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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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및 집안 내력[편집]
진나라의 시조. 하지만 이때는 부용국의 군주였으므로 초대 국군은 아니다. 달리 진영(秦嬴)이라고도 불린다. 오제중의 한 명인 전욱 고양씨, 하나라의 임시 군주였던 백익(伯益)과 상나라 말기 주왕 제신의 용맹한 장수였던 오래(惡來)의 자손으로 전해진다. 백익이 제순 유우씨의 치세때 말을 잘길러 영성(嬴)을 하사받아 그 후손이 영성을 자칭했다. 그리고 백익의 자손인 조보(造父)가 서나라의 언왕(偃王)을 물리치자[1] 서주 목왕은 공을 세운 그에게 조성을 봉읍으로 하사했고, 그 가문이 영성 조씨가 되었다.[2]
2. 생애[편집]
주효왕 연간(기원전 893년 ~ 기원전 886년)에 비자는 견구에 살았는데, 가축을 잘 길러 견수 사람이 효왕에게 보고하니 효왕은 견구와 위수의 말을 기르라고 명령하고, 비자를 진 땅을 도읍으로 하는 부용국의 군주로 삼았다. 그리고 영씨의 제사를 주관하게 해 진영이라고 불렀다.
기원전 858년, 진 비자가 죽고 그 아들이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진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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