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장말손 유품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목차] == 개요 == 張末孫 遺品. [[조선]] 전기의 명신인 장말손(張末孫, 1431~1486)이 남긴 두 종의 유품. 현재 [[경상북도]] [[영주시]] 장씨종택의 후손 장덕필(張悳弼)이 보관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보물|대한민국 보물]] 제881호로 지정되어 있다. == 내용 == 조선 세조 시기에 활약한 장말손이 남긴 유물로, 1400년대 중엽에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패도 한 자루와 적개공신회맹록(敵愾功臣會盟錄) 족자 1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회맹록은 세조가 이시애의 난을 수습한 신하들을 직접 만나 그 공을 치하하며 그들의 성명과 직위를 모두 기록하게 한 족자(簇子)로, 비단 4폭을 이어 5단으로 구분하였다. 첫단에는 왕의 친필 교서를, 아래 4단에는 1등 10명, 2등 23명, 3등 12명의 공신들과 그 밖의 공을 세운 사람들의 명단과 약력이 모두 기록되었다. 특히 이 이전대까지 국왕들은 2등 공신까지만 높게 쳐주고 3등 이하의 공로자는 포상을 생략하고 그들에 대해 따로 기록하지도 않았으나, 이 때는 3등 이하의 하급 공로자까지 국왕이 일일이 찾아가 치하하였기 때문에, 당시 낮은 계층으로서 활약했던 하급 무관에 대해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패도는 장말손이 1466년에 함경도 회령(會寧)의 전장에서 크게 활약하여 [[야인]]들을 물리치자 이에 세조가 그를 직접 찾아와 하사한 도검으로, 칼자루는 은과 금으로 용의 머리가 조각되어 있고, 칼집은 죽피(竹皮)로 만들었으며 양측면에는 상아뼈를, 중앙의 네 군데에는 은으로 모발문(毛髮紋)과 비늘 등을 묘사하여 박아놓았다. 원래는 패도와 함께 옥적(옥피리) 1정(丁)과 은배(은잔) 1쌍을 함께 하사받았고 이 세 가지 신기가 얼마 전까지 모두 전해지고 있었으나, 패도를 뺀 나머지 두 점은 [[6.25 전쟁]] 당시 누군가에 의해 도난당해서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다. 1460년 경 한국에서 국왕의 명으로 만들어진 족자와 도검으로 그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다. == 외부 링크 ==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8247&cid=46622&categoryId=46622|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장말손 유품]]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38407&cid=40942&categoryId=33383|두산백과 : 장말손유품]]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5547&cid=42840&categoryId=42845|지식백과 : 장말손 유품]] == 보물 제881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2,08810000,37&pageNo=5_2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장말손 유품 (張末孫 遺品)]] >조선 세조 때의 명신인 장말손(1431∼1486)의 것으로 패도(佩刀)와 적개공신회맹록이다. > >패도는 세조 12년(1466)에 함경도 회령에서 오랑캐를 물리친 공으로 왕으로부터 옥적(옥피리) 1정(丁)과 은배(은잔) 1쌍과 함께 하사받은 것이다. 적개공신회맹록은 세조 13년(1447)에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적개공신에 임명되어 예종 원년(1469) 3월에 내린 회맹록이다. > >특히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데 참가한 인물들을 파악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분류:대한민국의 보물]][[분류:조선의 도서]][[분류:도검]][[분류:인동 장씨]][[분류:개인 소장 문화재]][[분류:영주시의 문화재]]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