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제2차 이프르 전투 (r0 버전으로 되돌리기) [[분류:제1차 세계 대전/전투]][[분류:1915년 전투]] [include(틀:1차 세계대전의 전투 목록)] ||<-3> {{{+1 '''Second Battle of the Ypres[br]2차 이프르 전투'''}}} || ||<-3> [[제1차 세계대전]] 중 [[서부전선]]의 일부 || ||<-3> '''기간''' || ||<-3> [[1915년]] [[4월 22일]] ~ 1915년 [[5월 25일]] || ||<-3> '''교전 지역''' || ||<-3> 이프르, [[벨기에]] || ||<-3> '''교전국''' ||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width=23]] [[프랑스 제3공화국]][br][[파일:영국 국기.svg|width=23]] [[영국]][br] [[파일:벨기에 국기.svg|width=23]] [[벨기에]]||<-2>[[파일:독일 제국 국기.svg|width=23]] [[독일 제국]]|| ||<-3> '''동원 병력''' ||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width=23]]:사단 2개[br][[파일:영국 국기.svg|width=23]]:사단 6개||<-2>[[파일:독일 제국 국기.svg|width=23]]:제 4군[* 7개 사단] || ||<-3> '''사령관''' || ||[[파일:영국 국기.svg|width=23]] 호레이스 스미스-도리엔[br][[파일:영국 국기.svg|width=23]] 존 프렌치 [br] [[파일:영국 국기.svg|width=23]] [[허버트 플러머]]||<-2>[[파일:독일 제국 국기.svg|width=23]][[뷔르템베르크 공작 알브레히트]]|| ||<-3> '''피해''' || ||[[파일:프랑스 국기.svg|width=23]] 21,973명 전사[br][[파일:영국 국기.svg|width=23]] 59,275명 전사||<-2>[[파일:독일 제국 국기.svg|width=23]] 35,000명 이상 전사 || ||<-3> '''결과''' || ||<-3> 무승부[* 독일이 3마일 정도 얻어내긴 하였다.] || ||<-3> '''영향''' || ||<-3> 독가스 사용의 시작, 화학전 돌입 || [목차] [clearfix] == 개요 == 제2차 이프르 전투는 1915년 4월 22일과 5월 25일 사이에 발발한 [[독일제국군]]과 영프 연합군의 전투이다. == 전투 전 == 독일의 화학자이자 자원해서 군대에 입대한 [[발터 헤르만 네른스트]][* 192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이다.]는 [[독가스]]인 [[염소(원소)|염소]]가스를 제조해 [[막스 바우어]] 대령에게 이를 사용하자고 제안하였다. [[에리히 루덴도르프]]은 신무기 사용에 동의하였고, 이렇게 살상 목적의 독가스가 처음으로 실전에 나오게 되었다.[* 1907년 헤이그 협약으로 살상 목적의 화학무기 사용은 이미 금지된 상태였다. 다만 이때는 포탄을 이용한 화학무기 사용을 금지하는 것으로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고 독일군은 이 맹점을 이용해 실린더 형태의 독가스 살포 장치를 사용한다. 나중에 가면 연합군이고 독일군이고 포탄으로 쏘면서 신나게 독가스를 뿌리지만.] 일부 독일군에게만 방독면을 지급하였다. == 전투 == === 그라벤스타펠 능선 전투(1915년 4월 22~23일) === 1915년 4월 22일 오후 5시 쯤, 독일의 4군은 랑게마크의 작은 마을에 염소가스를 폭격하며 전투는 시작되었다. 무려 171톤의 염소가스를 배출하였다. 가스로 인해 프랑스군은 2~3,000명의 사상자를 냈고 800~1,400명의 사망자를 냈다. 사실상 독일군을 향한 영프군의 저항은 없었다. 그래서 쉽게 이프르를 점령할 수 있을줄 알았다. === 성 줄리엔 마을 전투 (4월 24일 – 5월 5일) === 첫 독가스 공격으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가 생겼다. 이에 캐나다군은 후방으로 가서 군대를 재편성했다. 캐나다군은 성 줄리엔 마을의 서쪽에 위치하였는데, 4월 24일 아침, 독일군이 바로 이쪽으로 독가스를 쐈다. 이미 독가스가 무엇인지 안 캐나다군은 대책으로 '''손수건에 소변을 보고 코와 입에 대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 조치는 너무 허접하였으며, 금방 마을은 독일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이날 독일군의 독가스를 맞은 대대는 거의 전멸하였다. 이후 독일군은 프랑스군을 대항하여 영프군의 참호에 독가스를 발사하였다. 처음에 영프군은 독일군이 연막작전을 쓰는 줄 알았으나, 독가스인것을 알아차린 영프군은 캐나다군이 했던 대로 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독일군도 가스가 무서웠는지 제대로 돌격하지 못하였다. 이후 소변의 암모니아 성분이 독가스의 염소성분을 중화시킨다는 것을 깨달았고, 소변을 뭍힌 방독면을 보급하였다. === 프레젠베르크 전투 (5월 8일~5월 13일) === 독일군은 야포를 이용해 영프군을 상대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영프군은 이를 뚫고 독일군을 몰아낼 수 있었다. 동시에 독일군은 거센 반격으로 진격할 수 없었다. PPCLI사단이 꽤나 큰 공을 세웠는데 700명으로 구성된 사단이 150명의 생존자가 남을때까지 싸웠으며, 독일군의 공세를 막아냈다. 이 전투로 "Holding up the whole damn line" 라는 말이 유행이게 되었다. === 벨와르드 전투(5월 24일~25일) === 5월 24일, 독일군은 벨와르드에 독가스를 방출했는데, 이는 꽤나 큰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소규모의 공격인 탓에 금방 끝났다. == 이후 == 제2차 이프르 전투는 양쪽에 엄청난 사상자만 만든 채 무승부로 끝났다. 독일군이 약 35,000명의 희생으로 전진한 땅은 3마일 뿐이었다. 제2차 이프르 전투는 소모전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전투 이후 독일군 및 연합군도 독가스의 강력함을 알게 되었고 끔찍하게도 전쟁은 계속되었다.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