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rr20240101판에서 저장되지 않은 문서입니다.자동으로 r20230302판 문서를 읽어왔습니다. 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S.E.S./일본 진출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상위 문서, top1=S.E.S.)] [include(틀:S.E.S.)] [목차] == 개요 == [[S.E.S.]]의 일본 활동을 정리하는 문서다. == 상세 == 1998년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대한민국|한국]]을 넘어 국내 가수들은 너도 나도 해외 진출을 염두에 뒀거나 진출을 노렸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8022600329125001&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8-02-26&officeId=00032&pageNo=25&printNo=16366&publishType=00010|#]] [[S.E.S.]]는 여성판 [[H.O.T.]]라고 일컬어지며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 처음부터 재일교포 [[슈(S.E.S.)|슈]]나 재미교포 출신 [[유진(S.E.S.)|유진]]을 영입해서 만들어진 만큼 해외 진출을 고려했음을 알 수 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7122200329130004&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2-22&officeId=00032&pageNo=30&printNo=16309&publishType=00010|#]] 여기에 원래는 [[중국어]]가 가능한 맴버까지 영입하려 했으나 무산되었다.[[https://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856355|#]] 1998년 2월 SM이 [[S.E.S.]]의 [[일본]] 진출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으며 1998년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일본]] 활동을 진행하였다. 당시 일본대중문화 비평가 김지룡은 [[일본]] 진출에 있어 [[일본어]]는 필수이며 노래만 잘해서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이야기 했다. 또한 당시 [[일본]] 연예계에서는 화려한 외모보다는 집 근처에서 만날 수 있는 외모를 더 선호하는 추세였는데 [[S.E.S.]]는 운이 좋으면 사귈 기회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연예인이라며 성공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806100023911701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8-06-10&officeId=00023&pageNo=17&printNo=24076&publishType=00010|#]] == 진출 과정 == [[이수만]] 프로듀서는 앞으로 [[아시아]]에서 [[중국]]이 가장 큰 마켓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H.O.T.]] 때부터 [[중국]]에 진출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일본]] 음악 시장이 [[아시아]]에서 가장 컸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해보자는 의미에서 진출한 것이다. 처음에는 [[대한민국|한국]] 데뷔곡인 "I'm your girl"로 데뷔하려고 했으나, 현지 프로듀서는 "이런 음악은 안 통해. 우리 음악으로 진행하자"라며 조언 하였고 그 방향대로 나갔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실패하였고 이 경험에서 프로듀서는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https://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738948|#]] 당시 [[S.E.S.]]는 국내 최고 인기 [[걸그룹]]이었기 때문에 팬들의 기대는 대단했다. 언론도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앨범 판매 상황이나 '[[일본]] 최고 여성 그룹을 노린다'는 등의 여러 기사를 쏟아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9010100329132002&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9-01-01&officeId=00032&pageNo=32&printNo=16633&publishType=00010|#]] 이런 기대감 때문인지 출처 불분명한 당시 [[일본]] 최고의 [[걸그룹]] 이었던 SPEED 프로듀서 이지치 히로마사가 가능성을 높게 보고 극비 내한을 통해 먼저 제의를 해왔다는 이야기와 회사 규모가 더 컸기 때문에 스카이 플래닝과 계약을 했다는 설까지 여러 이야기가 나돌았다. == 저조 원인 추측 ==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S.E.S.]]의 [[일본]] 진출은 성공하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 장르 차별화 === [[S.E.S.]]가 [[대한민국|한국]]에서 데뷔와 동시에 그렇게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월메이드 [[걸그룹]]이었다는 점이 효과적으로 어필했기 때문이다. 당시 언론들도 여자 가수들이 기를 못 피는 곳이 [[대한민국|한국]]시장인데, [[S.E.S.]]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앙증맞으면서도 당돌하며, 세련된 뉴잭스윙 장르로 음악시장을 공략했으며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7123100209121005&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2-31&officeId=00020&pageNo=21&printNo=23753&publishType=00010|#]] 빼어난 미모와 깜찍한 몸짓으로 인기를 끈다고 분석했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8031000209114004&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8-03-10&officeId=00020&pageNo=14&printNo=23816&publishType=00010|#]] [[대한민국|한국]] 상황과 달리 당시 [[일본]]은 [[걸그룹]] 포화 상태였을 뿐만 아니라, [[S.E.S.]] [[일본]] 진출 후 [[일본]]측에서 만든 곡을 그대로 부르는 가수였기 때문에 독창성이 떨어진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9052800289118005&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9-05-28&officeId=00028&pageNo=18&printNo=3514&publishType=00010|#]] === 언어의 벽 === 언어 쪽의 문제도 절대 해결됐다고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슈(S.E.S.)|슈]]가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한다고 해도 [[S.E.S.]]는 그것 만으론 결코 만족스러운 활동을 할 수 없었다. 다들 알고 있다시피 [[S.E.S.]]의 [[리드보컬]]은 [[슈(S.E.S.)|슈]]가 아니라 [[바다(가수)|바다]]였으며, [[슈(S.E.S.)|슈]]가 아무리 [[일본어]]에 능숙해도 노래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하이라이트를 맡아야 하는 [[바다(가수)|바다]]가 가사 전달을 제대로 해낼 수 없으면 노래의 호소력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당시 [[바다(가수)|바다]]의 미숙한 발음은 [[일본인]]들에게 많이 지적 받았던 부분이다. '[[S.E.S.]]의 [[일본]] 노래를 [[일본]]에 사는 친구에게 들려줬는데 노래 가사가 어떤 내용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팬클럽 게시판에까지 올라올 정도였으니 [[바다(가수)|바다]]의 [[일본어]] 발음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대충 짐작이 가능한 대목이다. 언어 장벽이 문제가 되는 건 노래 부를 때 뿐만이 아니다. 곡을 띄우는 것 보다 가수 자체를 띄우는 게 목적인 [[S.E.S.]] 같은 [[아이돌]] 그룹은 노래만 잘해서는 쉽게 어필하기 어렵다. 이런 그룹들은 쇼프로를 나오든 광고를 나오든 할 것 없이 TV에 부지런히 나와 얼굴을 자주 보여줄수록 유리하다. 필요에 따라선 쇼프로에 나와서 얘기도 재밌게 해야 하고 웃기기도 해야 하고 연기도 잘해야 한다. 하지만, [[S.E.S.]]는 그런 점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매번 쇼프로에 출연할 때마다 [[슈(S.E.S.)|슈]] 혼자서만 떠들어대고, [[유진(S.E.S.)|유진]]과 [[바다(가수)|바다]]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앉아있는 모습이 [[일본]] 시청자들에게 그리 좋게 보일 리는 없었다. 얼핏 보기에 완벽한 듯 보였던 [[S.E.S.]]의 조건은 이렇게도 많은 약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대한민국|한국]]에서 온 가창력까지 겸비한 [[걸그룹]]'으로 컨셉을 잡아 대형 프로모션 위주의 활동을 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수도 있으나 그건 그것대로 후술할 '기획사'의 역량 문제와 얽혀있었다. === 기획사 선정 === 그동안 신중한 행보를 보여왔던 [[SM엔터테인먼트]] 역시 이 때 만큼은 신중하지 못했다. 이후 [[S.E.S.]]의 [[일본]] 진출에 대해 얘기할 때 [[SM엔터테인먼트]]는 이 과정에서 중대한 두 가지 실수를 범했다고 평가받곤 한다. 첫 번째 실수는 [[S.E.S.]]의 [[일본]] 내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기획사로 '스카이 플래닝'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나라 신문들은 [[일본]] 연예업계 5위권 내의 거대 기획사와 계약했다며 흥분된 어조의 기사를 매번 보도했지만 이 계약부터가 그리 현명하지 못한 것이었다. 애초에 스카이 플래닝은 연기자, 모델 중심의 회사였지 [[가수]]를 전문적으로 매니지먼트하는 회사가 아니었다.[* 마치 개그맨 전문 기획사에서 영화배우를 데뷔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업종도 다르고 접근 방식도 다르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당시 세계 2위 규모였던 [[일본]] 음반 시장에서 홍보는 절대적인 변수였다. 차트가 몇 백 위까지 매겨지고 하루에 발매되는 싱글의 수만 해도 엄청난 [[일본]]에서 뮤직비디오 제작과 음반 발매만으로는 곡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가수들이 다 타이업, 타이업하고 노래를 부르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가수 매니지먼트에 익숙하지 않았던 스카이 플래닝에 몸담았던 [[S.E.S.]]가 그런 홍보에서 불리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데뷔곡 〈めぐりあう世界〉는 [[닛폰 테레비]]의 '빙글빙글 나인T나인' 엔딩 테마로 두 달간 사용됐다고 하는데 각종 인기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CF]], [[영화]], [[게임]] 등등의 삽입곡들이 순위를 휩쓰는 [[일본]]에서 이 정도의 홍보가 그다지 약발이 먹히지 않았음을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스카이 플래닝에서 담당했던 [[S.E.S.]]의 이미지 연출에 대한 얘기 역시 빼놓고 지나갈 수 없다. TV 연예정보 프로에서 [[S.E.S.]]의 [[일본]] 활동 모습을 처음 접했던 우리나라 팬들의 실망과 분노는 이로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일본]]에서의 [[S.E.S.]]는 [[대한민국|한국]]에서 활동할 때의 [[S.E.S.]]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단정했던 [[유진(S.E.S.)|유진]]의 생머리는 색색의 머리끈과 함께 요란하게 틀어올려졌고, [[바다(가수)|바다]]의 귀여운 애교머리는 부풀려진 채 양쪽으로 묶여졌다. 의상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민소매의 탑을 걸치고 배꼽까지 노출되는 반짝이 의상을 입은 [[S.E.S.]]의 모습은 그때까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한국]] 팬들의 기대와 달라 실망이 대단했다. === 레이블 선정 === [[SM엔터테인먼트]]의 두 번째 실수는 VAP이라는 레코드 회사와 음반 배급 계약을 맺은 것이다. 계약 기간 등의 문제로 당초 계약을 진행했던 [[소니뮤직|소니]]와의 교섭이 결렬되자[* 전속기간이 짧아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계약이 무산되고 만다. 소니 측에서는 [[S.E.S.]]와 7년의 계약 기간을 요구했지만 [[SM엔터테인먼트]]와 [[S.E.S.]]의 계약 기간이 5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요구 조건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할 것이라며 계약을 체결했던 레이블이 바로 VAP이다. 하지만, VAP은 [[SM엔터테인먼트]]가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메이저 레이블이라고 할 수 없는 규모의 레코드사였으며 [[S.E.S.]]를 영입하기 전까지 이 음반사의 싱글차트 최고 기록은 93위에 불과했다. 시장 점유율이나 판매율에서 소니같은 레이블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회사였던 것이다. [[대한민국|한국]] 음악계에서는 기획사가 거의 모든 지원을 하고 음반사는 말 그대로 음반의 유통만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본]] 음악계에서는 음반사가 음반을 직접 홍보하고 방송 프로모션 일정도 조정하는 등 음반사의 역할이 매우 크다[* 그래서 [[일본]] 가수들은 기획사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와 음반사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로 공식 홈페이지가 두 개인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한국]]에서야 중소규모 음반사를 통해 음반을 발매해도 크게 지장이 없지만 [[일본]]에 진출하면서 VAP과 같은 소규모 음반사를 파트너로 선정한 것은 매우 큰 실수가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 여성 [[아이돌]] 가수의 성공 실적이 전무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S.E.S.]]를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없었다. 빵빵한 회사에서 팍팍 밀어줘도 승산이 있을까 말까한 상황에서 계약까지 제대로 맺지 못했으니 장밋빛 성공을 보장받은 것처럼 보였던 [[S.E.S.]]의 앞날은 이렇게 험난한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교훈을 얻어 뒤에 일본에 진출하는 [[보아]]나 [[동방신기]]는 대형 음반사인 [[에이벡스]] 트랙스와 계약을 하게 된다.] == 활동 결과 == 1집 활동 이후부터 [[일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기는 했지만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정규 앨범 발매 후 곧 베스트 앨범이 발매되는 성공하지 못한 [[가수]]의 흔한 절차였다.] [[S.E.S.]]는 [[대한민국|한국]]에서는 정상급 인기를 누리는 [[최고]]의 [[걸그룹]]이었지만 [[일본]]에서는 수많은 [[걸그룹]]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대한민국|한국]]에서 [[S.E.S.]]는 세련된 음악과 신비로운 요정 이미지로 대중적 [[인기]]를 끌었지만 [[일본]]에서는 [[이수만]]의 희망과는 다르게 현지의 여느 [[걸그룹]]들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다. [[S.E.S.]]의 [[일본]] 내 마케팅 포지션 및 파트너의 역량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S.E.S.]]의 [[일본]] 소속사였던 스카이 플래닝이 [[일본]] 시장에 [[S.E.S.]]를 맞추기 위해 그저 그런 수준의 [[걸그룹]]으로 [[S.E.S.]]의 개성과 특징을 하향시킨 탓이었다. 당시 [[대한민국|한국]]에서야 [[S.E.S.]] 같은 컨셉이 희귀했으니 먹혔던 것이지 [[일본]]에서 그런 그룹은 솔직히 차고 넘쳤었다. 당장 당시 인기 [[걸그룹]]이었던 [[MAX(여성그룹)|MAX]]만 봐도 [[S.E.S.]]와 비슷한 음악 스타일과 컨셉으로 이미 시장을 점유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S.E.S.]]의 [[일본]] 내 활동을 위한 계약에는 치밀한 검토가 부족했던 탓에 [[S.E.S.]]의 활발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SM엔터테인먼트]]로 들어오는 수입은 보잘 것 없었다. [[이수만]]이 [[S.E.S.]]를 일본에 진출 시켜서 누리는 혜택이라고는 현지의 시장 상황에 대한 정보를 한국 내 경쟁업체들보다 먼저 취득할 수 있다는 정도뿐이었다. 일종의 [[테스트 파일럿]]이었던 셈이다. 이후 [[SM엔터테인먼트]]는 다른 [[가수]]들을 차후에 [[일본]]으로 진출시킬 때는 [[S.E.S.]]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고, [[S.E.S.]]가 [[일본]]에서 활동하는 내내 부딪치게 된 언어상의 한계를 직접 목도하면서 [[SM엔터테인먼트]]가 추후 [[일본]]에 내놓을 다음 [[가수]]에게는 데뷔하기 전에 유창한 [[일본어]] 실력을 갖춰 놓도록 하겠다고 단단히 결심하게 된다.[* 그게 바로 [[보아]]이며, 유사한 실수를 반복한 [[천상지희]]같은 케이스도 있다.] 비록 대중이 인정해주는 금메달을 목에 걸고 귀국하진 못했지만 결코 단발로 계획된 진출이 아니었고 누구보다 깊숙이 파고들어 다음 주자인 [[보아]]의 성공을 이끄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리고 [[S.E.S.]]는 [[S.E.S.]]대로 [[일본]]에서의 실적과는 상관없이 아주 근사한 행보를 이어간다.[* 특히 4집 '[[A Letter From Green Land|감싸안으며]]'는 [[일본]]에서의 활동을 바탕으로 100% 라이브를 시도했다.] == 레귤러 출연 == * [[일본방송협회|NHK]]의 신설 음악 프로그램 《青春のポップス (청춘의 팝스)》에 1998년 4월 한 달 동안 레귤러로 출연하여 엔딩 테마였던 'When Will I See You Again'를 불렀다.[[https://youtu.be/aEBsFrJ1Geo|청춘의 팝스 공연 영상]] * [[닛폰 테레비|니혼 TV]]의 간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THE 夜もヒッパレ(밤에도 히트 퍼레이드)》에 [[일본]] 진출 초창기부터 활동 마무리 시점까지 약 2년 동안 출연했다.[[http://fanses.web-bi.net/fanses/77730|요루모 힛빠레 공연 영상 정리글]] * [[일본]] [[도쿄도|도쿄]] FM 라디오국 중 하나인 Bay FM의 《Precious harmony》의 레귤러로 발탁되어 1999년 4월부터 [[일본]] 계약이 끝날 때까지 약 1년 반 동안 〈Artist paradise〉라는 코너를 진행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10분 정도 출연하여 간단한 토크와 음악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9월부터는 인기에 힘입어 금요일로 시간을 옮겨 30분 동안 방송하게 된다. * [[후지 테레비|후지 TV]]의 신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戀ボ-ル 戀ガ-ル(사랑남녀)》의 정식 레귤러로서 1999년 5월부터 약 반 년간 출연했다. == 뮤직 비디오 == * 싱글 1집 [[めぐりあう世界]] (1998)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yy0zBWs0Wb0)]}}} || * 싱글 2집 [[夢をかさねて]] (1999)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_2oBoej2aps)]}}} || * 싱글 3집 愛という名の誇り (1999)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KlMc94OBntE)]}}} || * 싱글 4집 T.O.P. (1999) * 싱글 5집 Sign Of Love (1999)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Ckcrixb6SW0)]}}} || * 싱글 6집 Love (2000) * 싱글 7집 Lovin' You (20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YQp-IEh1d6E)]}}} || == 여담 == * 1998년 08월 28일, [[일본]] [[도쿄도|도쿄]] 롯폰기에 위치한 에이벡스 소유의 클럽 [[벨파레]]에서 데뷔 싱글 발매 쇼케이스를 가졌다. 악천후 속에서도 음악 프로듀서, 매스컴 관계자, 음반 도매상, 일반 관객 등 실질적인 선주문량은 10만장 정도로 추정된다. * 1998년 10월 21일 발매된 데뷔 싱글 〈[[めぐりあう世界]]〉가 발매 첫 주 [[오리콘 차트|오리콘]] 주간차트에서 37위를 기록, 엔카 계열의 한국 가수[* [[계은숙]], [[김연자]] 등.] 외에 [[일본]]에 진출한 [[대한민국|한국]] [[가수]] 중 역대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또한, 그 주 발매된 신인 가수들의 싱글 중에서 유일하게 차트에 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 〈[[めぐりあう世界]]〉는 싱글 발매 첫 주에 [[일본]] [[타워 레코드]](시부야 점) 싱글 판매 주간차트 3위를 기록했다. * 도매점 출하량 기준으로 [[대한민국|한국]] 가수가 [[일본]]에서 음반 판매고 50,000 장 이상을 돌파한 것은 [[서태지]]에 이어 두 번째다. * 2번째 싱글 〈[[夢をかさねて]]〉는 일본 [[닛폰 테레비|니혼 TV]] 계열의 음악 차트 프로그램 《CD GROOVE XX》에서 2주간 1위를 기록했다. * [[일본]] 내에서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으며 레이블 홍보에 크게 기여한 점을 높이 사 VAP 레코드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 5번째 싱글 〈Sign of Love〉가 제78회 전국고교축구선수권대회 이미지 송으로 선정됐다. 이는, 외국 가수로서는 최초였다. * [[한국방송공사|KBS]] 국제방송에서 실시한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대한민국|한국]] 가수 설문조사에서 3위에 뽑혔다.[* 1위는 [[조용필]], 2위는 [[김연자]].] * 2000년 5월, [[S.E.S.]]의 [[일본]] 공식 팬클럽 HANA가 결성되었다. * [[일본]] 2집 앨범 《Be Ever Wonderful》이 San Jose 키노쿠니야 미쯔와점(레코드점)의 2000년 상반기 앨범 매상에서 14위를 기록했다. * [[후지 테레비|후지 TV]]가 기획한 뮤지컬 《동아비련》에 [[슈(S.E.S.)|슈]]가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일본]] 6인조 그룹 [[V6]]의 멤버 [[이노하라 요시히코]]와 함께 무대에 섰다. 이 때의 인연으로 이노하라 요시히코는 Just a feeling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슈(S.E.S.)|슈]]는 [[일본]] 남성과 비극적인 사랑을 하다가 죽은 뒤 다시 태어나 옛 연인과 재회하는 [[한국]]인 여자 역으로 분했다. 《동아비련》은 [[일본]] [[도쿄도|도쿄]]와 [[오사카부|오사카]]에서 초연된 이후 6개 도시에서 앙코르 공연을 가지는 등 총 11만명의 관객 동원 기록을 썼다. [[서울특별시|서울]]에서도 공연된 적 있다. [[분류:S.E.S.]] * 일본 활동 당시 [[치넨 리나|知念 里奈]]({{{-2 ちねん りな, 치넨 리나}}})와 친하다고 Heyx3에서 밝혔다. * 일본 활동 당시 그 시절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걸그룹이었던 S.E.S.와 Speed는 같은 방송에도 함께 몇 번 출연한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하였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S.E.S., version=2352)] [[분류:S.E.S.]]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