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우르남무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역대 우르 제3왕조 국왕)] [include(틀:수메르권 군주)] ||<-2> {{{#F0E68C,#F0E68C '''우르 제3왕조 초대 왕'''}}}[br]'''{{{#F0E68C,#F0E68C {{{+2 우르남무}}}}}}'''[br]{{{#F0E68C,#F0E68C '''𒌨𒀭𒇉'''}}}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urnammu.jpg|width=100%]]}}} || ||||<-3> {{{-1 우르남무 왕의 원통형 인장[* 오른쪽에 앉아 있는 인물이 우르남무로 추정되며 그 앞에 서 있는 인물은 [[난나(메소포타미아 신화)|난나]] 신의 대사제인 하샤메르이다. 둘 사이에 떠 있는 초승달은 난나를 형상화하여 드러낸 것이다.] }}} |||| || '''{{{#F0E68C,#F0E68C 왕조}}}''' ||[[우르 제3왕조]] || || '''[[후계자|{{{#F0E68C,#F0E68C 후임자}}}]]''' ||[[슐기]] || ||<|2> {{{#F0E68C,#F0E68C '''재위 기간'''}}} || {{{#000 우르 제3왕조 국왕}}} || ||BC 2112년 ~ BC 2094년 (18년) || [목차] == 개요 == [[우르 제3왕조]]의 초대 국왕. == 상세 == 우르남무가 왕좌에 오르기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상황은 [[아카드]] 제국이 멸망한 이후 구티족의 통치를 받고 있다가 [[우루크]]의 왕 우투헤갈에 의해 [[구티 왕조]]의 마지막 왕 티리간이 쫒겨나게 되고 구티족들이 격퇴되면서 수메르인들이 다시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평정했다. 그러다 [[우르]] 출신의 우르남무가 우투헤갈의 뒤를 이어 메소포타미아를 장악하게 되었다.[* 우투헤갈과 우르남무의 연관성은 딱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 우르남무가 우투헤갈 휘하의 장군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뛰어난 군사적 능력으로 막강한 세력을 확보한 덕분에 우투헨갈을 이어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르남무는 우르를 중심으로 한 [[우르 제3왕조]]를 건설하고 아카드 제국에 이어 다시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통일하였다. 이 과정에서 [[라가시]]와 [[우루크]]를 정복하고 종교 중심지인 [[니푸르]]의 대관식에서 통치자로 인정받고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이라고 자칭했다. [[파일:Ur-Nammu holding basket.jpg|width=200]] 우르남무의 흉상을 얹은 기초못. 우르남무는 군사적 업적 외에도 세계 최초의 성문법인 [[우르남무 법전]]을 제정하고 달의 신 [[난나(메소포타미아 신화)|난나]]를 기리기 위해 [[우르의 지구라트]] 건설을 시작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또한 지방 세력에 대한 충성심을 확보하기 위해 제국 전역의 주요 인사들과 가족을 결혼시켰다. 그는 구티족과의 전투 중 병사들에게 버려지고 전사하여 아들 [[슐기]]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영어로 읽은 이름이 우르남무라서 본인이 다스린 도시 [[우르]]와 연관 있는 이름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쐐기 문자]] 표기상으로는 𒌨𒀭𒇉(우르남무) - 𒋀𒀕𒆠(우르)로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딱히 관련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분류:우르 제3왕조 국왕]][[분류:창업군주]]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