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스코틀랜드 자치권 이양 주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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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배경
3. 여론조사
4. 결과
5. 참고 자료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1997 Scottish devolution referendum

1. 개요[편집]


Devolution will kill Nationalism stone dead.

권한 이양이 (스코틀랜드) 민족주의를 사라지게 할 것.[1]

조지 로버트슨[2]

토니 블레어 내각이 1997년에 스코틀랜드에서 실시한 두번째 권한 이양 주민 투표. 이전과 달리 조세권한 이양을 묻는 질문이 더해졌다.[3]

2. 배경[편집]


1979년 스코틀랜드 자치권 이양 주민투표에서 총 유권자의 40% 이상이 찬성해야 가결이라는 어이없는 조건으로 자치권 이양이 좌절되는 바람에 보복으로 SNP가 제임스 캘러헌 내각 불신임 결의안에 전원 찬성 투표함으로써 제임스 캘러헌 내각이 실각된다. 이후 들어선 내각은 권한 이양에 반대하는 보수당 내각(마거릿 대처, 존 메이저)이었다.

보수당은 주민투표 이전에 통과했던 1978년 스코틀랜드법 보다 못한 최소한의 권한만 이양해주었고 이에 만족하지 못한 스코틀랜드의 정치인들은 자치권 이양을 요구하는 캠페인에 뛰어들었다.

1987년에는 스코틀랜드 입헌 위원회(Scottish Constitutional Convention)가 만들어졌고, 1989년에는 권리주장이 작성되었다. 같은 해에는 대처 내각이 스코틀랜드에 먼저 인두세를 도입하는 바람에 주민들의 반감이 극에 달했다.

토니 블레어가 대표로 있었던 노동당이 이를 타개하기 위해 스코틀랜드 의회(Scottish Parliament)의 신설을 묻는 자치권 이양 주민투표 실시 공약을 내걸었다. 노동당은 1997년 총선에서 418석을 얻고 토니 블레어 내각이 집권했다.

3. 여론조사[편집]


스코틀랜드 의회 신설
날짜조사기관찬성반대무응답비고
1997년 9월 10일ICM/Scotsman63%25%12%선거 전날 마지막 여론 조사
1997년 9월 8일MORI/STV67%22%11%
1997년 9월 6일~7일System Three/Herald61%20%19%1997년 8월 31일, 다이애나 스펜서 사망
1997년 9월 7일NOP/Sunday Times63%21%16%
1997년 9월 7일ICM/Scotsman60%25%15%
1997년 8월 21일~26일System Three/Herald61%23%16%-
1997년 7월 24일~29일System Three/Herald65%19%16%
1997년 6월 26일~7월 1일System Three/Herald68%21%10%
1997년 5월 22일~27일System Three/Herald64%21%15%

조세권 이양
날짜조사기관찬성반대무응답비고
1997년 9월 10일ICM/Scotsman48%40%12%선거 전날 마지막 여론 조사
1997년 9월 8일MORI/STV45%31%24%
1997년 9월 6일~7일System Three/Herald45%31%24%1997년 8월 31일, 다이애나 스펜서 사망
1997년 9월 7일NOP/Sunday Times51%34%15%
1997년 9월 7일ICM/Scotsman45%38%17%
1997년 8월 21일~26일System Three/Herald47%32%21%-
1997년 7월 24일~29일System Three/Herald54%27%18%
1997년 6월 26일~7월 1일System Three/Herald56%26%18%
1997년 5월 22일~27일System Three/Herald53%28%19%
스코틀랜드 의회 신설 여론은 이전과 달리 눈에 띄는 감소세는 없었다. 조세권 이양은 의회 신설만큼은 아니지만 투표 직전 여론조사에서는 소폭 우세였다.

4. 결과[편집]


스코틀랜드 의회 신설
찬성반대
74.3%25.7%
조세권 이양
찬성반대
63.5%36.5%
유권자 투표율
60.4%
찬성-찬성으로 스코틀랜드 자치권 이양이 가결되었다.

노동당은 이후 꽃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노스이스트 잉글랜드 주민투표가 압도적 반대로 부결되어 향후 주민투표를 통한 잉글랜드 광역 자치의회 설립이 무산되었고 스코틀랜드에서도 미숙한 선거전략으로 인해 좌경화된 SNP가 스코틀랜드의 노동당의 지지층을 대부분 흡수했다. 이 상태에서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을 묻는 주민투표가 가까스로 부결되고 다음해에 브렉시트 투표가 가결되어 현재 상황에 이른다.

5. 참고 자료[편집]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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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토니 블레어 내각은 권한이양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지만 한편으로는 권한이양을 하면 스코틀랜드 민족주의가 사라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노동당의 방심에 의해 실제로는 반대로 돌아갔다.[2] 조지 로버트슨은 당시 스코틀랜드 노동당 소속 정치인으로 현재는 남작이다.[3] 마거릿 대처를 사퇴하게 만든 인두세 도입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전 노동당 의원의 인터뷰에서는 자치권이 이양됐다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