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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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정철범 (丁哲範, The Rt. Reverend Matthew Chung Cheol-beom)
제3·4·6대 한국관구장이자, 제3대 서울교구장. 신명은 마태[2] .
2. 생애[편집]
1940년 11월 23일 경기도 강화군(현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아버지 정규완(丁奎玩, 1918. 5. 5 ~ ?)[3] 과 어머니 충주 임씨(忠州 林氏) 임영애(林榮愛, 1918. 11. 20 ~ 1983. 3. 20) 사이의 4남 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신학과를 졸업하고 1972년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도덕·종교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성 미카엘 신학대학원과 미국 시베리웨스턴 신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교·샌프란시스코신학교에서 공동 목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3. 업적[편집]
한국 개신교계에서 군소 교단에 속하는 대한성공회의 신학자로서 각종 저술(<성공회 신학과 사상> 등)을 통해 성공회 신학을 알리는 데 열중하였고, 사제로서의 능력도 인정받아 일찍이 서울교구청과 교무원, 그리고 NCCK와 대한기독교서회 등의 연합기관들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러한 점들 덕분에 1995년 8월 22일 교구의회에서 교구장으로 선출, 동년 11월 1일에 주교 수품 및 승좌하였다.
교구 행정에 있어서는 전체적으로 전임 김성수 주교와 비슷한 기조를 유지했고, 정 주교의 가장 큰 업적으로는 성공회 기도서 2004년판 편찬작업을 주도한 것과 한국에 푸드뱅크를 더욱 활성화시킨 것[4] 등이 꼽힌다. 정 주교는 정확히 수품 10주년이 되는 2005년 11월 1일 정년 퇴임하였고, 은퇴 직후부터 서울교구 내의 여러 성당을 돌면서 신앙 관련 강의를 하며 노년을 보내고 있다.
4. 여담[편집]
- '대주교'라는 호칭과 '의장주교'라는 호칭을 둘 다 쓴 유일한 주교이다.[5]
5. 둘러보기[편집]
[1] 10년 1일[제3·4대] 2년 7개월 18일[제6대] 2년 8개월 16일[총] 5년 4개월 4일[2] 성 마태오의 옛 번역명. 영세받은 당시 번역어를 존중하여 그대로 사용한다.[3] 1952년 강화군 송해면의회 의장을 역임했다.[4] 성공회 푸드뱅크는 이후에도 개신교계 사회복지 사업의 모범이라 불릴 정도로 잘 운영되었지만, 관구의 자금난으로 인해 2021년 운영종료 및 해산되었다.[5] 이는 정철범 주교가 3~4대 관구장으로 재임할 시기에는 관구장 주교가 '대주교'로 불리웠으나, 후임 5대 관구장 윤환 주교때 부터 '의장주교'로 불리게 되었고, 윤환 주교 이후 6대 관구장으로 정철범 주교가 다시 재임하게 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6] 다만, 제6대 관구장 재임 시에는 관구장의 명칭이 대주교(Archbishop)이 아닌 의장주교(Primate)였다. 이는 제5대 한국관구장 윤환 바우로 주교 부터 변경된 것이다.[7] 천신신학교 학장으로서[8] 성공회신학교 학장, 성공회대학장, 성공회대학교 총장으로서[9] 성공회대학교 총장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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