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하랄 4세(노르웨이)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역대 노르웨이 국왕)] [목차] == 개요 == 하랄 4세 또는 하랄 길레, 하랄드 길리크리스트는 [[노르웨이]] 길리 왕조의 초대 국왕이다. 그는 [[망누스 3세]]의 사생아였으며 그가 형 [[시구르 1세]]의 아들인 [[망누스 4세(노르웨이)|망누스 4세]]의 손발을 자르고 찬탈함에 따라 100년이 넘는 노르웨이 왕위계승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 생애 == === 이복형 시구르 1세에게 공인받다 === 1127년, 하랄은 노르웨이로 가 자신이 1103년 죽기 직전 아일랜드에 다녀온 [[망누스 3세]]의 사생아라고 주장했다. [[망누스 3세]]의 다른 후손들이 아일랜드 문헌에 기록되어 있었으며, [[망누스 3세]]는 적어도 한 명의 아일랜드 여성을 정부로 삼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말은 되지만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의심에 하랄은 뜨거운 쟁기 위를 걷는 불에 의한 시죄법에 성공적으로 통과하여 [[망누스 3세]]의 아들로 인정받았다. [[시구르 1세]]는 하랄이 그의 조카인 [[망누스 4세(노르웨이)|망누스]]가 살아있는 한 왕국의 통치권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조건으로 이복동생을 적자화하였다. 하랄은 1130년 시구르가 죽을 때까지 이 협정을 지켰다. === 노르웨이 왕위계승전쟁 === [[시구르 1세]]가 죽었을 때 하랄은 퇸스베르그에 있었다. 그는 하우가팅그 회합을 소집하고, 이 팅그에서 하랄이 나라의 절반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시구르의 아들 [[망누스 4세(노르웨이)|망누스 4세]]는 마지못해 하랄과 왕국을 나누었다.그리고 처음 4년 간은 불안한 평화가 이어졌지만 결국 AD 1134년에 하랄 4세와 [[망누스 4세(노르웨이)|망누스 4세]]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1134년 8월 9일 [[망누스 4세(노르웨이)|망누스 4세]]는 보후슬렌의 Fällev에서 하랄을 격파했고 하랄은 덴마크로 도망쳤다. 이후 망누스는 완전히 이겼다고 생각해 방심하여 군대를 해산하고 베르겐으로 가서 겨울을 보냈다. 허나 하랄은 덴마크에서 새로운 군대를 마련해 노르웨이로 돌아왔고, 곧 [[망누스 4세(노르웨이)|망누스 4세]]의 군대를 만나 크리스마스 전에 베르겐에 도착해 망누스의 군대와 겨루었다. 망누스는 병력이 적었기 때문에 1135년 1월 7일 하랄의 군대에 쉽게 패배해 포로로 붙잡혀 찬탈당했다. 이 전투로 노르웨이의 왕으로 즉위하게 된 하랄 4세는 [[망누스 4세(노르웨이)|망누스 4세]]의 손발을 자르고 두 눈을 멀게 하며 불구로 만든 뒤 수도원에 감금하였고 이후 하랄 4세가 노르웨이의 단독 왕으로 즉위하였다. 하지만 이듬해인 1136년 하랄 4세 역시 세상을 떴고, 왕위는 그의 아들들 [[시구르 2세]]와 [[잉에 1세]]에게 넘어갔다. == 기타 == 하랄이라는 이름은 노르웨이를 건국한 [[하랄 1세 하르파그리]]에서 따온 이름으로 윙글링 왕가에서 많이 쓰이던 이름이다. 하지만 하랄 4세로 인해 100년이 넘도록 내전이 이어져서 그런지, 이후 노르웨이 왕가에서 하랄이라는 이름의 왕족은 적었으며 하랄 4세가 죽은 지 정확히 800년 뒤인 1937년에야 [[하랄 5세]]가 태어나게 된다. [[분류:노르웨이 국왕]][[분류:1136년 사망]]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