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석가여래행적송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파일:석가여래행적송1.jpg]]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11260562|사진 출처 : 연합뉴스 - "고려시대 '석가여래행적송' 상권 있다" 주장 소장자 나와]] [목차] == 개요 == 釋迦如來行蹟頌. [[고려]] 후기의 [[승려]]인 운묵(雲默)이 1328년([[고려]] [[충숙왕]] 15)에 [[석가모니]]의 생애와 [[불교]]가 전래된 과정 등을 776구(句)의 게송으로 읊고 풀이한 [[한국]]의 [[불경]]. 오랜 세월 동안 [[조선]]시대의 후인본만 전해지고 있었으나 2019년 12월에 원본이 발견되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 내용 == [[파일:석가여래행적송2.jpg]] 석가여래행적송은 1328년에 [[한국]]의 승려 운묵(雲默)이 게송으로 읊고 주석한 책으로, 상편은 126게송, 하편은 74게송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 의하면, 저자는 근본 진리에서 볼 때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중생은 묘한 이치에 어두워서 번뇌 속을 헤매는 것을 생각하여, [[석가모니]]의 행적과 [[불교]]의 흐름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신행(信行)의 길잡이가 되도록 하고자 이 책을 쓴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까지 현존하는 고간본으로는 1572년([[선조(조선)|선조]] 5)에 두류산 신흥사(臣興寺) 개판본과 1643년([[인조]] 21)의 수청산 용복사(龍腹寺) 개판본, 1709년([[숙종(조선)|숙종]] 35)에 호연(浩然)이 발문을 쓴 판본 등으로, [[고려]] 때 운묵이 저술한 원본은 소실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다 2019년 12월 6일에 [[고려]] [[충숙왕]] 때 [[금속활자]]로 찍은 원본 상권이 발견되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화제가 되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5&aid=0002958467|중앙일보 : ‘소재 불명’ 석가여래행적송 소장자 나왔다…직지심체요절 기록 깰까]],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81&aid=0003049271|서울신문 : “고려시대 ‘석가여래행적송’ 상권 보관” 주장 나와]],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1266254|국민일보 : 제주서 “세계 최고(最古) 직지보다 앞선 인쇄물” 주장 소장자 나와]],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9595279|뉴시스 : “세계 최고(最古) 직지심체요절보다 먼저 만들어진 책 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1377)보다 40여년 앞서 간행된 것이다. 하지만 학계의 연구 결과 [[조선]] [[세조(조선)|세조]] 때 [[간경도감]]에서 복원한 복원본이라는 결과가 나왔다.[[http://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39625|충청투데이]] 당시 세조의 명으로 간경도감에서 과거 소실된 고려 불경의 복원 작업을 시행했는데 그 때 간행된 책이라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에 대해 소장자 장윤석(52)씨와 장씨가 소장한 책을 판정한 임홍순(67) 서경대 명예교수가 불복하고 있는 관계로 한동안 논란은 더 이어질 전망이다. 다만 조선 세조 때 복원한 것이라 할지라도 현재까지 전해지는 석가여래행적송 개판본들 중에서는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서지학적인 가치는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분류:고려의 불경]][[분류:조선의 불경]][[분류:개인 소장 문화재]]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