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제20대 대통령 선거/대권주자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회원수정2)] [include(틀:상위 문서, top1=제20대 대통령 선거)] {{{#!wiki style="border: 1px solid gray; border-top: 5px solid #2e8b57; padding: 6px 10px 10px" {{{#!wiki style="margin-top: 4px; margin-left: 0px" '''이 문서는 토론 [[https://namu.wiki/thread/NutritiousComfortableObsceneCoast|1]], [[https://namu.wiki/thread/LongingScarceRuddyGrandfather|2]], [[https://namu.wiki/thread/MoldyVacuousMomentousWork|3]]을 통해 아래와 같은 기준으로 등재하기로 합의되었습니다.''' 합의된 부분을 토론 없이 수정할 시 제재될 수 있습니다.}}}{{{#!wiki style="text-align: center" {{{#!folding [ 내용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text-align: left" 1.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여론조사기관에서 최근 6개월간 실시한 조사에서 2회 이상 집계되거나,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이를 철회하지 않은 인물만 등재 가능. 1. 본인이 대선 출마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선언하거나, 최근 3개월 이상 정치활동을 중단한 인물 및 대선 출마가 불가능한 상태의 인물은 등재할 수 없음. 1. 각 정당란의 서술은 공식 후보가 확정되지 않은 정당에 한해 그 정당의 후보 선출의 방식과 규정에 대한 내용만 허용하고 각 후보에 대한 찬반으로 이어질 수 있는 내용은 금지한다.}}}}}}}}}}}} [include(틀:대한민국의 주요선거)] [include(틀:제20대 대통령 선거)] [include(틀:제20대 대통령 선거 정당별 상황)] [목차] == 개요 == 2022년 3월 9일 치뤄졌던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 가능성이 있었던 대권주자들의 전망에 대해 다룬 문서이다. 예비후보자 등록 / 명부 등 기타 사항들은 [[http://info.nec.go.kr/|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물들의 출생지는 출생 당시의 행정구역을 따랐다. 실제 출마 후보는 [[제20대 대통령 선거/후보]]를 참고할 것. == 원내 정당 == [include(틀:대한민국 국회의 원내 구성)] === [[더불어민주당|{{{#004ea2 더불어민주당}}}]] - [[이재명|{{{#004ea2 이재명}}}]]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이재명)] || {{{+2 '''[[더불어민주당|[[파일:더불어민주당 아이콘2.svg|height=30]]]]''' }}} ||<:>{{{+1 '''[[이재명|{{{#FFFFFF 이재명 (李在明)}}}]]'''}}}||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Lee Jae-myung.jpg|width=100%]]}}} || || {{{#fff '''출생'''}}} || [[1964년]] [[12월 22일]][* 형제들이 빨리 죽었기에 늦게 [[출생신고]]를 하려는 과정에서 그만 이재명의 생일을 헷갈리는 바람에 어머니가 점쟁이에게 물어 정한 생일이다. 정확히는 22일인지 23일인지가 헷갈려 점쟁이에게 물어봤다고. 이 때문에 실제 생년은 1963년이며, 위에 열거된 생일은 호적상 생일이다.], [[경상북도]] [[안동시|안동군]][* 현 경상북도 안동시] || || [[제19대 대통령 선거|{{{#fff '''19대 대선'''}}}]] || [[더불어민주당]] 경선 3위 || || {{{#fff '''상황'''}}} ||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 || {{{#fff '''기호'''}}} || '''1번''' || >'''위기에 강한[br]유능한 경제대통령''' 1986년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되었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활동을 한다. 2006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며 정치활동을 시작하여 [[정동영]] 및 [[정세균]]계에 속한다. 그리고 2010년 6월, 경기도 [[성남시]]의 시장이 되어 모라토리엄 선언과 부정부패 척결 등으로 화제를 끌기 시작한다. 2016년 4월, [[최성(정치인)|최성]] 전 고양시장, [[박주민]] 국회의원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선 몇 안 되는 [[더불어민주당]] 당원이다.[[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201490#cb|#]] 2016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촛불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이른바 [[사이다(유행어)|사이다]] 발언으로 큰 관심을 얻으며 한때 여론조사 지지율 2위를 기록하였다. 기성 정치인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며 선명성을 강하게 나타낸 후 당 안팎의 진보층으로부터 지지를 받으며 [[19대 대선]] 경선에 참여하였다. 신좌파 성향도 복합적으로 갖추었고, 성소수자에 대해 지지의 문제가 아니라고 퀴어 문제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보여[* 이 때문에 주로 [[성소수자]]들이 퀴어 인권에 친화적인 민주당 정치인이 [[남인순]], [[진선미]], [[박주민]], [[이재명]]뿐이냐며 한탄하기도 한다.], 범좌파와 일부 젊은 층에게 지지를 받았다.[* SNS와 오프라인 모임에서 주로 보이는 사람들이 주부나 50대 이상이기에 이런 이미지가 생겼지만, 자원봉사자나 트위터를 확인하면 2030대 진보세력에게도 지지를 받고 있음이 드러난다.] 경선 결과 [[안희정]]에게 근소한 차이로 밀려 3위로 밀려났다. 2018년 6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경기도지사]]에 출마하여 [[남경필]]을 가볍게 누르고 당선되었다. 지방선거 이후 검찰에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됐지만 당직을 자진 포기하는 백의종군 선언으로 징계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https://news.joins.com/article/23202009|#]] 2018년 11월, 이른바 '[[혜경궁 김씨 의혹]]'이 터지면서 친노친문 지지층과의 관계가 더욱 험악해졌다. 이 때문에 향후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친문과 끝장을 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무렵 친노친문 의원들의 모임인 '[[부엉이 모임]]'이 드러났는데, 여기에 소속된 최고위원들은 이재명의 징계를, 민평련계 설훈이나 박원순계 남인순 등은 징계를 유보하자고 주장했다. [[손가락혁명군]]으로 대표되는 지지집단의 지나치게 [[빠가 까를 만든다|극성맞은 모습]]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친노·친문 지지세력이라는 거대한 투표층을 끌어오는 데 심각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미 [[19대 대선]] 당시 이들이 보였던 모습들로[* 경선과정에서 '이재명이 답이다'라는 [[억지밈]]을 만들어 아무데서나 도배하고 다니거나, 심지어 경선으로 [[문재인]]이 선출되자 욕을 퍼부으며 [[안철수]]를 연호하기도 하였다.[[https://youtu.be/M2zRaiLflTc|#]]] 인해 친문 지지층들의 호감을 크게 상실하였다. 대선 이후로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모습을 보여 비호감 정서가 강해졌다.[* 원팀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문재인]]을 비방하였다.[[https://namu.wiki/w/%ED%8C%8C%EC%9D%BC:CrazyJMfandom.jpg|#]][[http://archive.is/RjePc|#]]] 이후 이재명 지사는 손가락혁명군과 선을 긋고 [[문재인 정부]]에게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으나, 손가혁과는 별개로 해당행위를 하면서 이재명을 신성시하는 극단적인 지지세력이 꾸준히 이재명의 이미지를 망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똥파리(정치)|극단적인 친문 세력]]에게도 나타나는 것으로 결국 극단적인 지지층은 반대세력을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20년 들어서는 행정력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으며 대권후보 지지율 2위 자리를 차지하며 본격적인 대선 경쟁에 뛰어들었다. [[긴급재난지원금|재난지원금]], [[기본소득제]] 등 진보적인 어젠다로 타 민주당 주자들과의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시도지사 평가 또한 역대 경기도지사 중에서 가장 높은 70% 고지를 밟고 있기에, 경기도의 탄탄한 지지를 바탕으로 선거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8대 대선]]에서 [[문재인]]은 수도권에서 [[서울특별시]]를 제외하고, [[인천광역시]], [[경기도]]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단 3% 차이로 낙선했다. 전체 인구의 1/3을 넘는 유권자를 보유한 수도권의 지지율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또한 경기 지사 취임 후부터 꾸준히 골머리를 썩어왔던 재판도 7월 16일 상고심이 무죄 취지 파기환송 됨에 따라 도정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2021년 4월, 민주당이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함에 따라 경쟁 상대였던 이낙연이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대통령 임기 말에 선거에서 크게 패한다면 [[레임덕]]이 발생하면서 당내에 권력이 차기 주자로 이동하기 때문] 그러나 예상외로 대통령 국정 지지율 마지노선인 30%가 깨지지 않고 30대 초중반을 유지하면서 이재명의 포지션이 애매해졌다. 만약 30%가 깨졌다면 이재명은 그대로 역대 대선주자들과 똑같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였을 텐데[* 경기도가 독자적으로 러시아산 코로나 백신을 들여오려는 것처럼 말이다.] 지지율이 유지됨으로써 대놓고 차별화를 하지 않고 친문 지지세력의 눈치를 봐야 함과 동시에 문재인 정부와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하는 여러 가지로 곤란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낙연이 내상을 심하게 입으며 여당 내의 독보적 대선주자로 자리를 굳힌 것은 득이 되었으나 재보선만 이기면 대선은 거져먹는다는 민주당의 계획이 깨지고 기울어졌던 대선판이 다시 평평해진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즉 경선을 뚫기는 쉬워졌으나 그 대가로 본선 난이도가 대폭 상승한 것. 2021년 5월 12일, 지지자들, [[홍정민]], [[양향자]], [[전용기(정치인)|전용기]], [[이형석]], [[최기상]] 의원 등 일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공개 모임을 가졌다. 대권 레이스에 시동을 건 것으로 해석된다.[[https://n.news.naver.com/article/022/0003580517|#]] 2021년 5월 21일, 2021 DMZ 포럼에서 '소통'과 '협력'을 기반으로 한 대북 정책 구상을 했다 포럼에서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친노 대모 [[한명숙]] 전 총리 등 과 자리를 같이하며 세 과시에 나섰다고 평가되고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지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한명숙]] 전 총리, [[문정인]] 전 [[문재인]] 대통령 특보, [[이종석(정치인)|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노무현]] 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 등이 참석하며 [[더불어민주당]] 유력 대권주자임을 과시했다고 평가된다.[[https://n.news.naver.com/article/057/0001578492|#]] 현직 지자체장임을 이용한 어젠다 세팅과 특유의 선명한 색깔과 행정력으로 지지율을 모으고 있고 [[2021년 재보궐선거]]로 인해 이낙연 등의 경쟁 주자들이 대거 나가떨어져 대안부재론의 주인공이라는 점은 이재명에게 유리한 점이지만 음주운전, 검사 사칭 등 4건의 전과들과 이재명을 둘러싼 수많은 [[이재명/비판 및 논란|여러 의혹들]]이 잠재적인 걸림돌로 거론되고 있으며 당내 세력이 상당히 미약한 편이다. 문재인과의 차별화와 동시에 친문과의 관계 개선[* 반 이재명, 친 이낙연계 초강성 친문에게 이재명은 철천지원수로 취급받는다. 그 반 이재명 친 이낙연계의 대표주자가 갈등을 겪고 있는 [[조광한]]이다. 현재 조광한이 반 이재명계에서 총대를 메고 이재명 죽이기에 나서고 있어서 초강성 친문과의 갈등은 개선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초강성 친문을 제외한 온건친문들 사이에서는 이낙연이 일으킨 각종 병크와 전남지사 시절 각종 실책들이 조명되며 이재명이나 추미애로 옮겨가는 사람 들이 굉장히 많다.] 사이에서 적절한 줄타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2021년 7월 1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https://youtu.be/bgHdPY2QK1g|#]] 2021년 10월 10일,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20대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해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만약 당선이 됐다면, 최초의 소년공 출신 대통령이자 검정고시 출신 대통령[* 그것도 2번이나 검정고시를 치렀다.], [[경기도지사]] 출신 대통령, 첫 1960년대생 대통령, 민주화 이후 국회의원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된 최초의 대통령[*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모두 [[대한민국 국회의원]] 출신이다.]이 될 것이다.[* 만약 다음 대선에 재수해서 출마해서 당선되면 국회의원을 거친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대선 패배 이후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해서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최초로 운동권 출신도, 독재 정권 연관자도 아닌 대통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은 독재자 등재 기준에 부합하고, [[노태우]] 역시 군부독재와 연관이 있으며 [[박근혜]] 역시 군부독재자인 아버지의 정권에서 [[퍼스트 레이디]]까지 대행했던 만큼 연관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 한편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문재인]]은 모두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다만, 영향력이 거의 없이 짧게 역임하고 사임한 [[윤보선]], [[최규하]]는 제외한다.] 축구팀 구단주 출신 대통령, 그리고 비록 경기도 출신은 아니나, 최초로 경기도 정체성, 지지 등을 받으며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더불어 그의 모교인 [[중앙대학교]]는 최초로 대통령을 배출하게 되며 또한 6공 출범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보수 10년-민주당계 10년 체제가 유지되는 것이다. === [[국민의힘|{{{#E61E2B 국민의힘}}}]] - [[윤석열|{{{#E61E2B 윤석열}}}]]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윤석열)]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2 '''[[국민의힘|[[파일:국민의힘 아이콘.svg|height=25]]]]''' }}} ||<:>{{{+1 '''[[윤석열|{{{#FFFFFF 윤석열 (尹錫悅)}}}]]'''}}}||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South_Korea_President_Yoon_Suk_Yeol_portrait.jpg|width=100%]]}}} || || {{{#fff '''출생'''}}} || [[1960년]] [[12월 18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 || {{{#fff '''상황'''}}} || '''국민의힘 대선 후보''' || || {{{#fff '''기호'''}}} || '''2번''' ||}}} >'''국민이 키운 윤석열[br]내일을 바꾸는 대통령''' [[검사(법조인)|검사]]로서 2003년 [[참여 정부]] 인사의 정치자금법 위반, 2008년 [[이명박 정부]]의 [[BBK]] 특검, 2013년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이명박 대통령의 구속, 2019년 [[조국 사태]]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의 수사를 지휘한 것으로 유명하다. 살아있는 권력을 좌천까지 당하면서 수사하는 강직한 검사라는 평가와, 검찰 조직에 충성하여 정치적으로 수사한다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여야 양측 권력 핵심을 수사한 경력때문에 윤석열에게 호의를 가진 사람과 반감을 가진 사람이 여야 지지자 모두에게 있다. 2019년 6월 17일, [[검찰총장]]에 임명되는 과정부터 화제를 끌고, 2019년 9월 [[조국 사태]]와, 2019년 11월부터의 [[추미애]] 법무부장관과의 갈등까지 이어지며 대중적 인지도가 상승하였다. 이 무렵 보수 진영에서 이렇다 할 대권 후보가 안 보이자 일부 보수층에서 윤석열 총장을 문재인 정부의 대항마, 보수 진영의 대권 후보로 지지하는 여론이 생겼다. [[이명박]]과 [[박근혜]]를 감옥으로 보낸 장본인이라는 평도 있었으나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01020/103538735/1|#]], 친박의 대표적 인물인 [[김재원(정치인)|김재원]]을 비롯 국민의힘 지지층이 우호적, 포용적 자세를 보인다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1/03/11/QKXHVTGSKRGVXNM7Y336MOZZIY/|#]]. 2021년 3월 4일, 검찰총장직을 사퇴하면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라고 발언하며 정치 입문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http://naver.me/59jjIRx7|#]] 이후 정치 원로들과 만나고, 공부를 하며 정계 진출이 확실해졌다. 다만 잠행이 길어지며 국민의힘에서 제3지대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불안한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2021년 6월 29일,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http://naver.me/xor4COrC|#]] 이후 2021년 7월 12일, 무소속 상태로 대선 예비후보 등록을 했다. 2021년 7월 30일, 국민의힘에 전격적으로 입당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23&aid=0003630586|#]] 2021년 11월 5일,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20대 국민의힘 경선]]에서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후보를 누르고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2022년 3월 10일,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22년 5월 10일, 제2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헌정 사상 최초로 [[서울특별시|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이다.[* [[대한민국]]은 '[[서울 공화국]]'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수도권 인구 과포화가 심한 상태지만, 이는 [[1970년대]] [[이촌향도]] 현상으로 많은 인구가 서울로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가장 연배가 어린 [[문재인]] 대통령이 1953년생인데, 이와 비슷하게 대통령을 바라볼 수준의 세대인 5~60년대생 중에는 '서울 태생'이 많지 않다.] 또한 헌정 사상 최초의 무자녀 기혼 대통령이자[* 미혼인 [[박근혜]]를 제외한 기혼 대통령들은 전부 자녀가 2명 이상 있다.] 민주화 이후 선출직 공무원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된 최초의 대통령이며,[* 여태까지 선출직 경험 없이 대통령이 된 경우는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뿐이다.]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된 최초의 대통령[*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모두 [[대한민국 국회의원]] 출신이다.]이자 또한 윤석열의 모교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은 최초로 대통령을 배출한 셈이다. === [[정의당|{{{#ffcc00 정의당}}}]] - [[심상정|{{{#ffcc00 심상정}}}]]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심상정)] || {{{+2 '''[[정의당|[[파일:정의당 V 로고.png|height=30]]]]''' }}} ||<:>{{{+1 '''[[심상정|{{{#000 심상정 (沈相奵)}}}]]'''}}}||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심상정 20대 대선 선관위 프로필.jpg|width=100%]]}}} || || {{{#000 '''출생'''}}} || [[1959년]] [[2월 20일]], [[경기도]] [[파주시|파주군]][* 현 경기도 파주시] || || [[제17대 대통령 선거|{{{#000 '''17대 대선'''}}}]] || [[민주노동당]] 경선 2위 || || [[제18대 대통령 선거|{{{#000 '''18대 대선'''}}}]] ||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 ([[진보정의당]]) || || [[제19대 대통령 선거|{{{#000 '''19대 대선'''}}}]] || 본선 5위 (6.17%, [[정의당]]) || || {{{#000 '''상황'''}}} || '''정의당 대선후보''' || || {{{#000 '''기호'''}}} || '''3번''' || >'''주4일제 복지국가[br]일하는 시민의 대통령''' 노동운동가, 민주화운동가 출신인 진보정치인으로 [[전태일]], [[김문수]]와 함께 민주화 시대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2017년 5월,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6.17%라는 진보 정당 자체 역대 최다 득표율을 받았다. 2018년 7월 [[노회찬]] 의원 사망과, 2021년 1월 [[김종철(1970)|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논란으로 사실상 정의당 내의 거의 유일한[* [[여영국]], [[이정미(정치인)|이정미]] 의원 정도가 비슷한 정도지만 인지도 면에서 심상정 대표보다 확실히 약하다.] 대권주자급 위상의 인물이다. 2018년 11월 2일, 이낙연 총리에 이어 차기 진보진영 대선후보 적합도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http://www.upinews.kr/news/newsview.php?ncode=1065614383515949|#]][* 물론 유승민 의원이 보수진영 적합도 1위인 것처럼 적합도와 지지율에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2020년 4월, [[21대 총선]]에서 본인은 진보 진영 최초로 4선에 성공했고, 당은 [[20대 총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1대 총선]]을 거치며 꾸준히 정의당의 비례 득표가 늘어나 9.7%를 기록했다. 하지만 심상정 외엔 지역구 당선자가 없는 데다 국회 내 입지가 좁아진 만큼 정의당과 심상정만의 선명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중요해졌다. 나아가 [[메갈리아]] 옹호 논란에 대한 미흡한 대처 등 정의당의 발목을 잡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약점이 있다. 2021년 4월 28일, 정의당은 대선 후보를 내겠다고 입장을 밝힌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4786337|#]] 2021년부터 정의당이 점점 더 우클릭하는 더불어민주당을 기득권으로 규정하고, 비판에 나섬에 따라 단일화의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다고 봐야 한다.[* 다만 민주당에서 [[이재명]] 등 진보 성향 후보자가 나오거나 정권 재창출 시 정의당 인사의 내각 참여를 보장하거나 하면 더불어민주당과 단일화를 할 가능성도 있다.] '''2021년 8월 12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2021년 10월 6일, [[정의당]] 후보 경선에서 46.42%를 차지하며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19대 대통령 경선에서는 80.71%를 차지했던 것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이다. 심지어는 정의당 내부에서 심상정 의원이 아닌 새로운 후보가 등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져 [[심상정]] 의원에게는 불리한 점이 늘어났다. 2021년 10월 12일, 결선투표에서 51.12%를 차지하면서 48.88%를 차지한 [[이정미(정치인)|이정미]] 후보를 누르고 최종후보로 확정됐다. 정의당에게는 압도적 과반은 이뤄지지 않으며 이정미, 김윤기 등 심상정 외 후보의 가능성을 보여준 선거이기도 하지만 심상정에게는 [[노회찬]] 전 [[정의당]] 원내대표, [[조승수]] 전 의원과 함께 [[노심조]]라 불리며 진보정치의 대표 정치인 이었던 위상은 많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심상정 후보의 가장 큰 과제로는 [[더불어민주당]]과의 관계설정이 어려운 과제로 통한다. 조국 사태 이후 정의당은 조국에 우호적이지도 비판적이지도 않은 정도의 태도를 취했는데 이 때문에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배신자라 비판을 받고 그 외에서는 민주당 2중대라 비판 받으며 지지도가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비례대표 표가 사표가 안되는 투표 개혁이라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의석 증가를 꿈꾸었지만 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을 창당하며 종전과 같은 의석인 6석을 가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도 민주당과 크게 틀어졌는데 민주당이 정의당에 위성정당 참여를 제안했으나 정의당은 거절했으며 민주당을 거대양당 기득권으로 설정하며 비판하다보니 민주당과 감정에 이골이 생길 수 밖엔 없었다. 결국 심상정 후보의 출마 이후에도 민주당 지지층의 '비호감 정당' 비판과 비민주당 지지층의 '정의없는 정의당', '민주당 2중대' 등의 비판을 받자, 심 후보는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에 들어가기에 이르르기도 했다. 칩거 이후 심상정 후보는 '남탓하지 않겠다' 라며 그동안 모든 책임을 거대양당 카르텔에만 돌린 것에 반성한다고 밝혔으며 더이상 민주당 2중대로 불리우지 않겠다고 기자회견을 하며 반성하고 쇄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보정치인이다 보니 [[노동자]], [[농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생산계급 이슈를 주로 주장하며, 지지율 역시 이들과 소위 '강남좌파'로 통하는 [[화이트칼라]]에서 자주 나온다. 이점은 심상정 후보에게 강점이자 약점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다른 군소정당 후보들과 달리 확실한 집토끼 지지층이 고정적으로 5% 내외는 존재하지만 이외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도 심상정 후보에게 주로 호소되는 대상인 20대 여성, 30대 여성과 40대 여성, 화이트칼라 계급 4050남성에게는 높은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이외 세대에서 5% 보다도 낮은 지지를 받기도 한다. 그 외에도 문제가 하나 더 존재하는데 심상정의 뒤를 받쳐줄 정치세력이 너무 한미하다는 점이다. 국회의원은 본인 포함 총 6명인데 그나마 지역구는 경기도 [[고양시 갑]]의 심상정 본인 혼자뿐이다. === [[기본소득당|{{{#00B1A0 기본소득당 }}}]] - [[오준호|{{{#00B1A0 오준호 }}}]]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오준호)] || {{{+2 '''[[기본소득당|[[파일:기본소득당 아이콘_베이직 민트(2021).svg|height=30]]]]''' }}} ||<:>{{{+1 '''[[오준호|{{{#FFFFFF 오준호 (吳準鎬)}}}]]'''}}}||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오준호 20대 대선 선관위 프로필.jpg|width=100%]]}}} || || {{{#fff '''출생'''}}} || [[1975년]] [[6월 20일]], [[대구광역시]] || || {{{#fff '''상황'''}}} || '''기본소득당 대선 후보''' || || {{{#fff '''기호'''}}} || '''5번''' || >'''누구나 나답게, 기본소득 대한민국''' 2021년 11월 11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https://www.basicincomeparty.kr/news/briefing?pageid=8&mod=document&uid=767|출마 선언문]] [[https://www.segye.com/newsView/20211111514549|기사]] 전국민 1명당 월 60만 원 기본소득을 보장하겠다고 밝혔으며, 10년 내에는 전국민 1인 월 100만 원 기본소득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인 [[이재명]]을 [[https://newsis.com/view/?id=NISX20211111_0001647499&cID=10303&pID=10300|비판하였으며]], 동시에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후보인 [[윤석열]]을 "정책도 비전도 없는 검찰대통령 후보의 집권 가능성만 더 커졌다."며 비판하였다. 11월 24일 첫 공약으로 '당신이 누구든 매월 65만 원 기본소득'을 발표했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6055|#]] 재원마련 방안으로는 시민세·탄소세·토지세로 구성된 기본소득 목적세를 제시했다. 오준호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공평한 출발선과 획일화한 기회 구조를 깨 경제 자유를 부여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라고 밝혔다. 11월 30일 두 번째 공약으로 '누구도 외롭지 않을 권리, [[생활동반자법|생활동반자제도]]'를 발표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0908|#]] 오준호 후보는 가족이 혼인, 혈연관계를 넘어 친밀함과 돌봄을 실천하는 다양한 형태로 나아갔다면서, "누구를 동반자로 택하든 헌법의 행복 추구권을 누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12월 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고 세 번째 공약 '기후위기 해결, 기본소득 탄소세와 공유지분형 그린뉴딜'을 발표했다. [[https://www.basicincomeparty.kr/news/briefing?uid=845&mod=document&pageid=1|보도자료]] 기본소득 탄소세 도입, 탈석탄, 수송 부문 내연기관 전환 등을 약속하며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현행 대비 50% 감축할 것을 공약했다. 독특한 정책으로 공공 재정으로 녹색 산업과 기술에 투자하고 국민이 지분권과 수익권을 가지는 공유지분형 그린뉴딜을 제안했다. 한편 "탄소 중립 주간에 '이메일 지우기'에 동참하는 것은 해일이 밀려오는 데 돌 던져 맞선다는 격"이라며 이재명 후보의 정책을 비판했다. == 원외 정당 == [include(틀:대한민국의 원외정당)] === [[국가혁명당|{{{#e7141d 국가혁명당}}}]] - [[허경영|{{{#e7141d 허경영}}}]]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허경영)] || {{{+2 '''[[국가혁명당|[[파일:국가혁명당의 로고.png|height=30]]]]''' }}} ||<:>{{{+1 '''[[허경영|{{{#FFFFFF 허경영 (許京寧)}}}]]'''}}}||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새프로필용사진.jpg|width=100%]]}}} || || {{{#fff '''출생'''}}} || [[1947년]] [[7월 13일]], [[경상남도]] [[밀양군]][* 현 경상남도 밀양시][* 주민등록상 나이 및 출생지이며, 본인은 [[1950년]] [[1월 1일]] 서울 중랑천 다리 밑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 || [[제15대 대통령 선거|{{{#fff '''15대 대선'''}}}]] || 본선 7위 (0.2%, [[민주공화당(1997년)|민주공화당]]) || || [[제17대 대통령 선거|{{{#fff '''17대 대선'''}}}]] || 본선 7위 (0.4%, [[민주공화당(1997년)|경제공화당]]) || || {{{#fff '''상황'''}}} || '''국가혁명당 대선 후보''' || || {{{#fff '''기호'''}}} || '''6번''' || >'''국가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도둑놈이 많습니다!''' 2018년 12월 18일, 본인이 출마하겠다고 [[https://youtu.be/5OwvYiXjmcM|공언하였다.]] 2018년 12월 24일, 10년이나 금지되었던 피선거권이 복권되었다. 피선거권이 없어졌던 이유는 [[제17대 대통령 선거|17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와 결혼" 공약이 [[명예훼손]]으로 유죄, 1년 6개월의 징역도 살았기 때문이다. 공언했던 황교안 당시 권한대행의 사면 복권도 없었다. 2018년 12월 27일, "이제 좌·우파 모두 답이 없다는 사실도, 오직 허경영의 공약만이 대한민국을 살릴 길이라는 사실도 모두가 알아가고 있다. 허경영을 연호하는 물결이 전국에 일어날 것"이라며 대선 출마 계획을 다시 공언했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2948853|#]] 2019년 8월 15일, 독자 정당인 [[국가혁명당]]을 창당하고 당의 대선 후보로 추대받았다. 2019년 10월 21일, 당명을 [[국가혁명배당금당]]으로 바꾼다. 2020년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21대 총선]]에 비례대표 2번으로[* 한국은 국회의원 선거에도 [[여성 할당제]]가 적용되어, 홀수 번호에 여성이 의무화되어 있다.] 출마했으나 21대 총선 이전에 TV조선의 탐사보도 세븐, SBS의 그것이 알고싶다, 궁금한 이야기 Y의 잇따른 언론 보도와, 과거 연애설이 불거졌던 최사랑의 허경영 실체 폭로로 인해 논란이 되어 총선에서 출마했던 후보자 전원 낙선했고 결국 2020년 6월 16일, 다시 정당명을 [[국가혁명당]]으로 바꾼다. 2021년 4월 7일, [[2021년 재보궐선거]]에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출마했을 때 [[정의당]] [[김종철(1970)|김종철]] 대표가 성추행 사건을 일으키면서 정의당은 재보궐선거에 불참했고, [[국민의당(2020년)|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 단일화를 하면서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3등이 유력했던 국민의당, 정의당이 후보를 내지 않게 되면서 운 좋게 처음으로 1% 이상의 득표율을 획득하며 3위를 기록하였다. 2021년 8월 18일, 허경영은 행주산성에서 갑옷을 입고 백마를 타며 등장한 뒤 [[행주대첩]]을 재연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출마 선언식에서 [[안철수]]와의 [[단일화]]를 제안했다.[[http://news.tf.co.kr/read/photomovie/1882380.htm|#]] 또한 당선되면 대통령제를 없애고 황제가 되겠다고 세계일보 인터뷰에 밝혔다. [[http://www.segye.com/view/20211108507025|#]] 2021년 11월 12일, 안철수 후보의 "나만 군필" 발언에 발끈하며, "난 [[베트남 전쟁|월남전]] [[참전용사]]"임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출생연도가 1950년도가 아닌 1947년도라는 점이 밝혀졌다.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211112/110220351/1|#]] 또한 여러 사람들에게 녹음된 통화를 돌리며 자신을 투표해줄 것을 홍보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58wpXNlkak|#]][* 하지만 긴급 의료 센터에서까지 무자비하게 많은 전화가 걸려 이에 대한 비판도 상당하다.] 만약 당선된다면 민주화 이후 국회의원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된 최초의 대통령[*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모두 [[대한민국 국회의원]] 출신이다.]이자, 역대 대통령 중 최고령 대통령[* 현재 대한민국 역대 최고령 대통령은 김대중으로 당선된 당시 74세였다.], 역대 대통령 중 [[김대중]]에 이어 대선에 가장 많이 출마했던 대통령[* [[김대중]], [[이인제]]가 4회로 공동 1위다. [[이회창]]은 3회다. 허경영은 포기/불가했던 13대, 16대, 18대, 19대 대선을 제외하고도 완주한 대선이 15대, 17대, 그리고 이번 20대로 3회가 된다.]이 된다. === [[노동당(대한민국)|{{{#FF0000 노동당}}}]] - [[이백윤|{{{#FF0000 이백윤}}}]]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이백윤)] ||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background: #FFF; border-radius: 4px" {{{+2 '''[[노동당(대한민국)|[[파일:노동당(대한민국) 아이콘.svg|height=30]]]]''' }}}}}} ||<:>{{{+1 '''[[이백윤|{{{#FFFFFF 이백윤(李百允)}}}]]'''}}}||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00138411.jpg|width=100%]]}}} || || {{{#fff '''출생'''}}} || [[1977년]], [[충청남도]] [[서산시]] || || {{{#fff '''상황'''}}} || '''노동당 대선 후보''' || || {{{#fff '''기호'''}}} || '''7번''' || >계속 이렇게 살거야? '''바꾸고 싶다면, 사회주의''' 노동운동가 출신 노동당 대권후보. 현재 캠프로 [[노동자민중 사회주의 좌파 공동투쟁본부]]를 두고 있다. 1999년 대학구조조정에 항의하며 노동운동가, 학생운동가로 출발한 인물로 2002년 민중의료연합의 간사로 일했으며, 2005년 동희오토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였으나 [[동희오토]]가 비정규직만 있는 공장이었기에 이에 대한 투쟁을 하다가 해고 당했다. 이후부터는 계속 노동운동가로 살다, 2015년 지역에서 환경운동, 정치활동을 시작하며 사회변혁노동자당에 입당했다. 2021년, 사회변혁노동자당의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후 노동당을 중심으로, [[사회변혁노동자당]], 참세상연구소, 정치경제학연구소소프닉스, 현장실천사회변혁노동자전선, 토지난민연대, [[공공운수노조]], 인덕마을이주대책위 등이 합류한 사회주의 좌파 대통령선거 지방선거 공동투쟁본부의 대통령 선거 경선에 출마를 선언하고 '''후보에 등록했다.''' 기호는 1번을 배정 받았다. 경선은 노동당 후보 2명과 사회변혁노동자당 이백윤 후보가 참여했다. 이백윤 후보(기호1번, 변혁당), 이갑용 후보(기호2번, 노동당), 박성철 후보(기호3번, 노동당) 간의 한국사회 체제전환을 위한 사회주의 좌파 공동투쟁본부 (사회주의 공투본) 경선 결과 이백윤이 후보자로 선출되었다. 이후 변혁당과 노동당이 합당을 하며 노동당[* 대선-지선을 거치는 6월까지는 노동당으로 활동하며 이후 선관위를 통해 공식적으로 당명을 바꾸고 합당을 한다. 2022년 2월 현재 이 논의는 단일한 사회주의 대중정당(가칭)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의 후보가 되었다. 슬로건으로 계속 이렇게 살거야? '''바꾸고 싶다면,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내 삶을 바꾸는 과감한 혁명을 내걸고 있으며 선명성을 강조하고 있다. 2월 14일, 대선 후보로 등록하였다. === [[새누리당(2017년)|{{{#d91e48 새누리당}}}]] - [[옥은호|{{{#d91e48 옥은호}}}]]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옥은호)]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2 '''[[새누리당(2017년)|[[파일:새누리2017로고.jpg|height=30]]]]''' }}} ||<:>{{{+1 '''{{{#fff 옥은호 (玉恩鎬)}}}'''}}}||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옥은호 프로필2.jpg|width=100%]]}}} || || {{{#fff '''출생'''}}} || [[1971년]] [[7월 10일]] || || {{{#fff '''상황'''}}} || '''새누리당 대선 후보''' || || {{{#fff '''기호'''}}} || '''8번''' ||}}} >선거를 국민에게 >자유를 국민에게 >선관위 개혁, 부정선거 단죄 지난 2020년 터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부정선거 음모론|4.15 총선 부정선거 음모론]]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며 ‘클린선거 시민행동’의 공동대표를 맡았던 강성 친박, 극우 성향의 인물이다. 2월 초 예비후보 등록 후 2월 5일 출마 선언을 진행했다.[[https://m.blog.naver.com/mylenef/222639163640|#]] 이후 2월 14일, 대선 후보 등록기간 마지막날 등록하는데 성공하였다. 선거 포스터에서 지면의 절반 이상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부정선거 음모론|4.15 부정선거 음모론]] 관련 내용으로 담았다.[[https://blog.naver.com/gt2000x/222653680127|#]] 또한 출마 목적부터 대통령 당선이 아니라 부정선거 방지 목적이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10대 공약도 절반 이상을 투표 관련으로 채웠다. === [[신자유민주연합|{{{#AD469F 신자유민주연합}}}]] - [[김경재|{{{#AD469F 김경재}}}]]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김경재)]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2 '''[[신자유민주연합|[[파일:신자유민주연합 아이콘.svg|height=30]]]]''' }}} ||<:>{{{+1 '''[[김경재|{{{#FFFFFF 김경재 (金景梓)}}}]]'''}}}||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경제 20대 대선 선관위 프로필.jpg|width=100%]]}}} || || {{{#fff '''출생'''}}} || [[1942년]] [[11월 3일]], [[전라남도]] [[여수시]] || || {{{#fff '''상황'''}}} || '''신자유민주연합 대선 후보''' || || {{{#fff '''기호'''}}} || '''10번''' ||}}} >'''자유 우파 구국 대통령''' [[전광훈]] 목사의 [[국민혁명당]]의 상임고문이자 전 [[한국자유총연맹]] 회장. [[동교동계]] 출신 전 국회의원으로 [[김대중]], [[한화갑]]의 측근이었으나 [[김대중]]의 사망, [[한화갑]]의 정계 은퇴 이후 [[박세일]]과 [[국민생각]]을 창당, 이후 [[새누리당]]과 합당해 [[친박]]이 되었다. 이후부터는 극우로 점점 옮겨가는 정치행보를 보였다. [[전광훈]] 목사와 함께 광복절 광화문 집회에 참여하며 [[광화문 집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의 원인 중 하나로 비판 받기도 했다. '''2021년 9월 7일, [[국민의힘]]을 믿을 수 없다며[[https://youtu.be/Ek88jYxGs7E|#]]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2021년 10월 14일,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여 [[국민혁명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https://clparty.kr/mobile/article.html?no=23075|#]]''' '''2021년 12월 8일 당대표인 전광훈 목사가 윤석열을 미는 조짐을 보이자 탈당을 하고 무소속으로 출마를 하기로 했다''' 이후 2022년 2월 8일, 신자민련의 후보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며 2월 14일 대선후보 등록 마지막날 등록에 성공하였다. [[신한반도당]] [[박근령]] 후보, 신한반도평화체제당 최창원 대표가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며, [[신한반도평화체제당]] [[고돈식]] 후보가 행정수도이동위원장을 맡았다. === [[우리공화당|{{{#009944 우리공화당}}}]] - [[조원진|{{{#009944 조원진}}}]]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조원진)] || {{{+2 '''[[우리공화당|[[파일:우리공화당(2020년) 아이콘.svg|height=30]]]]''' }}} ||<:>{{{+1 '''[[조원진|{{{#FFFFFF 조원진 (趙源震)}}}]]'''}}}||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조원진 20대 대선 선관위 프로필.jpg|width=100%]]}}} || || {{{#fff '''출생'''}}} || [[1959년]] [[1월 7일]], [[경상북도]] [[대구시]] 원대동 || || [[제19대 대통령 선거|{{{#fff '''19대 대선'''}}}]] || 본선 6위 (0.13%, [[새누리당(2017년)|새누리당]]) || || {{{#fff '''상황'''}}} || '''우리공화당 대선 후보''' || || {{{#fff '''기호'''}}} || '''11번''' || >자유우파로 정권교체! >깨끗한 정치혁명! '''조원진과 함께!'''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새누리당(2017년)|새누리당]] 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던 인물로, 강성 [[친박]] 성향 극우정치인으로 유명하다. 친박-반윤(윤석열) 성향이기 때문에, 이번 대선 역시 출마가 유력해보였으며 우리공화당 당원들 역시 지속적으로 조원진 대표의 출마선언이 필요하다며 요구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9월 7일, 우리공화당은 본격적인 대선체제에 돌입한다고 밝혔으며 반드시 후보를 낼 것이라 한 뒤 이어 9월 1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으로 잘 알려진 [[서문시장(대구)|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해 어려울 때 [[태극기 집회|태극기를 들었던 심정]]으로 힘 모아 서민경제를 살려야 한다며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http://www.nb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13405|#]] '''10월 4일, 정식으로 출마를 선언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12098|#]] 이후 10월 16일 경선에 단독출마하여 우리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으며,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10773623|#]] [[https://www.fmkorea.com/4222656989|FM코리아]]와 [[청년의꿈]]에 인증글을 남기고 [[허경영]]을 벤처마킹한 [[https://m.blog.naver.com/cpath/222597144084|전화홍보]]를 돌리는 등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상대로 어필을 하고 있다. === [[진보당(2020년)|{{{#d6001c 진보당}}}]] - [[김재연|{{{#d6001c 김재연}}}]]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김재연)]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2 '''[[진보당(2020년)|[[파일:진보당 아이콘.png|height=30]]]]''' }}} ||<:>{{{+1 '''[[김재연|{{{#FFFFFF 김재연 (金在姸)}}}]]'''}}}||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재연 20대 대선 선관위 프로필.jpg|width=100%]]}}} || || {{{#fff '''출생'''}}} || [[1980년]] [[11월 27일]], [[경상북도]] [[대구시]][* 현 대구광역시] || || {{{#fff '''상황'''}}} || '''진보당 대선후보''' || || {{{#fff '''기호'''}}} || '''12번''' ||}}} >'''당신의 땀이 빛나도록''' >일하는 사람들의 정치혁명 한국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19대 국회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역임한 현 [[진보당(2020년)|진보당]]의 대표이다. 젊은 나이, 보라색 미니스커트, 거침없는 언사 등으로 화제덤에 오르며[* [[유시민]]의 '백바지', [[류호정]]의 '원피스'처럼 젊고 진보적인 의원의 관습 타파하기 등과 비슷한 화제덤이었다. 다만 유시민, 류호정 처럼 강한 저항을 받진 않았다.]'제2의 이정희'로 통했다. 통합진보당의 분당 과정에서 현 [[정의당]], [[노동당(대한민국)|노동당]] 등과 같은 PD, 신좌파 계열과 [[유시민]] 등 참여계의 강한 비토를 받기도 했다. 이후 통합진보당 계열 NL파가 민중연합당 - 민중당 - 진보당을 거치며 창당한 이후 상임대표에 선출되었다. 젊은 나이에 비해 정치경력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총선 출마만 18대 총선부터 21대 총선까지 4번을 했을 정도이다. '''2021년 8월 5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출마선언에서는 [[당진 용광로 사고]], [[평택항 대학생 사망 사고]] 등을 말하며 힘이 없어 제대로 개혁하지 못했다는 거대 여당의 협박 앞에 우리 국민들이 송구함을 금할 길이 없다며 이는 국민의 탓이 아니며 못난 정치의 탓이라 비판했다. 촛불항쟁으로 새 시대가 열릴 줄 알았지만, 소득주도 성장은 재벌주도 성장으로 바뀌었고, [[박근혜 정부]]보다 못한 최저임금 인상률을 기록했다며 여당과 정부를 비판했다.[[https://youtu.be/KDqNptDNLa8|#]] 만약 당선이 된다면 최초의 외국어고등학교 출신이자 [[박근혜]]에 이은 두 번째 여성 대통령이자 최연소 대통령[* 현재 대한민국 역대 최연소 대통령은 [[박정희]]로 당선된 당시 46세였다.]이 된다. 8월 29일부터 9월 3일까지 당원투표를 실시했고, 단독 출마한 [[김재연]] 대표가 대선후보로 선출되었다.[[https://jinboparty.com/pages/?p=14&b=b_1_1&m=read&bn=6576|#]] === [[통일한국당|{{{#003793 통일한국당}}}]] - [[이경희|{{{#003793 이경희}}}]]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이경희)]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2 '''[[통일한국당|[[파일:통일한국당(2021년) 아이콘.svg|height=30]]]]''' }}} ||<:>{{{+1 '''[[이경희|{{{#FFFFFF 이경희 (李京熹)}}}]]'''}}}||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이경희 20대 대선 선관위 프로필.jpg|width=100%]]}}} || || {{{#fff '''출생'''}}} || [[1974년]] [[1월 20일]], [[충청북도]] [[단양군]] || || [[제19대 대통령 선거|{{{#fff '''19대 대선'''}}}]] || 본선 11위 (0.03%, [[한국국민당(2015년)|한국국민당]]) || || {{{#fff '''상황'''}}} || '''통일한국당 대선 후보''' || || {{{#fff '''기호'''}}} || '''13번''' ||}}} >오직 경제! 오직 통일! >국민분열정치 이제 그만, >국민통합정치 이제 시작!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한국국민당(2015년)|한국국민당]] 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던 인물로, 20대 대선 역시 출마를 선언했다. [[삼균주의]] 성향으로 삼균주의에 따라 민족주의, 사회민주주의, 안보 우선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소속되어 있던 [[한국국민당(2015년)|한국국민당]]이 보수적으로 변하자 탈당한뒤 직접 정당을 창당했다. 1,000억이 넘는 재산을 가지고 있는 자산가기 때문에 다른 군소정당 후보들보다 자금 운용에서 유리하다. 충청도 출신의 인물이라 보니 충청도의 지역 언론이나 정가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충청도 출신 [[류근찬]] 전 의원이 통일한국당에 입당하기도 했다. 자금 운용, 1,000억대 재산 등과 별개로 인지도가 심히 낮은 데다, 19대 대선에서도 11위로 낙선해 본선 경쟁력이 낮은 것이 가장 중요한 단점으로 보인다. 이경희 후보도 이걸 알고 있는지 자신의 막대한 자산을 이용해 [[제19대 대통령 선거]]때 여야 후보들보다도 더 지극정성으로 16면의 고퀄리티 공보물을 만들어 낸 적이있었지만 효과는 미미했었다. === [[한류연합당|{{{#733A87 한류연합당}}}]] - [[김민찬|{{{#733A87 김민찬}}}]]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김민찬)] || {{{+2 '''[[한류연합당|[[파일:한류연합당 아이콘.svg|height=30]]]]''' }}} ||<:>{{{+1 '''[[김민찬|{{{#FFFFFF 김민찬 (金旻澯)}}}]]'''}}}||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민찬 20대 대선 선관위 프로필.jpg|width=100%]]}}} || || {{{#fff '''출생'''}}} || [[1958년]] [[2월 4일]], [[서울특별시]] || || [[제19대 대통령 선거|{{{#fff '''19대 대선'''}}}]] || 본선 7위 (0.1%, 무소속) || || {{{#fff '''상황'''}}} || '''한류연합당 대선 후보''' || || {{{#fff '''기호'''}}} || '''14번''' || >국가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겠습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나라! 새로운 사람!'''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던 인물로, 20대 대선 역시 출마를 선언했다. 19대 선거 당시 토론회에서 땅굴 음모론을 말하며 [[남재준]] 전 국정원장한테까지도 지적을 받았던 전적이 있지만, 한류연합당은 현재는 이러한 성향은 완전히 사라진 채 창당되었다. 오히려 공약에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포함하며 보육 공공성 확대, 돌봄 공동체 확대, 공공 의료의 확대, 장애가 불편하지 않은 삶을 주장하고 있다. 주 공약으로 '한반도 프로젝트'가 존재하는데, 북한과의 합의를 통해 비무장지대를 '세계문화예술도시'로 지정하고 남북공동성명을 통해 문화예술을 발달시키고 한반도 평화체계를 구축하며 경제적인 효과도 낸다는 공약이다. 후보의 출마 사유조차 알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던 19대 대선 당시와 달리 대부분의 공약이 '문화예술', '한반도 평화', '복지', '공공성' 등에 맞춰져 있다. 슬로건이 [[제19대 대통령 선거|19대 대선]]때와 동일하다. == 경선 참여자 == 아래 인물들은 한 정당의 경선에 참여했던 인물들이다. === [[더불어민주당|{{{#004ea2 더불어민주당}}}]] === ====# [[김두관]]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김두관)]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2 '''[[더불어민주당|[[파일:더불어민주당 아이콘2.svg|height=30]]]]''' }}} ||<:>{{{+1 '''[[김두관|{{{#FFFFFF 김두관 (金斗官)}}}]]'''}}}||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00138370.jpg|width=100%]]}}} || || {{{#fff '''출생''' }}} || [[1959년]] [[4월 10일]], [[경상남도]] [[남해군]] || || [[제17대 대통령 선거|{{{#fff '''17대 대선'''}}}]] || [[대통합민주신당]] 예비경선 컷오프 || || [[제18대 대통령 선거|{{{#fff '''18대 대선'''}}}]] || [[민주통합당]] 경선 3위 || || {{{#fff '''상황''' }}} || '''경선후보 사퇴''' || || {{{#fff '''경선 번호'''}}} || '''2번''' ||}}} >'''서울공화국 해체, 지방도 행복한 나라''' 남해군수, 행정자치부 장관을 거쳐 2010년 [[제5회 지방선거|6.2 지방선거]]때 무소속으로 [[경남지사]]에 출마해 53.5%의 득표율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해 '''예전에''' 민주당의 대권주자감으로 거론되던 사람이었다.[* 김두관이 [[당선]]된 시절의 [[경상남도]]는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의 [[텃밭(정치)|텃밭]]이었다.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민주당계에 매우 가까운 인물로서 당선된 건 당시 기준으로는 이변이었다.] 그러나 2012년 [[18대 대선]] 경선에 출마하려고 '''경남지사직을 내던지는 정치적 자살행위'''를 저지른 데다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와 경쟁하면서 지나치게 문 후보를 공격한 그의 행보가 두 사람 간의 아름다운 경쟁을 기대했던 [[친노]] 성향 지지자들로부터 큰 실망을 사면서 정치적 고난기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더문캠]] 공동선대위원장을 맡는 등 친문과 화해를 기도하고, 지난 2014년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7.30 재보선]]에서 도전했다가 떨어졌던 곳인 [[경기도]] [[김포시]]에서 [[20대 총선]] 때 재도전해 당선되면서 가까스로 재기의 기회를 잡았다. 또한, [[21대 총선]]에서는 김포에 안주할 수 있었음에도 당 지도부 및 친문 그룹의 요청에 따라 험지인 [[양산시 을]] 선거구에 도전하여 강력한 후보인 전직 양산시장 미래통합당 [[나동연]] 후보[* 결국 미래통합당 내부의 이견으로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한때는 [[홍준표]]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양산을 통합당 후보로 출마하려고도 했기 때문에, 전직 경남도지사 출신 대권주자 간의 빅매치 가능성이 언급되기도 했다.]를 꺾고 당선되어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는 그가 민주당 당적을 달고서는 경남에서 처음으로 승리한 것이다. 물론 [[양산시]]는 [[낙동강 벨트]]에 속하는 곳으로 부산 인접지역이고 문재인 대통령 사저가 있는 등 민주당의 연고성이 있고 지지세가 비교적 강한 곳이기도 했지만, 21대 총선이 PK 전체적으로 민주당이 일보 후퇴하는 가운데에서 사수해낸 승리로 1석 이상의 의미가 있으며, 이를 계기로 대권 잠룡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당선 후 인터뷰에서 김두관은 대권에 도전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당내에서 비주류임에도 대선 주자 반열에 올랐다. 여권에서는 [[김영춘(정치인)|김영춘]]과 함께 거의 유이한 PK 대망론 주자 중 하나로 당내 경선에 나가면 잔류 비문이나 PK의 표를 얻을 가능성이 크며, 지난 경선 패배 이후 문재인 정권 들어서는 친문과 각을 세우지 않고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친문 유권자의 지지도 어느 정도는 얻을 가능성은 있다. [[김경수]]가 20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어차피 친노친문 직계 대권주자는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친문 지지층에서 김두관의 과거 행보에 대한 비토(Veto)가 여전히 존재하는 데다 민주당 비문 지지층은 독주 중인 [[이재명]] 지사를, 친문 지지층은 [[이낙연]]을 검찰개혁 지지층과 일부 친문은 [[추미애]] 전 장관을 택하는 경향이 크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먹구름이 끼었다는 분석이 많다. 거기에 과거 교계와의 만남에서 "양성애가 들어있는데 이성애자 입장에서 이해를 하지 못한다, 동성애에 대한 비판까지 차별 금지법에 적용하는 건 모르겠다"라는 발언 등으로 당내외 진보층에서의 이미지도 실추되어, 대권주자로서 입지는 이래저래 확정적인 지지층이 없는 것이 가장 약점이다. 그래서인지 현재는 몇몇 조사에서는 아예 기타 후보로 포함될 정도로 다른 후보들에 비해 인지도가 무척 달린다. '''2021년 5월 9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https://newsis.com/view/?id=NISX20210509_0001434439&cID=10303&pID=10300|#]] 2021년 9월 26일 전북 경선 직후 이재명을 지지하며 사퇴했다. ====# [[박용진]]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박용진)]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2 '''[[더불어민주당|[[파일:더불어민주당 아이콘2.svg|height=30]]]]''' }}} ||<:>{{{+1 '''[[박용진|{{{#FFFFFF 박용진 (朴用鎭)}}}]]'''}}}||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박용진의원.jpg|width=100%]]}}} || || {{{#fff '''출생'''}}} || [[1971년]] [[4월 17일]], [[전라북도]] [[장수군]] || || {{{#fff '''상황'''}}} || '''경선 탈락 - 4위''' || || {{{#fff '''경선 번호'''}}} || '''5번''' ||}}} >'''젊고 실력있는 유능한 진보''' [[민주노동당]] 출신으로 당 내에서 자주 [[소장파]], 당내 진보파로 불려지는 인물. 당내 97세대(90년대 학번·70년대생)의 대표격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초선 당시부터 국정감사에서 현대차 세타 리콜, 이건희 차명계좌 탈세 폭로, 삼바 분식회계 사건 등 여러모로 건드리기 어려운 사안들을 눈치보지 않고 과감히 건드려 큰 호응을 얻었고, 이후 정무위원회에서 밀려 가게 된 교육위에서 역으로 사립유치원 비리 폭로 및 [[유치원 3법]] 입법이라는 엄청난 실적을 내면서[* 전국적으로 사립유치원의 수가 어마어마하다 보니 지역 소문에 민감한 지역구 국회의원의 특성상 잘못 건드렸다가는 역으로 재선에 실패할 위기가 있었다. 실제로도 많은 유치원들이 선거를 빌미로 박 의원을 협박했을 정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의원은 '''과감히 이 법안을 밀어붙이는데 성공'''하면서 보란듯이 재선에 성공했다.]전국구적으로 스타가 되었다. 성실함, 젊음 등을 키워드로 지지층이 존재하며, 더불어 직설적인 화법, 진보에 친화적인 행동들, 본인의 뚜렷한 소신[* 민노당 출신이고 권영길에게서 정치를 배운 사람이지만 보수 대통령인 박정희, 이승만을 무조건 나쁘게 보지 않고 '''공과 과를 구분하자는 입장'''을 오픈마인드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박 의원 본인은 [[흑묘백묘론|국민이 먹고 사는 데는 보수 진보가 따로 없다고 한다.]]]로 어느 정도 민주당의 차세대 정치인 중에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당의 주류인 [[친문]] 지지층에게는 소장파를 넘어 마치 튀어보일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다만, 비판적인 이들 역시 박용진이 어느정도 입법 실적 등이 나쁘지 않다는 것은 인정하는 등 상당히 입체적인 평가를 받는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모병제]]로 전환하고, 남녀 모두 최대 100일간 의무적으로 기초군사훈련을 받는 '남녀평등복무제', 대통령 5년 단임제 개헌과, 국회의원 증원(300명 → 330명), 청와대와 대통령의 권한 분산 등 상당히 진보적인 어젠다로 대권 의지를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https://v.kakao.com/v/20210418101839097|박용진 대권 도전]] '''2021년 5월 9일, 민주당에서 최초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https://biz.chosun.com/policy/politics/2021/05/09/FJIHJHLDQFHQFJYY4A6GM2QHM4/|#]] 6월 9일 여론조사에서 최초로 추미애, 정세균을 제치고 당내 대권주자 '''3위'''에 안착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맹점이 있는데 이재명,이낙연,추미애등 다른 후보들은 더불어민주당과 열린민주당 지지자들이 주를 이루는 반면 박용진은 정의당과 국민의 힘 지지자들이 많은것으로 나타낫다. 쉽게 말해 정의당,국힘당 지지자들의 역선택을 받고 있다는 예기.] 정치계 전체적으로 세대교체론이 대두되면서 민주당 소장파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박 의원의 지지도가 올라간 것우로 보인다. 특히 예비경선 중 토론회에서 당 내 지지율 1위였던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본소득]] 등 공약을 집중적으로 비판하면서 관심을 크게 끌었다. 결국 예비경선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박용진은 재선 의원에 불과해 도지사, 다선 의원 경력들이 즐비한 다른 후보에 비하면 체급이 상당히 뒤처지는 것에도 불구하고, 예비경선 과정에서 여러모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 [[최문순|3선 도지사]], [[양승조|4선 의원 출신 도지사]]를 앞질렀던 것이다. 이후 본경선에서는 일부 여론조사와는 다르게 [[정세균]] 전 국무총리,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게 밀리며 5위로 밀려났다. 하지만 재선 국회의원이자 경남도지사 출신인 [[김두관]] 의원을 누르며 5위를 차지한 것은 재선의원 치고는 괜찮은 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 [[양승조]]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에 대한 자세한 내용, rd1=양승조)]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2 '''[[더불어민주당|[[파일:더불어민주당 아이콘2.svg|height=30]]]]''' }}} ||<:>{{{+1 '''[[양승조|{{{#FFFFFF 양승조 (梁承晁)}}}]]'''}}}||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양승조 지사.jpg|width=100%]]}}} || || {{{#fff '''출생'''}}} || [[1959년]] [[3월 21일]], [[충청남도]] [[천안시|천안군]][* 현 천안시] || || {{{#fff '''상황'''}}} || '''예비경선 컷오프''' || || {{{#fff '''예비경선 번호'''}}} || '''7번''' ||}}} >'''내가 행복한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의 불모지였던 천안에서 17대부터 내리 4선을 하며 [[충청도]] 민주당계의 발판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이완구]], [[안희정]]의 몰락 이후 [[박수현(정치인)|박수현]]이 불출마를 하며 충청남도의 대표적 [[정치인]]으로 올라 [[충남도지사]]에 올랐다. [[충청 대망론]]의 대상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손학규계]]로 정계에 입문하여 현재는 [[손학규]]와 멀어진 인물로, 지금은 [[친문]]이고 [[비문재인]]이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계파색이 옅게 분류된다. 장점이라면 장점이고 단점이라면 단점인 부분으로 "친문은 아니나, 비문과는 친하지 않다"라는 점은 같은 지방자치단체장인 [[이재명]]과 비슷한 부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 사태 이후 관련된 충청남도 내 논란과 주민 갈등을 해결해내면서 민주당 지지층은 물론 중앙 정치권에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교민들이 무사히 귀가할 때까지 함께하겠다. 모든 책임을 지고 신종 코로나가 확산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차단하겠다"라며 경찰인재개발원 근처에 임시 거처와 집무실을 마련하고 마을회관을 도지사 현장 집무실로 개조하고 마을회관 가까운 곳에 거처도 구하며 우한 교민 주변에서 집무해 아산 주민들의 걱정도 덜고 교민들의 무사 귀가도 함께하겠다고 발언하며 아산 내 반발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몇몇 언론사는 지방선거 전부터 대권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으며[[http://www.dtnews24.com/news/articleView.html?idxno=505991|#]] 이후 충청도 리더를 뽑는 여론조사에서 1위, 충청도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4위의 성적을 내며 나름 대권주자 군으로 분류되곤 했다. 문제는 너무나도 낮은 지지율과 [[인지도]]인데, 과거 충청대망론을 토대로 대선 바람을 탔던 안희정과는 다르게 양승조는 안희정에 비해 도정 지지율도 낮고 인지도도 낮은 편이다. 대선 여론조사에서도 거의 이름을 찾아볼 수가 없고, 양승조의 대선 출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대부분 "양승조가 누군데?"라는 반응일 정도이다. 그렇기에 양승조가 민주당 대선에 도전하고 최종 경선 후보 4인이 되기 위해선 인지도를 끌어올릴 비장의 카드가 필요하다. '''2021년 5월 12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210512000589|#]] 컷오프 이후 [[정세균]] 전 국무총리 지지 선언을 했다. ====# [[이광재]]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이광재)]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2 '''[[더불어민주당|[[파일:더불어민주당 아이콘2.svg|height=30]]]]''' }}} ||<:>{{{+1 '''[[이광재|{{{#FFFFFF 이광재 (李光宰)}}}]]'''}}}||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이광재국회의원.jpg|width=100%]]}}} || || {{{#fff '''출생'''}}} || [[1965년]] [[2월 28일]], [[강원도]] [[평창군]] || || {{{#fff '''상황'''}}} || '''경선 후보 사퇴'''[* [[정세균]]과의 단일화로 사퇴] || || {{{#fff '''예비경선 번호'''}}} || '''2번''' ||}}} >'''세계의 미래를 가장 먼저 만나는 나라, 대한민국''' [[강원도지사]] 출신이자 현 [[원주시 갑]] 국회의원인 정치인으로, [[최문순]]과 함께 [[강원 대망론]]의 대상인 인물이다. [[친문]]이 밀고 있던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2심에서도 유죄를 받아 사실상 대권 출마가 불가해지자, 친문 진영이나 언론 등에서 대안으로 [[친노]] 출신이고[* 일반적인 친노도 아니고 좌희정 우광재 소리를 들을 정도로 노무현의 핵심 측근이었다. 나잇대가 비슷한 문재인과는 다르게 거의 20살 가까이 차이나서 안희정이 정계 은퇴한 이후 노무현의 후계자격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강원도지사]]에 당선된 적이 있던 이광재 의원을 [[임종석]] 등과 함께 언급하고 있다. 무게감이 있는 정치인 중에서도 거의 보기 드문 강원도 출신이었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발로 뛰는 모습을 보이며 [[강원도]]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정치인이다. 실제로 이광재가 강원도지사로 출마했을 땐 강원도가 [[대경권]]과 [[부울경]] 등에 비해서 보수 정당(당시 [[한나라당]])을 찍어줌에도 홀대받고 있다는 불신이 커지고 있을 때 나타난 민주당 의원이었기에 거물 정치인으로 키우겠다는 도민들의 열망이 표로 결집되어 보수 지역이었던 강원도에서 [[춘천시]], [[강릉시]], [[원주시]]의 빅3에서 모두 앞서며 53%의 여유로운 득표율로 [[한나라당]] 후보를 이기고 '''민주당계 정당 출신 첫 강원도지사'''로 당선되었다. 이는 이광재가 지역적으로는 영서지만 문화적으로는 영동인 [[평창군]]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영동과 영서의 정서를 모두 가져 지역감정이 있는 영동과 영서가 모두 선호했기 때문도 있었기에 이뤄낸 일이기도 했다. 이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유죄 선고를 받으며 지사직을 상실했으나 평창 올림픽 개최, 도로나 전철 건설 문제로 쌓여있던 업무에 대한 강원도민들의 피로감, 파장과 '''[[한나라당]]의 강원도 죽이기'''[* 당시 한나라당은 강원도가 지속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지해 줬음에도 국책 사업에서 가뜩이나 소외되어 발전이 없던 강원도만 배제하고 [[원주시]]에서 계획 중이던 의료 단지 사업까지 대구광역시에 돌린 데다가, [[이명박 정부]]에서의 대북관계 악화로 금강산 관광 등으로 지역 경제를 끌던 [[고성군(강원도)|고성군]] 등이 침체하며 한나라당의 태도에 대한 큰 불만이 형성되었다. 이때 강원도민들의 배신감은 현재까지도 이어지며 [[원주혁신도시]], [[원주기업도시]]가 만들어진 지역에서 그 불만이 격화되었다. 이 신도시 때문 만이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강원도를 외면한 대가로 강원도는 보수 성향에서 캐스팅 보터로 바뀌게 되는 기반이 되었다.]라는 도민들의 서러움이 [[최문순]]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때문에 이광재는 강원도에서 동정론을 받았으면 받았지 비토를 받진 않았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돌아온 탕아로 복귀하며 다시 강원 대망론의 한 사람으로 올랐다. [[강원도]]에서의 높은 호감도와 친노의 대안이라는 점 등이 있지만, 전국적인 [[인지도]]가 없이 강원도에만 한정된 대권주자라는 점과 지역기반인 강원도가 인구수가 다른 곳들에 비해 적다는 점이 문제로 거론된다. 더불어 이광재 본인이 민주당 소속 치고는 다소 보수적인 성향인 점 또한 당내외 진보 성향 유권자들에게 비토를 받기 좋다. 최근 들어 대선 출마를 시사하며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4.7 부산시장 재보선에서 역할을 맡아 당내 기반을 쌓고 대선 행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1065514|#]] 다만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차기 강원도지사 출마가 더 낫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광재가 나오지 않으면 민주당 내 후보군이 [[원창묵]]과 [[홍남기]]인데, 그 둘이 강원도지사 급의 체급인지는 검증이 되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국민의힘 강원도지사 후보로 [[권성동]]과 [[김진태(정치인)|김진태]]가 꼽히고 있는데, 이 둘이 지지도에서 1위 아니면 2위를 다투는 상황에서 그 체급에 맞추려면 제법 영향력과 무게감이 있는 이광재가 나와야 한다. 다만 최문순이 임기 말에 차이나타운 논란이라는 빅똥을 싸서 민주당 비토 정서가 강하고[* 특히나 권성동과 김진태가 각각 [[강릉시]], [[춘천시]]라는 보수 텃밭 지역들을 거점으로 가진 것도 크다. 둘 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반민주당 정서를 이용하면 유리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이광재도 재보선 실패의 책임이 있어서 강원도지사 출마도 쉽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선 출마설이 도는 김동연 전 장관과 교감 중이라고 한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12404279|#]] '''2021년 5월 27일,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421&aid=0005375657|문제는 경제다…일자리, 시장이 주도해야]]한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시장에서 일자리를 만든다는 주장은 그동안 보수 진영에서 주로 하던 말로[* 당장 [[제19대 대통령 선거|지난 대선]] 때만 해도 문재인 후보는 공공 일자리를 주장하고, 홍준표 후보는 일자리는 민간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했었다.] 다소 보수적인 성향을 보였다. 6월 28일,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단일화를 선언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18/0004969829|#]] ====# [[이낙연]]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이낙연)]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2 '''[[더불어민주당|[[파일:더불어민주당 아이콘2.svg|height=30]]]]''' }}} ||<:>{{{+1 '''[[이낙연|{{{#FFFFFF 이낙연 (李洛淵)}}}]]'''}}}||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50148854.jpg|width=100%]]}}} || || {{{#fff '''출생'''}}} || [[1952년]] [[12월 20일]], [[전라남도]] [[영광군]] || || {{{#fff '''상황'''}}} || '''경선 탈락 - 2위''' || || {{{#fff '''경선 번호'''}}} || '''4번''' ||}}} >'''본선승리 최강후보''' [[문재인 정부]]의 첫 [[국무총리]]이다. [[19대 대선]] 당시 대선 주자로 거론되었지만 불출마를 선언하였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2/28/0200000000AKR20161228091800054.HTML|#]] [[전남지사]] 시절인 2017년, [[리얼미터]]에서 실시한 광역단체장 직무수행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이어 2위를 차지한 바 있다.[[http://www.realmeter.net/2017/03/%EB%A6%AC%EC%96%BC%EB%AF%B8%ED%84%B0-2017%EB%85%84-2%EC%9B%94-%EA%B4%91%EC%97%AD%EB%8B%A8%EC%B2%B4%EC%9E%A5-%ED%8F%89%EA%B0%80-%EC%B6%A9%EB%82%A8-%EC%95%88%ED%9D%AC%EC%A0%95-79-1%EC%9C%84/|#]] [[이낙연]] 전 총리는 [[동교동계]]로 출발하여 [[손학규계]], [[친문|친문계]], [[전라도|호남]]을 망라할 수 있는 포지션에 있다. 이는 당심(黨心) 경쟁에서 강점으로 작용하는 요소이다. 또 [[이낙연]]은 [[친노|친노계]]로 분류된 적은 없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나름 인연이 있어 친노 지지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난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낙연]] 당시 의원은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으며, [[노무현 탄핵 사태]] 당시 [[새천년민주당]]에서 유일하게 반대 표를 던졌다.[* 최근 [[친문계]]로 분류되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당시 탄핵에 찬성 표를 던졌다. 그런데 비문계로 분류되는 [[천정배]], [[정동영]]은 여당이었던 오히려 친노라고 볼 수 있는 [[열린우리당]] 소속이었다. 실제로 저 둘은 노무현의 당선에 크게 기여했고 그 뒤 열린우리당 창당 때도 큰 도움을 주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열린우리당]] 창당 당시 이낙연은 구 민주당 원내대표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던 과거 전력이 있기도 하다.[* 당시 이낙연은 노무현 정부를 향해 '군사독재보다 더 빈부격차를 키운 반서민 정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11&aid=0003904853|#]] 2020년 8월 민주당 당 대표 선거 당시 김부겸 후보가 이 사건을 언급한 적이 있다. 차기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당시, [[이낙연]] 전 총리는 [[21대 총선]] 선거 국면에 [[더불어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과 코로나19 국난극복대책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으며, '미리 보는 대선'이라는 평을 받던 '정치 1번지' 서울 종로구에서 [[미래통합당]] [[황교안]] 후보를 18.4% 차이로 승리하며 당선되는 동시에, 범여권이 180석을 차지하는 완벽한 대승을 이끌어내며 대권 도전에 청신호가 켜졌다. 또한 총선 당시 민주당 초, 재선 국회의원 후보 38명의 후원회장을 맡아[* 후원회장을 맡은 후보 38명 가운데 23명이 당선되고 15명이 낙선하였다.]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미약한 당내 기반을 더불어민주당 총선 대승이라는 실적과 더불어 보완하고 있다. 이낙연의 대선 경쟁력 평가이라면 우선 장점으로 [[문재인 정부]]의 첫 [[국무총리]]이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왔던 여러 정책들을 잘 이어 받아서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친문]]계의 기대, 4선 국회의원과 도지사 및 역대 최장기간 재임 총리로서(958일) 국무총리 직을 수행하며 풍부한 행정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작은 요소는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강점으로 내밀었던 요소 중 하나가 '5년 동안 [[청와대]]에서 일하면서 국정 운영 경험을 쌓아본 유일한 후보로서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에서 빠르게 국정을 안정시킬 적임자'였다.] 다만 [[문재인 정부]]의 '실세 총리'였던 점은 양날의 검이기도 한데 만약 문재인 정부가 상당한 실책을 저지르고 정부 심판론이 대두될 경우, 그 정부의 실세 총리인 이낙연 역시 그 책임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의 비호감도가 부쩍 올라가자 이낙연의 지지율도 덩달아 내려가면서, 여권의 또 다른 주자 [[이재명]] 경기지사와 지지율 데드크로스를 맞은 바 있다.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우하향하여 결국 3위까지 추락하자 무리수를 던지게 된다.[* 신년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선 그 어떤 곳에서도 1위를 하지 못했다. 이재명은 면접 여론조사에서 1위를 놓치지 않았고, 윤석열은 ARS 여론조사에서 1위를 점했다.] 신년에 난데없이 이명박과 박근혜의 사면설을 제기하였고[* 사면은 대통령의 권한임에도 청와대와 협의 없이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입김이 들어갔다는 얘기도 있는 듯.], 또 이를 관철하기 위해 당 최고위에서조차 부결 입장이 났음에도 여기저기 발 빠르게 움직이며 사면을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또한 [[김옥두]][* 안철수 캠프에 있던 사람이며, 과거 복당 불가 선언을 받았던 인물이다.] 등의 [[동교동계]]가 정무직 고문에 임명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자신의 지지기반이었던 친문 진영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깎였다. 실제로 친문이 장악한 커뮤니티로 불리는 클리앙, 딴지 등[* [[루리웹 정치유머 게시판]]은 제외. 여긴 강성 친 문재인, 친 이낙연, 반 이재명 성향이다.]에는 온통 이낙연에 대한 비난, 사퇴 요구, 당 대표 탄핵, 과거 이낙연이 보인 실수를 지적하는 글이 추천을 받고 있다. 이렇게 되면서 지지층이 많이 떨어져 나갔고, 이제는 일부 친문 세력과 호남 지역, 이낙연계를 제외하면 지지기반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지역 기반인 호남에서조차 이재명에게 지지율을 역전당했다. [[2021년 재보궐선거]]가 다가오면서 이낙연 대표가 당권•대권 분리 조항에 의해 당 대표에서 물러나고 재보궐 선거의 선대 위원장으로 나서게 되는데, 부산은 잃어버리더라도 서울을 사수하는데 성공한다면 다시 지지율을 반등시켜 [[이재명]] 후보와 확고한 양강 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부산은 물론이고 서울시장 선거에서까지 패배, 그것도 모두 20% 이상 격차의 압도적 패배를 당하면서 대권주자로서의 생명력에 치명타를 입었다. 현재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대권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낙연의 지지율이 이렇게 쭉 빠진다면 공통점이 많은 정세균 총리가 그 지지율을 받아먹고 이낙연으로선 더욱 곤란한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 재보궐선거 이후 잠시 침묵기를 가지다가 의원 포럼을 발족시키고 전국를 순회하며 본인의 정책 브랜드인 '신복지'를 내세우고 있다.[[https://newsis.com/view/?id=NISX20210509_0001434582&cID=10303&pID=10300|#]] 본격적인 대선 활동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지배적인데, 과거 40%까지 올라갔던 지지율을 10% 대도 간당간당해진 시점에서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심지어는 총선 패배 후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난 황교안보다 못하고 책임을 떠넘기면서 철판 깔고 대권 도전하는 모습이 뻔뻔하다는 비판도 있다. [[박성민 청년비서관 임명 논란]]의 여파도 받았는데, 이낙연 지도부에서 박성민이 청년 최고위원에 뽑혔기 때문이다. 단 박성민을 청와대 비서관으로 뽑은 주체는 정무수석인 [[이철희(1964)|이철희]]이다.[* 현재의 2030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불공정인데, 박성민이 최고위원으로 선출됐을 당시에도 '''경력이 일천한데도 뽑혀서'''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줬다는 평이 많았다. 20대 남성뿐만 아니라 30, 40대 친문지지층들 사이에서도 박성민에 대한 반감이 높다.] 2021년 6월 29일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 등록을 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79/0003522210|#]] '''2021년 7월 5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3/0010587980|#]] 7월 들어 예비경선 토론회에서 이재명 지사가 상대적으로 의혹에 대한 방어를 제대로 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와 대비되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 이낙연의 지지도가 상승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특히 7월 13일에 발표된 윈지코리아컨설팅의 여론조사에서 이낙연-윤석열의 양자대결 시 이낙연이 지지율 43.7%로 윤석열의 41.2%를 2.6% 포인트로, 오차 범위 안으로나마 앞서는 결과가 나오면서 민주당 경선이 이낙연-이재명 2강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보였다. 다만 이로 인해 예비경선 때 이재명만이 일방적으로 견제되던 구도에서 이제 이낙연에 대한 견제도 늘어남에 따라, 이에 따른 본격적인 네거티브 대처의 필요성이 생겼다. 만약 당선이 된다면 [[김대중]]에 이어 두 번째 [[전라도|호남]] 출신 대통령, [[최규하]]에 이어 두 번째 [[국무총리]] 출신 대통령이자 최초의 언론인(기자) 출신 대통령, [[이승만]]에 이어 두 번째 딸이 없는 대통령, 최초의 한 자녀 대통령[* [[미혼]]인 [[박근혜]]를 제외한 다른 [[기혼]] 대통령들은 전부 자녀가 두 명 이상이었다.]이 될 것이며, [[이승만]] 및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 나이와 비슷한 나이에 대통령이 되어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게 될 것이다. 또한 최초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출신 대통령이 될 수 있다. ====# [[정세균]]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정세균)]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2 '''[[더불어민주당|[[파일:더불어민주당 아이콘2.svg|height=30]]]]''' }}} ||<:>{{{+1 '''[[정세균|{{{#FFFFFF 정세균 (丁世均)}}}]]'''}}}||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정세균.jpg|width=100%]]}}} || || {{{#fff '''출생'''}}} || [[1950년]] [[11월 5일]], [[전라북도]] [[진안군]] || || [[제19대 대통령 선거|{{{#fff '''18대 대선'''}}}]] || [[민주통합당]] 경선 4위 || || {{{#fff '''상황'''}}} || '''경선 후보 사퇴''' || || {{{#fff '''경선 번호'''}}} || '''3번''' ||}}} >'''믿는다! 정세균''' 정세균 의원은 일단 참여 정부 하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맡은 데다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으로 인해 몰락 직전까지 몰렸던 민주당을 당 대표로서 당시 원내대표였던 원혜영 의원과 함께 수습하여 19대 총선에서 양당 구도로 복구하는 발판을 마련했기에 위기관리 능력과 지도력은 충분히 입증됐다. 총선에서 당선될 시 차기 대권도 노리겠다고 발언했을 때까지는 세균맨 립 서비스한다는 소리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언급되는 등 저평가됐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새누리당 신흥 대권주자로 거론되던 [[오세훈]]을 꺾고 6선에 성공했다. 이로써 대권 유력 주자 가운데 하나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제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었다. 따라서 사실상 대권 출마가 불가능했으나, 여론조사에는 계속 포함되었다. 10차 개헌이 이뤄지면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다. 본디 국회의장은 정계 은퇴를 하는 것이 관례이나, 정세균은 계속 정치를 이어갈 것이라는 입장을 자주 표명하였다. 킹메이커 지역구라 불리는 정치 1번가 종로구를 꽉 잡고 있었으며 특유의 중도적 성향 때문인지, 여론조사상에서 [[민생당]] 지지자들의 지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점은 [[이낙연]]도 어느 정도는 공통점인데다가 민생당 지지층이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지라 강점이자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최근 코로나 위기 상황에 총리직을 계속 수행하면서 인지도도 높여가는 중이고 정세균계 의원들이 모여 싱크탱크를 구성, 본인도 다양한 지역을 누비며 광폭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정치권에선 이러한 정세균 총리의 움직임을 대선을 염두에 둔 활동으로 사실상 기정사실화한 상황이다. 정세균 총리는 과거에도 추석 정책 홍보 만화, 지하철 2호선 육성 안내 방송, 토크쇼 '총리식당' 등 무리한 행보 등을 했는데, 국무총리실이 소셜미디어에 국민들의 코로나 우울감을 총리에게 풀어 달라는 '3컷 만화'를 올려서 또 구설수에 올랐다.[[https://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ode=LSD&mid=shm&sid1=001&oid=011&aid=0003841919&rankingType=RANKING|#]] 현재 정세균 총리는 언론에도 자주 노출되며 지하철 육성 안내 방송에도 나오는 등 은근히 부상하는 중이며, 기존에 다크호스로 부상할 가능성이 거론되던 김두관이나 [[송영길]]보다도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이다. 만약 이낙연이 대선주자 군에서 낙마하는 사태가 벌어질 경우 그 자리를 대체할 민주당의 제3후보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후보인데, 우선 온건한 성격과 민주당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호남을 주요 기반으로 삼고 있고 두 사람 모두 총리를 역임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매우 많아 이낙연의 빈자리를 메꾸기엔 이만 한 후보가 없다. 최근 여권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박용진(정치인)|박용진]] 의원에게도 밀리며 지켜오던 여권 내 3위를 내주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국무총리 퇴임 이후, 정치로 복귀하되 여의도는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사실상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으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21년 6월 17일 경제 대통령을 슬로건으로 대선 출마 선언을 했다.'''[[https://n.news.naver.com/article/421/0005421306|#]][[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080502|#]] 2021년 6월 28일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단일화 선언을 [[https://n.news.naver.com/article/018/0004969829|하고]] 7월 5일 오전에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단일화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2503180|#]] 만약 20대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최규하]]에 이은 두 번째 국무총리 출신 대통령이 된다. 또한 [[이승만]]에 이어 두 번째로 입법부와 행정부의 장(長)을 모두 역임하는 사례가 된다. 2021년 9월 13일 낮은 지지율로 인한 4위 추락으로 경선 후보직을 사퇴하였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hm&sid1=100&oid=088&aid=0000720993|#]] ====# [[최문순]]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최문순)]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2 '''[[더불어민주당|[[파일:더불어민주당 아이콘2.svg|height=30]]]]''' }}} ||<:>{{{+1 '''[[최문순|{{{#FFFFFF 최문순 (崔文洵)}}}]]'''}}}||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최문순프로필사진1.jpg|width=100%]]}}} || || {{{#fff '''출생'''}}} || [[1956년]] [[2월 4일]], [[강원도]] [[춘성군]][* 현 강원도 춘천시] || || {{{#fff '''상황'''}}} || '''예비경선 컷오프''' || || {{{#fff '''예비경선 번호'''}}} || '''8번''' ||}}} >'''당신은 귀한 사람''' 2011년 [[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4.27 보궐선거]]에서 불리했던 강원도 판세를 뒤집고 당선이 된 이후 주요 정치권 변방으로 평가받던 강원도지사 치고 어느 정도 중앙무대와 교류하는 정치인으로 활동하던 중,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거치며 잠깐 대권주자로 반짝 떠오르며 대권주자로 불리기 시작했다. 평창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남북정상회담 수행원으로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함께 선정하기도 했다. 이후 2020년 6월, 7월 여론조사에서 [[김두관]], 김영춘 대신 모습을 보이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 포함되었다. 민주당계 정당의 첫 '''3선 강원지사'''로 보수 성향이 강한 강원도에서 이례적으로 강하게 지지하고 있는 진보 성향 도지사이며, [[민병희]] 교육감과 12년간 호흡을 맞췄다. 도정 수행 지지도가 연일 60%가 넘는 상위권으로 시도지사 여론조사에서 매번 2~4위의 상위권 위치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강원도에서는 평이 좋은 편. 최근 감자 파는 도지사 등으로 농어촌도민들의 감자, 오징어, 아스파라거스 등 작물들을 대신 팔고 그들을 지원해 주는 등 [[코로나19]] 이후 특유의 행정이 인기를 끌어 나름 알려지게 되었다. 신천지 대유행 당시에도 2~3월 몇 주 동안 강원도 내 확진자 0명을 내며 전수조사 및 방역에 집중했다. 특히 '감자 파는 도지사'로 2주 만에 감자 4,000톤을 본인과 도청 직원들이 직접 판매한 것으로 강원도는 물론 대내외적으로 이미지와 인지도가 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대권주자 여론조사에도 이 이후 등록된 것. 정치 성향적으로는 자치분권 개헌을 자주 주장하며 덴마크, 스웨덴 식 '겐트 시스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노동조합비를 높게 내고 노동조합이 실업보험을 관리, 운영하며 노동조합 활성화를 말하는 시스템이다. [[이광재]]의 '[[강원 대망론]]' 포지션을 그대로 이어받아 강원도민의 지지와 함께, 여러 행보로 인지도와 행정력 정도는 확보가 되었으나 전 국민적 인지도와 지지가 여전히 떨어지고 그마저도 적강원도 지역에 한정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원 대망론'을 이어받았다 보니 강원 대망론의 한계 역시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 본인도 대권 생각이 있는 듯한 발언을 한 만큼 강원도지사 임기 이후 중앙무대로 진출해 적극적인 대선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같은 강원대망론의 주자인 이광재와의 교통정리가 어느 정도 필요한데, 가뜩이나 강원도의 적은 인구수로 주력 기반의 파이가 적은 상황에서 그 작은 파이마저 이광재와 갈라 먹을 경우 승리 가능성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야심 차게 추진한 사업 중 하나인 [[강원도 중국복합문화타운 건설 논란]] 역시 [[조선구마사/논란 및 사건 사고|조선구마사 사태]]로 촉발된 혐중 감정의 불똥이 제대로 튀어 이로 인한 반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실제로도 중국복합문화타운 반대 청원이 무려 60만 건 이상의 동의를 기록하며 상당히 큰 논란을 일으켰고 결국 해당 사업 주체였던 코오롱그룹이 사실상 발을 빼며 백지화 수순을 밟게 되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최문순에게 두고두고 약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2021년 6월 1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https://news.imaeil.com/Politics/2021060111560396593|#]] ====# [[추미애]]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추미애)]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2 '''[[더불어민주당|[[파일:더불어민주당 아이콘2.svg|height=30]]]]''' }}} ||<:>{{{+1 '''[[추미애|{{{#FFFFFF 추미애 (秋美愛)}}}]]'''}}}||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추미애 예비후보 공식.png|width=100%]]}}} || || {{{#fff '''출생'''}}} || [[1958년]] [[10월 23일]], [[경상북도]] [[달성군]][* 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 || [[제17대 대통령 선거|{{{#fff '''17대 대선'''}}}]] || [[대통합민주신당]] 예비경선 컷오프 || || {{{#fff '''상황'''}}} || '''경선 탈락 - 3위''' || || {{{#fff '''경선 번호'''}}} || '''6번''' ||}}} >'''사람이 높은 세상, 사람을 높이는 나라''' 제2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5선 국회의원, [[법무부장관|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민주당계 정당]] 역사상 [[대경권|TK]] 출신 당 대표,[* 앞서 새 천년민주당 시절, 경북 출신의 김중권이 당 대표를 지낸 적이 있으나, 그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당 대표 위에 당 총재(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당 총재였다)가 있었고, 당 대표는 선출직이 아니라 총재가 임명하는 자리였다.] 최초의 판사 출신 여성 국회의원, [[판사]] 출신 최초의 야당 국회의원, 여성 의원 최초 지역구 5선 등의 다양한 최초 기록을 가지고 있다. 당 대표에 취임하고 나서 당이 정부를 적극 뒷받침하고 있는 모습에 당 지지자들로부터는 대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민주당 최초로 임기를 채운 당 대표가 되었다. 당사자는 당대표 시절에 대권에 도전할 의욕이 있느냐는 질문에 애매모호한 답변을 했지만,[[http://news.joins.com/article/22128520|#]] 여론조사 기관에서는 별개로 추미애를 대권주자로 분류하기 시작했다.[[https://www.dailian.co.kr/news/view/690421|#]]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한 [[이해찬]] 전 총리에게 대권 가도에 등장할 새로운 인물에 대해 물었을 때 다온 답변이기도 하다. 법무부장관 직을 사임한 후인 2021년 3월에는 "시대 요구 과제 푸는데 제가 쓸모 있다면 나서지만 아무 때나 나선다고 되겠습니까"라며 이전보다는 더욱 의지를 드러내는 듯한 발언을 하였다.[[http://naver.me/GPrBcdM2|#]]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2007년 17대 대선 당시 출마를 선언하고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예비경선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결국 컷오프 되었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705126|#]] [[문재인]] 집권 이후 정부를 적극 지원하고 야당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친문]] 성향 유권자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 지역주의가 실재하는 대한민국의 환경에서 친정은 영남, 시가는 호남이라는 가족관계가 영호남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점, 판사 출신 5선 [[대한민국 국회의원]]이자 현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당 대표이고 4번의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대선]] 캠프에서 중책을 맡아 활동하여[* 김대중 당시 후보 캠프 - 유세단장, 노무현 당시 후보 캠프 - 공동본부장, 정동영 후보 캠프 - 공동선대위원장, 문재인 당시 후보 캠프 - 상임선거대책위원장] 정치력과 무게감이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앞장서 주도했기 때문에 사죄한 후에도 [[친노]]들이 거부감이 있다는 점이 약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것이 대권 가도의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현재에도 추미애가 비난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범친문으로 분류되지만 친노 계열의 지지를 얻기는 어려운 것이다. 또한 야당에 대한 강한 비판으로 인하여 야당 지지층의 비토 정서가 강해 지지층 외연 확장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약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즉 당 대표일 때는 지지자들의 환호성을 받는 시원시원한 모습이었던 발언들이 반대로 보수 지지자들에게는 비호감 요소가 되는 것. 특히 국민의당을 향한 '머리 자르기' 발언이나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 부결 직후 '생떼' 발언 같은 수위 높은 표현이 더불어민주당 내 지지층을 끌어모을 수 있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야당의 반발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2020년 [[법무부 장관]]에 취임하였다. 조국 전 장관 관련 논란으로 다소 주춤해진 검찰 개혁의 동력을 다시 살리고자 한 인사라고 평가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검찰]] 개혁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위해 의도적으로 판사 출신에다가 5선에 당 대표까지 추미애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한 것으로 보인다. 21대 총선 이후, 본격적으로 야권, 검찰과 대립각을 세우며 정국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문제는 [[법무부 장관]] 임기 내내 찬반 논란이 거세다. 이 갈등을 통해 추미애는 전국구적인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윤 총장과 극심한 갈등을 빚으며 평가가 이전보다도 더욱 크게 엇갈리게 되었는데, 진보층에선 추다르크로 칭송받는 반면 보수층에겐 [[윤석열]] 검찰총장이 새로운 유력 대권주자로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그야말로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대선 경선이 민주당 지지자들의 지지가 중요한 것을 생각해 보면 [[더불어민주당]] 내부 지지자 사이에선 [[법무부 장관]] 임기 내 한 일에 대해서 긍정 평가가 더 높아 민주당 내부에서 상황은 더 좋아지고 본인의 확고한 지지층 즉 [[콘크리트 지지층]]이 생겼다. 하지만, 이 때문에 [[윤석열]] 검찰총장을 야권 유력 대선주자로 떠오르게 했다는 점 때문에 [[노무현|아군]]에게 두 번 칼을 꽂았다며, 제 버릇 남 못 준다는 비아냥도 있다. 야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아예 어둠의 국민의힘 비상 대책 위원(...)이라는 멸칭이 있을 정도로 만만하게 보고 오히려 고마워하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상황일 정도이다. 어찌 됐든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뽑은 검찰 총장인 윤석열을 쳐내기 위해서 '''법무부 직속 외부 자문위원회'''까지 제쳐버리는 등,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을 위해 직무정지까지 강행하며 윤석열과 대립각을 세웠는데 오히려 윤석열을 밀려버리며 본인이 역으로 치명상을 입어[* 꼭 치명상을 입었다고 보기 어려운게 전국구적인 이미지는 훼손 됐지만 자신의 확고한 지지층이 생긴건 대권주자로서 이득이기 때문] 체면을 구기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해 만약 윤석열과 대선에서 맞붙을 경우 불리할 가능성 있다. 하지만 최근 [[윤석열]] 전 검찰총장 본인과 부인 [[김건희]]의 여러 논란과 의혹들이 붉어지면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대립각을 세웠던 '''추미애가 옳았다''' 라며 재평가 받기도 하는 상황이다. 2021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이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지 않다."라며,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답변해 대놓고 추미애를 실패한 인사라고 인정하는 뉘앙스를 보여주었다. 결국 최종 목표였던 윤석열 총장의 자진 사퇴 유도에 실패하고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사실상 경질당했다. 본인은 경질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이걸 믿는 건 극문들뿐이고, 계속된 윤석열 검찰 총장과의 갈등으로 인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큰 리스크를 줬고 이를 제거하기 위해 교체했다는 것이 대다수의 평가다.[[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33015510004096?did=NA|#]][* 참고로, [[조국(인물)|조국]] 전 법무부 장관부터 법무부의 직무수행평가는 만년 꼴찌를 자랑하는 여성가족부 다음으로 낮다. 이 때문에 진보층에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낮은 편은 아니고, 중도층과 보수층에서는 부정평가가 과반을 넘긴다.] 법무부장관으로 재임하며 여권이 그렇게 바라던 공수처 설치를 성사시켰고 윤석열과의 정면충돌로 매우 높은 인지도, 그리고 친문 지지자들의 신임을 얻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거꾸로 공공기관들끼리 매우 매우 다투며, 시종일관 싸우기만 하는 등 이게 정치판인지 싸움판인지 모르겠다며 중도층에게 상당히 좋지 않은 이미지가 새겨지며 확장성이 크게 저하되는 등 실익이 극명하게 갈렸다. 친문으로 대표되는 사람들에게는 '''추장군, 추다르크''' 등으로 칭송되나, 소장파를 포함한 일부 여권과 야권에서는 '''애미추'''라는 멸칭이 새겨졌다.[* 야권에서는 나다르크 vs 국썅처럼 여야에서 극단적인 긍·부정적 별명이 혼재하는 [[나경원]]이 있다. 쉽게 말해 둘 다 과격한 행보와 막말 때문에 비호감도가 매우 높은 게 공통점.] 대권주자 여당 후보 여론조사에서 [[정세균]] 전 국무총리를 제치고 [[이재명]] 경기도지사,[[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이어 깜짝 3위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3/0010551123|#]] 법무부 장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대선 출마를 적극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대선에 나온다면 윤석열과의 정면충돌 경험을 명분으로 제2의 추-윤 대전을 벌이겠다며 등판할 가능성이 높다.[[https://view.asiae.co.kr/article/2021031815340490441|#]]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48&aid=0000329128|6월 초 대담집 출간과 함께 대선 출마를 선언할 예정이라고 한다]]. '''2021년 6월 23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https://newsis.com/view/?id=NISX20210623_0001486434&cID=10301&pID=10300|#]] 2021년 7월 1일 자신의 대담집인 [[추미애의 깃발]]을 발매했다. 대선출마 이후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여권 빅3라고 불리던 [[정세균]] 후보를 매우 큰 표 차이로 꺽어버리면서 자신이 꿩이라고 지칭하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보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를 먼저 잡았다고 평가된다.[[https://n.news.naver.com/article/437/0000276037|#]] [[윤석열]]이라는 지독한 적수를 만들어낸 것이 비판점인데 만약 대선에 둘이 나와서 윤석열이 당선될 경우 추미애의 정치생명이 윤석열의 손아귀 안에 들어가게 된다. 누가 출마하느냐로 선거의 판이 크게 달라지는데 '''윤석열이 출마하면 무조건 [[단두대 매치]]'''가 된다. 추미애의 상황은 본인이 당선되면 좋겠지만 본인이 낙선되더라도 윤석열만은 막아야 하는 처지이다. 이번 대선의 모든 경우의 수 중 추미애에게 최악이 바로 '''윤석열 당선'''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선출마 이후 자신이 [[윤석열|꿩]] 잡는 [[추미애|매]]라고 자부했다. [[윤석열]]이 대선출마 이후 본인과 부인 [[김건희]]의 여러 의혹과 논란이 붉어지며 지지율이 하락하자 윤석열보다는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때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자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발언으로 [[이낙연]] 전 대표에 실망했던 일부 유권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고있다. 만약 당선이 된다면 [[노무현]]에 이어 두 번째로 판사 출신 대통령이자 [[박근혜]]에 이은 두 번째 여성 대통령이 된다. 공교롭게도 둘은 노무현을 탄핵시키기 위해서 잠시 동맹인 적이 있다. 또한 최초의 [[한양대학교]] 출신 대통령이 되는 셈이기도 하다. === [[국민의힘|{{{#E61E2B 국민의힘}}}]] === ====# [[김태호(1962)|김태호]]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김태호(1962))]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2 '''[[국민의힘|[[파일:국민의힘 아이콘.svg|height=25]]]]''' }}} ||<:>{{{+1 '''[[김태호(1962)|{{{#FFFFFF 김태호 (金台鎬)}}}]]'''}}}||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00134569.jpg|width=100%]]}}} || || {{{#fff '''출생'''}}} || [[1962년]] [[8월 21일]], [[경상남도]] [[거창군]] || || [[제18대 대통령 선거|{{{#fff '''18대 대선'''}}}]] || [[새누리당]] 경선 3위 || || {{{#fff '''상황'''}}} || '''경선 후보 사퇴''' ||}}} >'''공존(共存),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입니다''' 전 경남지사,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 18대 대통령 새누리당 후보 경선에 나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대선에서도 대권 도전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이명박 정부 때 [[국무총리]] 내정자로 지명되었을 때에는 경남도민들을 제외한 전국적 인지도는 매우 낮았지만 국무총리 임명 무산 후 정치적 재기에 성공하고 그 이후 새누리당 최고위원 등 당내 중요 직책 등을 역임하면서 당과 친박 내의 비중과 무게감이 지속적으로 높아져 인지도 역시 국무총리 후보 지명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올라간 상황. 최연소 기초 자치단체장, 광역자치단체장을 역임한 점에서 알 수 있듯 50대 초, 중반의 젊은 나이도 어느 정도 장점으로 손꼽히고 있을뿐더러 또한 정치적으로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정치에 입문, 발탁되어 PK로 분류됨에도 새누리 내부에서 PK와 알력 다툼을 하고 있는 [[대경권|TK]]와도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어 TK에서도 통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여겨진다. 이는 김 최고위원의 정치적 기반이 TK와 가까운 북부 경남이기 때문이다.[* [[거창군]], [[합천군]], [[창녕군]]은 행정구역 상으로는 경상남도이지만 [[대구광역시]]와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대경권]]과의 물적, 인적 교류가 많았던 지역이고, 때문에 북경남 출신 지역 정치인들 중에서는 학연, 지연으로 얽힌 TK와 밀접한 경우가 많다. 아예 [[홍준표]] 경남지사처럼 본인을 PK라 부르기를 거부하고 TK로 여기는 경우도 있고.]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대권 도전에 선을 긋는 듯한 발언을 했지만 바로 그다음 날 [[http://media.daum.net/politics/newsview?newsid=20150806141003504|의미심장한 발언]]을 했고 경남지사 재임 시절부터 대권에 대한 포부를 밝혀왔던 만큼 차기, 혹은 못해도 차차기에 대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2017년 3월 14일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3&aid=0007827095|#]]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미래통합당]]의 텃밭이자 자신의 고향인 거창히 포함된 [[산청군·함양군·거창군·합천군]] 지역구에 출마하겠다고 [[http://naver.me/GrwAdaus|선언하였으나]], 자유한국당 중앙당에서는 중진 험지 출마론을 내세워 대립했다. 2020년 3월 5일 홍준표와 함께 [[미래통합당]] 공천에서 컷오프 당했고,[[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0030518133613701|링크]]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현역 [[강석진(정치인)|강석진]][* 민선 3~4기 거창 군수 출신으로 김태호가 경남지사 출마를 위해 거창 군수 직에서 사퇴하면서 궐석이 된 자리에 보궐선거로 당선된 바 있다. 이후 20대 총선에서 이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후보를 꺾고 4년 만에 원내 복귀에 성공했다. 대통령으로서의 대표적인 사상과 정책으로 개헌을 통한 의원내각제 실현과 이를 통한 협치형 정치를 내세웠다. 이를 위해 선거구제를 중 · 대선거구로 교체하고 해 롤 모델론 독일의 [[기민련]], [[사민당]]의 사례를 들었는데 과거 대통령 중임제를 주장한 것에 비해 생각이 많이 바뀐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대선후보로서의 장점은 야권에서 거의 유일한 PK 잠룡으로서 이를 바탕으로 세몰이가 가능하다는 점. 다른 PK 후보로서 홍준표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현재의 홍준표는 TK에 지역구를 두고 스스로 TK [[진골]]이라고 자칭하며 사실상 TK 권 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상태이기에 사실상 국민의힘 안에서 유일한 PK 잠룡이다. 대선 경선에 들어가면 PK의 지지와 PK 지역구 의원들의 지지를 받아낼 여력이 있다. 단점으로는 낮은 인지도와 부족한 브랜드. 김태호는 국무총리 후보자 시절과 새누리당 최고위원 시기를 제외하곤 중앙정치와는 거리를 두어 인지도가 경쟁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고 [[홍준표|할 말은 하는 보수]], [[안철수|성공한 벤처기업가]], [[유승민|개혁보수]]라는 자신만의 브랜드와 이미지가 있는 다른 경쟁자들과 다르게 김태호는 이 점에 있어서 뚜렷한 특징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보다 강력한 경쟁력을 지니기 위해선 이 부분에 대한 보강이 필요해 보인다. 2020년 10월 29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주도하는 마포 포럼에 참석하여,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20/10/29/2020102990071.html|대통령 출마를 시사했다]]. '''2021년 7월 15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8월 17일 "분열은 필패의 길"이라며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5546193|#]] ====# [[박진]]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박진)]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2 '''[[국민의힘|[[파일:국민의힘 아이콘.svg|height=25]]]]''' }}} ||<:>{{{+1 '''[[박진(정치인)|{{{#FFFFFF 박진 (朴振)}}}]]'''}}}||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박진.jpg|width=100%]]}}} || || {{{#fff '''출생'''}}} || [[1956년]] [[9월 16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 || {{{#fff '''상황'''}}} || '''1차 컷오프''' ||}}} >'''선진국형 ‘외교안보대통령’ 박진''' [[국민의힘]] 소속의 정치인으로 정치 1번지 [[종로구(선거구)|종로구]]에서 16대~18대 3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8년간 원외에 있다가 21대 총선에서 [[강남구 을]]의 국회의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21대 국회 기준 서울 지역구 [[국민의힘]] 의원들 중 [[권영세(1959)|권영세]]와 더불어 유이한 4선 중진 의원이다. 우리나라에서 선거구로서의 [[종로구(선거구)|종로구]]의 위치는 그야말로 어마 무시한데, 무려 그 종로구를 정치적 이해관계도 아니고 '''연고지로 인한 지역구'''로 삼고 있는 꽤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2021년 7월 13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 [[박찬주(군인)|박찬주]]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박찬주(군인))]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2 '''[[국민의힘|[[파일:국민의힘 아이콘.svg|height=25]]]]''' }}} ||<:>{{{+1 '''[[박찬주(군인)|{{{#FFFFFF 박찬주 (朴贊珠)}}}]]'''}}}||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15335_342608_1492.jpg|width=100%]]}}} || || {{{#fff '''출생'''}}} || [[1958년]] [[10월 17일]], [[천안시]] || || {{{#fff '''상황'''}}} || '''경선후보 사퇴''' ||}}} >'''자유회복, 미래지향, 안전보장''' [[대한민국 육군]]의 전 [[군인]] 출신 정치인이다. 보병 병과가 아닌 기갑 병과 출신으로는 최초로 대장까지 진급하여 능력이 출중한 군인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공관병]] 등을 상대로 한 [[박찬주 대장 부부 갑질 사건|본인과 아내의 악행]]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현역 육군대장 2호 피의자'''[* 1호는 前한미연합군부사령관 [[신일순]] 대장]라는 타이틀을 달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때 [[미래통합당]] 후보로 [[천안시 을]] 지역에 출마하려 했으나 컷오프를 당했다. 2020년 7월 [[미래통합당]] 충청남도당 위원장이 되었고 2020년 9월 [[국민의힘]] 충청남도당 위원장을 역임했다. 2022년 있을 지방선거에서 충청남도 도지사 후보군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구타 가혹행위 가해자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는 상태인지라 [[예비역]]들이 기피할 것으로 보여져 선거에서 큰 힘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21년 8월 6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에 이은 4번째 군인 출신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운다. 2021년 9월 12일, 홍준표 지지를 하며 사퇴하였다.[[http://mnews.imaeil.com/Politics/2021091216115800702|#]] ====# [[안상수(인천)|안상수]]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안상수(인천))]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2 '''[[국민의힘|[[파일:국민의힘 아이콘.svg|height=25]]]]''' }}} ||<:>{{{+1 '''[[안상수(인천)|{{{#FFFFFF 안상수 (安相洙)}}}]]'''}}}||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3150_1_1.8115.png|width=100%]]}}} || || {{{#fff '''출생'''}}} || [[1946년]] [[5월 28일]], [[충청남도]] [[서산군]][* 현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 || [[제18대 대통령 선거|{{{#fff '''18대 대선'''}}}]] || [[새누리당]] 경선 5위 || || [[제19대 대통령 선거|{{{#fff '''19대 대선'''}}}]] || [[자유한국당]] 예비경선 2차 컷오프 || || {{{#fff '''상황'''}}} || '''2차 컷오프''' ||}}} >'''국민 모두가 걱정없는 삶! 안상수가 만들겠습니다''' 전직 [[인천광역시장]], 3선 국회의원. 前 창원시장 [[안상수(창원)|안상수]]와는 [[동명이인]]이다.[* 두 사람은 이름과 정당은 물론, 나이도 같고 심지어 대학도 같고 본관도 같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새누리당]] 경선에 참여했으나 5명 중 꼴찌인 5위로 탈락했고, 연달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자유한국당]] 예비경선 후보에도 참여했으나 1차 컷오프를 넘기고, 2차에서 컷오프 되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윤상현(정치인)|윤상현]]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남영희]] 후보에게 큰 표차로 밀리며 15.57%로 선거비 보전만 겨우 받으며 [[낙선]]했다.[* 윤상현 후보는 '''171표 차'''표로 생존한지라, 윤 후보의 입장에서는 안상수 후보가 조금이라도 더 분전했다면 남영희 후보가 이기게 되는 아슬아슬한 접전이었다.] [[월미은하레일]]와 [[151 인천타워]]로 대표되는 인천광역시장 시절의 정치적 무리수와 실패들로 [[인천광역시]]에서의 이미지가 이미 영 좋지 않다는 점은 안상수 후보의 확실한 약점이다. 이를 입증하듯, 윤상현과 남영희의 개인기와 별개로 전직 시장, 3선 의원이 15%를 겨우 받기도 했다. 낙선 이후 정치 활동이 없었으나, 최근 새 책을 내며 정치 활동에 다시 들어갈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브레이크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국민의힘 대선 경선 출마를 시사했다. [[https://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815285|#]] '''2021년 6월 26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http://naver.me/x7vZxtDe|#]] ====# [[유승민]]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유승민)]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2 '''[[국민의힘|[[파일:국민의힘 아이콘.svg|height=25]]]]''' }}} ||<:>{{{+1 '''[[유승민|{{{#FFFFFF 유승민 (劉承旼)}}}]]'''}}}||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614148006.jpg|width=100%]]}}} || || {{{#fff '''출생'''}}} || [[1958년]] [[1월 7일]],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현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 || [[제19대 대통령 선거|{{{#fff '''19대 대선'''}}}]] || 본선 4위 (6.76%, [[바른정당]]) || || {{{#fff '''상황'''}}} || '''경선 탈락 - 3위''' ||}}} >'''민주당에 강하다''' 한때는 [[친박]]으로 꼽히던 인물이었으나, 박근혜 당시 후보의 증세 없는 복지 발언에 대한 비판으로 인해 비박 성향으로 탈바꿈하였고 개혁보수를 내건 바른미래당에서 활동하다 손학규와의 갈등으로 탈당 후, [[새로운보수당]] 창당, 이후 [[미래통합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19대 대선에서 [[바른정당]] 후보로 출마해 6.76%의 득표율로 4위로 [[낙선]]했다. 21대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하고 공천이 다 끝날 때까지 칩거. 매년 빠짐없이 참석하던 천안함 추모행사에 참여하여 다시 정치 행보를 이어나갔다. 또한 계파를 따지지 않고 후보자의 선거 유세를 돕겠다며 미래통합당 후보들을 지원을 하고 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11507270|#]] 이후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참패했지만, 이는 유승민의 대권 도전에는 [[호재#s-1]]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황교안은 이낙연에게 큰 차이로 패배했고, 나경원과 오세훈은 아예 정치 신인들인 [[이수진(1969년 11월)|이수진]]과 [[고민정]]에게 각각 패하면서 당내 대권 경쟁자들이 모두 치명상을 입었다. 김종인 비대위 이후, 유승민 중심으로 당이 개편될 수 있으니 유승민 입장에서는 오히려 자신이 중심이 되어 보수 재건을 꿈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친유계 인사가 적게나마 수도권에서 생환한 데다 유승민에 대해 배신자 이미지가 뿌리박힌 대구 경북에서도 원조 친유들이 대거 원내에 재입성했고, 유승민 본인이 계파를 가리지 않고 지원을 요청하는 대로 수도권 유세를 돌았던 덕분에 유승민에게 먼저 손을 뻗은 타 계파 의원 중에도 적어도 유승민이란 후보를 나쁘게 보는 후보는 적다. 이렇게 되면 총선에 불출마한 대신에 유승민은 대구에서의 비토 정서를 덜어내고 수도권에서 생환한 적지 않은 범친유를 양성한 데다 [[류성걸]] 등 핵심 친유들도 상당수 살려내 당내 기반을 마련한 성공을 거둔 셈이다. 당내 세력이 동원력, 대세론 등에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걸 고려하면, 21대 총선에서의 약진으로 상대적으로 가장 큰 계파의 수장이 된 유승민은 당장은 몰라도 대선 체제에 본격적으로 돌입할 때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된 장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21년 7월에 본인이 당선되면 여가부를 폐지하겠다고 공약을 내세운 것이 기사에 실리고 유명 우파 유튜버들에의해 언급됨에 따라 인지도와 지지도가 생기고 있다. 2021년 3월 8일부터 국민의힘 중앙선대위의 요직인 중앙선거대책 상임부위원장을 맡게 되며 [[2021년 재보궐선거]]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게 되었다. 만약 재보선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그 공이 유승민에게도 배분되어 기세를 몰아 대선 행보에 탄력이 붙겠지만 패배할 경우 그 책임 역시 배분되기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후 오세훈 후보가 당선되면서 타격을 입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현재 유승민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노년 보수층에서 꽤 강하게 박힌 '''배신자''' 이미지를 극복하는 것이며,[* 과거 박근혜 대통령과의 충돌로 빚어진 배신자 프레임에 현재까지도 강하게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역으로 노년 보수층이 아닌 보수층과 중도층에게는 '''탈친박'''이라는 이미지가 남아있는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 자릿수의 낮은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아무리 당내 세력이 강해도 대선 지지율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제힘을 발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승민의 대선 도전의 성공 여부는 지지율을 일시에 끌어올릴 결정타를 만들어내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2020년 5월 26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1&aid=0011634740|#]][* 대선 출마 선언 당시 해당 기사 댓글만 봐도 알겠지만 "배신자" 낙인으로 인해 초반에는 다수의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유명 우파 유튜버들에 의해 유승민의 여가부 폐지 공약이 알려지면서 인식이 조금 바뀌고 있다. 이에 따라 유승민의 과거 행적들이 알려지면서 진보 지지자들의 지지도 또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 오성균 #==== 7월 12일부터 8월 29일까지 진행된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 등록 때는 등록하지 않았으나 8월 30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정식 등록 때는 등록하였다. [[https://news.v.daum.net/v/20210903132103081|1차 예비경선 진출 후보 심사에서 탈락했다.]] ====# [[오승철]]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오승철)]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2 '''[[국민의힘|[[파일:국민의힘 아이콘.svg|height=25]]]]''' }}} ||<:>{{{+1 '''[[오승철|{{{#FFFFFF 오승철 (吳昇哲)}}}]]'''}}}||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오승철.jpg|width=100%]]}}} || || {{{#fff '''출생'''}}} || [[1957년]] [[9월 30일]], [[경상남도]] [[부산시]][* 현 [[부산광역시]]] || || {{{#fff '''상황'''}}} || '''후보 등록 반려''' ||}}} >'''국민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대통령''' 대한인성학회와 부산복지21총봉사회를 설립했던 인물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진구 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3위로 낙선했다.[* 이때 득표율이 3.91%로 [[더불어민주당]] [[김영춘(정치인)|김영춘]] 후보와 [[새누리당]] [[나성린]] 후보의 3.1%의 표차를 넘는 득표를 했다. 즉, 오승철 후보와 나성린 후보가 단일화를 했다면 나성린 후보가 당선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오승철 후보의 득표율이 고스란히 나성린 후보에게 갈지 자체도 미지수기에 확실하지는 않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부산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당시 새누리당의 공천에 반발해 탈당한 [[이종혁(정치인)|이종혁]] 전 의원과 단일화하며 후보를 사퇴했다. 이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국민의힘]]에 입당해 경선을 치르려고 했으나 [[서병수]] 전 시장이 전략공천되었다. 반발해 탈당한 [[정근]] 후보와 달리 서병수 시장을 지지하며 당에 남았다.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는 [[부산광역시장]] 후보에 등록했으나 경선 과정에서 1차 컷오프 되며 고배를 마셨다. 이후 [[제20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에 등록했다. 약점은 역시 낮은 인지도다. 부산권에서만 알려진 인지도 때문에 경선을 통과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강성현, 오성균 후보를 제외하면 사실상 국민의힘 대권 경선 후보 중 최약체 후보기도 하다. [[https://news.v.daum.net/v/20210903132103081|1차 예비경선 진출 후보 심사에서 탈락했다.]] ====# [[원희룡]]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원희룡)]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2 '''[[국민의힘|[[파일:국민의힘 아이콘.svg|height=25]]]]''' }}} ||<:>{{{+1 '''[[원희룡|{{{#FFFFFF 원희룡 (元喜龍)}}}]]'''}}}||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원희룡 선관위 프로필.jpg|width=100%]]}}} || || {{{#fff '''출생'''}}} || [[1964년]] [[2월 14일]], [[제주도]] [[남제주군]][* 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 [[제17대 대통령 선거|{{{#fff '''17대 대선'''}}}]] || [[한나라당]] 경선 3위 || || {{{#fff '''상황'''}}} || '''경선 탈락 - 4위''' ||}}} > '''깨끗한 힘! 원희룡이 바꿉니다''' 일찍이 43세였던 2007년, [[한나라당]]에서 대선 경선에 참여하여 [[이명박]], [[박근혜]]에 이어 3위를 한 바 있다. 이후 보수진영에서 가장 유력한 인물로 떠오르기도 했던 [[홍준표]]를 한때 꺾었던 것이다. 이후 2012년 19대 총선 불출마 이후 한동안 중앙 정계에서 멀어졌고, 2014년 제주특별자치도 지사가 된 이후에도 중앙정치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잠룡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19대 대선 당시에는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했었다. 아마도 대권구도 상 문재인을 이길 수 있을 가능성이 없다고 미리 판단해 다음을 기약한 듯하다. 남경필과 함께 대선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애초부터 도지사직을 다 마치고 출마하겠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지방선거 출마 당시에는 고향인 제주도에서 4년간 행정경험을 쌓고 [[21대 총선]]에 출마해 국회로 복귀한 뒤 2022년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계획임을 내보였었지만 최근 정무라인을 복원하는 등의 행보로 제주도지사 재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 나왔고 제주도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이나 다 제주도지사 후보들이 지지부진했기 때문에 원희룡은 그대로 재선에 성공했다.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가 비록 인구 100만도 안 되는 작은 광역단체이긴 하지만 특별 자치도로서 행정 자율성이 높은 데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기 때문에 도정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낸다면 대권주자로 새롭게 떠오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야권 대권 주자들이 21대 총선에서 치명상을 입으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원희룡 입장에서는 대권 도전에 비교적 좋은 상황이 만들어졌다. 코로나19의 대처도 안정적으로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수진영의 대권후보들이 전멸하면서 당내 초선들은 부상 없이 멀쩡한 원희룡에게 거는 기대가 커지기도 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8명의 통합당-미래한국당 초선 의원이 오세훈, 황교안, 유승민 등의 후보를 제치고 그를 유력 주자로 뽑았다는 것이다. 다만 "없다"가 12명으로서 대부분의 초선들은 여전히 신중론 상태로 아직 원희룡이 완벽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판단하기는 힘들다. 대선에서의 경쟁력이라면 원조 소장파라는 이미지와 국회의원과 도지사를 역임하며 쌓인 행정능력, 바닥부터 시작해서 정상에 오른 스토리가 있어 잠재력이 뛰어나다는 점이지만 단점이라면 낮은 젊은 층 인지도 및 지지도와 대선후보로서 관심을 받기 힘든 제주도라는 지역 기반의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원희룡 본인도 중앙정치에 매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각종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지만 지지율은 요지부동인 상황. 과거에는 젊은 정치인으로 이미지 마케팅에 성공했던 인물임에도 오히려 젊은 층에게 인지도가 밀리기 때문에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듯. 이게 아니더라도 젊은 지지층들은 애매한 후보보다는 확실한 이미지를 가진 유력 후보를 미는 경향이 강하다. '''2020년 10월 15일, 대선 출마를 직접 시사했고[[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1015500156&wlog_tag3=naver|#]] 2021년 7월 25일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https://www.google.com/amp/s/imnews.imbc.com/news/2021/politics/article/6288923_34867.html|#]] ====# [[윤희숙]]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윤희숙)]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2 '''[[국민의힘|[[파일:국민의힘 아이콘.svg|height=25]]]]''' }}} ||<:>{{{+1 '''[[윤희숙|{{{#FFFFFF 윤희숙 (尹喜淑)}}}]]'''}}}||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윤희숙 의원.jpg|width=100%]]}}} || || {{{#fff '''출생'''}}} || [[1970년]] [[2월 7일]], [[서울특별시]] || || {{{#fff '''상황'''}}} || '''경선 후보 사퇴''' ||}}} >'''희망으로 미래로''' [[한국개발연구원]] 최초 부장까지 오른 여성 경제학자이며 KDI 국제정책대학윈 교수 등을 지내면서 정부위원회에 참여하였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면서 ''' 포퓰리즘 파이터 ''' 라는 별명이 생겼고 2020년 2월 [[미래통합당]]에 영입된 이후 제 [[21대 총선]] 에서 [[서초구 갑]]에 출마 , 당선되어 국회의원이 되었다. '''2021년 7월 2일, 대선 출마 선언을 했다.'''[[https://www.hankyung.com/politics/article/202107112044i|#]] 8월 24일 권익위가 발표한 부동산 불법 투기 관련 국민의힘 소속 의원 12명중 하나로 지목되어 8월 25일 사퇴하였다. ====# [[장기표]]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장기표)]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2 '''[[국민의힘|[[파일:국민의힘 아이콘.svg|height=25]]]]''' }}} ||<:>{{{+1 '''[[장기표|{{{#FFFFFF 장기표 (張基杓)}}}]]'''}}}||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장기표.jpg|width=100%]]}}} || || {{{#fff '''출생'''}}} || [[1945년]] [[12월 27일]], [[경상남도]] [[밀양군]] || || {{{#fff '''상황'''}}} || '''1차 컷오프''' ||}}} >'''자아실현의 기쁨과 보람을 누리는 행복한 삶''' 재야운동가 출신 정치인. 본래는 진보진영 재야 운동계의 거두 중 하나였으나 [[민중당(1990년)|민중당]]의 실패와 낙선 이후 [[민주당계 정당]], [[대한민국 보수정당|보수정당]]으로 옮겨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 [[민주국민당(2000년)|민주국민당]], [[새천년민주당]] 등을 전전한다. 이후 [[정통민주당]]을 창당했으나 정통민주당은 [[홍희덕]], [[천호선]] 등 진보 정당 정치인들과 일부 민주당 정치인들을 오히려 낙선 시키게 되는 역효과만 내며 [[새누리당]]을 돕게 돼 비판받게 된다. 이후 [[제19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으나 실질적으로 출마를 하지 못했고, 이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소리당 창준위를 결성,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전진당]]과 함께 [[미래통합당]]을 창당해 김해을에 단수 공천 받았다. 하지만, 김해 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김해 갑과 혼동하는 등 실수를 범하며 '''7번째 낙선'''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국민의힘]]의 김해시 을 당협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처음으로 국민의힘에 자리를 잡은 듯하며, 앞으로 다음 선거를 노릴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고 결국 '''2021년 6월 22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https://m.asiatoday.co.kr/kn/view.php?key=20210622010013174|#]] 장기표의 단점이라면 여러 정당을 전전하며 생긴 [[철새(정치)|철새]] 이미지와 낮은 [[인지도]], 그리고 76살이라는 무시 못 할 고령. 더불어 장기표를 알고 있는 시민 대부분은 장기표를 비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점에 있다.[* 사실 장기표는 김문수, [[이재오]] 등 먼저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으로 온 운동가도 아니고, [[이인영(정치인)|이인영]], [[우상호]] 등 [[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으로 간 운동가도 아니고, 심상정, 노회찬 등 [[대한민국의 진보정당]]으로 간 운동가도 아니고, [[우현(배우)|우현]], [[안내상]] 등 아예 예술계로 빠진 운동가 등 어느 쪽에도 속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대중적 인지도는 앞서 언급된 이들보다도 낮고, 설사 그를 알고 있는 진보진영, 민주당계 활동가들은 대부분 그와 대척점에 있다는 점도 상당한 마이너스 요소다.] 국민의힘 대선주자 간담회에서 초기에는 다른 후보들이 대통령이 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겠다며 '메기론'[* 출마 후보가 적거나 이슈가 안될 수도 있을 때 경선 흥행을 위해 출마하는 것. 단일화, 낙선 후 지지 등 여러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는데다 본인 역시 어느정도 인지도와 입지를 확보할 수 있기에 일석이조이다. 민주당 경선에서의 [[최문순]]이 바로 이 메기론을 들고 나왔었다. 19대 대선 당시 민주당 경선의 최성과 국민의당의 박주선 역시 마찬가지.] 을 꺼내는 듯 했으나, 상대적으로 고령의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면 다음 집권세력은 여러분들일것이라며 빌드업을 한 발언으로 현장에서 웃음을 얻었다. 장기표의 출마에 대해 경선 흥행을 위한 출마로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메기 주자로 출마한 것은 아닌 듯. ====# [[장성민]]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장성민)]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2 '''[[국민의힘|[[파일:국민의힘 아이콘.svg|height=25]]]]''' }}} ||<:>{{{+1 '''[[장성민|{{{#FFFFFF 장성민 (張誠珉)}}}]]'''}}}||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nfo.nec.go.kr/100120961.jpg|width=100%]]}}} || || {{{#fff '''출생'''}}} || [[1963년]] [[9월 5일]], [[전라남도]] [[고흥군]] || || [[제19대 대통령 선거|{{{#fff '''19대 대선'''}}}]] || 본선 9위 (0.06%, [[국민대통합당]]) || || {{{#fff '''상황'''}}} || '''1차 컷오프''' ||}}} >'''내일이 기다려지는 오늘, 5천만 모두 별의 순간을 잡는 희망국가''' [[동교동계]] 출신 정치인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총무비서를 거쳐 국정상황실장을 맡았으며 이후 16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7대 대선 과정에서 국민 선택이라는 정당을 창당하여 대선에 출마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TV조선]]에서 장성민의 시사탱크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으나 역사왜곡 사건인 [[5.18 북한개입설 보도사건]]으로 물의를 빚었으며, 진행 능력에 논란이 제기되면서 하차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대통합당]]이라는 극우 정당을 창당해 출마했으나 본선에서 9위로 낙선했다. 이후 재야에 있었으나 7월에 반문 빅텐트를 기치로 출마하겠다며 '''출마를 선언했다.'''[[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62111590746533&outlink=1&ref=https%3A%2F%2Fsearch.daum.net|#]] 이후 [[국민의힘]] 측에서 접촉할 것으로 보인다는 기사가 나왔고[[https://www.yna.co.kr/view/AKR20210704051000001?input=1179m|#]], 7월 30일 저녁 국민의힘 대외협력팀장 권영세 의원과의 회동 자리에서 입당을 결정하였다. '''2021년 8월 15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https://youtu.be/wLgcBfqw6v8|#]] ====# [[최재형]]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해당 주자, rd1=최재형)] {{{#!wiki style="word-break: keep-al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