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오라데아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루마니아의 행정구역)] ||||<#000000><:>{{{#white {{{+3 오라데아 (루마니아)}}}}}}|| ||<-3><:> [include(틀:지도, 장소=Oradea)] || [목차] == 개요 ==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도시로, 비호르 주(Judeţul Bihor)[* [[헝가리어]]로는 Bihar megye.]의 [[주도(행정구역)|주도]]이다. [[루마니아]]와 [[헝가리]] [[국경]]에 위치한 [[국경도시]]로 이곳의 에피스코피아 비호르(Episcopia Bihor) 구에서는 루마니아와 헝가리 간의 철도 국경 심사가 이루어진다. == 언어별 표기 == || [[루마니아어]] || Oradea || || [[헝가리어]] || Nagyvárad(너지바러드) || || [[독일어]] || Großwardein(그로스바르다인) || || [[튀르키예어]] || Varat(바라트) || == 역사 == 1113년 [[라틴어]]인 바라디움(Varadinum)으로 문헌에 최초로 등장했다. [[헝가리 왕국]]의 국왕 [[라슬로 1세]]가 이곳에 [[가톨릭]] 교회 주교좌를 설치했다. 1538년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 대공국|오스트리아 대공]] [[페르디난트 1세]]와 [[동헝가리 왕국]]의 서포여이 야노시(Zápolya János 1490~1540)가 이곳에서 너지바러드 협약을 체결했다. 서포여이 야노시는 자신이 죽으면 헝가리 국왕 칭호를 페르디난트 1세에게 넘기기로 했으나 죽기 직전에 아들 [[서포여이 야노시 지그몬드]](Szapolyai János Zsigmond 1540~1571)가 태어나면서 [[오스만 제국]]의 [[파디샤]] [[쉴레이만 1세]]가 간섭해 재차 전쟁이 발발했고 결국 [[합스부르크 제국]], [[오스만 제국]], 동헝가리 왕국의 후신인 [[트란실바니아 공국|에르데이 공국]]의 각축전이 이어졌다. 1606년 에르데이 공국으로 편입되었으나, [[라코치 죄르지 2세]](II. Rákóczi György 1621~1660)가 [[폴란드-리투아니아]]에서 벌어진 [[대홍수(역사)|대홍수]]에 무리하게 개입하는 바람에 [[메흐메트 4세]]에게 낙인찍혀 라코치 죄르지 2세는 폐위되었고 도시는 [[오스만 헝가리]]의 바라트 에야레트(Eyālet-i Vārad)로 재편되었다. [[제2차 빈 공방전]]이 [[오스만 제국군]]의 패전으로 끝나고 [[대튀르크 전쟁]]이 발발하면서 황폐화되었고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합스부르크 제국]]에 편입되었다. 18세기에 들어서 합스부르크 가문 치하에서 재건되었다. [[1848년 헝가리 혁명]] 당시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으나 헝가리 독립 운동은 [[러시아 제국]]의 개입으로 좌절되었고, 이후 [[오스트리아 제국]]이 재편한 5개의 [[군구]][* [[부다페스트|오펜]], [[쇼프론|외덴부르크]], [[브라티슬라바|프레스부르크]], [[코시체|카샤우]] 등.]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다. 1868년 [[대타협]]을 통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재편되어 [[성 이슈트반 왕관령|헝가리가 부활]]하면서 비하르 주(Bihar vármegye)의 주도가 되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으로 [[트리아농 조약]]이 체결되며 [[루마니아 왕국]]으로 귀속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초반 [[헝가리 왕국(1920년~1946년)|헝가리]]가 일시적으로 되찾기도 했으나 결국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트리아농 조약의 국경으로 돌아가면서 루마니아로 반환되었다. == 사회 == 인구는 2011년 기준 약 19만 명. 인구의 3/4는 [[루마니아어]]를 사용하는 [[루마니아인]]이나 1/4는 [[헝가리어]]를 사용하는 [[헝가리인]]이다. 1910년 시행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약 64,000명이 거주했는데 91%가 헝가리어를 사용했다. [[분류:루마니아의 도시]]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