 24%에서 시작되었고 심한 경우에는 무려 48%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허다했지만 곧 고리대금업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는 1275년에 이러한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를 구실 삼아 처형 당한 수백 명의 유대인들로부터 재산을 압류했습니다. 14세기에는 바르디, [[메디치 가문|데메디치]], 페루치, 공디를 비롯한 여러 가문의 욕심 많고 머리 좋은 일족들이 피렌체, 제노바, 베네치아, 시에나와 로마를 비롯한 본거지와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에 상설 은행을 설립했습니다.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은행은 1472년에 처음 문을 연 시에나의 몬테 파스키 은행입니다. 곧 이어 왕세자들이 은행 사업에 끼어들기 시작했고 1407년에는 정부에서 승인한 최초의 은행인 세인트 조지 은행이 제노바 총독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이 은행은 나폴레옹 침공 이후인 1805년에 운영을 중단했습니다. 한편 중국 송나라 시대에는 두 가지 유형의 전통 금융 기관인 전국 단위의 표호와 지방 단위의 전장이 운영되기 시작되었으며, 1024년에 쓰촨성에서 중국 최초로 개발한 지폐가 생겨나면서 더욱 탄력을 받았습니다. 중국 은행들은 개인적인 관계에 바탕을 둔 상업 은행 업무에 중점을 두었지만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금, 대출, 수표 발행, 환전 및 자금 이체 등의 모든 주요 은행 업무가 중국에서도 독립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전보와 전기가 발명된 이래로 대규모의 국제 은행이 가능해졌고, 관련 분야를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개척해 냈습니다. 오늘날 은행에서 수행하는 업무는 르네상스 시대와 크게 다른 내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익성은 여전히 보장되고 있습니다. 굳이 '고리대금'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는 않겠습니다. || ||<-2> {{{+2 {{{#fff '''설명'''}}}}}} || ||<:>인용구 ||'''"당신이 은행에 빚진 돈이 100달러면, 당신에게 문제가 있는 겁니다. 근데 당신이 은행에 빚진 돈이 100만 달러[* 원문은 $100 million, 1억달러다. 라임을 맞추기 위해 단위를 바꾼 듯. 참고로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비슷한 말을 남겼으나 각각 100파운드, 100만 파운드였다.]면, 은행에 문제가 있는 거죠."''' - J. 폴 게티[* Jean Paul Getty 1892~1976. 미국의 사업가] '''"저는 '24시간 은행업무'라고 쓰인 은행을 봤습니다. 그런데 어쩌죠? 제겐 그렇게 많은 시간이 없는데…"''' - 스티븐 라이트 || ||<:>선행 기술 ||[[#s-4.2.1|교육]], [[#s-4.2.2|등자]]|| ||<:>후속 기술 ||[[#s-6.1.2|과학이론]]|| ||<:> 유레카 조건 ||길드 사회 제도를 보유하십시오.|| ||<:> 유레카 문구 ||연합된 길드의 계획이 실현되려면 대량의 금 투입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이 이를 충당할 수 있게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어떨까요?|| ||<:> 효과 ||없음|| ||<:> 잠금 해제 ||상업 중심지 특수지구의 건물 '''은행'''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불가사의 '''그레이트 짐바브웨'''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오스만|오스만]]: 은행을 대체하는 고유 건물 '''그랜드 바자르'''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 [[화약]](Gunpowder) [anchor(화약)] ==== ||||<:>[[파일:external/vignette3.wikia.nocookie.net/Gunpowder_%28Civ6%29.png|width=65]][br]'''{{{+2 {{{#fff 화약}}}}}}''' || || 역사적 배경 ||당나라의 중국 연금술사들이 고안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화약은 '중국의 사대발명품'중 하나입니다. 초기에 기록된 내용 즉, 유황, 목탄과 질산칼륨으로 구성된 송나라 시대의 조제법을 이용하면 불사의 영약이 나와야 했지만 결과는 전혀 반대였습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결과물이 연소되면서 급속하게 팽창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폭죽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인들은 몽골군을 상대할 조잡한 폭탄과 로켓을 제작하기 위해 화약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몽골인들은 중국을 점령한 후에 얻은 이 새로운 무기를 앞세워 서쪽으로 진군하며 눈에 보이는 모든 적에게 발사했습니다. 몽골인들은 유럽인들과 맞닥뜨릴 때마다 화약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위협한 반면 아랍인들은 1240년부터 1280년까지 더 나은 조제법, 순수한 질산칼륨, 그리고 대포와 원시적인 아쿼버스를 비롯한 더욱 치명적인 무기를 개발해 냈습니다. 일부 역사서에서는 맘루크 왕조가 1260년의 아인 잘루트 전투 당시 몽골인들에게 역사상 최초로 대포를 사용했다고 기술되어 있지만 여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휴대용 손대포'에 가장 이른 설명은 14세기의 아랍 고서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몽골인들을 돌려 보내는 데 성공한 아랍인들은 이러한 무기를 여러 곳에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화약을 대량 학살 수단으로 끌어 올린 것은 유럽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조제법을 개선하고 액체를 사용하여 입도와 안정성을 개선하는 '코닝(corning)' 기법과 '무연' 화약을 적용했을 뿐만 아니라 화약을 사용하여 납과 철로 된 파편을 사람들에게 뿌려대는 각종 장치들을 제작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의 유럽 군대 사는 화약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화약은 기존의 어떤 기술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전장을 지배했습니다. || ||<-2> {{{+2 {{{#fff '''설명'''}}}}}} || ||<:>인용구 ||'''"화약 사용의 진정한 이유는 남자가 키 커 보이기 위해서이다."''' - [[토머스 칼라일]] '''"남자는 군대 광일세. 화약에서 영광을 느끼고, 행진을 사랑한다네."''' - 필립 베일리[* Philip James Bailey (1816-1902). 영국의 시인. 미국의 재즈 가수 필립 제임스 베일리와는 동명이인이다. 둘 다 미필이다.] || ||<:>선행 기술 ||도제제도, 등자, 군사 공학|| ||<:>후속 기술 ||주조|| ||<:> 유레카 조건 ||무기고 1곳을 건설하십시오.|| ||<:> 유레카 문구 ||무기고의 병사들이 적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신무기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 효과 ||없음|| ||<:> 잠금 해제 ||근접 유닛 '''머스킷병'''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스페인|스페인]]: 머스킷병을 대체하는 고유 유닛 '''콩키스타도르'''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마푸체|마푸체]]: 고유 유닛 '''말론 습격대'''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한국|한국]]: 전장포를 대체하는 고유 유닛 '''화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오스만|오스만]]: 머스킷병을 대체하는 고유 유닛 '''예니체리'''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여담으로 스트리밍 중에 인용문으로 "남자는 군대광"이 나오면 '저놈 미필이다', 'k-군대를 안겪어봐서 그렇다' 등의 반응이 대다수이다~~ ==== [[인쇄|인쇄술]](Printing) [anchor(인쇄술)] ==== ||||<:>[[파일:문명6_인쇄술.png|width=65]][br]'''{{{+2 {{{#fff 인쇄술}}}}}}''' || || 역사적 배경 ||글자가 생겨난 이후로는 활자 인쇄술만큼 문명에 많은 영향을 준 기술이 없습니다. 목판 인쇄술은 중국, 인도와 유럽에서 수십년에 걸쳐 사용되었습니다. 13세기 초에 이탈리아 대학교에서 개발된 페시아 체계는 상당히 짧은 기간 안에 여러 권의 사본을 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서적상에게 선사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책은 여전히 비쌌고 지식층만 보유할 수 있었습니다. 1400년대에는 교육이 발전하고 식자율이 상승함에 따라 서적을 더욱 빠르고 저렴하게 복사할 수 있는 방법이 유럽 서적상의 '성배'가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평민들 조차 직접 성경을 읽고 싶어했으며 이들의 자녀들은 대륙 곳곳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새로운 학교에서 글을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1040년에는 [[문명 6/위인#s-2.3.1|비성]]이라는 중국인이 도자기를 사용하여 활자를 만들었습니다. 각 글자는 원하는 순서대로 배치가 가능했으며 여기에 잉크를 묻힌 후 종이에 누르는 식으로 활자가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활자는 충격에 약하고 매우 비쌌고 목판 활자는 금새 닳아 없어졌습니다. 마침내 금속 활자를 개발한 인물은 온 지역을 여행하며 금 세공업자와 서적상으로 생계를 이어간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라는 한 독일인이었습니다. 그는 이외에도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습니다. 활자판의 작은 조각들은 글자나 구두점을 나타냈으며 이를 필요에 따라 활자판에 배치하여 페이지를 인쇄할 수 있었습니다. 납으로 만든 금속 활자는 매우 견고했으며 다른 활자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금 세공업자로서는 실패한 [[구텐베르크]]는 금속 활자에 적합한 유성 잉크를 개발하여 오랫동안 지속되는 인쇄물을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구텐베르크는 마인츠에 작업장을 만들고 1450년에는 라틴어 문법책과 같은 일반 텍스트와 교회 물품을 인쇄했습니다. 그리고 1452년에는 성서 인쇄를 시작하여 1455년에 소위 '구텐베르크 성서'라 불리는 인쇄작을 완성했습니다. 구텐베르크의 발명품은 전 세계에 대변혁을 일으켰으며 이는 매스컴의 부상으로 이어졌습니다. 금속 활자는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서적상은 다수의 복사본을 인쇄하여 판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금속 활자는 수작업으로는 힘들었던 페이지 번호, 목자, 색인, 참고 문헌을 비롯한 각종 요소를 가능하게 만들어 언어와 지식을 표준화했을 뿐만 아니라 전체가 아닌 선형적 측면에서 사고할 수 있는 방법을 인간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는 현대인이 글을 읽는 방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금속활자는 과학혁명과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결국 문명이 엉망이라면 이는 구텐베르크의 잘못이죠. || |||| {{{+2 {{{#fff '''설명'''}}}}}} || ||<:>인용구 ||'''"검이 펜보다 강할 수는 있지만, 인쇄기는 아마도 공성 병기보다는 무거울 것입니다. 두세 마디만으로도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 [[테리 프래쳇]] '''"화약이 전쟁에 가져온 변화를 인쇄기는 지성에 가져왔다."''' - 웬들 필립스[* Wendell Phillips 1811~1884. 미국의 변호사] || ||<:>선행 기술 ||기계 || ||<:>후속 기술 ||군사 과학 || ||<:>유레카 조건 ||대학교 2곳을 건설하십시오. || ||<:>유레카 문구 ||학자들은 필요에 의해 책을 빨리 복제하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 ||<:> 효과 ||다른 모든 문명에 관한 '''외교 시정 레벨'''을 한 단계 더 높입니다. 모든 '''걸작 저서'''의 관광 생산량이 2배가 됩니다. || ||<:> 잠금 해제 ||불가사의 '''자금성'''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 === 과학 730 === ==== [[돛#s-2.2|가로돛]](Square Rigging) [anchor(가로돛)] ==== ||||<:>[[파일:문명6_가로돛.png|width=65]][br]'''{{{+2 {{{#fff 가로돛}}}}}}''' || || 역사적 배경 ||14세기 중반에 지중해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가로돛 방식의 쌍돛선은 과거 수천 년 걸쳐 이용되어 온 3단 범선을 대체했습니다. 과거 북유럽의 코그선과 바이킹에는 수직으로 설치되는 정사각형 모양의 돛이 사용되었고, 십자군은 이러한 방식을 수송선에 도입하여 속도와 조작성을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성지로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말입니다. 머지 않아 유럽인들은 앞갑판, 뒷갑판, 제1사장, 망대를 구축하고 추가로 돛을 달았습니다. '대항해 시대'의 포르투갈인들은 장기간에 걸친 원정 항해를 위한 가로돛 형식의 카라벨선(선미가 둥글어 '카라벨라 레돈다'라고도 불림)을 개발했습니다. 카라벨선은 가장 보편적이며 이상적인 수송선으로 자리잡았고, 나중에 개발된 갈레온선의 전조가 되었습니다. 마젤란은 오직 카라벨선으로만 이루어진 선단을 이끌고 1519년에 세계 일주를 마쳤습니다. 이후 300년 동안에는 가로돛 형식의 대형선들이 해양 역사를 지배했고, 유럽인들은 덕분에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점령하고 극동 지역의 부를 약탈할 수 있었으며 서로 간에 치열한 전투도 벌일 수 있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여러 강대국들은 대포를 장착한 군함을 이용하여 서로에게 포탄을 퍼부었습니다. 이러한 군함은 90문의 대포를 장착한 1등급의 3층 갑판선부터 고작 18문의 대포를 갖춘 5등급 군함으로 구분되었습니다. 호휘함과 바크선은 적군의 상인들을 쫓았습니다. 남북전쟁 당시에는 가로돛으로 기동성을 끌어 올린 밀항선이 북군의 전함들 사이를 비집고 다녔습니다. 거대한 쾌속 범선들이 태평양을 누볐고 미국의 가로돛식 포경선은 고래를 멸종 위기로 몰아 넣었습니다. 하지만 범선 시대의 낭만은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1821년에는 영국의 아론맨비 호가 바다에 진수되었습니다. 범선은 제작 및 운영 비용이 적게 든 반면 초기의 강철 증기선은 매우 불안정하여 대부분에 돛이 탑재되었습니다. 하지만 가로돛식 범선의 시대는 저물었고, 100여년 후에는 부유한 이들의 고급 요트로 거듭났습니다. || ||<-2> {{{+2 {{{#fff '''설명'''}}}}}} || ||<:>인용구 ||'''"인간이 만든 것 중에 자연에 접근하는 것은 많지 않지만, 범선은 그중에 속한다."''' - 알란 빌러즈 '''"배를 움직이는 것은 높이 솟은 돛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바람이다."''' - 영국 속담 || ||<:>선행 기술 ||[[#s-5.1.1|지도 제작]] || ||<:>후속 기술 ||[[#s-6.1.1|산업화]], [[#s-6.2.1|증기력]] || || 유레카 조건 ||머스킷병으로 유닛을 처치하십시오. || ||<:> 효과 ||없음 || ||<:> 잠금 해제 ||해상 원거리 유닛 '''프리깃'''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네덜란드|네덜란드]]: 프리깃을 대체하는 고유 유닛 '''드 제벤 프로빈센'''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 [[천문학]](Astronomy) [anchor(천문학)] ==== ||||<:>[[파일:문명6_천문학.png|width=65]][br]'''{{{+2 {{{#fff 천문학}}}}}}''' || || 역사적 배경 ||장시간에 걸쳐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천문학을 깨닫게 되겠지만 우둔한 이에게는 점성술이 보일 뿐입니다.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만 해도 천체학으로서의 천문학은 딱히 과학적이거나 학문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서기 1543년에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발표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자신이 새로 고안한 망원경이라는 놀라운 발명품을 통해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옹호, 보완 및 확대했습니다. 이어서 '과학혁명'의 핵심 인물이었던 요하네스 케플러가 행성의 움직임을 상세하게 계산할 수 있는 수학 체계를 고안했고, 뉴튼은 몇십 년 후에 직접 개발한 반사 망원경을 사용하여 자신이 발견한 천체 역학과 중력의 법칙에 대한 역학을 해결했습니다. 천문학의 중요한 발전은 대부분 새로운 기술의 도입에서 비롯됩니다. 우주를 연구할 때에는 더욱 먼 곳의 사물을 확대하여 보거나 다른 영역에서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 큰 도움이 됩니다. 망원경은 계속해서 발전했고, 덕분에 윌리엄 허셜은 성운과 성단을 더욱 자세하게 분류할 수 있었고 마침내 1781년에는 천왕성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분광기와 사진술은 천문학의 발전을 가속화했고, 특히 과학자들은 다른 행성들이 태양과 구성적인 측면에서 유사하며 단순히 질량, 온도와 크기가 상이할 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해 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초기의 천문학자들은 태양계가 은하계의 일부일 뿐이고 이 외에 준항성, 펄서, 블레이저, 전파 은하, 블랙홀과 중성자성을 비롯한 각종 새로운 개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이는 대부분 정교한 망원경을 통해 발견되었으며 심지어는 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따라 도는 개체들도 오염되지 않은 지역에서 밤하늘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 ||<-2> {{{+2 {{{#fff '''설명'''}}}}}} || ||<:>인용구 ||'''"천문학은 영혼이 하늘을 바라보게 하여 우리를 이 세계로부터 다른 세계로 이끌어줍니다.'''"[* 번역이 조금 이상하게 되었다. 제대로 된 번역은 "천문학은 영혼으로 하여금 위를 쳐다보도록 강요하였고 우리를 이 세계로부터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정도이다. 나무위키 [[천문학]]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다. 덧붙여 [[문명 4]]의 천문학 기술도 이 말이 인용되어 있는데, 이 작품은 한글판이 공식적으로 발매되지 않아 게임 팬들에 의해 한글화가 진행되었는데도 제대로 번역되어 나왔다. 보수를 받고 정규 번역을 한다는 것들이 일개 아마추어보다도 못한 셈.] - [[플라톤]] '''"천문학은 천문학자가 아닐 때 훨씬 더 재미있지."''' - [[브라이언 메이]] || ||<:>선행 기술 ||교육|| ||<:>후속 기술 ||과학이론|| || 유레카 조건 ||산에 인접하게 대학교 1곳을 건설하십시오. || || 유레카 문구 ||당신의 과학자들이 천체를 더욱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산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영구 시설물이 있다면 도움 되지 않을까요?|| ||<:> 효과 ||없음|| ||<:> 잠금 해제 ||불가사의 '''포탈라 궁'''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브라이언 메이라는 이름에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도 한데, 기타리스트로 유명하지만, 이래 봬도 천체물리학 박사학위 소유자이기도 하다. ==== [[주조]](Metal Casting) [anchor(주조)] ==== ||||<:>[[파일:문명6_주조.png|width=65]][br]'''{{{+2 {{{#fff 주조}}}}}}''' || || 역사적 배경 ||'주조'란 대장장이가 녹인 금속을 금형에 부어 여러 개의 동일한 금속체를 생산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금형은 기원전 32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에서 제작된 구리 개구리의 금형입니다. 기원전 800년부터 기원전 700년 사이에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주철을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기원전 233년 무렵에는 중국인들이 모래 거푸집을 이용하여 쟁기 날을 활촉, 창촉과 포탄을 제작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사용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대인들은 주로 장신구를 제작하기 위한 용도로 금형을 사용했습니다. 가장 오래된 금형 제조 방법은 '납형법'으로, 그 역사가 적어도 기원전 3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납형법에서는 대장장이가 밀랍을 이용하여 금형을 제작할 물건을 본을 뜨며, 대부분의 경우 금형은 뜨거운 금속이 닿아도 녹지 않는 점토로 제작됩니다. 이어서 밀랍은 금형에서 녹아 흘러 내리고 여기에 쇳물이 부어집니다. 오늘날에는 플라스틱과 라텍스 소재로 금형이 제작됩니다. 서양에서 주철이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15세기 무렵이었으며, 관련 기술은 비단길을 통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유입되었습니다. 1455년에는 독일인들이 주철관을 사용하여 딜렌부르크 성으로 물을 끌어오기 시작했고, 1500년경에는 이탈리아 반노초 비링구초가 최초의 주철 주조 공장을 건설했습니다. 1799년에는 잉글랜드에서 철과 강철의 주조가 확산되었습니다. 1709년에는 에이브러햄 다비가 모래와 양토로 만든 금형을 사용하여 높은 품질의 신철을 생산하는 주조 공장을 설립했습니다. 50년 후에는 벤저민 헌츠먼이라는 또 다른 영국인이 도가니강의 주조 과정을 새롭게 고안했으며 다시 50년이 흐른 뒤에는 소호의 A. G. 에크하르트가 원심주조법을 개발하여 벽이 얇은 금속 실린더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공학자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금속 주조법을 고안해 냈고,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제품이 금속 아니면 플라스틱으로 제작됩니다. || ||<-2> {{{+2 {{{#fff '''설명'''}}}}}} || ||<:>인용구 ||'''"그리고 헤파이스토스는 먼저 위대하고 거대한 방패를 만들었네. 그리고 그 방패 위에 두 개의 고귀한 도시를 단조했지."''' - [[호메로스|호머]] '''"그의 대장간에 서서 그의 망치로 일해보기 전에는 아무도 심판하지 말게."''' - [[릭 라이어던]] || ||<:>선행 기술 ||화약|| ||<:>후속 기술 ||탄도학, 경제학|| || 유레카 조건 ||석궁병 유닛 2개를 보유하십시오.|| || 유레카 문구 ||아주 많은 석궁병의 전장 배치로 원거리 무기에 대한 연구를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 효과 ||없음|| ||<:> 잠금 해제 ||공성 유닛 '''사석포'''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br]대기병 유닛 '''파이크와 총'''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 공성 전략(Siege Tactics)[anchor(공성 전략)] ==== ||||<:>[[파일:Siege_Tactics_(Civ6).png|width=65]][br]'''{{{+2 {{{#fff 공성 전략}}}}}}''' || || 역사적 배경 ||본질적으로 포위 전략은 메기도(기원전 1457년경), 티레(기원전 332년경), 카르타고(기원전 149~146년)와 마사다(서기 73~74) 시대 이후로 크게 변한 바가 없습니다. 물론 호메로스가 언급한 기원전 1200년경의 트로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시리아인들과 인접 국가들이 도시 주변에 적을 막기 위한 벽을 쌓기 시작한 이후로 야망에 불타는 모든 정복자들에게는 이러한 도시를 탈환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아주 먼 옛날부터 공격 진영의 첫 행동은 보통 '기습' 공격을 감행하여 방어 진영이 대비를 마치거나 위협을 인지하기 전에 압도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시도해볼 만한 가치는 충분했습니다. 대부분의 공격 진영은 조금 떨어져서 도시를 포위했고 도시 안쪽의 방어 진영이 항복하도록 강요하거나 내부에서 배신자가 생겨 문을 열기를 기다렸습니다. 도시를 완전히 포위한 경우에는 식량, 물과 기타 생필품이 유입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었습니다. 굶주린 방어 진영의 병사와 민간인들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말, 반려동물, 가죽, 톱밥 등에 눈을 돌려야 했고 심한 경우에는 식인 행위가 자행되기도 했습니다. 질병도 상당히 효과적이었으므로 병으로 죽은 동물이나 인간의 시체를 벽 너머로 던지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규모가 크고 비축된 물자가 상당한 경우에는 두 방법 모두 많은 시간이 요구될 수 있었습니다. 정작 도시를 포위하고 있는 군대도 질병, 굶주림이나 탈주 등의 문제에 직면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벽을 허물거나 넘어가 신속하게 목표물을 탈환할 수 있는 다양한 공성 장치가 고안되었습니다. 병사들은 사다리와 공성탑을 이용하여 벽 위로 올라갔고 캐터펄트와 투석기를 이용하여 벽을 허물었으며 공성퇴와 공성용 갈고리로 성문을 무너뜨리거나 끌어당겼습니다. 땅굴을 파서 벽을 허무는 전략이 성공할 때도 있었습니다. 전략이 성공하여 벽이 무너진 후에는 도시 안에서 잔혹한 육탄전이 벌어졌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특히 공성 전략에 능했고 콘스탄티노플, 클리스, 로도스 등이 이러한 전략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 ||<-2> {{{+2 {{{#fff '''설명'''}}}}}} || ||<:>인용구 ||'''"최하의 방법이 성을 공격하는 일이니, 성을 공격하는 것은 다른 방법이 없을 때 하니라'''" - [[손무|손자]] '''"최고의 로맨스는 항상 포위된 상태에서 피어난다네."''' - 마일즈 캐머런[* Miles Cameron 1962~. 캐나다의 저술가] || ||<:>선행 기술 ||성|| ||<:>후속 기술 ||군사 과학|| ||<:> 유레카 조건 ||트레뷰셋 2대를 보유하십시오.|| ||<:> 유레카 문구 ||사석포를 제작해보니 성이 난공불락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욱 튼튼한 방어가 필요합니다!|| ||<:> 효과 ||없음|| ||<:> 잠금 해제 ||공병이 시설 '''요새'''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도심부 특수지구의 건물 '''르네상스 성벽'''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조지아|조지아]]: 르네상스 성벽을 대체하는 고유 건물인 '''치케'''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2021년 4월 패치로 유레카 조건이 사석포 2대 보유에서 트레뷰셋 2대 보유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문명 6 현재 텍스트에는 여전히 유레카 조건이 사석포 2대 보유로 표시되어 있어 유저들이 혼란을 겪곤 한다. 후술할 교환부품 유레카도 마찬가지. 다만 이는 2022년 12월 리더 패스 패치를 시작하면서 제대로 수정되었다. == 산업 시대 == >기계들의 지속적인 웅성거림, 연기의 매캐한 냄새, 재와 그을음으로 가려지는 시야, 이 모두가 변화하는 시대의 징후입니다. 과학과 문화 발전의 유혹은 문명의 계속된 진보를 추진하는 동력입니다. 이제 당신의 도전은 지구와 인류, 전쟁과 평화의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데 있습니다. === 과학 930 === ==== [[산업화]](Industrialization) [anchor(산업화)] ==== ||||<:>[[파일:external/vignette2.wikia.nocookie.net/Industrialization_%28Civ6%29.png|width=65]][br]'''{{{+2 {{{#fff 산업화}}}}}}''' || || 역사적 배경 ||'기술'을 혁명이나 시대의 명칭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학자들은 여러 기술이 융합된 사례로 볼 수 있는 산업화를 농업 사회와 산업 사회로 넘어가는 전환 단계로 보고 있으며, 여기에는 역사적이며 전역적인 사회적, 경제적 격변이 수반되었습니다. 산업화는 새로운 기계의 발명과 새로운 동력원의 발견을 통해 가속화되었습니다. 18세기에 유럽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인간의 일상 생활에 전례 없는 변화를 가져왔으며, 긍정적이거나 유해한 변화가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더욱 복잡한 기계와 도구가 나날이 늘어가기 시작하면서 한때 재능 있는 공예사가 독점했던 상업은 다수의 평범한 공장 노동자들에 의해 조작되는 조립 라인의 도래와 함께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으며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공장과 교통 수단이 집중되어 있는 도시로 모여들었습니다. 세계 경제의 개편과 관련된 과정은 자급자족 형태에서 제조 및 소비 형태로 넘어갔습니다.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면서 서비스 및 재화 시장이 확장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생산 수요가 높은 가격과 임금으로 이어지는 식의 혼란이 반복되었습니다. 또한 산업화는 도시화, 기관의 복잡성, 겉잡을 수 없는 소비주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전례 없는 인구 성장과 핵가족을 비롯한 모든 사회 구조의 복잡한 변화로 표출됩니다. '착취'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징후입니다. 국제 연합에서는 전 세계의 직원 중 40% 이상을 '근로빈곤층'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자원 유입의 누적은 과학 연구 및 신기술에 대한 투자 상승으로 이어졌으며, 이를 통해 산업화 과정이 가속되었습니다. 혹자는 1800년대 후반에 제2차 산업혁명이 발발했다고 주장합니다. 당시에 고안된 내연기관, 전기, 전화와 혁신적인 공장 기계는 도시화, 소비주의 및 사회적 소외의 새로운 순환을 가져왔습니다. 심지어는 문명이 또 다른 '산업혁명'에 진입했다고 믿는 이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즉, 2000년 이후에 발생한 변화만 보더라도 이를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 ||<-2> {{{+2 {{{#fff '''설명'''}}}}}} || ||<:>인용구 ||'''"제가 봤을 때 인류는 산업혁명 때 큰 실수를 저질렀는데, 그것은 바로 기계를 향한 도약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손을 사용해야 창조적이 되는데 말이죠.'''" - 앙드레 노튼[* Andre Norton 1912~2005. 미국의 작가] '''"폭력적 경제의 핵심 용어는 도시화, 산업화, 집중화, 효율, 그리고 속도이다."''' - E.F. 슈마허[* Ernst Friedrich Schumacher 1911~1977. [[독일]]의 경제학자] || ||<:>선행 기술 ||[[#s-5.2.1|가로돛]], [[#s-5.1.2|대량 생산]]|| ||<:>후속 기술 ||[[#s-6.2.1|증기력]], [[#s-7.1.1|비행]]|| || 유레카 조건 ||작업장 2곳을 건설하십시오.|| || 유레카 문구 ||바쁘게 돌아가는 제국의 작업장은 다가올 중대한 변화를 암시합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려는 것일까요?|| ||<:> 효과 ||시설 '''광산'''이 생산력 +1을 추가로 생산합니다. '''석탄''' 자원이 지도 상에 드러납니다.|| ||<:> 잠금 해제 ||산업구역 특수지구의 건물 '''공장'''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산업구역 특수지구의 건물 '''석탄 발전소'''(해당 산업구역의 인접 보너스만큼의 생산력을 추가로 제공하며, 석탄 하나당 전력 4를 얻지만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많이 증가합니다.)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프로젝트를 통해 현재 발전소를 석탄 발전소로 바꿀 수 있게 됩니다. 불가사의 '''루르 밸리'''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일본|일본]]: 공장을 대체하는 고유 건물 '''전자 공장'''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 [[이론|과학이론]](Scientific Theory) [anchor(과학이론)] ==== ||||<:>[[파일:external/vignette4.wikia.nocookie.net/Scientific_Theory_%28Civ6%29.png|width=65]][br]'''{{{+2 {{{#fff 과학이론}}}}}}''' || || 역사적 배경 ||과학이론은 재현 가능한 현상에 대한 입증 및 잦은 관찰에 기반을 두고 있는 만큼 자연적, 인위적 원리를 설명하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합니다. 결국 경험 과학 이론은 예측적이고 보편적이며 실험적입니다. 반면에 과학 법칙은 현상의 원리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지 않으며 단순히 발생 현상에 대한 비가변적 관찰에 불과합니다. 플로지스톤설과 같은 모호한 이론은 연구 또는 도구를 통해 현상에 대한 새로운 경험적 데이터가 발견되면서 구석으로 방치되었습니다. 과학이론은 과학적 방법의 진화에 토대를 두고 이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오르가논'을 통해 제시한 과학적 관찰에 대한 귀납적-연역적 접근 방식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이는 이론 형성을 위한 유일한 접근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자연이 작용하는 원리와 이유를 '추론'하기 위한 자체적인 규칙을 수립했습니다. 온갖 전쟁, 전염병과 기근에서 생존하느라 분주했던 암흑기 시대의 유럽인들은 과학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021년에는 아랍의 물리학자인 알하젠(al-Haytham)이 과학이론 제시를 위한 수단, 즉, 관찰, 실험, 사고적 논리를 확립했습니다. 유럽이 각종 문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동안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자들은 과학적 논리의 형성 방식에 대한 나름의 사고를 더했습니다. 프란시스코 산체스는 1571년부터 1573년 사이에 발표된 자신의 논문에서 지식 추구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회의론에 따른다고 주장했고, 프란시스 베이컨은 과학이론 제시를 위한 기준으로 소거귀납법을 창안했습니다. 소거귀납법은 데카르트, 갈릴레이와 뉴턴에 의해 보완되었습니다. 20세기는 찰스 피어스, 칼 포퍼와 토마스 쿤에 의해 올바른 과학 방식의 관념에 대한 토론 및 발전이 이루어졌고, 이는 모든 연구 분야에서의 탐구를 위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경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좀 더 비경험적인 방식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과학이론은 지금도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더욱 안락한 인간의 삶을 위한 통찰력과 기술을 문명에 선사했습니다. || ||<-2> {{{+2 {{{#fff '''설명'''}}}}}} || ||<:>인용구 ||'''"시험할 수 없는 주장과 반증에 면역이 된 주장은, 아무리 우리를 고무시키고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가치가 있더라도, 진실로 쓸모없도다.'''" - [[칼 세이건]] '''"사실이 이론에 맞지 않으면, 사실을 바꿔라."'''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알버트 아인슈타인]] || ||<:>선행 기술 ||[[#s-5.1.3|은행업]], [[#s-5.2.2|천문학]]|| ||<:>후속 기술 ||[[#s-6.2.2|위생]], [[#s-6.2.3|경제학]], [[#s-7.1.1|비행]]|| ||<:>유레카 조건 ||계몽주의 사회 제도를 보유하십시오.|| ||<:>유레카 문구 ||계몽주의 시대의 도래로 과학적 방법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 효과 ||없음|| ||<:> 잠금 해제 ||불가사의 '''옥스퍼드 대학'''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다른 문명과 '''공동연구 협정'''을 맺을 수 있게 됩니다.|| ==== [[탄도학]](Ballistics)[anchor(탄도학)] ==== ||||<:>[[파일:문명6_탄도학.png|width=65]][br]'''{{{+2 {{{#fff 탄도학}}}}}}''' || || 역사적 배경 ||물건을 던지기 위한 역학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이루어졌으며 원시 문명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매우 능숙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역학과 관련된 과학을 '탄도학'이라 부릅니다. 이어서 10,000년 전에는 활이 고안되었고, 화약의 등장과 함께 탄도학 역학에 대한 연구는 매우 복잡해졌습니다. 총알, 폭탄, 로켓 등의 움직임, 동작과 효과는 모든 문명의 군대와 법 집행 기관의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대포가 전쟁에서 자주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공병학 기술자들은 성벽이나 인간을 깔아 뭉개기 위한 포탄의 경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요인(고도 및 편차 등)의 조합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곧 관련 연구를 4개의 하위 영역으로 분류했으며, 초기 가속과 관련된 내부 탄도학, 무동력 비행으로의 전환과 관련된 전이 탄도학, 궤도에 초점을 둔 외부 탄도학과 비행 종료 시의 효과와 관련된 종말 탄도학이 여기에 포함되었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와 발전된 기술 덕분에 군대에서는 무기뿐만 아니라 전쟁의 온갖 다양한 측면('상처 탄도학' 등에 대한 연구)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욱 발전된 형태의 총알, 폭탄과 포탄이 끊임없이 개발되었습니다. 상처 탄도학 연구는 곧 민간 영역에 도입되었습니다. 장교, 외과의, 연구자 겸 법의학자였던 캘빈 후커 고더드는 1920년대의 법의학 탄도학 분야를 창시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비교 현미경을 사용하여 범죄 현장의 총알을 연구하는 방법을 개척했으며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뉴욕 시에 세계 최초의 법의학 탄도학 부서를 결성했습니다. 그의 방식은 범죄를 해결하고 범죄자들을 처벌하는 데 매우 성공적인 효과를 발휘했고, 후버는 FBI 사무소에서도 이 방식을 도입하도록 장려했습니다. 당시의 지식은 오늘날 TV에서 방영되는 범죄수사물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 ||<-2> {{{+2 {{{#fff '''설명'''}}}}}} || ||<:>인용구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추측해 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우리는 탄도학적으로 확정되기 전에 추측은 하지 않습니다.'''" - 존 핸슨[* John Hanson 1721~1783. 미국의 정치인] '''"무릎 꿇고 기도하시죠. 그런데 누구에게 하죠? 혹시 탄도학의 수호성인 없나요?"''' - [[Mythbusters|아담 세비지]][* 2004년 방영된 에피소드 중 목욕탕 안에 헤어드라이기를 넣어서 감전사시키는 실험을 하기 위해 탄도학 젤로 더미 인형을 만드는 과정에서 내뱉은 말이다. 원문은 "Is there a patron saint of ballistics gel?"로, 아담이 찾은 것은 탄도학의 수호성인이 아니라 탄도학 젤의 수호성인이었다. 실제로는 탄도학과는 별 상관없는 대사를 단어 하나만 잘라낸 다음에 인용한 거다.] || ||<:>선행 기술 ||주조|| ||<:>후속 기술 ||강선|| ||<:> 유레카 조건 ||영토 내에 공병이 지은 요새 2개를 보유하십시오.|| ||<:> 유레카 문구 ||지금은 당신의 도시들이 여러 개의 요새로 보호되고 있지만, 대포로 방어될 수 있다면 어떨까요?|| ||<:> 효과 ||없음|| ||<:> 잠금 해제 ||원거리 유닛 '''전장포'''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중기병 유닛 '''흉갑기병'''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미국|미국]]: 흉갑기병을 대체하는 고유 유닛 '''의용 기병대'''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 [[군사학|군사 과학]](Military Science) [anchor(군사 과학)] ==== ||||<:>[[파일:external/vignette1.wikia.nocookie.net/Military_Science_%28Civ6%29.png|width=65]][br]'''{{{+2 {{{#fff 군사 과학}}}}}}''' || || 역사적 배경 ||군사 과학은 아군과 적군에 대한 '조직화한 강압적인 무력'과 관련된 이론 및 응용 학문입니다. 핵무기의 도래로 군사 과학의 많은 부분이 쓸모없게 됐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기 전까지만 해도, 이 용어는 항상 대문자(Military science)로 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물리학, 철학 및 정치학에 상응하는 학문으로 간주하였습니다. 하지만 클라우제비츠는 '다른 과학이나 예술과 달리, 전쟁에서는 대상이 반응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손자, 아에네아스 탁티쿠스, 미야모토 무사시와 니콜로 마키아벨리를 비롯한 과거의 수많은 장군들과 저술가들은 군사력을 이용하여 고국을 보호하거나 인접 국가를 짓밟는 행위를 비롯한 문명의 정치적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아르당 뒤 파크, 알프레드 사이어 머핸과 대(elder) 헬무트 폰 몰트케는 1800년대 후반의 표면적인 과학에 전쟁 이론을 접목시켰습니다. 무기, 전략과 기술의 발달은 미국 남북전쟁과 프로이센 프랑스 전쟁에서 무기, 전략과 기술의 발달로 이어졌고, 군사 과학은 단순한 전장학의 범위에서 벗어나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폰 몰트케는 도로와 전보를 활용하여 승리를 보장 받는 방법에 대한 방대한 양의 글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군사 과학은 전쟁의 모든 측면을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아르당 뒤 파크는 개인과 단체의 사기가 병사의 전투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관찰한 반면 한스 델브뤼크는 '소모 전략'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다른 군사 과학자들은 병참, 경제, 국민 사기, 군사 첩보는 물론 전쟁의 난해한 부분에도 집중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장군들에게 새로운 군사 과학 이론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했으며, 이는 어찌 보면 학살과 관련된 경험적 실험의 한 부류로 볼 수도 있습니다. 상호파괴, 국가가 지원하는 테러리즘과 군산 복합체로 표현되는 냉전은 군사 과학을 단순한 이론에서 대부분의 민간인들에게 공포와 직접적인 영향을 가하는 학문으로 변질시켰습니다. 이후로 군사 과학에서는 단순성이 사라졌습니다. || ||<-2> {{{+2 {{{#fff '''설명'''}}}}}} || ||<:> 인용구 ||'''"전략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가끔은 결과에도 신경써야 하지 않나요?'''" - [[윈스턴 처칠]] '''"전쟁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며 전쟁을 어떻게 지휘할 것인지 분명히 알고 있지 않으면서 전쟁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 ||<:> 선행 기술 ||공성 전략, 인쇄술|| ||<:> 후속 기술 ||강선|| ||<:> 유레카 조건 ||기사로 적 유닛을 처치하십시오.|| ||<:> 유레카 문구 ||당신의 용맹스러운 기사가 적을 무찔렀습니다. 이 승리에서 배움을 얻어 군사 지식을 공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 효과 ||없음|| ||<:> 잠금 해제 ||주둔지 특수지구의 건물 '''사관 학교'''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경기병 유닛 '''기병대'''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근접 유닛 '''전열보병'''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러시아|러시아]]: 기병대를 대체하는 고유 유닛 '''코사크'''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헝가리|헝가리]]: 기병대를 대체하는 고유 유닛 '''후사르'''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그란 콜롬비아|그란 콜롬비아]]: 기병대를 대체하는 고유 유닛 '''야네로'''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영국|영국]]: 전열보병을 대체하는 고유 유닛 '''레드코트'''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문명 6/등장 문명/프랑스|프랑스]]: 전열보병을 대체하는 고유 유닛 '''제국근위대'''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 과학 1070 === ==== [[증기기관|증기력]](Steam Power) [anchor(증기력)] ==== ||||<:>[[파일:Steam_Power_(Civ6).png|width=65]][br]{{{+2 {{{#fff '''증기력'''}}}}}} || || 역사적 배경 ||끓을 때까지 가열된 물은 증기를 내뿜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증기를 처음으로 활용한 인물은 타끼 앗딘(Taqi al-Din Muhammed ibn Ma'ruf)이었습니다. 그는 1551년에 증기를 뿜는 가설의 증기 터빈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100년 후에는 에드워드 서머싯이 래글런 성에서 직접 설계한 증기 펌프의 실용 모형을 비롯한 자신의 '발명품' 컬렉션을 발표하면서 실현 가능한 증기기관에 대한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고안품을 광산업에 응용하겠다는 계획을 이루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습니다. 1680년에는 호이겐스가 피스톤을 구동하는 기관에 대해 설명하는 논문을 발표했으며 1698년에는 토머스 세이버리가 서머싯의 가상 복제품을 제작하여 증기 에너지의 응용이 가능한 온갖 사용 사례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하지만 1705년 토머스 뉴커먼이 증기 보일러를 실린더 안의 피스톤과 연결했습니다. 7년 후 고약한 세이버리와 제휴를 맺은 토머스는 광산에서 물을 퍼내기 위한 용도의 증기기관을 처음으로 설치했습니다. 머지 않아 수많은 발명가들이 '증기 에너지'를 활용하여 온갖 기계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간혹 폭발 사고로 자신들의 보일러와 함께 날아가 버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단순한 탐구의 대상에 불과했습니다. 1769년에는 제임스 와트가 별도의 응축기를 고안하고 초고압수에 두 번째 실린더를 설치하여 증기기관에 실용성과 안전성을 더했습니다. 증기와 함께 '산업 혁명'이 도래했습니다. 1802년에는 증기기관이 보트에 탑재되었고 1825년에는 [[스톡턴-달링턴 철도|증기 철도]]가 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증기 에너지는 전 세계의 산업과 운송 분야에 대변혁을 일으켰고, 이후 100년 동안 전 세계에는 철도와 증기선 항로가 복잡하게 구축되었습니다. 증기로 가동되는 공장의 기계에서는 수천 만 개의 상업재와 소비재를 쏟아냈고, 선진국에서는 생산성, 부와 오염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또한 증기기관의 주 연료인 석탄이 전 세계에서 쉴 새 없이 채집되었습니다. 증기기관은 결국 효율성은 높고 오염은 덜한 내연기관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석유 이전에는 증기가 최고였고, 증기 없이는 현재의 문명화된 세상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 ||<-2> {{{+2 {{{#fff '''설명'''}}}}}} || ||<:> 인용구 ||'''"증기기관 이후 과학의 발전이 과연 인류에게 이득을 줬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어.'''" - [[윈스턴 처칠]] '''"증기기관이 과학에 빚진 것보다, 과학이 증기기관에 빚진 것이 더 많다."''' - 로렌스 헨더슨[* Lawrence Joseph Henderson 1878~1942. 미국의 생리학자] || ||<:> 선행 기술 ||[[#s-6.1.1|산업화]], [[#s-5.2.1|가로돛]]|| ||<:>후속 기술 ||전기, [[#s-7.2.2|라디오]]|| ||<:> 유레카 조건 ||조선소 2곳을 건설하십시오.|| ||<:> 유레카 문구 ||새로 건설된 조선소에 산업적 감각을 적용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증기 전함이 바다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 효과 ||승선 유닛의 이동력이 +2 증가합니다.|| ||<:> 잠금 해제 ||해상 근접 유닛 '''철갑함'''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운하''' 특수지구를 지을 수 있게 됩니다. 세계 불가사의 '''파나마 운하'''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공병이 철과 석탄을 1씩 소모하여 철로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건설 횟수를 소진하지 않음) 철로는 이동력을 크게 높여줍니다.|| ==== [[위생]](Sanitation) [anchor(위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